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199화 (199/853)

제 199장. 혈주 두 알

금호와 여인은 매우 화가 나는 동시에, 우성곤의 죽음에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절벽에서 떨어졌으니 능소각 녀석도 살아남지 못했을 거야.’

두 사람은 벼랑 끝에서 한참을 서 있다가 떠나갔다.

절벽이 너무 높았기에 그들은 아래에 무슨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감히 우성곤의 시체를 찾아 나설 엄두를 내지 못하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절벽 아래에서 양준은 양염지익을 이용해 무사히 착지했다. 그는 우성곤이 죽은 뒤 남은 혈주를 챙겼다. 과연 진원 경지의 고수다웠다. 이 혈주의 크기는 이합 경지의 무인들이 남긴 것보다 배는 커서 용의 눈알만 했다. 그리고 혈주에 담긴 기운도 아주 강했다.

전에 혈주를 연화하며 그것에 효능을 몸소 느낀 양준은, 지금 이렇게 큰 혈주를 보니 저도 모르게 흥분되었다.

‘만약에 이곳의 진원 경지 무인들을 전부 죽인다면 수확이 얼마나 클까?’

이곳에 들어오던 날, 호숫가에 모여 있던 무인들은 족히 이삼백 명이 넘었었다.

‘혈주 이삼백 알이라… 손쉽게 진원 경지에 오르겠지?’

이 생각이 든 양준은 저도 모르게 깜짝 놀랐다. 그는 마음속에 숨겨진 살기를 불러낼까 두려워 다급히 마음을 가다듬었다. 양준은 품속에 있는 건곤대에 혈주를 넣고 주위를 둘러본 뒤, 한 방향을 따라 신속하게 떠나갔다.

그가 있는 곳은 구름과 안개에 뒤덮인 거대한 산골짜기였다. 사면이 온통 가파르고 높이가 만 장에 달하는 절벽이라 일반인은 내려올 리 없었다. 실력이 진원 경지에 달해도 아래의 상황을 잘 알아보기 전에는 누구도 무모하게 내려오지 않을 것이다.

양준은 산골짜기에서 하루 동안 길을 걸으며 이곳의 지형을 파악했다. 그는 마음속으로 기쁨을 금치 못했다. 험준한 지형 탓에, 이곳에는 사람이 없어 상대할 수 없는 적수를 만날 걱정도 당연히 할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그는 길을 가면서 4급짜리 요수를 몇 마리나 죽여 수확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시간만 충분히 있다면, 이곳에서도 실력을 쌓을 수 있었다.

산골짜기는 아주 거대했다. 양준은 매일매일 걸으면서 사냥했고, 수확을 거두었다. 가끔씩 5급짜리 요수를 만나도 피하기만 할 뿐 건드리지 않았다.

십여 일이 지나자 양준은 요수의 혈주를 서른 알 넘게 수확했다. 안전한 곳을 찾은 그는 한 시진 동안 그것을 모두 연화하여 흡수하였다. 우성곤이 죽은 뒤에 얻은 혈주까지 흡수한 양준은 이미 이합 경지 4단계의 절정에 도달한 것을 느꼈다. 조금만 더 혈주를 흡수한다면 또다시 진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산골짜기에는 요수가 많지 않은 듯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양준은 더 이상 4급 요수를 만나기 힘들었다. 비록 5급 요수가 활동한 흔적이 보였지만, 양준은 싸우고 싶지 않았다.

산골짜기 전체를 빙 둘러 한 바퀴 돌아본 양준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잠깐 생각해 본 그는 더 깊이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요수를 더 만나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이 산골짜기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산골짜기 중간으로 들어가는 양준의 속도는 점차 빨라졌다. 가면서 요수도 몇 마리 만났고, 혈주도 몇 알 얻었지만, 깊이 들어갈수록 요수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요수가 활동한 흔적도 전혀 없었다.

양준은 마음속으로 의문을 품은 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며칠 뒤, 양준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멍하니 앞을 바라보았다. 그의 동공은 더없이 커져 얼굴에는 저도 모르게 경악한 표정이 드러났다.

백 장 밖에 새하얀 골격이 바닥에 누워 있었다. 이렇게 먼 거리를 사이에 두고 있어도 양준은 강한 기운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 골격은 적어도 이십 장 정도의 높이였는데, 길이는 아예 가늠할 수가 없었다. 상아처럼 윤기가 도는 골격은 오랫동안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단단함을 뽐냈다.

양준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골격에게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간 양준은 그제야 요수가 한 마리가 아닌, 두 마리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중 한 마리는 그가 멀리서부터 본 거대한 골격이었고, 다른 한 마리는 크기가 좀 더 작았다. 두 골격은 한데 이어져 있는 듯했으나, 자세히 보니 아니었다. 자그마한 골격은 거대한 골격의 배 안에 있었다.

“이건 함께 죽은 두 요수라네!”

지마가 단정 지으며 말했다.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추측에 동의했다. 이 두 골격의 모습으로 보아 그는 두 요수가 사투를 벌인 모습을 짐작해낼 수 있었다. 두 요수는 크기가 달랐지만 승부를 가를 수 없을 정도로 격전을 벌였을 것이다.

수많은 시간이 흐르고 날씨의 변화를 거치면서 그날에 격전을 벌인 흔적은 점차 사라졌지만, 이 새하얀 골격과 불굴의 살기는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양준은 오랫동안 멍하니 골격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렇게 큰 몸집을 가지고 있는 요수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의 눈앞에 쓰러진 이십여 장 높이의 요수는 몸의 절반만이 드러나 있었고, 그것의 일부는 아직도 땅에 묻혀 있었다. 이 요수는 뼈 마디마디마다 강한 기운을 풍기며 몸집이 웅장한 것이 살아 있을 때는 분명 실력이 비범한 요수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은 요수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이렇게 작은 몸으로 이만한 적수와 함께 죽을 수 있다니.

“지마, 이게 무슨 요수야?”

양준은 한참 서 있다가 지마에게 물었다.

“뼈만으로는 알아볼 수 없다네.”

지마가 대답했다.

양준은 손을 뻗어 눈앞의 새하얗고 거대한 뼈를 쓰다듬었다. 손가락이 뼈에 닿자마자 뼈는 순식간에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이내 겉에 드러난 골격에서 쩍쩍 갈라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순식간에 무너져 버렸다.

곧이어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커다랗게 뜬 채, 사방을 둘러보았다.

“주인, 뭘 찾나?”

지마는 의아해서 물었다.

“당연히 혈주지. 이 두 요수가 이토록 강한데 죽은 뒤의 혈주도 대단하지 않겠어?”

양준이 흥분하여 말했다.

“죽은 지 이렇게 오래되었는데 혈주가 없어지지 않았겠나?”

“난 혈주가 아직 이곳에 있을 거라고 생각해. 내기할래?”

양준은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소인이 아둔했네…….”

“여긴 절벽 아래인 데다 안개도 자욱해서 진원 경지의 무인들도 이유 없이 내려오지는 않았을 거야.”

양준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누군가에게 쫓겨 하는 수 없이 모험을 한 사람은 나밖에 없겠지.”

“하지만 무인이 아니더라도 이곳에는 요수가 있지 않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지마는 깜짝 놀랐다. 이 며칠 동안 그는 근처에서 요수가 활동한 흔적을 전혀 보지 못했던 것이다.

무인도, 요수도 오지 않는 곳이니 두 마리의 요수가 죽은 뒤 남은 혈주는 당연히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양준은 더 설명하기 귀찮았다. 여기까지 말했으니 지마가 알아듣지 못할 리 없었다. 그는 손끝으로 양액을 짜내어 삽 모양으로 만들고 땅을 파기 시작했다.

양준은 땅을 팔 때도 규칙이 있었다. 그는 거대한 골격의 뼈를 따라 파내려 갔다. 혈주는 두 요수가 죽은 뒤 만들어진 것이니 분명 뼈 아래의 땅에 묻혀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십여 장 정도를 깊이 파내자, 갑자기 진홍색의 빛이 땅밑에서 뿜어져 나왔다.

“찾았다!”

양준은 크게 기뻐하며 조심스럽게 주변의 흙을 헤쳤다. 하지만 혈주를 발견한 양준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는 이렇게 강한 요수가 죽어서 남긴 혈주라면 사람 머리만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사람 머리만 하지는 않더라도 주먹 정도는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이 혈주의 크기는 우성곤이 죽어서 남긴 혈주보다도 작았다. 그저 4급 요수의 혈주만 했다.

‘내가 잘못 생각한 걸까? 이 요수들은 강한 게 아니었나?’

마음속에 의문을 품은 채, 계속해서 땅을 판 양준은 곧 근처에서 또 혈주 한 알을 찾았다. 방금 전의 것과 크기가 거의 똑같았다.

두 요수는 함께 죽은 데다가 실력도 비슷하니 혈주도 당연히 크기가 비슷했다.

미간을 찌푸린 채, 손바닥에 두 혈주를 올려놓고 가늠해 본 양준은 진양결을 움직여 두 혈주 속에 담긴 기운이 어떤지 느껴 보았다. 하지만 결법이 운행되자마자 양준은 신음소리를 흘리며 저도 모르게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의 얼굴이 급격하게 창백해졌다.

“주인!”

지마는 깜짝 놀라며 다급히 양준을 불렀다. 하지만 양준에게서 아무런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그는 끓어 넘칠 듯한 무시무시한 기운이 양준의 손을 통해 끊임없이 양준의 몸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기운은 순수한 것이 아니었다. 혈주 속에는 살기와 요기가 가득했다. 이 요기와 살기에 식견이 넓은 대마두인 지마도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양준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경맥은 한순간 포화되기 시작했고, 진양결도 통제에서 벗어나 미친 듯이 움직이며 이 방대한 기운 속에 숨은 이물질을 연화하여, 금신에 흡수하려고 했다.

바로 이때, 그의 마음속에는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이 두 요수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이지? 이 요수의 혈주는 왜 다른 것들과 다를까?’

다른 혈주는 더없이 순수하여 누구라도 손쉽게 흡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두 개의 혈주는 달랐다. 엄청난 살기와 요기를 담고 있었던 것이다. 연화하지 않고 그대로 흡수한다면 사람도 요수처럼 인간성을 잃게 될 것이 뻔했다.

양준은 이 기운을 흡수하는 것을 멈추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두 혈주 안의 기운은 통제에서 벗어나 억지로 밀려들어 그가 하는 수 없이 연화하고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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