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1장. 날 마주치지 않도록 기도나 해
사사삭-
사방에서 수많은 금동구렁이들이 높이 고개를 쳐들며 시뻘건 입을 쩍 벌리고 일행들에게 달려들었다.
노파의 지팡이에 담긴 살상력은 어마어마했다. 그저 살짝 치기만 했을 뿐인데 구렁이들이 죽어 나갔다. 귀려와 중년 여인은 중간에서 대응하며 공격을 펼쳐 제자들의 안전을 사수했다.
귀려는 사도를 수련하는 사람다웠다. 그가 공법을 펼치자 검은 기운에서 강한 피의 기운이 풍겼다. 그의 손에 든 장검 모양의 비보는 이리저리 휘둘러지며 덮쳐오는 적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중년 여인의 실력은 귀려보다는 좀 떨어졌지만, 5급 요수를 상대하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우아한 자태로 몸을 움직이면서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향긋한 냄새를 풍겼다. 그녀에게 달려들던 금동구렁이는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기묘한 수법에 죽임을 당했다.
능태허는 비보를 사용하지 않고 평범한 공격을 펼쳤으나 위력이 대단했다. 요수를 죽이는 속도는 노파와 건주어도 손색이 없었다.
선혈이 낭자한 가운데 한 마리, 또 한 마리의 금동구렁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사람들이 지나가는 곳은 낙엽을 쓰는 가을바람처럼 거침이 없었다.
만화궁의 네 소녀도 띠를 내보냈다. 그녀들은 이 요수들과 싸우려는 것이 아니라 그 띠로 죽임을 당한 요수들의 요단을 가져오려는 것이었다.
이 네 명의 소녀는 같은 스승 아래에 있는 자매들이었는데 손발이 척척 맞았다. 세 사람이 협력하여 죽은 요수들의 머리를 터뜨리고 다른 한 사람이 띠를 내보내 요수의 요단을 챙겼다.
5급 요수의 요단은 그 가치가 만만치 않았다.
소녀들의 행위에 귀왕곡의 세 사람은 배가 아팠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소녀들과 같은 수단이 없어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전리품을 얻은 소녀들의 수줍은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이때, 또 한 마리의 금동구렁이가 덮쳐왔다. 귀려는 손에 든 장검을 흔들어 구렁이의 몸통을 꿰뚫고 진원을 주입해 요수를 죽였다. 그리고 의도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힘을 과도하게 쓴 탓에 금동구렁이가 떨어진 곳은 양준이 있는 자리였다.
능태허의 눈빛에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으나 손을 써서 막지는 않았다.
솩-
소리와 함께 귀왕곡의 남제자가 뒤로 뛰어오며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새하얗고 기괴한 손에는 진원이 마구 흘러넘쳤다. 그것은 마치 날카로운 칼처럼 금동구렁이의 커다란 머리를 관통했다.
그의 일격은 요단을 꺼내는 것처럼 보였으나 힘이 너무 과도한 탓에 맨 뒤에 서 있는 양준에게도 위협이 갔다.
순식간에 상대방의 음모를 간파한 양준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이런 상황에 그가 가만히 잠자코 죽기를 기다릴 리가 있겠는가?
양준은 그와 정면으로 붙지 않고, 두 손을 뻗어 이미 죽은 금동구렁이의 몸을 잡고서 힘껏 옆으로 던져버렸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웃고 있던 귀왕곡 남제자의 안색이 갑자기 변했다.
양준의 반격이 그의 예상을 뛰어넘은 것이었다. 그는 괴성을 지르며 금동구렁이와 함께 몇십 리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그의 반응도 꽤나 빠른 셈이었다. 허공에서 다급히 구렁이의 머리에서 손을 빼고는 두 발로 구렁이의 몸에 힘을 써 넘어지는 것을 막았다. 그가 착지하기도 전에 옆에서 몸을 도사리고 있던 구렁이가 뛰쳐나와 시뻘건 입을 쩍 벌리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귀왕곡의 남제자는 안색이 바뀌면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네 명의 신유 경지 고수들이 이 구렁이를 손쉽게 죽인다고 만만히 보면 안 되었다. 그들은 실력이 뛰어나지 않는가. 그들과 달리 진원 경지의 무인이 이 구렁이를 마주치게 되면 그들에게는 죽음뿐이었다.
위기의 순간, 귀왕곡의 남제자는 이미 죽음의 기운을 감지했다. 그는 양준을 해치려다 성공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로 인해 사지로 몰리게 되었다. 남을 해치려다 자신을 해친 셈이었다.
바로 이 결정적인 순간, 귀려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귀려는 장검을 휘둘러 허공을 가르더니 두 구렁이를 날려보냈다. 그리고 남제자의 어깨를 잡아 한쪽으로 던지고는 신속히 자신의 위치로 돌아왔다.
바로 이 짧은 시간의 지체로 만화궁의 여제자들은 구렁이의 습격을 받을 뻔했다. 만약 중년 여인이 신속히 반응하여 보호하지 않았더라면, 이 네 소녀들은 다쳤을 수도 있었다.
귀려가 돌아오자 중년 여인이 그를 매섭게 노려보며 함부로 무리를 이탈해 만화궁 제자들이 위험에 빠지게 한 것을 탓했다.
귀려도 할 말이 없어 감히 반박하지 못하고, 양준과 능태허를 싸늘한 눈으로 흘겨보았다.
젊은이들이 암전을 펼칠 때, 나이든 사람들은 나서지 않았다. 하지만 양준이 영리하게 귀왕곡 남제자를 골탕 먹이자, 귀려는 속으로 분노를 새기며 기회를 찾아 설욕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양준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상대 쪽에서 먼저 자신을 죽이겠다고 엄포를 놓는데, 그가 봐줄 것이 뭐가 있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봐준다면 그건 너그러운 것이 아니라 나약한 것이었다.
한참이나 목숨을 건 싸움을 거쳐 금동구렁이를 무려 스무여 마리나 죽인 뒤에야 일행은 이 위험한 곳을 벗어날 수 있었다. 이곳은 유명산의 가장 바깥쪽인데도 이렇게 위험한 것을 보면 악명 높은 곳으로 유명한 것이 허울뿐만인 것은 아니었다.
격전을 펼친 고수들은 모두 소모가 만만치 않았다. 노파는 여전히 앞에서 말 한마디 없이 길을 안내했다. 그녀는 백 리쯤 걸은 뒤에야 그나마 안전한 곳을 찾아 머물며 쉴 것을 제안했다. 고수들은 소모한 원기를 회복해야 했고, 젊은이들도 체력을 회복해야 했다.
멈춰 선 뒤, 만화궁의 노파는 가볍게 코웃음을 치면서 싸늘하게 귀려를 바라보았다.
“방금 전 같은 일을 봐주는 건 한 번뿐이네. 만약 그게 싫다면 알아서 따로 들어가시게. 우리 만화궁은 마음가짐이 바르지 않은 사람과 함께 움직이며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다네.”
귀려는 헤실헤실 웃으며 말했다.
“안 궁주, 걱정하지 마세요. 방금 전은 제가 순간적으로 실수한 것입니다. 제자가 공격하다가 힘을 과하게 준 것뿐이니 그저 오해이지요.”
“그래야 할 것이네!”
노파는 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옆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세 문파는 서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앉아,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잠시 뒤, 양준이 눈을 뜨자, 아까 그를 해치려고 했던 귀왕곡 남제자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 제자는 양준과 열 장 정도 떨어진 곳에 멈춰 선 뒤, 차가운 시선으로 양준을 바라보면서 일그러진 미소를 지었다.
“나는 금호(金豪)라고 한다. 앞으로 나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좋을 거야. 내 쪽으로 다가오는 순간 봐주지 않고 널 죽여 버릴 거니까!”
그가 양준의 옆에 앉아 있는 능태허를 조금도 의식하지 않은 채, 협박을 늘어놓았다.
능태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눈을 감은 채 앉아 있었다.
양준은 그 제자를 보더니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금 형, 사람을 무는 개는 짖지 않아.”
“푸흡……”
웃음소리가 한쪽에서 들려왔다. 만화궁의 네 소녀들이 웃음을 참지 못한 것이었다.
중년 여인이 그들을 흘겨보자 소녀들은 다급히 입을 꼭 다물고 열심히 회복에 몰입하는 척했다.
금호가 싸늘하게 말했다.
“입만 살아 있군. 안에서 날 마주치지 않게 기도나 하는 게 좋을 거야!”
말을 마친 그는 돌아서서 떠나갔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양준의 눈빛도 서늘해졌다. 귀왕곡의 제자들은 적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실력은 양준보다 월등히 높았고, 수적으로도 우세를 차지했다. 일단 안에서 마주친다면 힘든 싸움이 될 것 같았다.
한동안 쉰 뒤, 노파가 일어섰다. 능태호와 귀려도 동시에 눈을 떴다.
일행은 여전히 이 구성대로 계속해서 유명산 내부 깊숙이 들어갔다. 길을 지날 때마다 종종 요수들의 습격을 받았는데, 마주치는 요수들은 등급에 규칙이 전혀 없었다. 3급짜리도 있었고, 4급, 5급, 심지어 6급짜리 요수도 두 마리나 마주쳤다.
하지만 6급 요수 두 마리는 이들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한동안 쫓아오다가 금세 포기했다. 그것들은 죽으러 찾아온 다른 요수들보다 훨씬 영리했다.
요수들을 죽일 때, 만화궁의 네 소녀들의 수확이 가장 많았다. 그녀들은 띠를 내보내 종종 요단을 챙겼다. 귀왕곡의 제자들도 같이 협력하며 요수를 죽이고 요단을 챙기는 등 많은 이득을 보았다.
오직 양준만 초라했다. 이번 여정에서 그는 5급 요수의 요단 두 개밖에 얻지 못했다. 이것도 능태허가 일부러 요수의 시체를 그에게 던져 주어서 얻은 것이었다.
양준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실력은 원래도 가장 약하니 지금 평범하게 보여야 다른 사람들의 원한을 살 일이 없었다.
평소라면 금방 도착했을 오백 리밖에 안 되는 길을, 유명산에서는 이틀 동안 걸어도 도착하지 못했다. 길에서 마주친 각종 위험들은 그들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안 궁주, 만화궁에서는 십 년마다 이곳에 오는데 매번 이렇게 위험한가?”
잠시 쉬어 갈 때, 능태허가 노파에게 물었다. 그가 지난번에 왔을 때는 무려 오십 년 전이었다. 그때는 비록 요수들이 길을 막기는 했지만, 이번처럼 빈도가 높지는 않았다.
노파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아니네. 이번이 유독 심하다네. 아마도 유명산에 변고가 생겨 약한 요수들이 전부 바깥으로 쫓겨난 듯하네.”
그녀의 말을 들은 능태허와 귀려는 모두 표정이 변했다.
“이곳은 오래 머무를 곳이 못 되네. 어서 길을 가자고.”
노파도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떠나자고 제안했다.
일행은 다시 길에 올랐다. 반나절 지난 뒤, 그들은 드디어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다.
앞에는 커다란 호수였는데, 맑은 호숫물이 햇빛에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고요한 물결에는 괴이한 기운이 맴돌고 있어 양준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