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7장. 구성검파의 검법
"무슨 거래?"
제검성은 미간을 찌푸렸다.
"네가 원하는 것을 줄 테니, 넌 구성검파의 검법을 내게 알려 줘. 어때?"
"검을 배우려고?"
제검성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양준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그러나 양준의 몸에는 검을 찬 흔적이 없었다.
‘무기도 없으면서 무슨 검을 배우겠다는 거야?’
"그래, 서로에게 이득이잖아."
양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몸속에 수라검을 지니고 있었지만, 아직 가지고 있는 검법이 없었다. 무공의 현묘함과 살상력을 놓고 보자면 구성검파는 당당히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중도 8대 가문 같은 거대 세력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웃기는군! 구성검파의 무공을 어떻게 외부로 유출하라는 거야? 더구나 실력도 한참 모자란 네놈과 거래할 리가 있겠냐? 널 죽이는 건 식은 죽 먹기인데 말이야."
제검성이 냉소하며 말했다.
양준은 그의 말을 듣고, 뼛속 깊이 잠재돼 있던 오기와 사악한 기운을 불러일으키며 말했다.
"다시 한번 물을게. 여전히 네가 이길 거라고 확신하는 거야?"
"널 이기고 나서 다시 말해 주지."
제검성은 콧방귀를 뀌더니 더는 빛줄기를 날리지 않고, 검을 든 채 양준에게 달려들었다. 현묘한 보법을 펼치는 양준에게 더는 그 공격이 먹히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검기가 휘몰아치며 제검성의 신형은 순식간에 양준의 눈앞까지 다가왔다. 그는 손에 든 장검으로 검의 장막을 만들어 양준을 뒤덮으며 사방 십여 장의 공간을 봉쇄했다. 검의 울림 소리가 끊임없이 전해졌고, 허공에서 누군가 비파를 튕기듯 날카롭게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가느다란 검기가 양쪽으로 교차하면서 양준을 겹겹이 감쌌다.
차가운 빛이 번쩍이는 순간, 양준의 얼굴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엄숙해졌다. 그가 온몸의 원기를 운행시키자, 온몸에서 뜨거운 열기를 내뿜었다. 양준은 두 손바닥으로 솟구치는 원기를 힘껏 밖으로 밀어냈다.
둘의 원기가 서로 맞부딪치자, 공중에서 폭발음이 나더니 백여 개의 빛줄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를 본 제검성의 표정이 차가워지더니 가볍게 소리쳤다.
"주제 파악을 해야지!"
그가 장검을 빙빙 돌리자 남아 있던 검기가 일제히 한곳에 모이더니, 이내 장검 모양이 되어 양준을 덮쳤다.
양준은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큰 손을 쫙 벌렸다. 그는 양액으로 붉은 방패를 만들어 앞쪽을 막았다.
탕-
검기가 방패에 부딪히자, 핏빛 방패에 잔물결이 일며 가는 금이 갔다. 그러나 방패는 파손되지 않았고, 도리어 제검성의 공격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양준은 핏빛 방패를 앞에 들고, 순식간에 제검성에게 달려들었다.
제검성이 재빨리 뒤로 물러서자, 양준은 바짝 추격했다. 두 사람은 모두 신형이 번개 같았다. 한 명은 절묘한 보법을 이용하고, 다른 한 명은 높은 수련 수준에서 비롯된 속도였다. 속도만 놓고 보면 둘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두 사람은 서로 뒤엉켜 싸우며 각자의 공격을 아낌없이 펼쳤다.
제검성은 살짝 당황했다. 이등 문파 출신의 이합 경지 7단계밖에 안 되는 무인이 이만한 실력을 발휘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가 생각한 대로 단시간 내에 상대를 제압할 수가 없었다.
이내, 그는 화가 치밀었다. 손에 힘이 점점 더 실리고 장검도 촘촘히 휘둘렀다. 검 끝의 검강(劍罡)이 뱀의 혀처럼 날름거렸다. 그의 공격은 허와 실이 수시로 바뀌며 변화무쌍했다.
둘이 지나는 곳마다 모래와 자갈이 휘날리고, 나무들이 무더기로 쓰러졌다. 누구도 상대방을 제압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보기에는 제검성이 절대적인 우세를 점하고 있었다. 열 번의 합 가운데 여덟 번은 그가 공격한 것이었다.
제검성은 냉소와 함께, 장검으로 송이송이 검꽃을 만들어 내더니 양준의 핏빛 방패를 찍었다.
빠직-
양액으로 만든 핏빛 방패가 끝내 강력한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산산조각 났다.
양준은 안색이 크게 변했다. 제검성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나려고 급히 서둘렀지만, 상대방이 그런 기회를 줄 리 있겠는가?
장검은 영성을 갖춘 듯 방패를 산산조각 낸 뒤, 곧바로 양준의 한쪽 팔을 감았다.
부욱- 부욱-
옷이 찢기며 천 조각이 흩날렸다.
양준은 분노하여 원기가 기세 높게 솟구쳤다. 그는 물러서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 강하게 주먹을 내질렀다. 주먹에는 불길이 활활 타올랐고, 뜨거운 나머지 공기마저 이지러졌다.
제검성은 이 한 방에 숨겨진 무시무시한 살상력을 감지하고 놀란 표정을 보였다. 그는 장검을 양준의 어깨에 찔러 넣은 뒤, 다시 그 힘의 반작용을 이용해 신속하게 물러섰다.
그러나 한 발 늦고 말았다. 양준의 염양삼첩폭이 이미 그의 가슴팍에 닿아 폭발을 일으켰다.
퍽- 퍽- 퍽-
제검성은 연속으로 열몇 발짝을 물러서며 주먹 한 방의 힘을 버텼다. 동시에 진원을 움직여 체내에 침입한 뜨거운 원기를 해소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제검성은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숨을 크게 들이켰다. 그는 가까스로 염양삼첨폭을 말끔히 해소시켰고, 덕분에 조금도 다치지 않았다.
이에 반해 양준은 오른팔의 옷이 장검에 갈기갈기 찢어졌다. 드러난 팔에는 무수히 많은 상처들이 촘촘하게 생겨났고, 순식간에 팔이 붉게 물들었다. 매우 처참한 모습이었다.
제검성이 염양삼첩폭의 기운을 해소할 때, 양준 역시 가볍게 숨을 고르면서 팔을 흔들어 체내에 침입한 상대의 검기를 흔적 없이 불태웠다.
"흐흐……."
제검성의 음산하고 차가운 눈빛 속에는 흉악함이 서려 있었다. 그는 양준을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이합 경지 7단계가 실력이 굉장하군. 인정한다."
제검성은 말하면서 멀리서 장검으로 가리켰다.
"넌 내가 본 이합 경지의 무인 중에서 가장 센 녀석이다. 원기의 순도도 진원 경지 무인 못지않군. 심지어 나하고도 견줄 만 해. 하지만… 출신이 낮은 건 어쩔 수 없지. 우리 구성검파의 검법은 위력이 무궁무진해서 너 같은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제검성은 거만한 표정을 지은 채, 냉담한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방금 전에 난 겨우 7할의 실력만 썼거든. 내가 전력을 다하면 과연 네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그는 양손으로 검을 들어 가슴 앞에 세웠다. 이내, 엄숙한 표정으로 진원을 폭발시키더니 무거운 목소리로 외쳤다.
"검신(劍身)!"
챙-
우렁찬 검의 진동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의 손에 든 장검은 끊임없이 떨렸다.
이윽고 그의 몸 밖에서 진원이 꿈틀거리더니 순식간에 기세가 절정에 이르렀다. 바람이 없는 데도 그의 기다란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수없이 많은 작은 비수가 그의 몸 밖에서 끊임없이 회전하고 있었다.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사람이 수많은 검에 둘러싸여 보호받는 것만 같았다. 구성검파의 검법은 과연 현묘했다.
양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엄숙한 표정을 한 채 그 모습을 바라봤다.
제검성은 방금 전 맞은 주먹 한 방에 화가 나서 ‘검신’ 무공을 펼친 게 틀림없었다. 진원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검 때문에 그는 지금 마치 고슴도치 같았다. 양준이 만약 다시 주먹으로 그를 공격한다면 분명 자신의 손이 먼저 다칠 것이다.
제검성은 냉랭하게 양준을 바라보았다. 표정에는 모든 이를 굽어보는 도도함과 멸시가 서려 있었다. 그는 한 걸음, 한 걸음 여유 있게 양준이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양준도 지체하지 않고, 급히 불굴지오를 펼쳤다.
이합 경지 7단계의 기세는 순식간에 이합 경지 절정까지 올라갔다.
이합 경지 1단계일 때도 양준은 불굴지오로 잠시나마 이합 경지 절정의 실력을 가질 수 있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높은 이합 경지 7단계였으나, 그때와 똑같은 이합 경지 절정까지밖에 오르지 못했다.
제검성은 양준의 기세가 향상되는 것을 눈치채고, 잠깐 당황해하다가 곧이어 피식 웃으며 하찮다는 듯이 말했다.
"괜찮네. 너도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모양이군. 다만 지금의 네 실력도 이합 경지 절정밖에 안 되잖아. 그래 봤자 내 적수는 못 되지."
"그건 붙어 봐야 알겠지."
양준은 냉소하며 손을 펼쳤다. 그러자 또 하나의 핏빛 방패가 나타났다.
제검성의 얼굴빛이 차가워졌다. 방금 전 이 방패 때문에 무척이나 애를 먹었었다. 한참이나 공격해도 방패는 뚫리지 않았다. 그런데 양준이 또 손쉽게 방패를 만들어 내자 자연스럽게 화가 나서 소리쳤다.
"우선 그 쓰레기 방패부터 박살내고 너까지 혼쭐 내 주마."
제검성은 걸음이 점점 빨라지더니 양준에게 달려들며 장검을 들어 올렸다. 그의 몸을 둘러싸고 있던 진원 검기 중 여러 갈래가 튀어나오더니 사납게 양준을 공격했다.
양준은 재빨리 몸을 틀어 피했다. 하지만 이번 진원 검기는 방금 전의 것과 달랐다. 제검성의 의념에 따라 방향을 바꾸어 공격하려는 대상을 추적할 수 있었다.
양준이 신속하게 서너 번 피하자 제검성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는 섬뜩하게 웃으면서 위력이 강한 검법을 펼쳐 양준을 있는 힘껏 베었다.
양준은 급히 방패를 들어 막았다.
쾅-
방패가 몇 번 흔들리면서 양준은 거의 제대로 설 수조차 없는 지경이었다.
제검성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끊임없이 공격을 날렸다. 쉴 틈 없는 공격과 변화무쌍한 진원 검기까지 더해지자, 양준은 궁지에 빠져 도망치기에 바빴다.
격전하는 가운데 둘의 원기는 빠른 속도로 소모되었다.
이처럼 격렬한 접전은 어떤 무인에게든지 모두 적지 않은 부담을 주었다. 체력은 둘째 치고, 원기의 소모가 결정적인 문제였다.
실력이 출중하고 싸움에 능한 무인은 원기를 아껴 쓰면서 가장 적은 대가로 최대의 살상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양준이든, 제검성이든 아직은 이를 실천할 수 없었다. 둘의 경지는 아직 그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오직 원기를 마음껏 사용하면서 자신의 공격과 기세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