소설리스트

무련전봉-188화 (188/853)

제 188장. 능태허의 결정

양준은 양미간을 찌푸리며 잠깐 생각을 거쳐 대답했다.

“저에게 나쁜 짓을 하는 자, 제 식구, 친구들에게 위협을 가하는 자, 제 수련을 방해하는 자, 제 보물을 빼앗는 자를 죽일 것입니다. 남이 저를 건드리지 않으면 살인하지 않습니다.”

양준이 대답한 뒤 한참이 지나도록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반나절이 지난 뒤, 능태허가 다시 입을 열었다.

“준비하고 있거라. 보름 뒤에 너와 갈 곳이 있다.”

“예!”

양준은 더 묻지 않았다. 어렴풋이 능태허가 무슨 계획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짐작했다. 게다가 힘든 결정인 듯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대답을 듣고 난 뒤, 그렇게 오랫동안 침묵하지 않았을 것이다.

양준은 잠깐 생각에 잠겼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능태허는 자신의 사부이고, 실력도 높으므로 자신에게 해를 입히려면 진작 움직였을 것이다.

보름은 길지도 짧지도 않았다. 양준은 더욱더 열심히 수련하고 단약을 복용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 보름이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갔다.

그 사이 어느 날 밤에 소안이 찾아왔다. 둘은 운우지정을 나눈 다음 수련을 했다.

양준은 수련의 좋은 점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체내 원기가 점점 더 순수해졌다. 아직 진원 경지에 이르지 못했지만, 체내 원기는 진원 경지의 무인 못지않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날 백운풍과의 전투에서 그의 손날은 백운풍의 천라망을 깨지 못했을 것이다.

양준과 소안 모두, 수련의 이점을 깨닫고 더욱 열심히 수련에 매진했다. 비록 횟수는 많지 않았지만, 질은 놀라울 정도로 높았다.

보름 뒤 양준은 하응상이 만들어 낸 단약을 모두 복용했다. 이뿐만 아니라 곤룡골에서 좌선하고 수련하며 단전 내에 양액을 조금씩 모았다. 실력도 이합 경지 3단계에 이르렀다.

저녁, 양준이 동굴 입구에서 좌선하고 있는데 공중에서 옷소매가 펄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두 그림자가 차례로 그의 동굴에 뛰어들었다.

“사부님.”

양준은 일어서서 인사했다. 다른 한 사람을 보고는 의아해했다.

“몽 주인?”

“허허허!”

몽무애가 웃자 주름진 얼굴이 한데 모였다.

양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몽무애가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은지 알 수 없었다.

문득 몽무애 얼굴의 미소가 사라졌다. 그는 놀라고 의아한 눈빛으로 양준을 훑어보다가 곧 눈을 반짝였다. 그러고는 한 손으로 양준의 어깨를 잡고, 다른 한 손을 그의 단전에 갖다 대고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노하여 외쳤다.

“얼른 나오거라!”

능태허는 의아한 눈빛으로 몽무애를 바라보았다. 몽무애가 왜 양준에게 손대는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몽무애에게 살기가 없다는 것을 느끼고는 저지하지 않았다.

양준은 신음을 흘리며 꼼짝달싹 못했다. 몽무애 같은 괴물 앞에서 이합 경지 3단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엄청난 흡인력이 전해지고, 양준은 곧 지마의 절규와 몸부림을 들을 수 있었다. 지마가 그의 몸속에 숨었을지라도 몽무애의 법안(法眼)을 피할 수는 없었다.

장문인 능태허조차 알아내지 못한 비밀이 몽무애 앞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이점에서 두 사람의 실력 차이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몽무애는 한 손으로 마치 용이 물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거세게 끌어당겼다. 곧이어 검은 기운이 끌려 나왔다. 바로 파혼추를 휘감은 지마였다.

지마는 몽무애의 살기를 알아채고 공포에 질려 소리를 질렀다. 검은 기운이 일렁거리며 험상궂은 얼굴 모양이 나타났으나 시종일관 몽무애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능태허는 안색이 변했다.

“몽 주인, 봐 주세요.”

양준은 몽 주인이 지마를 그 자리에서 소멸시킬까 두려워 얼른 저지했다.

몽무애는 양준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넌 이게 무엇인지 아느냐?”

“마두의 영혼입니다.”

양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다고? 그런데도 이런 사악한 것을 몸에 지니고 다녔단 말이냐? 이 자에게 먹힐까 두렵지 않으냐?”

몽무애는 아연실색했다. 원래는 양준이 어린 나이에 아무것도 모르고 마두의 계략에 빠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는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지마는 저의 영혼을 삼킬 수가 없습니다.”

양준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미 저를 주인으로 섬기기로 했습니다. 지마의 생사는 오직 저의 의념에 달려 있습니다.”

“너를 주인으로 섬긴다고?”

이번에는 몽무애도 어지간히 놀랐다. 비록 지마의 혼백을 끌어당겨 나오게 했지만, 여전히 생전의 강함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은 너무 허약해 원래 실력을 발휘할 수 없을 뿐이었다. 그가 힘을 얻어 회복한다면 능소각 전체를 날려 버릴 수 있는 실력이었다.

“어떻게 주인으로 섬기게 되었느냐?”

중요한 일이라 몽무애도 신중하게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양준은 지마가 그를 주인으로 섬기게 된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다 듣고 나서 몽무애의 표정이 변하더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되면 이 자는 확실히 네 손바닥 안에 있는 거야. 이 자가 너를 해칠까 걱정할 필요는 없겠구나.”

“빨리 놓아줘. 내가 얼마나 충성스러운 부하인데, 날 이리 대해? 내가 전성기 때 널 만났으면 넌 뼈도 못 추렸을 것이다.”

지마는 어쨌든 만 년 된 대마두였다. 방금 전까지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떨다가 위험이 없다는 것을 알아채자 곧 허세를 부렸다.

몽무애는 음험하게 그를 훑어보고는 냉소했다.

“너야말로 내가 전성기를 달릴 때 만났으면, 네가 무사할 성싶으냐?”

지마가 한 말과 별반 다르지 않지만, 자세히 곱씹어 보면 의미는 크게 달랐다.

지마는 깜짝 놀라 중얼거렸다.

“너… 아니 너는…….”

몽무애는 콧방귀를 뀌고 지마의 속박을 풀어주었다. 지마는 고양이를 만난 쥐처럼 더는 으스대지 못하고 검은 기운을 감싼 채 재빨리 양준의 체내로 도망쳤다.

‘완전 놀랐네. 제기랄. 이리 깊이 숨어 있는데도 저 늙은이에게 발각됐어. 저 늙은이가 결코 눈에 보이는 것처럼 간단하지 않아.’

능태허는 내내 아무 말이 없다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마두는 쉽게 믿을 인물이 못 돼.”

“명심하겠습니다.”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떠날 준비가 됐느냐?”

“네.”

며칠 전에 이미 소안이랑 하응상과는 인사를 나눴다. 지금은 아무것도 준비할 것이 없었다.

“그럼 가자꾸나.”

능태허는 큰 손으로 양준을 낚아채더니 동굴에서 나와 곧장 아래쪽으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그들의 뒤를 몽무애가 바싹 뒤쫓았다.

아래쪽은 깊이를 알 수 없는 곤룡골이었다. 양준은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아래쪽을 살펴보았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사부님이 가려던 곳이 곤룡골이었어? 아닌데, 내게 아래쪽은 위험해서 본인도 함부로 깊이 내려가지 못한다고 했었는데… 나를 데리고 모험할 리가 없어.’

능태허는 몇백 장 내려간 다음, 방향을 틀어 한쪽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 지점에 도착하자 발걸음을 멈추었다.

캄캄한 밤, 능태허와 몽무애는 허공에 서서 앞의 돌벽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여기인가?”

몽무애가 물었다.

“맞네. 자네와 내가 이곳에 진원을 주입하면 되네.”

능태허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부탁하네.”

“왜 이리 내외하나?”

몽무애는 입꼬리가 귀에 걸릴 정도였다.

양준을 떠나보낼 수 있다면 진원은 말할 것도 없고, 능태허를 아버지라 불러도 괜찮았다. 그래서 몽무애는 양준을 어떤 곳으로 데려다 주는 데 도움이 필요하다는 능태허의 부탁에 주저 없이 동의했다.

“시작하세.”

능태허는 낮은 목소리로 말한 뒤, 진원을 돌려 손바닥으로 눈앞의 돌벽에 주입했다.

몽무애는 다른 한쪽에 손바닥을 댔다. 마찬가지로 진원이 요동쳤다.

신유 경지인 두 절정 고수의 진원은 마치 홍수처럼 사납게 돌벽으로 흘러 들어갔다. 평범해 보이던 돌벽은 순식간에 밑 빠진 항아리가 되었다. 진원은 그 속에 들어가 파문조차 일으키지 못한 채 사라졌다.

양준은 한쪽에서 지켜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마음속에서 큰 파문이 일었다.

돌벽에는 반드시 현묘함이 깃들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처럼 기괴할 리가 없었다. 게다가 돌벽은 곤룡골에 있었다. 분명, 곤룡골과 어떠한 연관이 있을 터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능태허와 몽무애는 이마에 조금씩 땀이 배어 나왔다. 무절제하게 진원을 내보내는 시간이 계속되자 그들에게도 적지 않은 부담이 되었다.

“능 형, 여기가 확실한가?”

몽무애가 얼굴을 찡그리며 물었다.

“틀림없네.”

능태허는 확신에 차서 말했다.

또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돌벽에 반응이 일어났다. 평범한 돌벽에 칠흑 같은 잔물결이 솟구치면서 한 점을 중심으로 신속하게 사방으로 확산되었다.

능태허와 몽무애는 그 모습을 보자 진원을 더 거세게 주입했다.

파문은 점점 더 커지고 격렬해졌다. 마치 평온한 호수에 끊임없이 돌멩이를 던지는 것만 같았다. 나중에는 겹겹의 파문이 용솟음치면서 눈앞의 돌벽이 이상하게 보여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몽무애는 눈을 번쩍 뜨더니 연신 감탄했다.

“과연 두 지역을 연결하는 허공 통로군. 능 형, 능소각 창시자께서 실력이 대단하셨구려!”

능태허는 빙긋 웃더니 손을 뗐다.

몽무애도 서둘러 물러섰다.

두 사람이 진원 주입을 멈추었지만, 돌벽 위의 변화는 멈추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맹렬해졌다. 조용히 한참 기다리자, 겹겹의 파문이 회전하면서 밖으로 확산되었다. 이윽고 돌벽에는 검은 동굴 입구가 나타났다.

양준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동굴 입구를 바라보면서 영혼이 빨려 들어갈 것 같아 현기증이 났다.

몽무애는 웃는 낯으로 그를 바라보며 가볍게 어깨를 다독였다. 그러고는 의미심장하면서도 아쉬워하는 표정으로 목소리를 깔고서 말했다.

“양준, 조심히 다녀오거라!”

양준은 저도 모르게 양미간을 찌푸렸다. 몽무애가 오늘따라 이상하게 다정했다.

“내가 없는 동안 능소각을 잘 지켜주게나.”

능태허는 몽무애에게 부탁하고서 양준과 함께 눈앞의 검은 구멍으로 몸을 던졌다.

양준이 동굴에 들어가기 전 뒤돌아보니, 몽무애가 허공에 서서 활짝 웃음꽃을 피운 채 그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친절하기 이를 데 없었다.

능태허와 양준의 모습이 사라지자 돌벽 위의 검은 구멍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내 돌벽은 원래 모습으로 복구되었다.

몽무애는 이마의 땀을 닦고서 제자리에 조용히 서 있었다. 한참 뒤에야 하늘을 바라보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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