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4장. 환전랑
낮과 밤이 불분명하고, 음양이 혼란스러우며 천지가 혼돈스러웠다. 이는 이곳에 가장 분명한 특징이었다.
“들어왔어!”
서소어는 흥분되어 말했다. 하지만 진학서와 양준 두 사람은 다급히 사방을 경계 어린 눈빛으로 훑어보았다. 주변에 위험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은 한 연잎을 타고 들어온 사람이 아니라면 각각 다른 곳에 나타나는 듯했다. 양준은 이 정보를 미리 알고 있었는데, 지금 보니 역시 사실이었다.
양준은 조용히 진학서와 서소어와의 거리를 벌렸다. 티를 내지 않으려 했으나, 진학서는 예민하게 눈치챘다.
진학서는 양준의 행동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양 사제, 우리와 함께 가지 않을래? 서로 도와줄 수도 있고 말이야!”
양준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공수 인사했다.
“성의는 고맙지만, 나 혼자 다녀보고 싶어.”
진학서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리지 않았다.
“그럼 양 사제 조심해!”
“나중에 보자!”
말을 마친 양준은 신법을 펼치며 신속히 자리를 떠났다.
“왜 저리 빨리 간대? 누가 잡아먹기라도 한대?”
서소어는 입술을 삐죽이며 양준의 경계심을 탓했다.
진학서는 하하 웃으며 서소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경계심이 많은가 보지.”
“그렇지만 우리는 쟤를 어찌할 생각이 없었잖아!”
서소어는 뾰로통해서 말했다.
“실력도 낮아서 혼자 다니면 금방 죽을 텐데…….”
진학서는 엄숙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꼭 그렇다는 법은 없어. 오히려 신중한 사람이 오래 살아남는 법이야. 그리고 왠지 모르게 그에게는 특별한 구석이 있어.”
“뭐가 특별한데?”
서소어는 큰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이합 경지 3단계밖에 안 되면서 이곳에 오다니. 살기 싫어졌거나 믿는 구석이 있거나 둘 중 하나야.”
“그 말은…….”
“아마도 대단한 수단이 있을 거야. 그게 아니면 그의 사부님도 그를 이곳에 보내지 않았겠지. 휴, 이곳에 들어오는 사람들 중 특별한 수단 하나 없는 사람이 있겠어? 우리도 최대한 조심하자. 될수록 다른 사람과 다투지 말고.”
*양준은 영월문의 두 사람과 헤어진 뒤, 전력으로 보법을 펼쳐 한걸음에 십몇 리를 나아갔다. 도중에 그는 방향을 여러 번 바꾸면서 큰 나무에 도착했다. 그러고는 경계 어린 시선으로 주변을 살폈다.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진학서와 서소어가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인지, 아니면 양의 가죽을 뒤집어쓴 늑대인지 알아볼 수 있는 기회였다.
나무 위에서 한참 기다린 양준은 누군가 쫓아오는 기미가 없자 그제야 두 사람이 자신에게 악의가 없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들은 모두 진원 경지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영월문에서도 분명 천재급의 인물일 것이다. 만약 자신을 공격할 생각이었다면 지금까지 가만히 있었을 리가 없었다.
능태허도 전에 정말 믿을 만한 사람을 만난다면 손을 잡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했었다. 진학서와 서소어는 믿을 만한 사람들이었다. 만약 다음에 또 마주친다면 양준은 그들과 함께 행동하기로 결심했다.
나무 위에 숨은 양준은 자신이 가진 두 개의 비보를 시험해 보았다. 그는 이곳에서 비보를 불러낼 수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몸속에 봉인된 듯했다.
“지마!”
“소인, 여기 있네.”
지마가 얼른 대답했다.
“파혼추, 쓸 수 있어?”
“실망스럽게도 쓸 수 없네…….”
양준은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파혼추처럼 그에게 속하지 않는 비보도 금지되었다니. 파혼추가 없다면 지마도 전투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곳에서는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만 버터야 했다.
다행히 능태허가 양준에게 건네준 건곤대에는 좋은 물건이 많이 들어 있었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제대로 살펴볼 시간이 없었지만 지금은 여유가 있었다.
가슴팍에서 건곤대를 꺼내, 입구를 열고 손을 넣어 보니 좋은 물건들이 많이 잡혔다. 단약은 열몇 병 정도 있는 것 같았다. 대다수가 상처를 치료하는 용도였는데 모두 양성을 띠고 있었다. 양준은 크게 기뻐하며 사부의 은혜에 감격했다. 이 단약이 있다면 양액이 부족할 걱정은 없었다.
단약 말고 양준은 또 갈아입을 옷 열몇 벌과 장검 하나를 발견했다. 하지만 장검은 비보가 아니라, 강철로 제련한 평범한 무기일 뿐이었다. 그래서 이곳에서 마음껏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양준은 수련한 검법이 없어, 검을 휘두르기보다 맨손으로 전투하는 것이 훨씬 나았다. 실력이 이 정도에 다다르면 손에 익지 않는 장검 따위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모든 물건을 잘 챙긴 뒤, 양준은 나무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그는 손바닥을 비비며 기대를 가득 안고 흥분된 마음으로 수련의 길을 떠났다.
반 시진 뒤, 양준은 우연히 4급 요수를 만났다. 그는 짧은 시간에 요수를 죽인 뒤, 조용히 제자리에 서서 기다렸다.
역시 들은 대로 요수가 죽자, 요수의 몸에서 혈육의 정수가 한곳에 모이는 것을 발견했다. 요수의 시체는 육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서서히 말라갔다. 그리고 시체가 말라감에 따라 요수의 몸에서 솟구치는 붉은색 기운은 점차 많아졌다.
붉은빛이 반짝이더니 한참 뒤, 빨갛고 완두콩만 한 혈주(血珠)가 응고되었다.
양준은 그것이 응고되는 순간, 손에 잡고 느껴 보았다. 4급짜리 요수일 뿐이라 많지는 않았지만, 혈주에는 기이한 기운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실망할 정도는 아니었다.
‘어떤 천지의 법칙이 담겨 있기에 생물이 죽은 뒤 이런 변화가 나타나는 것일까?’
혈주를 챙긴 뒤, 양준은 고개를 숙이고 요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요수의 시체가 가루로 되어 바람에 날려간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혈주가 자신의 실력을 향상시키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 양준은 은근히 기대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흡수하기 좋은 시기가 아니었다.
수확이 생긴 양준은 투지가 불타올라 발걸음도 점차 가벼워졌다.
이곳은 이합 경지와 진원 경지의 무인들이 수련하기 좋은 곳이었다. 양준은 이곳에 처음 온 날, 이미 무리에서 뒤떨어진 요수 대여섯 마리를 죽였다. 그것들은 모두 3~4급이라 원기를 많이 소모하지 않았는데, 꽤나 수확이 있었다. 3급 요수를 죽이고 얻은 혈주는 4급짜리 요수의 것보다 기운이 훨씬 부족했다.
또 5급짜리 요수를 한 마리 마주쳤지만, 양준은 실력을 한참 가늠해 보다가 결국 움직이지 않았다. 5급짜리 요수는 진원 경지의 무인 수준이었다. 양준은 그것을 죽일 수 있었지만, 반드시 전력을 다해야 하고 다칠 각오를 해야 했다. 그래서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양준은 5급짜리 요수와 겨루고 싶지 않았다.
연속 사흘 동안 양준은 걱정 없이 요수를 죽이다가 지치면 그나마 안전한 곳을 찾아 쉬었다. 그리고 체력을 회복한 뒤 또다시 사냥에 나섰다. 이 사흘 동안 양준은 그 누구도 마주치지 못했다.
‘이러니 많은 이합 경지의 무인들도 감히 들어오지. 만약 계속해서 이렇게 안전하다면 기동 경지의 무인이 들어와도 걱정할 것은 없겠어. 요수들만 피하면 되니까.’
사흘 뒤, 양준은 수풀에 몸을 숨기고 몰래 앞을 살펴보았다.
앞에는 4급짜리 요수인 환전랑(幻電狼) 두 마리가 있었다.
4급짜리 요수는 이합 경지의 무인과 실력이 비슷했다. 양준과 같은 경지인 셈이었다. 하지만 두 마리가 함께 달려들면 혼자서 상대하기 버거울 수 있었다.
한참 동안 고민하던 양준은 요수를 공격하기로 마음먹었다. 지금 그가 상대할 수 있는 요수는 제일 강한 게 4급이었다. 지금 한꺼번에 두 마리나 마주쳤는데 포기할 리 없었다.
양준은 몸을 숨긴 곳에서 뛰어나와 빠른 속도로 환전랑에게 다가갔다. 양준은 이 두 요수에게만 정신이 팔려 주변에 다른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달려가는 도중, 곁눈질로 멀지 않은 곳에 사람이 지나간 흔적을 발견했다.
양준은 속이 철렁하여 다급히 주변을 살펴보았다. 역시 거리가 백 장도 되지 않는 곳에서 흑적색 장삼을 입은 사람이 다급히 몸을 숨기는 것이 보였다.
양준은 순간 모든 것을 알아챘다.
상대방도 그처럼 몰래 숨어서 환전랑 두 마리를 관찰하고 있었고, 그 역시 양준의 존재를 발견하지 못하다가, 공교롭게도 양준과 그 사람이 동시에 손을 뻗으려고 한 것이다. 양준의 속도가 더 빨라 먼저 뛰어나왔고, 바로 이때, 상대방도 그의 존재를 눈치챈 것이다. 양준을 발견한 그는 다급히 모습을 감추었지만, 입은 옷이 너무 눈에 띈 탓에 양준에게 들킨 것이었다.
지금 다시 돌아가기엔 이미 늦었다. 환전랑 두 마리의 시선이 양준에게 고정되었고, 두 마리는 이를 으르렁거리며 전혀 머뭇거리지 않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양준은 속으로 ‘아뿔싸’를 외치며 사마귀가 매미를 잡으니 참새가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상황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생각하면서, 한편으로는 그 사람의 신분을 돌이켜 보았다.
잠시 뒤, 양준은 마음먹고 몸을 움직였다.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환전랑 두 마리를 공격했다.
이 4급 요수 두 마리는 속도가 바람처럼 빨랐고, 몸에는 전기가 흐르고 있었다. 놈들은 좌우로 나누어서 포위 공격을 펼쳤는데, 순식간에 양준의 눈앞에 나타났다.
두 요수는 사냥 경험이 아주 풍부했다. 좌우로 협공하며 서로 공격하는 시간을 아주 교묘하게 사용했다.
양준은 다급히 몸을 돌려 한 마리의 공격은 피했지만, 다른 한 마리에게 어깨가 물렸다.
어깨가 물린 순간, 전류가 온몸에 퍼졌고, 양준은 저도 모르게 몸을 흠칫 떨었다. 그는 다급히 원기를 운행하여 전류를 풀면서 환전랑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그리고 환전랑이 그의 어깨를 물어뜯는 틈을 타서 그것을 날려보냈다.
“아우!”
비명소리와 함께 환전랑은 데굴데굴 굴렀다.
양준이 이 일격에 전력을 사용하지 않은 탓에 환전랑은 별로 다치지 않았다. 그들은 몸을 일으킨 뒤, 울부짖으며 다시 공격해 왔다.
양준은 발을 들어 아래쪽에 있는 환전랑의 배를 걷어차 날려보냈다. 그리고 다른 환전랑을 양손으로 힘껏 밀어 놈의 공격을 막았다. 두 요수가 정신을 차리기 전에 양준은 또다시 달려들어 환전랑과 한데 엉겨붙었다.
사실 진짜 실력으로 상대하면 이렇게 힘을 들일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 자신을 훔쳐보고 있는 것을 발견한 이상, 진짜 실력을 보일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