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0장. 천랑국의 자맥
그건 바로, 유염액이었다.
이는 원기를 더욱 순수하고 농밀하게, 그리고 더 강하고 출중하게 만들 수 있는 천재지보였다.
천지 간에 무인의 원기를 수련할 수 있는 보물은 많지 않았다. 때문에 하나하나가 모두 엄청난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이를 테면 구음응원로는 그중 상품에 속했다. 유염액도 그와 마찬가지였다.
전에 호숫가에서 영월문의 탁온이 유염액에 대해 이야기할 당시, 양준은 그렇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었다. 자신에게는 이미 구음응원로가 있기에 과도하게 욕심 부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기회가 되어 유염액을 얻게 되었으니 또 다른 상황이었다.
구음응원로는 남겨 두었다가 진원 경지에 오른 다음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유염액은 지금 바로 사용할 수 있었다. 두 가지를 병행하면 효과가 단연코 더 좋을 것이다.
양준은 안타깝게도 이런 보물을 요수에게 나눠 준 것이다. 그는 아까운 나머지 가슴이 쓰라렸다.
그러나 이제 와서 괴로워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는 구성검파 제자들의 행운에 감탄하며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러고는 유염액 한 방울을 조심스럽게 입안에 떨어뜨렸다. 이어 재빨리 눈을 감고 좌선했다.
진양결을 운행하자 양준은 복부 쪽에서 불타는 듯한 움직임이 점점 퍼져 나감을 느낄 수 있었다. 양성 또는 화성 공법을 수련하는 무인들은 일반적으로 이런 느낌이 생길 수 없었다. 이를 통해 유염액에 저장된 기운이 얼마나 뜨거운지를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열감이 그리 강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양준은 곧 난로에 앉은 것 같은 열감을 느꼈다. 온몸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으며 방금 갈아입은 옷은 금세 땀에 푹 젖어 버렸다.
강한 열감은 처음에는 아랫배에 잠깐 머물다가 곧 진양결에 이끌려 그의 온몸으로 흘러들었다. 곧이어 경맥이 극심하게 아파왔다. 양준은 이를 악물고 조금도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진양결은 더욱 빨리 운행되었다.
열기는 경맥을 따라 흐르는 동시에 경맥 내의 원기를 제련했다. 열기가 몇 주천을 돌고 나서, 양준은 이미 극한으로 순수했던 원기가 한층 더 깨끗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에 양준은 정신이 번쩍 들며 더욱 힘을 쏟았다.
잠시 뒤, 경맥 속의 원기가 다시 한계에 이르러 더 이상 순수해질 수 없게 되자, 양준은 의념으로 유염액의 기운을 단전으로 이끌어 갔다. 단전에는 제련할 수 있는 양액 백 방울이 있었다.
*며칠 뒤 양준이 눈을 떴다. 그의 눈동자에는 빛이 반짝였다. 그는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켜고 말했다.
“개운하군.”
한 방울의 유염액은 그의 온몸의 원기를 다시 한번 제련했다. 양액은 백 방울 가운데서 열몇 방울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양액 한 방울에 저장되어 있는 기운은 전보다 훨씬 강해졌다.
또한 원기가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경맥과 육신도 바뀌었다. 경맥은 더욱 단단하고 넓어졌고, 육신은 더욱 튼튼하고 탱탱해졌다. 온몸의 피부와 세포가 모두 안팎으로 새롭게 바뀌었다.
이합 경지 7단계의 실력이 절정에 다다랐고, 8단계까지 그리 멀지 않은 듯했다.
이것이 바로 원기를 제련한 효과였다. 체내 원기를 증가하는 것만이 경지를 돌파하는 유일한 수단은 아니었다.
“지마, 만약 유염액 한 방울을 더 복용하면 직접 경지를 돌파할 수 있지 않을까?”
양준은 왠지 시도해 보고 싶었다.
“아마 소용없을 거네. 주인의 원기를 이 정도로 순수하게 만든 것이 이미 최고의 효력을 발휘한 것이지. 이런 물건은 많이 복용할수록 좋은 게 아니네. 더 순수하게 하려면 한층 더 좋은 보물을 찾아야 할 걸세.”
“나도 그렇게 생각해.”
양준은 유염액을 더 복용하려던 생각을 접고 청록색 병을 건곤대에 넣었다.
‘구성검파의 사람들은 어디에서 유염액을 찾았을까? 제검성의 몸에 몇 방울이 있었는데, 그럼 무승의에게는? 더 많지 않을까?’
여기까지 생각하자, 양준은 냉소했다.
무승의는 제검성을 보내 그를 몰래 죽이려 했었다. 양준이 그냥 넘어갈 리가 있겠는가. 원래부터 은원이 있었는데, 지금 또 상대가 몸에 보물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노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무승의는 실력이 너무 강한 데다가 현재 이곳에 모여 있는 대한 무인들의 임시 통솔자였다. 정말로 그와 척을 진다면 자신에게도 좋은 결과가 없을 것이다. 무승의에 대한 것은 차차 도모할 수밖에 없었다.
양준은 마음을 가다듬은 다음, 폐관을 끝내고 밖으로 나왔다.
그 후 한 달 동안 양준은 아무도 만나지 못한 채, 오로지 요수를 사냥했다. 찾을 수 있는 요수도 무척이나 적었다. 보아하니 진학서가 그날 그에게 말해 준 것처럼 이곳의 요수들은 대부분이 이미 천랑국 무인들에게 지배된 것 같았다.
한 달 동안 수련했지만 양준은 수확이 많지 않았다. 요수가 얼마 되지 않아 혈주를 많이 얻을 수 없었다. 물론 이는 부차적인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만나는 요수들이 너무 약하다는 것이었다. 4급 요수는 공격 몇 번 만에 금방 죽어 버렸고, 실력이 낮은 5급 요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의 실력은 험난한 싸움을 거치지 않고서는 경지를 더 돌파할 수 없었다.
양준은 조금 더 강한 적수와의 만남을 갈망했다.
그렇다고 수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지난 한 달 동안 양준은 부지불식간에 수혼기의 다른 쓰임새를 모색해 냈다. 강한 두 요수의 잔혼에서 얻은 수혼기는 공격에만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쓰임새는 양준 본인도 아직 파악 중이라 보완이 필요했다.
*이날, 양준이 4급 요수 세 마리를 죽인 뒤, 삼십 리 밖 수풀 속에서 한 여인이 눈을 번쩍 떴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음산함과 의아함이 스쳐 지나갔다.
여인의 차림새와 용모는 대한의 무인과 조금 달랐다. 그녀느 바로 천랑국 무인 중의 한 명이었다.
그녀의 용모는 아름다웠지만, 웬지 위험한 느낌을 풍겼다. 마치 정체를 숨긴 독사처럼 수시로 독이 가득한 이빨로 사람을 물어 사경에 몰아넣을 것만 같았다. 누구든 그녀를 보면 감히 얕보지 못했다.
그녀는 양준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입가에 옅은 냉소를 머금더니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작고 풍만한 몸은 또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가 몸을 일으키자, 등 뒤에 서 있던 둘은 약속이나 한 듯이 조용히 뒤로 몇 발짝 물러섰다. 그들이 천랑국 여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눈에는 두려움과 증오가 가득 차 있었다.
이들은 두 남녀였다.
양준이 이곳에 있었다면 반드시 크게 놀랄 터였다. 두 사람은 바로 귀왕곡의 제자 금호(金豪)와 냉산(冷珊)이었다.
귀왕곡의 두 제자는 이 순간, 천랑국의 여인을 지켜보다가 저도 모르게 온몸의 진원이 요동치면서 동시에 눈에는 살기가 반짝였다.
“크르릉……!”
바로 그 때, 주위에 있던 몇십 마리의 요수들이 흉악한 몰골로 금호와 냉산에게 으르렁거렸다. 요수의 포효에는 경고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천랑국의 여인은 천천히 뒤돌아서 의미심장하게 금호와 냉산을 힐끗 바라보았다. 둘은 저도 모르게 온몸을 흠칫 떨면서 서둘러 살기와 진원을 거두어들였다.
“너희는 날 죽일 수 없어!”
천랑국 여자의 이름은 자맥(紫陌)이었다. 그녀의 곁에 있은 지 이미 한 달 정도 되었지만, 금호와 냉산은 그녀에 대해 이름 말고는 아는 것이 없었다.
자맥은 코웃음을 치고는 말했다.
“이번 한 번뿐이야. 다시 한번 딴 생각을 품으면 날 악랄하다고 탓하지 마.”
금호와 냉산은 굴욕감을 느꼈지만, 감히 주제넘게 굴지 못했다. 금호는 서둘러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저희는 결코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자맥은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한참 뒤에야 활짝 웃어 보였다.
“너희는 내 손에 오게 된 걸 감사하게 생각해. 내 사형이나 사저에게 갔다면 진작 뼈도 못 추렸을걸.”
자맥은 말하는 한편, 천천히 그들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가느다란 허리를 흔들며 사뿐사뿐 걸었다. 또한 입가에는 옅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금호는 몰래 고개를 들어 훔쳐보다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자맥은 몸매가 풍만한 데다가 차림새 또한 개방적이어서 대한의 여인들과는 전혀 달랐다. 비록 함께한 지 꽤 오래되었지만, 볼 때마다 금호에게는 남다른 시각적 자극을 주었다.
자맥은 냉산의 앞에서 멈춰 섰다. 얼굴에는 여전히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냉산의 얼굴에는 혐오스러운 표정이 나타났다. 그녀의 몸은 심지어 저도 모르게 떨리고 있었지만, 감히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너, 이 여자를 갖고 싶지 않아?”
자맥이 고개를 돌려 음흉하게 미소 지으며 금호를 바라보았다.
“네?”
금호는 그녀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멍하니 바라보았다.
자맥이 입을 오므리며 말했다.
“너 얘 좋아하잖아. 아니야?”
금호는 냉산을 흘끔 보고는 힘들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에게 기회를 줄게.”
자맥은 깊은 뜻이 담긴 눈빛으로 금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 능력에 달렸어.”
금호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무척이나 갈등했다. 자맥은 느긋하게 그를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금호가 그녀의 제안을 거절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과연, 한참 뒤, 금호는 반쯤 무릎을 꿇으며 간절하게 말했다.
“소인은 진심으로 낭자를 따르겠습니다. 지금부터 낭자의 명령이라면 절대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깔깔깔… 좋아. 대세를 잘 따르는군. 난 현명한 사람이 좋아.”
자맥은 몸을 흔들어 대며 웃더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