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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련전봉-216화 (216/853)

제 216장. 우리 힘을 합쳐야지

“이상한 녀석이네.”

자맥은 멀리서 양준을 바라보며 중얼중얼 혼잣말을 했다.

“언젠간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

냉산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방금 전 자신이 굴복했다는 생각을 하면 부끄러웠다. 그녀는 이를 갈며 복수를 다짐했다.

자맥은 그녀를 힐끗 보고는 입을 오므리며 웃었다.

“보복은 먼저 그에게서 벗어날 능력이 생긴 다음에나 말하지.”

“그리고 너! 그동안 네가 준 치욕을 잊지 않을 거야.”

냉산은 살기가 가득 찬 눈동자로 자맥을 노려보았다.

자맥은 그녀의 말을 듣더니 요염하게 미소를 지었다.

“왜 그리 화내니? 내가 널 어쨌다고.”

“나쁜 년! 한 번만 더 헛소리하면 죽여 버릴 거야.”

냉산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얼굴이 붉어졌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자맥이 비웃었다.

“지금 우리 둘의 생사는 남의 손에 쥐여져 있어. 나에게 너무 적대감을 갖지 마. 우선 방법을 강구해서 저 녀석의 손에서 살아남는 게 가장 우선이야. 너도 봤잖아. 저 녀석, 여자를 아끼고 그런 거 없어. 그냥 기분 나쁘면 우리를 죽일 수도 있단 말이야.”

“하… 남에게 지배당하는 기분이 어때? 네게도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지?”

냉산이 냉소하며 그녀의 처지를 고소해했다.

“같은 여자끼리 왜 이래. 우리 힘을 합쳐야지.”

자맥이 눈썹을 찌푸렸다.

냉산은 심호흡을 했다. 비록 마음속 화가 가라앉지 않았지만, 자맥의 말이 일리가 있었기에 마음을 가라앉히며 물었다.

“무슨 방법이 있어?”

“유혹하는 거야. 보아하니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아무리 매정하고 잔인해도 결국 남자야. 남자라면 다 욕망이 있어. 우리 둘 다 예쁜 편이잖아. 이마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을 쉽게 낚을 수 있지 않겠어?”

자맥이 흥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넌 그냥 쟤랑 놀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냉산이 바로 찬물을 끼얹었다.

“그렇게 드러내 놓고 말하면 어떡하니?”

자맥은 눈을 희번덕거렸다. 그러더니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한 가지는 맞아. 우리 천랑국 여인들은 강자를 숭배하지. 쟤는 경지가 높지 않지만, 나를 지배할 수 있잖아. 이건 내 사형도 할 수 없는 일인데.”

“너나 해. 난 자신을 망칠 생각 없어!”

냉산은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 그녀는 뒤돌아 멀리 걸어가더니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양준에게 시달림을 받아 두 번이나 혼절했던 그녀는 회복이 필요했다.

자맥 역시 코웃음을 치며 생각했다.

‘내가 저 녀석을 정복하면 알게 될 거야. 내 말이 정확하다는걸.’

남자는 천하를 정복하고, 여자는 남자를 정복한다. 예로부터 전해 내려온 세상의 이치였다.

*양준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먼저 본인의 일을 처리하지 않고, 자맥과 냉산의 영혼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그녀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그녀들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는 파악할 수 있었다.

‘음, 다행히도 둘 다 고분해졌군. 적어도 날 죽일 생각은 없네.’

그녀들을 순조롭게 제어할 수 있게 되자 양준의 얼굴 위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 모든 것은 모두 지마의 공로였다.

양준의 원래 계획은 공혼충 두 마리를 태워 자맥에게 타격을 준 다음, 기회를 틈타 그녀를 죽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마가 좋은 생각이 있다며 다른 제안을 했다. 양준의 영혼을 특수한 방식으로 자맥의 영혼에 섞어 넣는 것이었다. 일단 그녀가 영혼을 회수하면 그것은 그녀의 머릿속에 낙인을 찍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녀를 확실하게 지배할 수 있었다.

한 번 시험해 보니 빠르고 편리하면서, 꽤 유효한 수단이었다.

한 번 성공하게 되자 양준은 곧 냉산에게도 같은 방법을 쓰려 했다. 귀왕인은 귀왕곡 제자들이 몸과 마음을 수련하는 무공으로 이것도 하나의 도구로 이용할 수 있었다. 지마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순식간에 귀왕인에 손을 썼다.

게다가 지마는 수준이 높아 누군가 이 낙인을 없애 버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영혼은 아주 취약한 부분으로, 만약 고수가 그녀들의 머리에서 낙인을 지워 주려 해도 그녀들의 신식을 손상시키지 않을지 걱정해야 했다.

“아쉽군. 내가 흡수할 수 있는 원혼이 적어져서.”

지마가 아쉬워하며 한마디 했다.

“누가 할 소리. 미리 알았으면 금호와 다른 귀왕곡 제자를 왜 죽였겠어? 굴복시켜 수하로 부리면 얼마나 좋아.”

양준이 불만스럽게 말했다.

지마는 계면쩍게 웃었다.

“설마 이런 방법이 있다는 걸 미리 알고 있었는데 내게 말을 하지 않았던 거야?”

양준은 살짝 화가 났다.

지마가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렇게 약한 적은 거두어도 소용이 없네. 주인이 한마디 일깨워 주지 않았다면, 나도 이런 수단은 생각지도 못했을 걸세.”

“됐어. 남자를 부하로 두는 것도 별로야.”

양준도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자맥과 냉산을 잠시 동안 몰래 지켜보다가 그제야 본인의 일을 처리했다.

양준은 숨을 깊이 들이쉰 다음, 마음속으로 자신이 지배하고 있는 야차금영표를 불렀다. 그러고는 손을 뻗어 놈의 머리에 점을 찍더니 체내 노수인을 부셔 버렸다.

5급 요수는 자유를 되찾자 곧 멀리 도망쳤다.

양준은 요수를 죽이지도, 뒤쫓지도 않았다. 오히려 자맥이 명을 내리자 수십 마리 요수들이 출동해 놈을 다시 몰아왔고, 자맥은 놈에게 공혼충을 다시 심었다.

그는 굳이 그녀의 행동을 저지하지 않았다.

양준은 다시 자신의 수련에 집중했다. 그는 왼손으로는 백호인을, 오른손으로는 신우인을 날리며 두 손바닥을 합쳐서 앞으로 내뻗었다.

짐승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며 하늘을 흔드는 백호와 땅을 흔드는 신우가 동시에 나타났다.

그 소리에 이끌려, 자맥과 냉산은 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녀들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두 수혼이 보이자 저도 모르게 입을 딱 벌렸다.

그녀들은 이런 신기한 무공을 본 적이 없었다. 자신의 원기를 실체화시킬 수 있다니. 온몸이 새빨간 두 요수는 분명 육신이 아닌, 양준의 원기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원기가 어느 정도로 순수해야 저런 게 가능하지? 이합 경지가 아니었나?’

그녀들이 한창 눈에 이채를 띠며 보고 있는데, 양준이 탄식과 함께 손가락을 소리 나게 튕겼다. 이내 두 수혼이 동시에 산산이 흩어졌다.

오랜 시간을 사용하면서 양준은 수혼기의 현묘함을 발견했다.

어느 때든지 백호와 신우는 각자 한 마리밖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수혼을 펼치든, 합쳐서 노수인을 펼치든, 앞서 펼친 기술이 흩어지기 전에는 동시에 기술을 펼칠 수가 없었다. 이는 아마도 두 강력한 요수가 그의 몸에 남긴 물건과 연관이 있는 듯했다.

때문에, 양준이 노수인을 수련하려면 두 수혼을 부셔 버릴 수밖에 없었다.

양준은 계속 백호인과 신우인을 수련하면서 그것들을 하나로 결합시켰다. 그는 끊임없는 수련을 통해 그 속의 비밀을 찾으려 했다.

자맥과 냉산은 그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양준 쪽에서 두 마리의 붉은 요수가 끊임없이 뛰쳐나왔다가 곧이어 산산조각 났다. 이따금씩 은은한 빛이 나타나기도 했다. 그녀들은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두 여인은 그래도 각자 종문의 정예인만큼 눈썰미가 있었다. 양준이 듣지도, 보지도 못한 신기한 무공을 연마하고 있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저렇게 수련하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원기를 소모하는 거지?’

“네가 보기에는 쟤 원기로 저런 공격을 몇 번이나 펼칠 수 있을 거 같아?”

자맥은 참지 못하고 또 냉산의 옆으로 다가가 가벼운 목소리로 물었다.

“많아 봤자 다섯 개 정도. 그 정도면 원기가 모두 소진될걸.”

냉산이 어림짐작했다.

이번에 자맥은 반박하지 않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냉산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것이었다.

둘은 양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원기 파동에서 엄청난 소모량을 느낄 수 있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무공의 등급은 절대 낮지 않았다. 하지만 등급이 높은 무공일수록 위력이 큰 동시에 원기 소모량도 더 많았다. 자신들이 그 무공을 펼치더라도 열 번 정도가 한계였다.

양준은 경지가 높지 않으니 더더욱 오랫동안 수련할 수가 없었다.

“왜? 뭐 다른 생각이라도 있어?”

냉산이 고개를 돌려 뭔가 눈치챈 듯이 자맥을 힐끗 보았다.

자맥은 깜짝 놀라더니 가슴을 치며 말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쟤가 원기를 다 소진해도 의념만으로 우리를 죽일 수 있어. 우리는 얌전히 가만있는 게 좋아. 영혼이 조종되는 것은 장난이 아니란 말이야. 봐. 이제 다섯 번째야.”

둘이 말하는 동안, 양준 쪽에서는 또다시 수혼기를 펼쳤다. 그러나 이번에도 둘의 융합에 성공하지 못했다. 백호인과 신우인이 각각 위세를 부리며 나타났다.

양준은 조급해하지 않고 그것들을 산산조각 냈다. 다시 이 무공 속의 담긴 현묘함을 느끼며 융합이 성공했을 때의 현상과 특유의 감각을 되짚어 보았다.

자맥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품 속에서 병 하나를 꺼냈다.

“뭐 하는 거야?”

냉산이 놀란 눈빛으로 그녀를 힐끗 보았다.

“가서 잘 보여야지. 이건 우리 천랑국의 원기 회복 단약이야. 너한테도 있지? 쟤 지금 회복해야 하거든.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해.”

자맥이 병을 흔들며 말했다.

“비열하고 뻔뻔스러워!”

냉산은 굳은 얼굴로 질타했다.

“호호… 에이, 그렇게 말하면 섭섭하지. 아니면 다음 번 기회는 너한테 양보할게. 우리 번갈아 가며 가자.”

자맥은 입을 가리며 요염하게 웃었다.

“흥!”

냉산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지만 적의를 거두어들였다. 그녀는 찾아가서 양준을 유혹할 자신은 없었지만, 적당한 시기에 단약을 주어 그의 호감을 사는 정도까지는 할 수 있었다.

지금 양준은 그녀의 생사를 손에 쥐고 있었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자세를 낮출 필요가 있었다. 그렇지 않고 자맥에게 선수를 빼앗기면 그녀의 향후 생활이 정말 힘들어질 것이다.

“그럼 나 먼저 간다.”

자맥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나 그녀가 걸음을 떼기도 전에 저쪽에서 또 짐승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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