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209화 (209/853)

제 209장. 유염액

“너…….”

제검성은 저도 모르게 두려움에 온몸이 떨렸다. 그는 등 뒤에 날개가 생기는 무공이나 비보가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가 이제 막 겨우 한 글자를 내뱉었는데, 양준이 재빠르게 앞으로 달려들어 그의 복부에 손바닥을 찍었다. 그 다음 큰 손을 뻗어 그의 목을 조이고서 번개처럼 땅바닥으로 내리꽃았다.

제검성은 양준의 눈속에 담긴 살기를 보았다. 그의 차가운 눈빛은 어떤 감정도 띠지 않고 있었다.

슈욱-

둘은 유성처럼 하늘을 가로질러 눈 깜짝할 사이에 지면에 가까워졌다.

지면과 아직 열 장쯤 떨어진 곳에서 양준은 온 힘을 다해 제검성을 땅에 내던지고 본인은 공중에 멈춰 섰다.

콰앙-!

제검성의 몸이 지면에 떨어지며 먼지바람을 일으키는 동시에 작은 구덩이를 만들었다. 제검성은 낡아빠진 포대처럼 오랫동안 뒹굴다가 서서히 멈추었다.

어렵게 눈을 떠 바라보니, 양준이 날개를 펄럭이며 천천히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양준은 제검성과 가까운 곳에 날개를 접고 착지했다. 그는 제검성의 앞으로 걸어가, 차갑게 그를 내려다보았다. 방금 전 제검성이 굽어보던 것과 똑같았다.

제검성은 완전히 절망에 빠졌다. 그가 자랑으로 여기던 최후의 수단도 양준 앞에서는 아무 효력도 발휘하지 못했다.

“이래도 죽지 않다니, 역시 진원 경지의 고수답군.”

양준은 차가운 목소리로 비꼬며 발을 들어 제검성의 목을 밟았다.

“날 죽이지 마.”

제검성은 가볍게 기침하며 몸부림쳤다. 입가에는 피 거품이 흘러나왔다.

“너 구성검파의 검법을 배우고 싶다고 했지? 뭐 배울 거야? 다 가르쳐 줄게. 나도 구성검파의 동량지재 같은 인재거든. 수준 높은 검법을 많이 알고 있어… 콜록콜록…….”

“필요 없어. 난 널 믿지 않아.”

양준의 얼굴빛은 냉담했다.

양준은 구성검파의 검법이 탐나긴 했지만, 제검성이 자신에게 정말 알려 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 자의 성정과 수단으로 볼 때 진원을 조금이라도 회복하는 순간, 변수가 생길 것이 분명했다. 그런 위험 요소를 남겨 둘 수는 없었다.

제검성은 양준의 말에 얼굴빛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굳이 우리 구성검파와 척을 질 이유가 없잖아. 네가 날 죽이면… 콜록콜록… 대사형이 바로 달려올 거야. 널 가만두지 않을 거다. 넌 대사형을 당해 낼 수 없을 거야.”

양준이 눈을 가늘게 뜨더니 냉혹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승의? 걔가 오지 않아도 내가 직접 찾아갈 거니까 걱정하지 마.”

“정말 이렇게 매정하게 나올 거야…….”

“너희들이 먼저 날 죽이려 한 거야.”

양준은 냉소를 지은 뒤, 더 이상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가 발로 힘껏 내리밟자 원기가 폭발했다.

우지직-

그대로 제검성의 목이 부러지고, 머리가 힘없이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제검성이 죽는 순간, 몇십 리 밖에 있던 무승의가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귀왕곡의 세 제자 사이에 특별한 방법으로 서로의 위치와 생사를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구성검파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무승의는 제검성이 왜 죽었는지 알 수 없었다.

‘설마 천랑국 놈들을 만난 건가?’

그러지 않고서는 진원 경지 3단계 실력으로 죽을 이유가 없었다.

순간 무승의의 얼굴에는 아쉬움의 표정이 떠올랐다. 그는 제검성의 생사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아쉬워하는 것은 제검성의 몸에 지닌 물건들이었다. 그가 양준을 쫓아가기 전에 이곳에서 얻은 물건들을 제검성에게도 한 몫 나눠 주었었다.

“무 형, 왜 그래? 천랑국 놈들이 근처에 있어?”

열화교의 무인이 무승의의 무거운 표정을 보고 걸음을 멈추더니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마도. 우리도 서둘러 피신할 곳을 찾아야 해.”

무승의는 얼굴빛을 고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말에 일행들은 얼굴빛이 변하더니 행동이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이 몇 달 동안 그들은 천랑국 무인들 때문에 많은 고생을 했다.

*제검성이 죽고 얼마 안 되어 혈주가 응고되었다. 혈주의 크기는 귀왕곡의 제자가 죽은 뒤 만들어진 혈주 크기와 비슷했다. 모두 진원 경지 젊은 무인으로서 실력이 별반 차이가 없었다.

양준은 숨을 고르는 한편, 혈주를 거두어들였다. 그리고 다시 제검성의 몸을 뒤졌다. 잠시 뒤, 그는 크기가 서로 다른 혈주 몇 개를 찾아냈다. 이전 싸움에서 얻은 전리품으로 미처 흡수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 밖에도 은자와 청록색 병 하나가 있었다.

양준은 이것들을 모두 건곤대에 넣고는 신속하게 현장을 떠났다.

반나절 뒤, 산중턱 한곳에서 양준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단약 몇 알을 복용했다. 또한 선혈로 물든 옷을 갈아입고 모든 피비린내를 제거했다.

지금 몸을 숨기고 있는 동굴은 양준이 혼자 판 것이었다. 양준은 천랑국 무인들이 요수를 부려 싸운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앞으로 움직임을 더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제검성과의 대결에서 입은 상처는 그리 가볍지도, 심하지도 않았다. 지금 양준의 실력과 신체 회복력은 전에 비해 많이 강해진 상태였다. 며칠 지나지 않으면 완쾌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상처를 치료하는 단약이 남아 있기에 단약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다.

사흘 동안, 양준은 내내 제검성과의 싸움을 되짚어 보았다. 여러모로 그와의 싸움에서 수확이 꽤 많았다.

눈을 뜨자 온몸이 가뿐했다. 전력을 다해 치른 결투는 사람을 기분을 좋게 했다.

치료를 마친 양준은 우선 단전 내 양액을 보충해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능태허가 건곤대에 양성 단약 몇 병을 챙겨 준 덕분에 양준은 양액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양준은 양성 단약 한 병을 다 복용했지만, 단전에는 양액이 고작 열몇 방울밖에 늘지 않았다. 원기가 순수해진 다음, 양액 한 방울을 만드는 데 필요한 원기도 전보다 많이 늘어났다.

양준은 잠깐 생각하다가 나머지 양성 단약 몇 병을 모두 복용했다. 그러자 양액의 수가 급증했다.

이때, 갑자기 뭔가 생각난 양준은 건곤대를 뒤져 청록색 병을 꺼냈다. 이 병은 제검성의 몸에서 찾아낸 것으로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병마개를 여는 순간, 뜨거운 느낌이 확 뿜어져 나왔다. 그 느낌은 아주 익숙한 것이었지만, 양준은 저도 모르게 살짝 갸우뚱해졌다. 병 속 물건의 원기와 그 순수도, 농밀도는 그의 체내에 있는 진양원기와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달랐다.

양준은 고개를 숙여 안을 들여다보았다. 병 속에는 주황색을 띤 액체가 담겨 있었다. 그것도 고작 네다섯 방울밖에 없었다.

제검성의 몸에는 이 액체를 제외하고 아무것도 없었다. 이를 보물처럼 여긴 것으로 보아 가치가 절대 낮지 않을 것이다.

‘도대체 무엇일까?’

양준은 이리저리 훑어보고 냄새도 맡아 보았다. 여러모로 알아보면서 호기심이 극에 달했다.

“지마!”

양준이 지마를 불렀다.

“네, 주인.”

지마가 바로 대답했다.

“이게 뭔지 알겠어?”

양준이 약병을 보여주며 물었다.

지마는 병을 확인하더니, 가볍게 헛기침을 몇 번 했다.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됐어.”

양준은 지마가 모른다는 것을 알아챘다.

늙은 마두는 기억력이 엉망이었다. 어떨 때는 퍽 유용했지만, 어떨 때는 전혀 쓸모가 없었다. 양준은 이제 그냥 예사로운 일로 여겼다. 만약 지마가 이 물건을 알고 있었다면 진작 뛰쳐나와 자신의 지식을 자랑했을 것이다. 양준이 부르기를 기다릴 리가 없었다.

한참 냄새를 맡아 본 결과, 양준은 이 물건이 독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지마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그래도 양준은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는 곧 폐관하던 곳에서 뛰쳐나가 오랫동안 헤매고 나서야 겨우 혼자 있는 4급 요수 한 마리를 찾았다. 그는 요수를 다짜고짜 흠씬 두들겨 팬 다음, 혼절한 요수를 동굴로 끌고 왔다.

양준은 돌아오는 길에 마른 풀 한 포기를 꺾어다가 병 속의 액체를 묻혀 요수의 입에 넣었다.

그는 조용히 기다리면서 지켜보았다.

얼마 안 되어 요수는 마치 맹독에 중독된 것처럼 처량하게 울부짖기 시작했다. 온몸이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키고 입으로는 흰 거품을 토해 내며 몸통이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하며 번쩍거렸다.

양준은 의젓한 표정으로 생각했다.

‘직접 시도하지 않길 잘했군. 괜히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뻔했잖아.’

양준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순간, 4급 요수의 몸에서 세찬 원기가 꿈틀거렸다. 곧이어 놈은 양준의 속박에서 벗어나 넘쳐나는 기세로 양준과 접전을 벌였다. 요수의 몸 상태는 중독된 모양새가 전혀 아니었다.

양준은 요수와 오랫동안 격전을 벌이다 화가 나서 놈을 죽여 버렸다.

그는 요수의 시체를 넋 놓고 바라보았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데려오기 전에 놈은 분명 4급 요수여서 손쉽게 기절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방금 전에는 어떻게 강해졌던 것일까? 거의 5급 요수의 실력이었다.

한창 궁금해하고 있는데 요수의 혈주가 응고되었다.

양준은 혈주에 시선을 고정하고는 한동안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내 그의 얼굴빛이 붉으락푸르락하더니 곧이어 욕설을 퍼부었다.

“주인, 진정하게…….”

지마가 서둘러 위로했다.

양준이 이처럼 분노한 까닭은 청록색 병 속의 물건이 무엇인지를 짐작해 냈기 때문이었다. 증거는 바로 요수가 죽은 뒤에 만들어진 혈주였다.

혈주는 새끼손가락 손톱만 한 크기였다. 비록 5급 요수의 혈주보다는 작았지만, 4급 요수의 것보다는 훨씬 컸다. 4급 요수를 짧은 시간 내에 5급 요수 정도로 키울 수 있다는 것은 병 속의 액체가 보물이라는 것을 말해 주었다.

반년 전에 들었던 정보에 근거해, 다시 병 속 액체의 형태와 색상을 대조해 보고 나서, 양준의 얼굴은 괴로움으로 가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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