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5장. 단약은 내놓고 가
“실력은 어떻게 되지?”
무승의가 물었다.
“이합 경지 7단계야!”
이 말을 하자마자 양준은 무승의의 눈빛에서 가소로움과 하찮다는 듯한 표정을 읽었다. 그의 반응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곳에 살아남은 무인들 중에 진원 경지가 아닌 사람은 없었다. 이들 중에서 이합 경지 7단계인 양준의 실력은 확실히 낮은 편이었다.
수라문의 야청사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도 양준의 실력이 이토록 낮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그녀는 홀로 이 위험한 곳에서 반년이나 넘게 살아남은 양준이 적어도 진원 경지일 줄 알았던 것이다.
“양 사제가 정말 이합 경지 7단계밖에 안 된다고?”
야청사가 계속해서 캐물었다.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몸속의 원기를 움직였다. 원기 파동이 전해지자 그의 경지가 확실하게 느껴졌다.
주변의 무인들도 깜짝 놀라며 키득키득 비웃기 시작했다.
“왜 웃어?”
서소어는 볼멘 소리로 양준을 대신해 버럭 화를 냈다.
‘눈치 없는 녀석들, 양 사제는 비록 이합 경지 7단계 밖에 안 되지만, 전투력은 수많은 진원 경지 무인들보다 강하다고.’
양준은 자신과 진학서의 앞에서 눈 깜짝할 새에 5급 요수 두 마리와 4급 요수 네 마리를 죽였었다. 그가 요수들을 쓰러뜨리는 데 들인 시간은 고작 몇 분이 채 안 되었었다. 이곳에 자신과 진학서보다 양준의 전투력을 잘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런 강자가 무리의 합류한 것은 분명한 행운이었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그걸 알지 못하고, 지금 양준을 비웃고 있었다.
서소어는 화가 났지만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녀가 바보도 아니고 어떻게 양준의 저력을 다 밝히겠는가?
“이합 경지 7단계밖에 되지 않으면서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은 거야?”
야청사는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깊은 산골짜기에 잘못 빠져서 반년이나 걸려 겨우 올라왔어…….”
양준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더욱 큰소리로 비웃었다. 서소어는 화가 나 씩씩거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승의는 차가운 표정으로 매정하게 말했다.
“실력이 너무 낮아 별 쓸 데가 없겠군. 진 형이 데려온 사람이니 진 형 무리와 함께 다니도록 해. 4급 요수 한두 마리는 잡고 있을 수 있을 테니. 아예 쓸모 없는 건 아니겠지!”
말을 마친 무승의는 더 이상 양준과 말을 섞고 싶지 않다는 듯, 빠르게 자리를 떠나갔다.
“난 남지 않을 거야.”
양준은 이번에 출관한 뒤, 그저 사람을 찾아 지금의 상황을 알아보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부득이하게 진학서에 의해 이곳까지 끌려왔던 것이다. 지금 대강 상황을 알게 됐으니 떠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함께 다니면 번거로운 일이 너무 많았다. 다들 같은 문파 출신이라면 서로 진심으로 도와주며 보살펴 줄 수 있겠지만, 지금 그들이 한마음인지 알 턱이 있는가? 그의 실력은 이 사람들 중에서 가장 낮으니 위험이 생기면 내팽개쳐질 것이 분명했다.
양준은 자신의 목숨을 남의 손에 맡기고 싶지 않았다. 홀로 행동한다면 비록 위험과 변수가 많겠지만, 양준은 지금 자신의 실력에 자신감이 있었다. 설령 천랑국 사람들에게 둘러싸인다 해도 양염지익을 사용하면 손쉽게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왜 굳이 이 사람들과 한데 엮이겠는가?
그것 말고도 양준은 걸리는 것이 있었다.
바로 눈앞에 야청사와 주패였다. 만약 수라검의 존재가 그들에게 들통난다면 분명 번거로운 일이 생길 것이다. 비록 가능성은 적었지만, 대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뜻이든, 눈앞에 상황이든 양준은 절대 이 사람들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
“뭐라고?”
무승의는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그는 실눈을 뜬 채 양준에게 물었다.
“홀로 행동하겠다는 거야?”
“그래!”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양 사제…….”
진학서의 안색이 변했다. 그는 다가와서 나지막하게 말했다.
“혼자서는 너무 위험해. 우리와 함께 움직이면 서로 보살펴 줄 수가 있으니 혼자보다 훨씬 안전할 거야.”
그의 말은 가식이 전혀 담기지 않은 진심 어린 말이었다.
야청사도 설득에 나섰다.
“양 사제, 고집 피우지 말고 남아. 비록 우리는 처음 만났지만, 이 누님은 네가 진심으로 친근하게 느껴져. 여태까지 누구도 우리에게 이런 느낌을 준 사람은 없었어. 나도 네가 위험에 빠지는 것은 원치 않아. 주패, 너도 그렇지?”
건장한 몸집의 남자는 차가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마음은 고맙지만, 난 홀로 다니는 것에 익숙해졌어. 다른 사람 밑에서 일하는 것은 너무 답답해.”
양준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다들 뜻이 다르니, 굳이 강요할 필요는 없지!”
무승의는 돌아서더니 뒷짐을 지고 말했다.
“하지만 가기 전에 몸에 있는 단약을 내놓아야겠어.”
그의 말에 양준과 진학서, 서소어의 표정이 굳어졌다. 양준이 요상단을 꺼내 진학서에게 건네던 장면을 누군가 발견하고, 그에게 말한 것이 틀림없었다.
진학서가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무 형, 그건 좀 아니지 않아?”
무승의가 덤덤하게 말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이합 경지 7단계밖에 안 되는 녀석이 곧 천랑국 사람들에게 죽을 게 뻔한데, 그럼 단약도 그놈들 손에 넘어가게 되는 거잖아. 그렇게 되느니 차라리 우리에게 넘기는 것이 낫지!”
서소어는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무승의, 이건 갈취야!”
야청사는 미간을 찌푸린 채, 주패와 함께 언짢은 표정으로 무승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승의는 차갑게 웃더니 말했다.
“갈취? 주변을 둘러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부상을 당한 채 요상단이 없어 괴로워하고 있는지. 그들 모두 실력이 떨어졌어. 상처를 빨리 치료해야만 천랑국 놈들의 공격에서 살아남을 수 있어! 내가 단약을 빼앗는 것은 날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야!”
진학서가 화를 내며 말했다.
“무승의, 대의를 위하는 듯이 말하지 마! 정말 갈취하려 한다면 우리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무승의는 진학서를 힐끔 보더니 오만하게 말했다.
“너희들이 가만히 있지 않으면 어쩔 건데? 나와 싸우기라도 하겠다는 말이야?”
상황은 긴장감으로 팽팽해져 일촉즉발의 대치 상태였다.
“이건 나도 아니라고 보는데.”
야청사는 생긋 웃더니 아름다운 눈으로 무승의를 바라보았다.
“이건 이미 강도나 다름없어. 무승의, 너는 그래도 대종문의 최우수 제자잖아. 이렇게까지 난폭하게 굴 것은 없지 않나?”
그녀의 말을 듣고, 무승의의 안색이 바뀌었다. 그는 야청사를 신경 쓰는 것 같았다.
한참 머뭇거리던 그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모두가 함께 결정하자고! 단약을 놓고 가라고 하는 것이 좋겠어? 아니면 가져가게 하는 것이 좋겠어?”
“당연히 놓고 가야지!”
누군가 바로 맞장구를 쳤다.
“무 형의 말이 맞아. 실력이 낮은 저 녀석이 홀로 다니다 보면 며칠 못 가서 죽을 거야. 단약을 그가 가지고 있으면 천랑국 놈들만 좋은 일이잖아.”
이 말이 나오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또 누군가 말을 거들었다.
“진 형, 화 내지 말고 들어봐! 저 능소각 제자는 실력이 너무 낮아. 만약 그가 남아서 우리와 함께 동고동락한다면 단약을 그에게 두어도 괜찮아. 나중에 누가 중상을 입으면 그도 너그럽게 약을 내놓을 거라고 믿어. 하지만 지금은 그가 혼자 가겠다고 하잖아. 굳이 홀로 움직이겠다면 약을 놓고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
다들 하나같이 무승의의 행위에 동의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진학서와 서소어는 매우 난감해졌다.
진학서는 냉소를 짓더니 말했다.
“다들 정말 이게 옳다고 생각해? 만약 너희들이 요상단을 빼앗겼다면 어떻게 할 것 같아?”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비록 그들은 이렇게 하는 것이 옳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요상단이 동이 난 상황이었다. 한 병이라도 더 많으면 결정적인 순간에 몇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도 있었다.
“자신도 싫은 걸 남에게 강요하지 마!”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양준이 고개를 들고 보니 만화궁의 한 소녀가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무승의는 코웃음을 쳤다. 그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양준의 편을 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양 사제에게 선택할 기회를 주지. 내가 기세를 등에 업고 약자를 괴롭힌다는 말이 나오지 않게 말이야.”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와 함께할래? 아니면 단약을 내놓고 떠날래? 네 맘대로 해!”
“허허…….”
양준이 가볍게 웃고는, 무승의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난 후자를 택하겠어!”
원래도 이 사람들과 함께 움직일 생각이 없었는데 무승의가 이렇게 제멋대로 구는 것을 보니 양준은 더욱 반감이 들었다.
‘내가 굳이 여기 남아서 괴롭힘을 당할 필요는 없지.’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으니 단약을 주지 않고 떠나기도 힘들 것 같았다. 그냥 갈 경우, 방금 전에 자신에게 약을 내놓으라고 한 사람들이 분명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이건 네가 선택한 일이야!”
무승의는 씨익 웃으며 양준에게 손을 뻗었다.
양준은 고개를 저으며 그를 깔보듯이 비웃었다.
무승의의 안색이 급변했다.
“너 그게 무슨 뜻이야?”
“난 단약을 두고 간다고 했지, 너한테 주겠다고 한 적은 없어. 나대지 마.”
양준은 차갑게 웃으며 품속에 손을 넣어 요상단 한 병을 꺼냈다. 그리고 진학서에게 넘겨주며 눈길도 돌리지 않고 싸늘하게 말했다.
“진 사형, 단약은 사형에게 줄게.”
진학서는 단약을 받아 들고 감출 수 없는 노기를 띠었다.
양준은 그가 데려온 사람인데 지금 많은 사람들의 괴롭힘을 받고 있으니 그가 어찌 마음이 편하겠는가?
진학서는 깊게 숨을 들이 쉰 다음, 입을 열었다.
“양 사제, 걱정하지 마. 누구에게 이 단약을 나누어 줄지 나한테 다 생각이 있으니까!”
그의 말뜻은 방금 전에 무승의의 편을 든 사람들은 이 단약을 넘볼 생각을 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를 향해 공수 인사했다.
“나중에 보자고. 다음이 있기를 바라!”
말을 마친 양준은 보법을 펼치며 바람처럼 사라졌다.
“다시 볼 일은 없을 거야!”
무승의는 코웃음을 치며 내밀었던 손을 거두어들였다. 그는 시퍼런 얼굴로 소리쳤다.
“여러분, 다들 쉬었으면 지금 길을 떠나자고! 천랑국의 놈들이 분명 공격을 펼칠 거야. 지금 가지 않으면 늦어.”
서른여 명의 사람들은 금방 모여들어 무승의의 진두지휘 아래 조심스럽게 밀림으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