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1장.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사형……!”
냉산은 표정이 싸늘해지며, 금호를 노려보았다.
금호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사매, 지금 우리 목숨이 저 여자한테 달렸어. 다행히 기회를 준다고 하니 말을 따르자. 그럼 우리 둘 다 살 수 있잖아.”
냉산은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금호를 바라보다가 더는 말하지 않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자맥은 가볍게 웃으며 큰 나무 옆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나무줄기에 반쯤 기댄 채 나른한 표정으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가서 사람 한 명만 잡아와. 그럼 네 사매는 네 마음대로 할 수 있어.”
이 말에 냉산은 얼굴빛이 확 바꼈고, 반면 금호는 들뜬 모습이었다.
그는 꿀꺽 소리 나게 침을 삼키고는 흥분해 말했다.
“낭자, 명을 내리십시오.”
자맥은 얼굴빛을 가다듬고 한쪽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쪽으로 삼십 리 밖에 가면 내 목표물이 있어. 놓칠 수도 있으니까 서둘러야 할 거야.”
금호는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혹시 상대편에 몇 명 정도 있는지요?”
“딱 한 명이야.”
자맥이 확신에 차서 대답했다.
“한 명이라고요? 지금까지 혼자서 살아남았다는 건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소리인데, 사매도 같이 가면 안 될까요?”
“깔깔깔… 네 사매는 이곳에 남아야 해. 대신… 요수 몇 마리를 함께 보내 주지. 5급 요수 세 마리면 충분하지 않아?”
금호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상대가 그를 신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5급 요수 세 마리면 자신을 죽이기에 충분했다. 그 요수들은 자신을 돕기 위해 보내는 것이 아니라, 감시하기 위해 보내는 것이 틀림없었다.
“충분합니다.”
금호는 어떤 불만도 내색하지 못하고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 봐. 네 사매가 여기서 기다린다는 걸 잊지 마……. 그리고 나도 기다리고 있을게.”
자맥은 금호에게 추파를 던졌다.
“예.”
금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서둘러 자맥이 가리킨 방향으로 날아갔다. 5급 요수 세 마리가 그 뒤를 바짝 쫓았다.
같은 5급 요수라 해도 실력 차이가 있었다. 금호는 날아가다가 뒤돌아서 세 요수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속으로 자맥에게 욕을 퍼부었다.
만약 일반 5급 요수 세 마리라면 대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세 마리는 모두 중급 이상의 실력으로 한 마리당 진원 경지 5, 6단계 무인과 맞먹었다. 때문에, 금호는 감히 딴 짓을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지금은 그냥 말없이 자맥이 준 임무를 완수해야만 했다.
금호는 더 빨리 움직였다. 머릿속으로 냉산과 자맥의 아름다운 몸매를 생각하며 몇 분도 안 되어 목적지에 다다랐다.
그는 기운을 거두어들이고 좌우를 한번 둘러보았다. 아무 종적도 발견할 수 없었다. 대신 그곳에는 소량의 가루가 남아 있었다. 가루는 요수가 죽은 뒤에 남는 흔적이었다.
뒤따라오던 요수 세 마리는 한쪽에 달려가 냄새를 맡더니 일제히 한 방향으로 달려갔다.
금호도 서둘러 요수들을 뒤따라갔다.
반 시진 정도 추적해서야 5급 요수 세 마리가 우뚝 멈춰 섰다. 놈들은 흉악한 몰골을 하고 한쪽 수풀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금호는 몸을 날려 착지하고서 날카로운 눈초리로 수풀 쪽을 바라보며 가볍게 일갈했다.
“거기 누구야? 얼른 나와!”
금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두컴컴하고 은폐된 숲 속에서 그림자 하나가 걸어 나왔다.
상대방이 이렇게 거리낌 없이 나타나자 금호는 저도 모르게 몸이 굳었다. 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은연 중에 경계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미리 짐작했던 것처럼 실력이 강한 고수를 만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상대방의 얼굴이 눈앞에 드러나는 순간, 그는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귀신을 본 것처럼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양준은 그에게 냉소를 던졌다. 사실 마음속으로는 어쩔 수 없는 허탈함으로 가득했다.
상대방이 한눈에 그의 은신처를 확인했는데 더 이상 숨어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상대방의 핍박에 어쩔 수 없이 나오느니, 당당하게 스스로 걸어 나오는 것이 나았다.
양준은 금호 쪽을 한 번 훑어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순식간에 많은 것을 꿰뚫어 보았다.
“말도 안 돼! 네가 어떻게…….”
금호는 엉겁결에 말했다.
“어떻게 살아 있냐고?”
양준은 가볍게 웃었다.
“그래, 네가 어떻게 살아 있을 수가 있지?”
금호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반년 전에 귀왕곡의 세 제자는 양준을 암살하려 했다. 셋 중 속도가 가장 빠른 우성곤이 가장 앞서 양준을 쫓아갔고, 금호와 냉산은 그 뒤를 따라갔다. 그러나 둘이 벼랑 앞에 이르렀을 때, 우성곤의 죽음을 감지했다.
당시 금호는 양준이 우성곤을 끌고 벼랑에서 떨어져 함께 죽은 줄로 알았다. 그런데 뜻밖에 반년 뒤 양준을 다시 마주친 것이다. 능소각의 제자는 잘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반년 전에 비해 훨씬 더 강해져 있었다.
“내가 왜 살아남을 수 없는데?”
양준은 코웃음을 쳤다.
“벼랑 아래로 떨어진 게 아니었나?”
금호는 하나의 가능성을 떠올렸다.
“나도 떨어졌어. 그런데 다시 기어올라왔지. 맞다. 네 사제는 나처럼 운이 좋지 않았어. 절벽에서 떨어져 묵사발이 되어 죽어도 묻힐 곳이 없게 됐어. 참 불쌍해.”
양준은 눈썹을 치켜세웠다.
이 말을 한 목적은 금호의 마음을 교란시켜 그를 분노하게 만들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생각 외로 금호는 무심한 표정으로, 그에게 냉소를 던질 뿐이었다.
만약 반년 전이었다면 금호는 아마 정말 분노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의 목숨 줄도 자맥이 쥐고 있는 판에, 남을 걱정할 여유가 없었다.
양준은 금호의 냉정함과 무정함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금호의 옆에 있는 실력이 괜찮은 5급 요수 세 마리를 힐끔 보고는 경멸하며 말했다.
“이제 보니 본인의 종문을 버리고 천랑국에 붙었나 보군.”
5급 요수 세 마리는 모두 다른 종류였다. 놈들이 아무 일 없이 함께 움직이는 데다가 모두 자신에게 적의를 품고 있는 것을 보아서는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는 게 분명했다.
금호는 그런 능력이 없었다. 오직 천랑국 무인들만이 요수를 조종할 수 있었다.
“네가 뭘 알아? 아무것도 모르면서 함부로 지껄이지 마. 네 걱정이나 하시지.”
금호는 화가 나서 양준에게 소리쳤다.
그는 손을 크게 휘두르며 말했다.
“저놈을 죽여!”
양준은 굳은 표정으로 극도로 경계하며 5급 요수 세 마리를 지켜보았다.
그런데 요수 세 마리는 양준에게 으르렁거리기만 할 뿐, 금호의 명령에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제기랄, 망할 년!”
금호는 참지 못하고 큰 목소리로 욕했다. 자맥은 요수 세 마리를 딸려 보냈지만, 요수들이 그의 명령을 듣지 않으니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하하하.”
양준은 이 웃기는 장면에 폭소를 터뜨렸다.
금호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지금 처한 상황도 억울한 판에 양준이 조소하는 꼴을 보고 있자니 그는 뚜껑이 열렸다. 뼈마디가 뿌드득 소리 날 정도로 주먹을 쥐며 금호가 양준에게 섬뜩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 실컷 웃어 둬라. 이제 웃을 기회도 없을 테니까.”
말하는 사이, 금호의 희고 섬뜩한 두 손에는 음산한 바람이 일면서 살을 에는 한기가 감돌았다. 그는 바람처럼 양준에게 달려들었다.
금호의 손이 스친 곳마다 은은한 빛을 띠었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차갑고 서늘한 기운이 양준의 몸 주위를 감싸며 수시로 그의 몸을 잠식하고 있었다.
양준은 엄숙한 표정으로 원기를 움직여 서늘한 기운과 금호의 공격을 막아 냈다.
둘의 경지 차이는 꽤 큰 편이었다. 금호의 실력은 진원 경지 5단계 정도로 제검성보다도 2단계 더 높았다. 그러나 실제로 비교하면 둘의 전력은 큰 차이가 없었다. 두 사람의 출신부터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제검성은 구성검파의 제자로 일등 대종문 출신이지만, 금호는 귀왕곡이라는 이등 종문 출신이었다.
때문에 양준이 열세에 처한 것 같아 보여도, 보이는 게 다가 아니었다. 지난 한 달여의 시간 동안, 양준도 적지 않게 성장했다. 그가 유일하게 걱정하는 것은 한쪽 구석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5급 요수 세 마리였다.
놈들은 하나같이 실력이 대단했다. 만약 한꺼번에 몰려온다면 양준도 도망치기 힘들었다.
그러나 한참 동안 접전을 치르는 가운데, 양준은 놀랍게도 요수들이 구경만 할 뿐, 전혀 끼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에 그는 곧 대담하게 실력을 점차 늘려 이합 경지 절정에 다다랐다.
금호는 손속이 매섭고 공격이 사나웠다. 지난 한 달여간의 노기를 지금 이곳에서 모두 쏟아 내고 있었다. 이미 양준을 잡아오라는 자맥의 임무는 까맣게 잊고 양준을 죽이지 않으면 절대로 그만두지 않을 듯한 기세였다.
우세를 점한 금호는 짧은 시간에 양준의 몸에 십여 개의 상처를 남겼다. 비록 근육과 뼈가 상하지는 않았지만, 양준은 적지 않은 피를 흘렸다.
“흐흐… 너는 오늘 반드시 내 손에 죽을 거야.”
접전 중에도 금호는 힘을 과시하며 냉소를 그치지 않았다.
양준은 이를 악물고 주먹을 한 방 날리고는, 금호가 방어하는 틈을 타서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그는 두 손바닥을 번쩍 쳐들고 가운데를 향해 탁 쳤다.
곧이어 두 가닥의 거대한 기운이 쏟아져 나왔다. 금호는 이 공격에 담긴 살상력을 감지하고 만반의 준비를 한 채 기다렸다.
이때, 호랑이와 소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양준이 수혼기를 펼쳤다. 두 손바닥을 앞으로 뻗자,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붉은 그림자 두 개가 천둥을 치며 앞을 향해 달려들었다.
금호는 얼굴색이 크게 변하면서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두 요수의 습격에 그도 더는 실력을 숨기지 못하고 온몸의 진원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채 끊임없이 공격을 펼쳤다.
그러나 양준은 속으로 욕을 내뱉으며 두 수혼과 힘을 합쳐 공격했다.
수혼기를 성공적으로 펼쳤지만, 이는 양준이 바라던 것은 아니었다. 지난 한 달 동안 그는 수혼기의 또 다른 쓰임새를 모색해 냈다. 원래는 한 번에 성공해 금호를 골탕 먹이려 했으나 맘대로 되지 않아, 이번에는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금호는 진원 경지 5단계 고수임에 손색없었다. 양준이 두 수혼과 함께 힘을 합쳐 싸웠지만 금호는 금방 열세를 만회하고 그와 막상막하가 되었다.
잠시 뒤, 두 수혼은 기운이 소진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