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190화 (190/853)

제 190장. 귀왕곡의 제자

“이게 뭡니까?”

양준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나는 건곤대(乾坤袋)라고 부른다. 작지만 큰 쓸모가 있는 것이야. 온갖 것을 담을 수 있단다.”

양준은 또 한번 감동했다. 그는 놀란 눈으로 능태허를 바라보았다. 능태허가 전설 속에서나 존재하는 줄 알았던 물건을 저장하는 비보를 가지고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사부께서 내게 남기신 물건이다. 대한에서 이런 주머니는 아마 이것 하나뿐일 거다. 너희 중도 8대 가문에도 없을 것이야.”

능태허는 담담하게 말했다.

‘아, 맞다. 몽무애한테도 있겠군. 그런데 그 늙은이는 무슨 보물이든 숨겼다가 오로지 본인의 제자한테만 주겠지. 옹졸하기는.’

“안에 단약도 있으니 아껴 먹거라.”

“네, 고맙습니다. 돌아오면 주머니를 다시 돌려드리겠습니다.”

양준은 정중하게 품속에 작은 주머니를 넣었다.

이 물건은 그야말로 비할 데 없는 보물이었다. 사람들은 뜬소문으로만 물건을 저장할 수 있는 비보가 있다고 들어봤을 뿐, 직접 본 이는 아무도 없었다.

사실 물건을 저장할 수 있는 비보는 양준이 가지고 있는 검은 책으로도 제련할 수 있었다. 게다가 검은 책은 진혼석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검은 책으로 제련할 경우 등급이 건곤대보다 훨씬 더 높았다. 하지만 양준은 지금 보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용 방법을 모르니 참 슬픈 일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하루쯤 더 날아갔다. 두 사람의 눈앞에 기이한 기운이 감도는, 깊고 광활한 산맥이 나타났다.

바로, 대한 내 유일한 금지 구역인 유명산이었다.

산 앞에 이르러 미처 들어가기도 전에 좌우 양측에서 사람들이 뛰쳐나왔다.

왼쪽에서 나온 이들은 여섯 명으로 모두 여자들이었다. 노파와 미모의 부인이 선두에 서 있었고, 나머지는 소녀들이었다. 네 명의 소녀들은 모두 손목, 발목에 작은 방울을 달고 있었는데, 움직이면 딸랑딸랑 하는 방울소리가 계곡의 맑은 샘물 소리 같아 듣는 이를 즐겁게 했다.

여인들은 모두 뛰어난 용모를 가지고 있었다. 미모의 부인은 우아함이 돋보였다. 그녀는 윤기 나는 검은 머리를 쪽 져 올려 희고 긴 목을 드러내고 있었다. 특히 초롱초롱한 눈동자는 사람의 마음을 간지럽히고 영혼을 쏙 빼놓을 것만 같았고, 그 눈빛에 하늘이 푸르러지고 꽃향기가 풍기는 것만 같았다.

네 명의 소녀들도 아름다웠다. 야들야들한 팔을 반쯤 밖에 드러내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새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네 명의 소녀들은 각자의 매력이 뚜렷하여, 넷이 함께 있으면 어떠한 남자도 모두 빠져들 것 같았다. 소녀들의 기질은 미모의 부인보다 성숙미는 덜했지만, 나름대로 풋풋한 느낌이 있었다.

노파는 나이가 많아 보였지만, 어렴풋이 젊었을 때의 미모를 엿볼 수 있었다. 무정한 세월이 그녀의 얼굴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을 뿐이었다.

그녀들은 양준과 능태허의 삼십 장 앞까지 달려와서 멈춰 섰다. 노파는 두 사람을 무심코 훑어보며 코웃음을 쳤다.

이 시기에 유명산에 오는 이들은 모두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기이한 공간이 제한되어 있기에 당연히 경쟁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능태허는 노파를 향해 빙그레 웃었다. 그러고는 낮은 목소리로 양준에게 말했다.

“저들은 일등 문파 만화궁(萬花宮)이다. 젊어서 혈기가 넘칠 테지만, 안에서 저 어린 계집애들에게 홀리지 않도록 조심하거라. 아니면 너의 뼈까지도 홀랑 삼켜 버릴 테니까.”

양준은 한창 뚫어지게 네 명의 소녀들을 훑어보다가, 능태허의 말에 곧 얼굴빛을 고치고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조심하겠습니다.”

잠시 뒤, 오른쪽에서 뛰쳐나온 이들도 두 사람 앞에 당도했다. 능태허와 비슷한 나이의 노인이 선두에 서 있었다. 그의 뒤로는 세 명의 젊은이들이 따르고 있었다. 남녀가 섞여 있었고, 하나같이 실력은 비범했다. 하지만 남녀를 막론하고 기질이 모두 사악했다.

뒤에 서 있던 젊은 남자 두 명은 양준보다도 더 방자했다. 그들의 시선은 만화궁 여제자들의 몸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들 곁에 서 있던 소녀가 불쾌해하며 콧방귀를 뀌었다.

“귀왕곡(鬼王谷)의 사람들이군.”

능태허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너 골머리를 앓게 됐구나.”

“왜죠?”

양준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내가 오래 전 안쪽에서 수련할 때 저 늙은이와 몇 번 충돌했거든. 저들은 사파(邪派)다. 특히 손으로 쓰는 무공을 조심해야 한다.”

양준이 다시 바라보니 맞은편에 있는 세 사람의 손이 모두 괴이쩍었다. 일반인의 손처럼 혈색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음산하고 창백해 마치 귀신의 손 같았다.

선두에 서 있던 노인이 냉소하며 말했다.

“능태허! 아직도 안 죽었군!”

능태허는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귀려(鬼勵), 자네도 죽지 않았군!”

“좋아, 좋아.”

귀려는 음산하게 웃으며 말했다.

“복수해 보지도 못하고 죽으면 어쩌나 걱정했더만, 오늘 여기서 만나다니. 하늘이 나를 굽어보는군.”

“왜? 오십 년 전에 혼이 덜 났는가? 오늘은 죽으려고 작정했나 보지?”

능태허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냉소를 지었다.

순간, 귀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다 지나간 일을 들춰서 뭐 하나? 오십 년 전에는 내가 졌지만, 지금은 다르지.”

“한 번 겨뤄 볼까?”

능태허가 거만하게 웃었다.

귀려는 섬뜩한 눈빛으로 독살스럽게 능태허를 노려보았다.

두 사람이 서로 맞서자, 귀려의 뒤에 서 있던 귀왕곡의 제자들도 양준을 노려보았다.

양준은 그들에게 활짝 웃어 보였다.

탁!

이때, 인기척이 들려왔다. 만화궁의 노파가 용머리 지팡이로 바닥을 찧은 것이었다.

“두 분이 지금 싸우려는 생각이 아니라면, 우선 협력해서 산에 들어가는 게 어떻겠나?”

노파는 능태허와 귀려를 담담하게 바라보았다.

능태허와 귀려는 비록 은원이 있었지만, 제자들을 데리고 수련하러 온 만큼, 지금 당장 싸울 생각은 없었다. 만약 시간을 놓치면 큰일을 그르치게 될 것이다.

귀려는 흐흐 웃으면서 말했다.

“안(顔) 궁주를 봐서 오늘은 이쯤에서 멈추지. 이번 일이 끝나면 한 번 두고 보세.”

“덤비고 싶거든, 언제든지 얘기하게.”

귀려는 음침한 눈초리로 양준을 훑어보더니, 대놓고 옆에 있는 세 명의 제자들에게 말했다.

“저놈의 얼굴을 잘 기억해 둬라. 안에 들어가면 저 녀석부터 없애.”

“예.”

셋은 차갑게 대답했다.

양준의 얼굴빛이 차가워졌다. 그 역시 몰래 세 제자의 얼굴을 기억해 두었다.

만화궁 노파가 나서자, 능태허와 귀려는 잠시 그들 사이의 은원을 접었다. 세 사람은 간단하게 상의한 뒤, 노파가 앞에서 길을 열고 소녀들이 뒤따르며, 귀려가 세 제자를 데리고 가운데 서고, 양준과 능태허는 맨 뒤에 서기로 했다. 미모의 부인 역시 가운데에 자리 잡아, 귀려와 함께 좌우로 섰다.

신유 경지 고수 네 명이 지키고 있으므로 젊은 제자들은 매우 안전했다. 물론 능태허와 귀려가 서로 악랄한 수를 쓰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능태허는 물론 악랄하지 않았다. 반면 귀려는 확신할 수 없었다. 바로 이런 우려 때문에 노파는 능태허를 뒤에 서게 해, 귀려가 몰래 습격하는 것을 방지한 것이다.

다행히 귀려도 현명한지라, 길을 가면서 아무 술수도 쓰지 않고, 성실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악명이 높은 유명산이라 사람들은 모두 조심하며 소리를 죽였다. 설령 외곽이라 해도 5, 6급 정도의 강한 요수를 만날 수 있었다.

만화궁 여인들은 무슨 방법을 썼는지, 그녀들의 손목과 발목에 달려 있는 방울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일행은 모두 조용히 움직였다.

얼마 가지 않아 앞에서 갑자기 ‘사삭’ 하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았다.

젊은 제자들은 마치 적이라도 만난 것처럼 하나같이 경계했다. 오히려 신유 경지의 네 명은 안색을 바꾸지 않았다.

수왁-

험상궂게 생긴 머리 하나가 갑자기 앞쪽 수풀에서 튀어나왔다. 그것은 입을 쩍 벌리고 앞에서 길을 안내하는 노파에게 달려들었다.

그 머리는 삿갓만 했는데 금빛이 반짝이는 삼각 눈이 잔혹함과 음산함을 번뜩이고 있었다. 머리는 속도가 아주 빨라 눈 깜짝할 새에 노파 앞까지 덮쳤다.

노파는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손에 든 지팡이를 살짝 들어 가볍게 그것의 머리를 쳤다. 거대한 머리는 커다란 충격을 받은 듯 바로 옆으로 내동댕이 처졌다. 그러고는 땅에 닿기도 전에 머리가 갑자기 터지면서 뿌연 피 안개를 흩뿌렸다.

중년 여인은 쏜살같이 앞으로 튀어나와 맨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그녀의 손에서 채색 띠가 나오더니 피 안개 속의 요단(妖丹)을 휘감고 다시 돌아왔다.

“금동구렁이(金瞳銀背蟒)다! 5급 정상의 요수지!”

능태허가 양준에게 말했다.

양준은 땅에 떨어진 머리 없는 구렁이의 시체를 보았다. 구렁이의 등에는 은색 무늬가 있었는데 아주 기괴해 보였다. 방금 전에 일어난 일들은 너무 빨라 그는 구렁이가 어떻게 죽었는지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요단마저 중년 여인에게 거두어지고 말았다.

5급 정상 요수는 진원 경지의 정상과 필적했다. 그런 요수가 나타나자마자 노파에게 손쉽게 죽임을 당하다니. 이 만화궁의 노파 실력이 얼마나 강한지 짐작할 수 있었다. 능태허와 같은 등급이거나 심지어 더 뛰어날 수도 있었다. 만화궁은 일등 문파로, 그들의 세력은 능소각보다 훨씬 강했다.

“조심하거라. 이 요수는 떼를 지어 지낸다.”

능태허가 다시 한번 당부했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방팔방에서 갑자기 ‘사삭’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수풀 속에서 수많은 금색 삼각 눈이 이쪽을 노려보면서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 어렴풋이 보였다.

노파는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당부했다.

“빨리 가자꾸나. 피비린내가 퍼지면 더욱 많은 요수들이 몰려올 것이다.”

일행은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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