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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련전봉-215화 (215/853)

제 215장. 어떻게 한 거야?

잠시 뒤, 냉산은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헛구역질을 했다. 곧이어 그녀의 입에서 벌레가 튀어나왔다.

자맥은 재빨리 벌레를 거두어들였다. 냉산은 더는 참을 수 없어 한쪽으로 달려가서 구토를 멈추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녀는 입가를 닦고 천천히 돌아와 복잡한 표정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금호는 네가 죽인 거야?”

냉산은 잠시 침묵하다가 물었다.

“맞아! 왜, 복수하려고? 기회를 줄 테니까 지금 해 봐.”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놈의 복수를 할 생각은 없어. 하지만 네가 날 순순히 풀어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이내 냉산의 눈빛이 차갑게 변하더니 양준에게 공격을 날리며 냉소했다.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사람의 얼굴 형상이 그녀의 손바닥에서 나타나더니 양준의 체내로 달려들었다.

귀왕곡의 비밀 무공 귀왕인이었다.

자맥의 얼굴빛이 확 달라지며 그녀가 앞으로 나서려 하자, 양준이 그녀를 저지했다.

“너…….”

냉산은 급히 뒤로 물러서며 놀란 눈길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귀왕인에 적중된 사람은 스스로 몸을 전혀 제어할 수가 없었다. 귀왕인의 원혼이 그 사람의 영혼을 파괴하고 나서 몸을 차지하기 때문이었다.

냉산의 계획은 나름 철저했다. 이곳에는 곳곳마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고, 그녀가 자유를 되찾는다 한들 살 가망이 별로 없었다. 또다시 다른 천랑국 무인을 만나면 바로 죽임을 당하거나 똑같이 조종을 당할 것이 뻔했다. 차라리 양준의 영혼을 망가뜨리고, 그의 몸을 제어하는 것이 훨씬 더 이득이었다.

양준을 제어하면 자맥을 제어하는 것과 같기에 냉산에게도 충분한 밑천이 생기는 셈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예상과 달리 귀왕인이 아무런 효과도 나타내지 못하자, 그녀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역시나 생각대로군!”

양준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는 진작 냉산의 야심을 알아채고 있었다. 좀 전의 했던 행동들은 그녀가 귀왕인을 펼치게 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내 귀왕인은?”

냉산이 따져 물었다.

“자. 여기 있다. 가져가!”

양준이 코웃음을 쳤다. 얼굴 형상은 도망치듯 양준의 몸에서 나와 냉산의 체내로 돌아갔다. 냉산은 더 이상 머물지 못하고 뒤돌아서 빠르게 도망쳤다.

자맥이 옆에서 조용히 보고 있다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저렇게 가게 내버려 둘 거야? 널 공격했는데?”

“나를 건드린 자들은 대가를 치르게 돼 있어.”

양준은 흉악하게 웃었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냉산이 얼마 가지 못하고, 땅바닥에 쓰러지더니 비참하게 비명을 질렀다.

익숙한 비명 소리를 듣자 자맥은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도 방금 전 비슷한 일을 양준에게 당한 참이었다. 이번에는 같은 상황에 구경꾼이 되었을 뿐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

자맥은 아무리 봐도 알 수가 없었다.

냉산이 받은 고통은 자맥보다 훨씬 처절했다. 족히 몇십 분의 시간이 흘러서야 겨우 울부짖음을 멈췄고, 그녀는 그대로 완전히 기절해 버렸다.

양준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가서 잡아와.”

“알겠어.”

자맥은 순순히 앞으로 다가가 혼절한 냉산을 들고 왔다. 그녀는 온몸이 흠뻑 젖은 냉산을 바라보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동병상련의 느낌이 들었다.

“나 좀 회복해야 하니까, 방해하지 마.”

양준은 한쪽으로 걸어가더니 가부좌를 틀고 앉아 체력을 회복했다.

반나절이 지난 뒤 냉산은 천천히 깨어났다. 그녀는 막 깨어나자마자 또 한 차례 비명과 함께 다시 혼절했다.

자맥은 두려움에 떨었다. 그리고 점점 더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양준은 잔인하고 모질뿐더러 여자를 아껴야 한다는 생각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냉산이나 그녀나 모두 최고의 미인이었지만, 양준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들을 냉혹하게 괴롭혔다.

하루 뒤, 냉산은 다시 정신을 차렸다. 양준은 더 이상 그녀를 괴롭히지 않았다.

그녀의 실력은 진원 경지로 아직 신식을 수련하지 못한 상태였다. 좀 더 괴롭혔다가는 정말 바보가 될 수도 있었다.

냉산은 아직도 두려움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멀리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아직도 공포가 서려 있었다.

자맥이 한참 동안 설득하고서야 그녀는 부들부들 떨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 양준 앞에 섰다. 그녀는 입술을 오므린 채 창백한 얼굴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동안 자맥에게 노예 취급을 당하긴 했지만, 몸속에 벌레 한 마리가 더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영혼이 남의 손에 쥐여져 있었다. 늑대 굴에서 막 빠져나왔더니 또다시 호랑이 굴에 들어온 격이었다.

양준은 이미 두 여자가 다가온 것을 알아챘지만,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모르는 척했다. 그녀들이 다른 마음을 품었는지 시험해 보려는 것이었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자맥이든, 냉산이든 지금은 아주 고분고분해져 감히 헛짓을 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양준은 눈을 뜨고 냉산을 바라보았다. 냉산은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서려다가 자맥에게 잡혔다.

“어서 사과해.”

자맥은 지금 자신이 도대체 무슨 심정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냉산을 앞으로 밀면서 가볍게 위로할 뿐이었다.

냉산의 눈에는 굴욕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얇은 입술을 깨물더니 겁을 먹은 채로 고개를 들어 양준을 보다가 급히 눈을 피했다.

“너 사과 안 하면, 이제 나도 몰라!”

자맥은 냉산이 안타까웠다. 한낱 여자가 일 푼어치도 안 되는 기개를 발휘해서 뭐 한단 말인가? 사내들도 뭐 굽힐 줄도, 펼 줄도 알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가.

냉산은 내키지 않는 얼굴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양준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그녀를 계속해서 노려보았다.

“내가 잘못했어.”

한참이 지나서야 냉산이 겨우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어찌나 작은지 자세히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거의 들리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녀는 두 손을 비비 꼬며 불안에 떨었다.

양준은 그녀를 담담히 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냉산이 이를 악물고 고통을 견디는 것을 보고 자맥이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얘가 잘못을 인정하고, 앞으로 더는 널 해코지하지 않을 거래. 됐어, 그만 울어.”

자맥은 말하는 한편, 냉산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었다.

“치워. 상관하지 마.”

냉산은 혐오스럽다는 듯이 자맥의 손을 확 뿌리쳤다.

“이번만이야.”

양준은 냉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냉산은 그 말을 듣고서야 겨우 숨을 돌렸다. 이제 더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받지 않아도 되었다.

“너 어떻게 한 거야?”

냉산은 한참 동안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마음속의 의문을 던졌다.

그녀는 전에 양준에게 귀왕인을 날렸을 뿐이었다. 귀왕인이 다시 그녀의 체내로 돌아왔을 때, 머릿속에 무언가 많아진 느낌이 들었으나, 그녀는 신식을 수련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눈앞에 남자가 바로 그것으로 그녀의 영혼을 장악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나도 궁금하네. 말해 줄 수 있어?”

자맥이 요염하게 웃으며 맑은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입을 살짝 삐죽이는 것이 아직 불만이 있는 듯했다.

“방법은 아주 간단해. 너희들의 신식에 낙인을 찍었을 뿐이야.”

양준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두 여자는 이 말을 듣고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게 간단할 리가 없잖아!’

그녀들은 아직 신식을 수련하지 않았지만, 남의 신식에 낙인을 찍는 게 매우 힘든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양준은 고작 이합 경지의 무인일 뿐이었다. 설령 신유 경지라 해도 이 정도의 기술을 사용하려면 많은 공을 들여야 했다. 그리고 남의 영혼을 손상시켜 바보로 만들 가능성도 있기에 무척이나 조심해야 했다. 그런데 양준은 아주 간단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시 자신들에게 일어난 일을 돌이켜 보면 확실히 간단하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냉산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귀왕인을 날리고 다시 회수하기까지 겨우 몇 분이나 지났을까. 그 짧은 시간에 그녀의 생사는 이미 양준의 손에 넘어간 뒤였다.

자맥은 공혼충에 있는 영혼을 거두어들였을 뿐인데 똑같은 상황에 처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양준은 금호를 죽인 뒤,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아마 진작에 만반의 준비를 하고 그녀가 와서 미끼를 물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우습게도 자맥은 스스로 열심히 달려와 그의 계략에 걸려든 것이었다. 앞서 그가 공혼충을 태우겠다고 한 것도 결국 그녀가 영혼을 회수하게 하기 위해서 연기한 것일 뿐이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자맥은 가슴이 섬뜩하여 못내 후회스러웠다.

자맥은 물끄러미 양준을 바라보다가 깊게 숨을 들이쉬며 물었다.

“너 정말 이합 경지 7단계 맞아?”

양준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자맥은 그제야 풍만한 가슴을 팍팍 치며 자조적으로 웃었다.

“그러니까. 이합 경지 7단계가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겠어? 도대체 실력이 어떻게 되는 거야?”

양준은 가볍게 웃었다. 다음 순간 그의 온몸이 진동하며 무형의 기운이 발산되었다. 양준의 체내 원기가 한동안 꿈틀대더니 곧 가라앉았다.

“돌파했어…….”

자맥과 냉산은 우두커니 양준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 광경은 작은 경지 하나를 돌파할 때 생기는 현상이었다.

그런데… 이 진동은 강하지 않았다. 심지어 진원 경지에도 이르지 않았다.

“지금은 이합 경지 8단계야!”

양준은 두 여자에게 방긋 웃으며 말했다.

자맥과 냉산은 속으로 신음했다.

‘정말 이합 경지 무인이었어…….’

둘은 서로 시선을 마주하고는 동시에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들은 한 명은 진원 경지 6단계였고, 다른 한 명은 진원 경지 4단계였다. 모두 본인이 속한 종문의 기린아들이었다. 그런데 양준과의 접전에서 순식간에 사로잡혔을 뿐만 아니라, 생사도 그의 손에 넘겨주었다.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었다.

둘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이제 너희들은 알아서 행동해. 내가 비록 너희들 생사를 손에 쥐고 있지만, 너희들이 꼼수를 부리지 않고, 얌전히 있으면 힘들게 하지 않을 거야. 요수를 잡든, 적을 죽이든 마음대로 해. 필요하면 부를게.”

양준은 말을 마치고 곧 눈을 감았다.

냉산과 자맥은 천천히 물러갔다. 그녀들은 몇십 장 밖으로 물러서서야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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