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2장. 수혼기의 새로운 쓰임새
금호는 절호의 기회를 발견하고, 급히 달려들며 섬뜩하게 웃었다.
“넌 이제 죽었어.”
양준은 엄숙한 표정으로 또다시 두 손바닥을 펼쳤다.
익숙한 동작을 보자, 금호는 깜짝 놀랐다. 그는 또다시 수혼과 상대하고 싶지 않아, 최후의 수단을 펼쳤다.
처절한 소리와 함께, 검은 기운이 금호의 손바닥에서 뻗어 나왔다. 일그러진 사람의 얼굴 형상이 흉악하게 울부짖었고, 그 속에는 하늘을 찌르는 살기와 악기가 섞여 있었다. 얼굴 형상은 악마의 원혼처럼 양준에게 달려들었다.
이는 낯익은 장면이었다.
우성곤과 양준이 동시에 벼랑으로 추락할 때, 우성곤도 같은 공격을 펼쳤었다.
일그러진 사람의 얼굴 형상을 보자 양준은 놀라지 않고 오히려 기뻐했다. 그는 줄곧 금호가 이 공격을 펼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야 겨우 그가 원하던 순간이 온 것이다.
양준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는 두 손바닥을 마주 치고 다시 앞으로 뻗었다. 손바닥의 두 기운은 신기하게도 하나로 합쳐졌다. 백호의 형상도, 신우의 형상도, 짐승의 포효도 없이 오직 은은한 빛만이 뻗어 나갔다.
금호는 몸을 옆으로 틀어 가볍게 이 빛을 피했다.
빛은 순식간에 금호의 뒤에 있던 한 5급 요수의 체내에 파고들었다. 그리고 어떤 파문도 일으키지 않았다.
‘성공이다!’
양준은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금호는 분노하며 소리쳤다.
“어디서 되도 않는 하찮은 수법으로 날 놀려?”
그는 방금 전 두 수혼에 크게 손해를 입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양준이 또 같은 동작을 취하자 지레 겁먹고 자신의 필살기까지 펼쳤다. 그런데 단지 동작만 거창할 뿐, 수혼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금호는 말을 마치고 나서 순간 가슴이 움찔했다. 곧이어 머릿속에서 극심한 통증이 전해왔다. 그는 얼굴빛이 창백해지고 온몸의 진원도 어지러워졌다. 그가 놀란 표정으로 뒷걸음질 치며 경악스럽게 양준을 바라보았다.
“너… 너 설마 귀왕인을 흡수한 거야?”
방금 전, 금호는 자신의 귀왕인이 사라졌다는 것을 분명히 느꼈다.
그날 우성곤이 역으로 당한 것처럼 지금 금호도 똑같은 방법으로 당한 것이다.
“흐흐, 이젠 네가 죽겠구나!”
양준은 숨을 깊이 들이쉬고 섬뜩하게 웃었다.
“어떻게 귀왕인을 흡수할 수 있지?”
금호의 얼굴은 알 수 없는 놀라움으로 가득했다. 그는 이 순간 양준의 체내에서 지마가 즐겁게 영혼을 먹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건 저승 가서 네 사제에게 물어봐.”
양준이 말하면서 손을 펴자 양액 한 방울이 핏빛 장검을 이루었다.
상대의 손 무공은 무척이나 예리했다. 희디흰 한 쌍의 손은 철처럼 단단해 범급 상품 비보의 견고함과 예리함에 뒤지지 않았다. 이런 적을 상대하려면 양액으로 무기를 만드는 것이 최선책이었다.
금호는 아직 싸울 여력이 있었지만, 귀왕인이 영문도 모른 채 사라지자 너무 놀란 나머지 감히 양준과 접전을 벌이지 못했다. 최후의 일격이 양준에게 먹히지 않자, 우선 지금은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이제 막 세 걸음을 물러난 순간, 등 뒤에서 살기가 습격해 왔다. 금호의 얼굴빛이 달라지며, 미처 뒤돌아서기도 전에 비릿한 냄새가 풍겨 왔고, 곧이어 목에서 큰 통증이 전해졌다.
금호는 땅에 넘어지며 힘껏 반항했다. 곁눈질로 보니 그를 따라온 요수 한 마리가 그의 육신을 물어뜯고 있었다.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그는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다.
“자맥, 너 이 나쁜 년.”
그는 자맥이 자신을 죽이려 했다고 생각했다.
금호는 온몸의 원기를 모두 폭발시켜 겨우 5급 요수의 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미 목덜미 쪽은 피투성이가 되어 피가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그가 이제 겨우 바로 섰을 때, 양준이 바로 검을 들고 달려들었다.
핏빛 장검을 내리치자 금호는 황급히 손을 들어 막았다. 희고 차가운 두 손은 과연 단단했다. 검에 적중되었음에도 살짝 틈이 벌어졌을 뿐 잘리지 않았다.
5급 요수가 순식간에 다시 달려들어 양준과 함께 금호를 앞뒤로 협공했다. 금호는 영혼이 손상되고, 몸에도 심한 타격을 입은 상태였다. 전력을 다 해도 상대하기 힘든데, 7할도 채 발휘를 할 수 없으니 어떻게 양준의 상대가 될 수 있겠는가.
찰나의 순간, 양준은 검으로 금호의 손 한 쌍을 잘라냈다. 가장 중요한 양손을 잃자, 금호는 더 이상 저항하지 못하고 황급히 도망쳤다. 그러나 날 수조차 없게 되어 양준과 5급 요수의 협공을 당해내지 못하고, 양준의 칼에 베어 죽었다.
금호가 죽자 옆에서 수수방관하던 다른 두 마리의 요수들은 마치 무슨 명령을 받은 듯이 일제히 사라졌다.
양준은 시종일관 놈들의 움직임을 경계하고 있었다. 천랑국 무인들이 요수들을 조종하는 것을 알고 있기에 놈들을 죽여 버리고 싶었으나, 놈들의 속도가 너무 빨라 따라잡기도 힘들었다. 어쩔 수 없이 양준은 요수들을 도망치게 내버려 두었다.
그는 가볍게 숨을 헐떡이며 옆에 서 있는 5급 요수를 바라보았다. 양준의 살짝 찌푸려졌던 미간이 점점 펴졌고, 눈에도 희색이 감돌았다.
이번 전투는 구성검파 제자와의 싸움보다 훨씬 쉬웠다. 지마의 존재와 5급 요수의 도움이 금호의 죽음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금호는 본인이 데리고 온 요수가 왜 그를 덮쳤는지 죽어도 모를 것이다.
모든 것의 원인은 수혼기에 있었다.
이는 양준이 무의식 중에 모색해 낸 수혼기의 쓰임새였다. 얼마 전 그는 5급 요수를 마주친 적이 있었다. 원래는 수혼기를 펼쳐 5급 요수를 죽이려 했으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두 수혼은 하나로 합쳐져 은은한 빛을 내고는 5급 요수의 몸으로 들어갔다. 그 뒤로 5급 요수가 양준의 명령을 따르기 시작했다.
이 뜻밖의 발견에 양준은 너무 기뻐서 미칠 지경이었다. 한동안 그는 줄곧 그 무공의 비밀을 찾아내려 했지만,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이 무공을 펼치는 것도 성공할 때도 있었고, 성공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게다가 요즘에는 만나는 요수도 점점 적어져 실험 대상이 별로 없었다.
양준은 이 무공의 이름을 먼저 지어 놓았다. 백호인과 신우인이 하나로 합쳐져 만들어진 무공이니 노수인(奴獸印)이라고 지었다.
각각 두 수혼을 불러 힘을 보태게 할 수도 있고, 하나로 합치면 새로운 무공이 되었다.
금호와의 전투에서는 노수인이 큰 역할을 발휘했다. 마지막 고비에 5급 요수가 달려들어 기습하지 않았다면, 금호의 수단과 실력으로 도망쳤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이 무공을 잘만 쓰면 백호인과 신우인의 위력보다 훨씬 더 유용했다. 수혼기도 공격력이 비범하지만, 전체적인 살상력은 약한 편이었다. 둘이 합쳐서 눈앞에 5급 요수 한 마리의 전투력과 맞먹었다. 그저 수적으로 하나 더 많을 뿐이었다.
*삼십 리 밖, 눈 감고 좌선하던 자맥이 번쩍 눈을 떴다. 아름다운 눈동자에는 전보다 더 짙은 놀라움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의 뒤쪽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던 냉산도 마찬가지였다. 예쁜 얼굴에는 온통 놀라움뿐이었다. 그녀는 양준이 있는 쪽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넋이 나간 듯했다. 그녀의 눈에는 슬픔, 후련함 그리고 자신의 처지에 대한 서글픔도 섞여 있었다.
금호가 죽는 동시에, 두 여자는 서로 다른 수단으로 그의 죽음을 감지했다.
금호는 어쨌든 그녀의 동문 사형이었다. 그녀는 금호가 자맥의 요구를 수락하자, 그를 혐오하고 미워했다. 그러나 이제 죽어 버렸으니, 그에게 다시 따질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지금 혼자서 천랑국의 변덕스러운 여성의 손에 잡혀 앞날을 예측할 수가 없었다.
“네 사형이 죽었구나.”
자맥이 천천히 일어나며 담담하게 냉산을 힐끔 쳐다보았다.
“잘 죽었네!”
냉산은 차갑게 웃었다.
“허허… 하긴. 무능한 놈은 필요없지.”
자맥은 크게 웃으며 눈썹을 찌푸리더니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놈을 순식간에 해치우다니. 상대가 고수인가 보네!”
자맥은 말을 하면서 눈동자가 밝아졌다. 마치 무슨 신기한 장난감이라도 발견한 듯 그녀의 얼굴은 흥분으로 꽉 차 있었고, 호흡마저 가빠졌다.
그녀는 발걸음을 가볍게 움직여, 양준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땅에 엎드려 있던 수십 마리 요수들도 급히 일어서 자맥의 뒤를 따랐다.
냉산은 힐끗 보더니 말없이 그녀를 따라나섰다.
그녀는 도망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혼자서 대처할 수 없는 수십 마리의 요수 외에도, 자맥이 그녀의 몸속에 심어 놓은 물건은 그녀의 생사를 충분히 좌우할 수 있었다.
*양준은 금호가 죽고 응고된 혈주를 거두어들인 뒤,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5급 요수를 바라보았다.
이 요수는 야차금영표(夜叉金影豹)로 위풍당당했다. 몸집이 건장하고 체형이 늘씬하며 온몸의 모든 근육에 무서운 폭발력이 잠재되어 있었다. 사지의 발톱은 날카로워 강철을 찢을 수 있을 정도였다.
양준은 이 5급 요수가 그전에 죽인 요수 몇 마리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실력이 진원 경지 6단계 무인과 맞먹었다.
양준이 지금 미심쩍게 생각하는 것은 놈의 실력이 아니라 지금 놈의 상태였다. 그는 왠지 놈을 온전히 조종할 수 없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노수인에 적중된 이상, 이럴 수가 없었다. 게다가 야차금영표는 지금도 불안한 상태로 끊임없이 머리와 꼬리를 흔들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문제가 있어!’
양준은 천랑국의 무인들이 요수를 조종하는 수단을 떠올리고, 아마 자신의 노수인과 충돌한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는 앞으로 다가가 야차금영표를 위로하는 한편, 한 손을 놈의 이마에 대고 서서히 체내에 원기를 주입했다. 원기가 놈의 체내에서 5, 6바퀴 돌고서야 양준은 문제점을 찾아낼 수 있었다.
야차금영표의 머리 안에는 생명의 기운을 내뿜는 또 다른 것이 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