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201화 (201/853)

제 201장. 수혼기

두 요수의 결투는 그야말로 천지를 뒤흔드는 격전이었다. 죽을 수밖에 없는 결투임을 알면서도 두 요수는 결투를 멈추지 않았다. 이런 대단한 기세를 가진 결투의 유일한 관객이었던 양준도 결투를 지켜보며 함께 피가 뜨거워지며, 수확이 적지 않았다.

그리고 두 요수의 영혼이 사라진 뒤, 양준은 자신의 몸속에 무언가 채워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두 요수는 살아 있을 때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그리고 죽은 뒤, 그것들은 양준의 몸을 빌려 마지막 소원대로 다시 결투를 벌일 수 있었다. 이는 아마도 두 요수가 그에게 남긴 감사의 선물인 듯했다. 또는 어떠한 깨달음일 수도 있었다.

양준은 두 손을 내려놓고 고개를 숙인 채, 흐트러진 상념을 정리했다. 그는 몸속의 원기를 움직여 일정한 순서대로 운행하기 시작했다.

잠시 뒤, 몸속에서 맹수의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양준이 손바닥을 앞으로 펼쳤다. 그러자 시뻘건 그림자가 날아갔다. 그림자의 형상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날뛰는, 순수한 원기로 만들어진 호랑이의 모습이었다. 호랑이는 위풍당당하게 두 송곳니를 드러낸 채, 섬광을 번뜩이면서 빠르게 달려들었다.

또 한 번 손바닥을 펼치자 용맹무쌍한 소가 기세등등하게 나타나 지면을 힘차게 밟으며 앞으로 내달렸다. 그것은 눈앞의 모든 장애물을 밟으며 모조리 가루로 만들었다.

한천백호, 열지신우!

지금 이 백호와 신우는 모두 양준의 원기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두 환영은 족히 몇백 장이나 내달린 뒤에야 서서히 공기 중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양준은 곧이어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자신이 얻은 수확에 만족했다.

이는 요수의 영혼을 통해 얻은 무공으로, 수혼기(獸魂技)의 일종이었다.

세상에 있는 수많은 무공들은 모두 요수의 모습을 본 떠 형성된 것이었다. 예전에, 구음 산골짜기에서 양준은 혈전방의 문비진이 이러한 무공들을 펼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다만 그가 사용한 무공은 어렴풋이 호랑이 얼굴의 형상을 띠었을 뿐으로, 지금 양준의 수혼기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

양준이 펼친 수혼기는 진짜 요수의 형상을 그대로 드러낸 채, 살아 있는 것처럼 생동감 있는 데다, 발휘할 수 있는 살상력도 문비진의 무공보다 몇 배나 강했다.

수혼기를 얻으며 양준의 실력은 또다시 향상되었다. 양준은 이 두 가지 무공을 그 형상에 맞게, 백호인(白虎印)과 신우인(神牛印)으로 부르기로 했다.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펴본 양준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파낸 구덩이에 들어찬 모래로부터 그는 이번 수련을 하는 동안, 많은 시간이 지났음을 알 수 있었다.

“지마, 시간이 얼마나 지났어?”

양준이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반년 넘게 지났다네. 주인!”

양준은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쉬었다.

‘어쩐지 배가 고프다 했어.’

시간이 이렇게 오래 흐르지 않았다면 그도 이런 공복감을 느낄 리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식량을 찾을 때가 아니었다. 양준은 자리에 앉아 가부좌를 한 채, 반년 전에 흡수한 두 혈주의 깨달음을 돌이켜보았다.

한참 뒤, 그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마, 내가 재미있는 것을 보여 줄게!”

“재미있는 것이 무엇인가?”

지마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양준은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마음을 가다듬고 단전 안의 양액을 하나하나 터뜨렸다.

대략 반나절이 지나자, 평지에서 갑자기 광풍이 몰아치더니 양준의 몸이 살짝 떨렸다. 이내 그의 기세가 사납게 위로 치솟았다.

지마는 깜짝 놀랐다. 아무런 징조 없이 양준이 경지를 한 단계 돌파한 것이다. 양준은 이미 이합 경지 6단계의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반년 전에 주인이 그토록 많은 기운을 흡수했을 때에는 돌파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더니, 지금은 그냥 앉아 있었을 뿐인데 반나절 만에 경지를 돌파한다고? 그것도 공법을 운행하지도, 천지 기운을 흡수하지도 않은 채 말이야. 정작 몸속의 기운은 전혀 늘어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돌파한 거지?’

지마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다시 반나절 지나자 양준의 기세가 또 치솟았다.

이합 경지 7단계!

지마는 입이 떡 벌어졌다. 양준의 이번 돌파는 너무나 기괴했다. 이는 지마의 식견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다시 자세히 살펴본 지마는 드디어 실마리를 발견했다.

양준 몸속의 원기는 전과 크게 달랐다. 비록 저장된 총량은 변하지 않았지만, 순도를 봤을 때 전보다 몇 배나 높아져 있었다. 바로 이런 변화 때문에 양준이 경지를 돌파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합 경지 7단계까지 돌파한 양준은 천천히 눈을 떴다. 단전 안에 있던 양액의 양도 족히 삼 분의 일가량 줄어들었다. 비록 양은 줄어들었지만, 그 속에 담긴 기운은 변하지 않았다. 지금 그의 단전 안에 있는 양액은 전보다 훨씬 순수하고 강렬했다. 이 양액을 이용하여 무공을 펼친다면 위력과 살상력 또한 이전보다 더욱 강할 것이다.

양준은 씨익 웃었다.

새로운 무공을 얻었으니 당연히 시험해 보아야 했다.

산골짜기에서 한참을 돌아다닌 그는 드디어 5급 요수 한 마리를 발견했다.

수혼기를 펼치자 소와 호랑이는 요수를 물고 뜯으며 그 요수가 아예 반항도 못하게 만들었다. 양준이 앞으로 다가가 싸움을 돕자 눈 깜짝할 새에 요수를 죽이고 혈주를 얻을 수 있었다.

양준은 어쩐지 믿어지지 않았다. 반년 전에 그는 5급 요수를 만나면 오랫동안 가늠해 보고 몰래 피해 다녔다. 그러나 지금은 5급 요수를 손쉽게 죽일 수 있었다. 비록 이 5급 요수는 아주 강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양준은 눈앞이 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가 얻은 혈주는 크지 않았지만 작지도 않았다. 혈주를 잘 챙긴 양준은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 양염지익을 펼치면서 위로 날아올랐다.

만 장은 진원 경지의 고수가 날아도 한참이나 걸릴 높이였다. 하지만 양염지익이 있다면 얘기가 달라졌다.

양준은 반 시진 만에 산골짜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한참 뒤, 굶주린 양준은 과일나무 한 그루를 발견하고, 나무 아래에 앉아 열매를 먹기 시작했다.

열매를 먹으며 양준은 다음 행동을 계획했다. 이곳으로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반년 넘게 폐관했던 그는 지금의 형세가 어떻게 발전했는지 알지 못했다. 예전의 경험으로 봤을 때 이곳은 영초묘약(靈草妙藥)은 별로 없고, 수없이 많은 요수가 있을 뿐이었다.

세혼로와 유염액은 모두 얻기 힘든 귀중한 보물로, 만약 기회가 된다면 그도 수집하고 싶었다. 유염액은 굳이 필요하진 않았지만, 세혼로는 그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양준은 어디로 가야 이 두 가지를 얻을 수 있는지 몰랐다.

그가 한창 깊게 생각하고 있던 찰나, 멀지 않은 곳에서 늑대가 울부짖는 소리와 전투를 벌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양준은 마음속으로 흠칫 놀라며 재빨리 먹고 있던 열매들을 건곤대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보법을 펼쳐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뛰어갔다. 그는 누군가를 찾아 그가 폐관한 동안의 벌어진 일들을 알아내야 했다.

잠시 뒤, 양준은 소리의 근원지에 도착했다.

큰 나무 뒤에 숨어 앞의 상황을 자세히 살펴본 양준은 저도 모르게 깜짝 놀랐다.

앞에서는 두 명의 남녀가 열심히 싸우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은 그도 아는 사람이었다. 바로 영월문의 진학서와 서소어였다.

그들을 둘러싼 채 공격하는 요수들은 족히 열몇 마리나 되었는데, 같은 종류도 아닌 듯했다. 각양각색의 요수들이 한데 모여 있었고, 대부분 4급 요수였다. 만약 그뿐이라면 진학서와 서소어 두 사람이 이토록 버거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하필 이 중에는 5급 요수 세 마리가 섞여 있었다.

5급 요수가 진을 치고 있으니, 두 사람이 연합하여 아무리 애를 써도 요수들의 포위를 뚫을 수 없었다. 그들은 이 요수들에게 둘러싸인 채, 끊임없이 전투를 벌인 탓에 몰골이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진학서의 몸에는 상처가 가득했고, 왼쪽 다리에는 핏자국이 있었다. 서소어도 숨을 헐떡이며 땀을 흠뻑 흘리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실력은 진원 경지로서 둘 다 낮지 않았고, 그들이 쓴 무공과 초식은 모두 위력이 대단했다. 비록 곤경에 처해 있긴 했지만, 당장 목숨이 위협받는 수준은 아니었다. 다만 그들의 모습을 보니, 이 요수들과 꽤 오랫동안 싸운 듯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다.

서소어는 여인인지라 체력 쪽으로 요수들을 감당할 수 없었다. 진학서가 제때에 구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진작 다쳤을 것이다.

만약 다른 사람들이 요수에 둘러싸인 채 공격을 당하고 있었더라면, 양준은 머리를 굴렸을 것이다. 잘못하면 사람을 구하고도 찍혀서 괜한 소란에 휘말릴 수 있었다. 하지만 영월문의 두 사람이 곤경에 처한 것이니 양준은 그다지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두 사람에 대한 인상이 나쁘지 않았다. 둘 다 심성이 온화했고, 또 전에 교류를 한 적도 있으니 양준은 그들을 믿을 만한 사람으로 여겼다. 이곳의 정보를 알아내려면 그들이야말로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양준은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몰래 나무 뒤에서 나와 빠른 속도로 그들이 싸우고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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