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214화 (214/853)

제 214장. 빠른 태세 전환

냉산은 전에 양준과 겨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의 체내 원기의 속성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속성은 공혼충의 천적이었다. 그래서 냉산은 양준을 알아보는 순간, 그가 공혼충에 조종당하지 않았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가 조종당한 척하는 것은 속임수일 뿐이었다.

냉산은 양준의 실력으로 자맥을 죽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가 죽기 전에 사실을 말해, 본인에게 유리하게 이득을 얻어 내는 것이 더 나았다. 잠깐 주저했지만, 그녀는 결국 이 사실을 자맥에게 알려 주었다.

그녀는 누가 죽든 관심 없었다. 오직 자신이 살 길만을 생각할 뿐이었다.

자맥의 웃는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지더니 고개를 홱 돌려 음험하고 차가운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살기가 넘쳐흘렀다.

그녀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양준은 망설임 없이 공혼충을 체내에서 몸 밖으로 내보내 손에 쥐고는 섬뜩하게 웃었다.

“벌레에 네 영혼이 심어져 있다는 걸 알고 있어. 영혼에 큰 상처를 입고 싶지 않으면 고분고분 말을 들어야 할 거야. 안 그러면 당장 이 벌레부터 태워 없앨 테니까.”

자맥의 얼굴빛이 크게 변하더니 금세 어두워졌다.

양준은 냉소를 연발하며 여유 있고 차분한 태도를 유지했다.

잠시 뒤, 자맥은 입을 가리고 웃기 시작했다.

“내가 방어하지 않은 틈을 타 먼저 벌레를 태웠어야지. 그러면 내가 타격을 입고 너도 살 길이 있었을지도 몰라. 그런데 네가 그것으로 나를 협박한 건 큰 실수야.”

“그래? 이유나 한번 들어 볼까?”

양준은 눈썹만 치켜세울 뿐, 얼굴빛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자맥이 차갑게 말했다.

“내 영혼이 벌레 안에 심어져 있다는 걸 알면서, 내가 그 벌레를 당장 회수할 수 있다는 걸 왜 모르지?”

말하는 사이, 자맥은 의념을 발동해 벌레에 있는 자신의 영혼을 머릿속에 회수했다.

양준은 놀라기는커녕 도리어 크게 웃었다. 웃음소리가 점점 더 커져 마치 천둥소리 같았다.

자맥은 이처럼 방자하고 거리낌 없는 양준의 웃음소리에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저 자식이 저렇게 여유 있는 걸 봐서는 무슨 수단이 있거나 아니면 미친 거야. 그런데 우쭐거리는 표정을 봐서는 실성한 것 같지는 않은데?’

다른 사람이었다면 자맥은 수하로 삼을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양성 원기를 수련하는 무인인 이상, 살려두면 안 되었다. 이내 자맥의 얼굴에 살기가 짙어졌다. 그녀는 손을 들어 요수들에게 덮치라고 명령을 내리려 했다.

이때, 양준이 웃음을 거두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자맥을 바라보며 가볍게 일갈했다.

“네가 날 죽일 수 있을 것 같아?”

“아악……!”

자맥이 별안간 비명을 지르더니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쭈그려 앉았다.

갑작스러운 이변에 냉산은 놀란 표정으로 울부짖는 자맥을 바라보았다. 다시 고개를 들어 시종일관 침착하고 평온한 표정의 양준을 보자 지금 상황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어찌 된 일이지? 두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냉산은 심지어 둘이 맞붙어 싸운 흔적도 보지 못했다. 그냥 웃으며 이야기하다가 자맥이 순간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크릉……!”

자맥의 정서 변화는 수십 마리 요수들의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하나같이 양준에게 이를 드러내고 끊임없이 으르렁거리면서 한 걸음, 한 걸음 그에게 다가갔다.

“네 요수들부터 얼른 치워! 안 그럼 네 영혼을 파괴해서 바보로 만들어 버릴 거야.”

양준이 차가운 목소리로 위협했다.

자맥은 머릿속의 고통을 억지로 참으며 망설임 없이 신속하게 명령을 내렸다.

수십 마리 요수들은 자맥을 바라보더니 모두 적의를 거두었다. 그리고 사방으로 흩어져 백 장쯤 달려가서야 멈춰 서서 세 사람이 있는 곳을 에워쌌다.

“상황 파악을 잘하는군!”

양준은 차갑게 웃으면서 앞으로 걸어가더니 손을 뻗어 자맥의 머리카락을 잡은 채,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양준의 횡포하고 잔인한 태도에, 냉산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넌 가만히 있어. 나중에 따질 테니까.”

양준이 그녀를 냉담하게 바라보자, 냉산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놀라움과 공포에 젖은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반년 전 귀왕곡 제자 세 명이 양준을 포위 공격하였을 때, 그는 겨우 이합 경지 3단계 수준에 불과하였다. 그 당시 셋의 공격에 양준은 집 잃은 개처럼 허둥지둥 도망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 다시 만난 그는 손쉽게 천랑국의 자맥을 사로잡았다.

냉산은 자맥의 강함과 잔인함을 알고 있었다. 공혼충이 있는 한, 그녀는 많은 요수와 무인들을 제어할 수 있고, 더하여 그녀 자체의 실력도 비범했다. 이런 그녀가 어떻게 고작 몇 분도 안 되는 시간에 양준에게 패한단 말인가?

게다가 그녀는 얼마 되지 않는 이익 때문에 그를 팔아넘겼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자신의 행동이 너무 후회되었다.

순식간에 전세가 역전되었다.

자맥의 비명이 점차 멎었다. 그녀는 온몸이 땀범벅이었고, 옷가지도 몽땅 젖어 풍만한 몸매가 그대로 드러났다. 그녀는 고개를 꿋꿋이 들어 올린 채, 분노에 찬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고운 얼굴에는 독기가 서려 있었다.

“보아하니… 너 지금 누가 주인인지 상황 파악이 덜 된 것 같은데?”

양준은 손을 뻗어 그녀를 땅에 내던졌다.

자맥의 비명소리가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방금 전보다 더 비참하고 처절했다. 자맥은 비명을 지르며 끊임없이 땅 위에서 뒹굴었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혹독한 고문을 당하는 것 같았다.

냉산은 그 소리에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아니… 안 돼……. 이제 그만… 그만 괴롭혀…….”

자맥은 겨우 기어서 양준의 발치로 오더니 그의 발목을 꽉 잡고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그녀는 아름다운 얼굴을 들어 양준을 올려다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애원했다.

“말 들을게… 네 말 다 들을 테니까 그만 좀 괴롭혀…….”

양준은 쭈그리고 앉아 여유 있게 그녀를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확실해?”

자맥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영혼에서 전해져 오는 고통으로 그녀는 죽는 것보다도 괴로웠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런 고통은 이 세상에 그 누구도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이는 그녀가 기개가 없어서가 아니라, 양준이 너무나 잔인한 것이었다.

“앞으로 내 뜻을 거스르지 않을 거지?”

자맥은 억지로 미소를 지어 냈다.

“물론이야!”

“좋아. 연기인 건 알지만, 표정은 마음에 드네.”

자맥이 요염하게 웃었다.

“연기라니! 우리 천랑국 여인들은 강자를 따르는걸. 네가 이렇게 강한데 당연히 널 좋아할 수밖에.”

“나는 이합 경지 7단계밖에 안 되는데 강자로 쳐주나 봐?”

양준이 가볍게 웃었다.

자맥의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러나 곧이어 그녀는 다시 표정을 가다듬었다.

“경지는 중요하지 않아. 넌 아직 어리니까. 몇 년 지나면 훨씬 더 강해질 거 아니야.”

“아부 떠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군. 좋아! 이제 그만 일어나.”

양준은 크게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응.”

자맥이 고분고분 일어섰다.

냉산과 금호 앞에서 그녀는 기세등등한 주인이었다. 하지만 양준의 앞에서 그녀는 말을 잘 듣는 종으로 전락해 감히 제멋대로 행동하지 못했다.

자맥은 방금 전에 받았던 고통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았다.

양준은 차가운 눈빛으로 냉산을 보며 히죽 웃었다. 냉산의 얼굴 표정은 매우 어색했다. 난감함, 분노 등 여러 감정이 뒤섞여 있었지만, 그중 가장 큰 감정은 굴욕감과 씁쓸함이었다.

양준과의 전에 있었던 은원을 제쳐 두고, 방금 전에도 그녀는 양준을 팔아먹었다. 이것만으로도 그녀는 용서받을 수가 없었다.

양준을 팔아먹자마자, 양준이 그녀의 생사를 좌우하게 되었다.

자맥은 양준과 냉산을 번갈아 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쟤를 죽이고 싶어? 내가 쉽게 죽일 수 있어!”

그녀는 영리한 여인이었기에, 양준의 눈빛에 담겨 있는 살기를 금세 알아차렸다.

냉산은 낯빛이 크게 변하면서 황급히 뒤로 몇 걸음 물러나 양준과 자맥을 경계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얼굴에는 결연함이 서려 있었다.

만약 양준이 정말 그녀를 죽이려 한다면, 냉산은 결단코 죽기 살기로 달려들 생각이었다.

양준은 잠시 침묵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냉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양준을 바라보았다.

“왜?”

“뭐가 왜야?”

양준은 그녀의 질문에 순간 짜증이 났다.

“왜 나를 살려주는 거야? 우린 웃어른들 사이도 원수지간이고, 우리 사이에도 은원이 있잖아. 네가 착하게 내 목숨을 살려준다는 게 믿을 수가 없어. 지금 날 죽이는 건 식은 죽 먹기잖아.”

냉산이 마음속의 의문을 털어놓았다.

“난 원래 착하거든. 이 정도 이유면 충분해?”

양준은 담담하게 웃었다.

자맥이 한쪽에서 입을 삐죽였다. 냉산도 경멸 어린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네가 정말 착하면, 저 여자더러 벌레를 내 몸에서 빼내게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네가 아무리 날 죽이지 않는다고 해도, 내 목숨을 손에 쥐고 있잖아. 그걸 착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네가 나를 의심할 자격이 있어? 귀왕곡은 사파잖아. 너희들도 착하지는 않지.”

양준이 냉소하며 말하자, 냉산이 바로 대꾸했다.

“난 내가 착하다고 말한 적 없어!”

“말주변은 좋네.”

양준은 헛기침을 하더니 자맥을 보며 말했다.

“저 여자에게서 벌레를 빼내 줘. 착한 게 뭔지 보여 줘야지.”

자맥이 흠칫 했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눈초리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눈앞에 소년이 이런 결정을 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바본가? 공혼충이 없으면 저 여자를 어떻게 제어하려고?’

냉산조차도 양준의 말을 듣고 어안이 벙벙해하더니, 곧바로 눈동자에는 기쁨이 넘쳐났다.

“내 명령은 두 번 반복하지 않는다.”

양준이 자맥을 냉담하게 바라보았다.

자맥은 쓴웃음을 짓고는 냉산 앞에 다가섰다. 그녀는 오직 마음속으로 낙담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와 냉산은 과연 구분이 있었다. 냉산은 양준과 비록 은원이 있지만, 어쨌든 대한의 무인이었다. 이런 시기에는 확실히 함께 어려움을 견뎌내야 했다.

“너 운이 좋네!”

자맥이 부러운 말투로 가볍게 말했다. 그러고 나서 손을 냉산의 복부에 얹고 의념을 전하는 동시에 원기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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