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192화 (192/853)

제 192장. 함께 합승할 수 있을까요?

멀리서 바라보니 호숫가의 변두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무리 지어 있었다. 이들은 모두 제자들을 데리고 수련하러 온 각 세력의 고수들이었다. 사람들이 많은 무리도 있었고, 적은 무리도 있었는데 많으면 일고여덟 명이었고, 적으면 서너 명이었다. 그들은 서로 삼십 장 정도의 거리를 두고 호수의 변두리에 모여 있었다.

능태허 일행이 온 것을 보자 그들은 모두 옅은 불쾌감과 경계심을 드러냈다.

만화궁의 노파는 능태허를 향해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중년 여인과 네 소녀들을 데리고 호숫가로 걸어갔다.

아리따운 여인들이 나타나자 바로 젊은 남자들의 주목을 끌었다. 소녀들에게는 이런 장면이 흔히 있는 편이라 별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순순히 노파의 뒤를 따라 사람이 없는 곳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

귀려는 음산하게 능태허를 바라보며 씨익 웃고는, 이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금호는 코웃음을 치면서 양준에게 목을 긋는 동작을 해 보였다. 그리고 귀려의 뒤를 따라 만화궁의 사람들과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우리도 쉴 곳을 찾아 보자꾸나.”

능태허는 말을 마치고 양준과 함께 호숫가로 다가갔다.

호숫가 주변은 이미 먼저 온 세력들이 대부분 차지하고 있었다. 능태허와 양준 두 사람은 한참 걸었지만 머무를 곳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사람들을 지날 때마다 능태허는 몰래 전음으로 이 사람들이 어느 세력에 속하는지, 정파인지 사파인지, 수련에 참가하는 제자들의 실력은 어떤지, 어떤 종문을 조심해야 하는지 등을 말해 주었다.

양준은 마음속으로 새기며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다.

호숫가를 한참 돌아서야 드디어 빈자리를 발견하고 능태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그곳에 자리를 잡은 뒤,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능태허는 양준에게 호숫가의 모인 각 크고 작은 세력들의 상황을 자세히 얘기해 주었다. 양준은 그들을 몰래 관찰하면서 마음에 새겨 두었다. 능태허의 설명을 들으면서 양준은 이번 수련의 위험성을 알게 되었다.

이 세력들은 모두 대한의 소속이었는데, 대다수는 일등, 이등 문파였다. 물론 삼등 문파도 있었지만, 그들은 적어도 제자를 두세 명 정도 데리고 왔다. 오로지 제자가 한 명뿐인 문파는 능소각뿐이었다.

능태허도 원래는 두세 명을 데리고 와 양준과 함께 단련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능소각에서는 마땅한 후보가 없었다.

소안은 실력이 충분하나 빙심결을 수련하고 있어 지나친 살육은 그녀에게 좋을 것이 없었고, 하응상도 가능했지만 몽무애의 제자인 것이 문제였다. 몽무애는 그녀를 보물처럼 아끼는데 어찌 그녀를 위험한 곳에 보내겠는가? 해홍진 등 그 외에는 아예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를 데리고 온다면 양준의 앞길만 막을 것이 뻔했다.

호숫가에 온 젊은 제자들의 실력은 모두 양준보다 강했는데, 못해도 이합 경지 7,8단계는 되었다. 진원 경지의 고수들은 더욱 많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중도 8대 가문 중에서는 누구도 온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곳은 진원 경지와 진원 경지 이하의 무인들만 겨룰 수 있는 곳이다. 신유 경지의 고수와 마주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네 실력으로 진원 경지 2,3단계의 적수를 만난다면 상대가 가능할 것이나, 만약 실력이 더 높은 사람을 만난다면 도망치거라. 사내는 맞설 줄도 알아야 하지만,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무조건 강하게 나간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맞서는 것은 실력이고, 포기하는 것은 지혜이니라.”

“알겠습니다.”

양준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하거라. 안에서는 한 가지밖에 할 것이 없다. 바로 살아남는 것이다. 강해지려면 무조건 사람과 싸워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요수를 죽이는 것도 하나의 수단이다. 이런 목적인 사람도 적지 않을 테니, 정말로 믿을 만한 사람이라면 연합하는 것도 살아남는 방법이란다.”

“네, 사부님. 그런데 저건 어느 문파인데 복장이 저리 요란합니까?”

양준이 갑자기 먼 곳을 눈빛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그곳을 바라본 능태허는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 그 사람들은 옷차림이나 모양새가 다른 사람들과 미세하게 달랐다.

마치 능태허와 양준의 시선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그 사람들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차갑고 매서운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경고의 의미가 다분했다.

“저 자들은 대한의 사람이 아니라 천랑국(天狼國)의 사람들이다.”

능태허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천랑국의 사람들도 온 것입니까?”

양준은 깜짝 놀랐다.

천랑국은 대한과 인접한 나라였다.

‘그 먼 곳에서 만 리도 마다하지 않고 이 위험한 곳에 온 건가?’

“천랑국의 무풍(武風)은 사납기 그지없단다. 많은 무인들의 수단이 잔혹하기로 소문났지. 게다가 그들은 우리와 같은 족속이 아니니 안에서 저들과 마주치면 조심해야 한다. 그들의 실력은 네가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노출이 심하게도 입었네요.”

양준은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그들을 구경했다.

“휴…….”

능태허는 하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큰 제자처럼 무뚝뚝한 녀석이 어떻게 양준처럼 능글맞은 놈을 낳았을까?’

시간이 흐르자 점점 많은 사람들이 호숫가에 모여들었다. 어떤 규율로 모인 것인지 사람들은 모두 일정한 거리를 사이에 두고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가 되지 않아 호숫가에는 온통 사람들로 가득했다.

나중에는 자리가 없자 당연히 시선을 약소한 자들이 차지한 곳에 돌렸다. 말로 해서 통하지 않으면 손을 대기까지 했다. 짧은 한 시진 동안 전쟁이 네다섯 번이나 일어났다. 작은 세력 중 한곳은 고수와 수련하러 온 젊은 제자들까지 모조리 살해당했다.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잔혹한 장면은 그 누구의 주목도 끌지 못했다. 이곳에 온 이상 사람과 충돌할 준비를 해야 했다. 실력이 안 돼 죽임을 당하는 것이니 누구도 원망할 수 없었다.

다행인 것은 능태허와 양준은 비록 두 사람이지만 누구에게도 찍히지 않아 불필요한 마찰이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점점 많은 세력들이 도착하면서 능태허와 양준은 주목을 받게 되었다.

능태허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노인이 남녀 한 명씩 제자들을 데리고 천천히 다가왔다. 그들은 능태허와 열 장 떨어진 곳에 멈춰 섰다.

능태허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덤덤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양준은 옆에서 몰래 경계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이 사람들에게서 적의나 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맞은편의 노인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능태허에게 공수하며 말했다.

“전 영월문(映月門)의 탁온(卓溫)입니다. 어르신은 존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능소각의 능태허라 하오.”

“능 형이셨군요!”

탁온은 능소각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 듯했다. 그는 덤덤하게 안부를 물은 뒤, 본론을 얘기했다.

“능 형, 양해해 주십시오. 제가 제자들을 데리고 먼 곳에서 오느라 좀 늦었습니다. 처음 외지로 수련하러 온 것이니 세력이 이렇게 많을 거라고 생각하지도 못했고, 자리가 없을 줄도 몰랐습니다.”

능태허는 양준을 데리고 만 리를 가르고 날아온 것이었다. 비록 떠난 시간은 좀 늦었지만, 일찍 도착한 셈이었다. 영월문의 탁온은 한 달 전에 출발했으나 길이 먼 데다 유명산으로 들어온 뒤, 어려움을 많이 겪다 보니 능태허보다 이틀 늦게 도착했다.

“내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소?”

상대방에게서 악의가 없자 능태허도 차갑게 굴지 않았다. 비록 속으로 상대방의 의도가 대략 짐작이 갔으나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탁온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저 호수를 지나려면 연잎을 타야 하는데, 네 명까지 태울 수 있는 걸로 압니다. 혹 괜찮으시다면 저의 두 제자도 함께 합승할 수 있을까요? 이번에 들어가지 못하면, 저는 헛걸음을 한 것이라 돌아가서 놀림을 당할 것이고, 두 제자들도 크게 실망할 것입니다.”

능태허는 시선을 돌려 탁온 뒤의 두 젊은 제자들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다급히 앞으로 다가오더니, 남제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제자 진학서(陳學書), 능 선배를 뵙습니다.”

옆에 서 있던 여제자가 이어 말했다.

“제자 서소어(舒小語), 능 선배를 뵙습니다.”

두 사람은 모두 제자가 스승에게 올리는 예를 취했다. 태도가 공손하고 일말의 불만과 건방짐이 없는 모습에 능태허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영월문은 능소각처럼 이등 문파였다. 문파 내 제자도 지나치게 간사하거나 악한 사람이 없었다. 이 두 제자도 용모가 온화한 것이 싸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같지 않았다.

능태허가 말이 없는 것을 보고 탁온이 다급히 말했다.

“능 형, 걱정하지 마세요. 저의 제자들은 마음이 착합니다. 이번에 수련하러 가는 것도 요수들을 죽이고 기연이나 찾는 것이 주된 목적이지, 절대 능 형의 제자에게 불리한 일을 하지 않을 겁니다. 이 점은 제가 목숨을 걸고 보장하지요!”

말을 마친 그는 또 덧붙였다.

“능 형의 제자도 괜찮다면 이따가 안에 들어가서 저의 두 제자와 친하게 지내면서 서로 도와주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능태허는 결국 시선을 양준에게 돌리며 물었다.

“네 생각은 어떠냐?”

양준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함께 들어갈 수는 있지만, 친하게 지내는 것은 사양할게요.”

다들 잘 알지 못하는 데다가 눈앞에 두 제자는 보기엔 착해 보이나 사람을 겉만 보고 판단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양준이 이 두 사람을 믿는다고 해도 그들이 양준을 믿지 않을 수도 있었다. 탁온의 말은 인사치레에 불과한데 어떻게 진심으로 받아들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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