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189화 (189/853)

제 189장. 유명산

“으하하하하하…….”

웃음소리는 천지를 놀라게 할 정도였다. 꿈속을 헤매거나 좌선하고 있던 수많은 능소각 제자들은 저도 모르게 몸을 흠칫 떨었다.

‘하늘이 자비를 베푸시는군. 저놈의 자식을 드디어 멀리 보냈어. 이제 더는 우리 응상이의 마음을 어지럽히지 못할 거야. 흠. 이 녀석이 언제쯤 돌아올지 모르겠군. 어찌해도 한두 해 정도는 걸려야 할 거야.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면 응상이도 양준을 잊겠지. 이제 구애가 없으니 수련 속도도 빨라지고, 무탈하게 성장할 수 있게 됐군.’

몽무애는 여기까지 생각하자 다시 한번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한편, 능태허와 함께 검은 구멍으로 들어간 양준은, 사방이 온통 혼돈에 휩싸여 있었다. 그리고 불과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눈앞이 아찔해지며 낯선 땅에 발을 디뎠다.

능태허는 좌우를 둘러보고는 재빨리 한쪽으로 날아갔다. 얼마 안 가 은밀한 곳에 착지한 그는 양준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네가 호법해줘야겠다. 난 잠깐 앉아서 원기를 회복하마.”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에 통로를 열면서 힘을 많이 소모하셨구나.’

능태허는 곧바로 단약을 꺼내 복용하고, 두 시진 정도 좌선한 뒤에야 몸을 일으키더니 다짜고짜 양준을 끌고 앞으로 날아갔다.

남의 보호를 받으며 나는 것은 스스로 나는 것과 전혀 달랐다. 능태허가 온몸의 진원으로 양준을 감쌌기에 그는 역풍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사부님, 곤룡골 아래쪽 동굴은 정체가 뭔가요?”

양준은 의문투성이였다.

“능소각의 창시자께서 남긴 것이다. 천지 간 양쪽 공간을 잇는 허공 통로다. 그곳을 이용해서 다른 곳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지. 구체적인 것은 나도 잘 모른다. 내 실력은 사부님에 비하면 너무 보잘것없거든.”

“그럼 지금 얼마나 멀리 온 건가요?”

양준은 깜짝 놀랐다. 세상에 허공 통로와 같은 기이한 것이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아마 만 리쯤 되겠지.”

능태허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양준은 숨을 한껏 들이켰다. 능태허와 함께 검은 동굴로 들어간 지 겨우 반 시진밖에 안 되었다. 반 시진 만에 만 리 밖에 와 있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어디로 갈지는 궁금하지 않느냐?”

능태허가 양준을 힐끗 바라보았다.

“어차피 말씀해 주실 텐데요. 저한테 해가 되는 곳은 아닐 거잖아요.”

“아주 긍정적이군.”

능태허는 쓴웃음을 짓고는, 이내 눈빛이 깊어지더니 진지한 어투로 말했다.

“널 데려가는 곳은 살육이 난무하는 곳이다. 그곳은 아무 이유 없는 살인이 일어나는 곳이지. 강자가 지존이고. 약육강식의 세계가 확실한 곳이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할 거야.”

양준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런 곳에 왜 가는 겁니까?”

“수련하고 강해져 무도의 참뜻을 깨우치라고.”

능태허는 숨을 크게 들이쉬며 말했다.

“네가 가기 싫다면 지금이라도 돌아가마.”

“가야죠. 가겠습니다.”

양준은 수련을 거쳐 강해진다는 말에 기운이 넘쳤다. 무인이라면 누구나 다 실력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있었다. 오직 자신이 강해져야만 무도에서 더 멀리 나아갈 수 있고, 남에게 모욕당하거나 괴롭힘을 당하지 않고 잘 살아갈 수 있었다.

“시시각각 목숨이 위태로워진 데도 갈 것이냐?”

능태허의 입가에 기쁨의 미소가 떠올랐다.

“물론 가야죠.”

“허허허. 역시 네 아버지와는 다르구나. 오래 전 네 아버지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했었지. 그가 뭐라고 답했는지 아느냐?”

양준은 잠깐 생각해 보더니, 아버지의 표정과 말투를 흉내 내며 말했다.

“전 살인을 하고 싶지 않아요. 가지 않겠습니다!”

능태허가 그 모습을 보고 실소를 터뜨렸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았다. 아비만큼 자식을 아는 사람이 없다 하더니 역으로도 마찬가지구나.”

‘살인하지 않으면 결국 남에게 당할 뿐이야. 더군다나 양씨 가문은 혈육의 정이 거의 없다시피 한 곳이니, 강하지 않으면 양준이 돌아간다 해도 남에게 업신여김만 당하겠지. 양준은 지금 온몸의 기운이 포악한 상태야. 만약 자신과 식구들을 보호할 수 있을 만한 실력이 없는 상태에서 그들에게 당했을 때, 이 기운이 그의 본성에 영향을 줄 수도 있어. 훗날 사악한 기운에 빠져 세간의 공공의 적이 되느니, 차라리 지금 한 번 운에 맡겨 보는게 낫겠지. 양응봉, 이 사부가 마음이 모질다고 탓하지 마. 네게 말 한마디 없이 양준을 데리고 갔다고 말이야. 네 성격으로 보아서는 절대 허락하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우리가 가는 곳은 어디입니까?”

양준이 웃으며 물었다.

“우리가 아니라 너 혼자야. 나는 너를 그곳까지 보내줄 뿐이다. 너도 들어본 적이 있을 거다. 유명산(幽冥山)!”

순간, 양준의 얼굴이 굳어졌다. 양준은 저도 모르게 얼굴 근육이 경련을 일으켰다. 한참 동안 넋을 놓고 있다가 그제야 머뭇거리며 말했다.

“진짜로 제가 알고 있는 그 유명산인가요?”

“그렇다.”

양준의 얼굴이 더 심하게 부들거렸다.

유명산은 세상에서 악명으로 드높았다. 그곳은 무인에게 있어서도 금지 구역이었다. 한번 들어가면 살아나오기 힘들기 때문이었다. 물론, 세간의 소문이 유명산의 악명을 부풀린 것도 있었지만, 유명산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능소각 옆에 있는 흑풍산맥보다 수십 배나 더 위험도가 높았다.

흑풍산맥은 운이 나빠 특별히 흉악한 요수를 만나지 않는 한, 진원 경지 무인이 거침없이 돌아다닐 수 있었다. 그러나 유명산은 신유 경지 고수가 들어가도 살아나오기 힘들었다. 이 점만 보아도 둘의 차이를 미루어 알 수 있었다.

이렇듯 위험하기 때문에 금지 구역인 것이었다. 대한을 통틀어 이와 같은 금지 구역은 유명산뿐이었다.

천하가 넓으니 다른 곳에는 유명산과 같은 금지 구역이 많다고 했다. 일찍이 양준은 대한과 이웃한 천랑국(天狼國)에 폐토(廢土)라는 금지 구역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거의 유명산과 비슷하게 위험하지만, 유명산보다도 더 위험하다는 소문도 있었다.

금지 구역 내에는 기이한 맹수들이 가득했고, 밀림 속에는 알려지지 않은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그곳에 가는 것은 그야말로 죽음을 자초하는 것이었다.

양준은 능태허가 생각이 있을 거라 짐작했다. 유명산이라는 말을 듣고 안색이 좀 변하기는 했지만, 추태를 보일 정도는 아니었다.

과연 능태허는 그의 반응을 살피고 있었던 듯, 한참이 지나서 만족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유명산 내부로는 들어가지 않을 거다. 유명산에서 오백 리 정도 가면 특별한 곳이 있다. 너 같은 무인들이 수련하기 좋은 장소야.”

“거긴 어떤 곳인가요?”

양준이 다시 물었다.

“뭐랄까, 아주 괴이쩍어. 나도 오래 전에 사부님이 데려가서 수련했었다. 그래서 그곳을 알고 있는 것이지. 그리고 원래는 네 아버지를 보내려 했지만 거절당했어. 이제 너희 대에 오게 되었구나. 지금이 마침 들어갈 때인지라 아마 많은 이들이 이미 와있을 거야.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만약 순조롭게 들어가게 된다면, 한 가지만 명심하거라. 그곳에서 만난 사람은 모두 적이다. 절대 누구도 쉽게 믿어서는 안 된다.”

“알겠어요.”

“넌 아직 모른다.”

능태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힘을 주어 말했다.

“그곳의 특수성 때문에 사방이 적이 될 수밖에 없단다. 그곳에서는 죽은 사람의 원기와 피가 모두 혈주로 응고되는데, 누구든지 그것을 흡수할 수 있다. 그곳에서 혈주를 흡수하게 되면, 사람들은 뒷걱정 없이 실력을 높일 수 있는 것이지.”

“뭐라고요?”

양준의 얼굴빛이 변했다.

“이제는 왜 거기서 사람을 죽이는 데 아무 이유나 변명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는지 알겠지? 살인한 다음 얻는 혈주가 가장 좋은 구실이자 이유인 거다. 그곳에서 생명은 강해지는 데 필요한 디딤돌일 뿐이야. 특히 너같이 이합 경지 3단계밖에 안 되는 무인은 남의 목표물이 되기 쉬울 거다.”

능태허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양준의 얼굴에는 놀라움이 서려 있었지만, 그보다는 흥분과 기쁨이 더 컸다.

능태허는 양준의 표정을 보면서 은근히 한숨을 내쉬었다.

‘녀석이 아무래도 살생으로 무도를 깨우치려는가 보군.’

다른 이합 경지 3단계 무인이 이런 말을 들었다면 아마 두려움에 떨었을 것이다. 반면 양준은 얼굴에 갈망이 가득한 것이, 당장 그곳으로 달려가 끝없는 살육 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듯했다.

그곳에서는 무고한 이를 죽일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양준이 먼저 죽이지 않는다 해도 그를 죽이려는 이가 있을 것이다. 또한 그곳에는 마땅히 죽어야 할 사악한 무인들도 아주 많았다.

능태허는 가는 동안 양준에게 그곳에 관한 정보를 들려주었다. 그는 오래전에 그곳에서 수련하면서 경험을 쌓았었다. 몸소 겪은 경험이라 더없이 값진 정보였다.

양준은 하나도 빠짐없이 진지하게 귀담아들었다.

그곳은 유명산에 위치해 있지만, 정말로 유명산에 속하는 곳은 아니라고 했다. 아주 독특한 독립적인 공간으로, 입구는 바로 유명산의 한 호수 속에 있다고 했다. 그곳에 어떤 기이한 힘과 천지의 규칙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곳에서 죽으면 사람과 요수를 포함한 모든 생명은 온몸의 기운과 혈육의 정수가 모두 혈주로 응고되었다. 혈주는 자신이 복용할 수도 있고, 가지고 나와 남에게 복용시킬 수도 있으며 가치가 매우 컸다. 게다가 실력이 강한 사람이나 요수가 죽으면 혈주의 가치는 더욱 높아졌다. 물론 그런 혈주를 흡수할수록 실력도 더 많이 향상되었다. 그 밖에 그곳에서는 어떤 비보도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일종의 무형의 기운에 봉인된 것으로 짐작된다고 했다. 이 정보를 들은 양준은 가슴이 서늘해졌다.

그의 현재 실력은 단지 이합 경지 3단계밖에 안 되었다. 얼마나 많은 진원 경지 고수들이 그곳에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일단 이런 고수들을 만난다면, 수라검이나 천예혈해당의 도움이 없는 이상, 틀림없이 열세에 처할 것이다. 심지어는 살해당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남들도 처지가 같은 것을 떠올리자, 양준은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곳은 십 년에 한 번씩 열린다고 했다. 양준은 이번에 운이 좋아 때마침 능소각에 돌아왔던 것이다. 몇 달만 더 늦게 돌아왔다면 가고 싶어도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끝으로, 능태허는 양준에게 자그마한 주머니를 주었다.

대략 손바닥만 한 주머니 위에는 복잡하고 묘한 도안이 새겨져 있었다. 재료도 괴이했고, 묘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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