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7장. 주화입마?
“무공을 또 펼친 거야?”
자맥과 냉산 둘 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저 정도면 더 이상 남은 원기도 없겠지?!”
자맥이 혼잣말을 했다. 그녀는 얼굴에 사람을 유혹하는 요염한 웃음을 지으며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그러나 바로 이때, 양준은 두 수혼을 산산조각 내고 다시 한번 수혼기를 펼쳤다.
‘성공이다!’
백호인과 신우인이 완벽하게 융합되더니 빛이 되어 튀어 나갔다. 만약 앞에 요수가 있었다면, 노수인에 적중돼 제압되었을 것이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양준은 쉴 새 없이 두 손을 휘두르며 수혼기를 거듭해 펼쳤다.
단숨에 네 번 연이어 펼쳤는데, 두 번은 실패하고 두 번은 성공했다. 양준은 어렴풋이 느낌을 찾은 듯했지만, 여전히 숙련도가 떨어졌다.
자맥은 내디뎠던 발걸음을 조용히 거두고 돌아왔다. 냉산과 함께 작고 붉은 입을 딱 벌린 채 멍하게 양준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양준의 지구력은 그녀들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하루가 지났지만, 양준은 여전히 수혼기를 수련하고 있었다.
자맥과 냉산은 완전히 무감각해졌다. 그저 마음속에 씁쓸함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도대체 체내에 얼마나 많은 원기가 축적되어 있는 거야? 이렇게 마음껏 수련해도 버텨 낼 수 있다니… 아니면 이 무공은 원기가 적게 소모되나?’
두 여인이 충격을 받은 것은 물론이고, 양준도 깜짝 놀랐다.
단전에 저장되었던 양액이 이십여 방울이나 줄어든 것이다. 지금은 양성 단약으로 양액을 보충할 수도 없기 때문에 양액을 아껴 써야 했다. 단전의 양액을 모두 써 버리면 금신의 사악한 기운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수혼기를 펼치는 데는 원기가 너무 많이 소모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염양삼첩폭, 양염지익, 성흔 등 각종 무공도 모두 많은 원기가 필요했다. 다른 여느 이합 경지 8단계 무인이라면 이 무공들을 이처럼 빈번하게 쓸 수가 없었다.
양액이 얼마 남지 않은 이상, 이제 더는 양액으로 수혼기를 수련할 수 없었다.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한참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눈앞이 환해졌다.
그의 몸에는 원기를 저장하는 곳이 세 곳이나 되었다. 성도 공간은 성흔을 위해 존재하는 저장 공간이었고, 단전 내 양액은 더는 낭비할 수 없었다. 그러나 금신의 원기는 사용할 수 있었다. 평소에 불굴지오를 쓸 때만 조금 썼을 뿐이라 금신에 저장되어 있는 원기는 무궁무진했다. 금신의 원기로 무공을 펼칠 수만 있다면, 양준의 원기 지속력이 한층 더 높아져 더는 양액이 소모될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양준은 문득 떠오른 이 생각에 흥분되었다. 그가 수련한 무공들은 양성 원기만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각종 성질의 원기를 다 쓸 수 있었다. 양준은 숨을 깊게 들이쉬고 경맥에 남아 있는 진양원기를 모두 단전에 몰아넣어 모든 경맥을 깨끗이 비웠다.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금신 속에 저장되어 있는 원기를 빼내려고 애썼다. 점차 금신이 반응을 보이며 적은 양의 원기가 금신에서 흘러나와 경맥으로 들어갔다.
금신의 원기가 경맥에 흘러들자 마음속에서 난폭함과 피에 굶주린 듯한 느낌이 생겨났다. 이 사악한 기운은 금신의 특징이었다. 강한 진양원기와는 전혀 다른, 철저하게 대립되는 존재였다.
금신의 원기가 주입됨에 따라 양준은 점차 검은 연기에 둘러싸이게 되었다. 광기, 잔인함, 횡포함,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 각종 사악한 기운이 천천히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자맥과 냉산은 먼 곳에서 이 광경을 보고, 저도 모르게 가슴이 벌렁거렸다.
“주화입마야!”
자맥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정말 주화입마에 빠졌어!”
냉산도 벌떡 일어나 멀리서 양준을 바라보았다.
두 여자는 순간 시선을 마주했다. 서로 상대방의 눈에서 기쁨과 흥분을 볼 수 있었다.
그녀들은 양준이 신비한 무공을 너무 많이 수련한 나머지, 체내 원기가 어지러워지고 심신이 들뜨면서 제대로 제어하지 못해 지금의 현상이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들은 양준의 생사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단지 그가 지금 이런 상황에 처하자 그에게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이 보이는 듯해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을 뿐이었다.
주화입마에 빠지면, 가볍게는 경맥이 타 버려 수련 성과가 모두 폐기되어 폐인이 되고, 심할 경우 그 자리에서 바로 즉사할 수 있었다.
양준이 어떤 결과를 맞든지, 이는 두 사람이 바라는 바였다.
‘죽는 게 가장 좋아!’
두 여자는 마음속으로 몰래 기도했다. 얼굴은 기쁨과 기대로 환해졌다.
양준이 정말 주화입마에 빠져서 죽게 되면, 그녀들의 머릿속 낙인도 저절로 사라져 자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두 여자는 눈도 깜빡하지 않고 양준을 지켜보았다. 호흡은 점차 거칠어지고 표정도 긴장되었다.
양준의 주변에 검은 연기가 점차 짙어짐에 따라 피에 굶주린 포악한 기운도 점점 더 심해졌다.
“주화입마에 빠지면 정신이 온전치 못하고, 아무 감정도 없이 사라지게 돼. 잘못하다가 우리 신식의 낙인까지 터뜨리면 어쩌지?”
냉산은 문득 매우 현실적인 문제가 떠올랐다.
양준은 지금 틀림없이 이성이 없고, 사고를 할 수도 없는 상태였다. 그녀가 말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은 아주 낮지만, 그래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양준이 정말 그렇게 한다면 그녀들은 너무나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 것이었다.
자맥은 그 말에 얼굴빛이 변했다. 그녀의 예쁜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붉은 입술을 깨물며 냉산을 뚫어지게 보았다.
“그래서 어쩔 생각이야?”
“완전히 주화입마에 빠지도록 도와주는 거야.”
냉산은 떨리는 목소리로 제안했다.
자맥은 눈썹을 살짝 찌푸리고 개중의 득실과 성공 가능성을 따져 본 뒤, 한참 뒤에야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런데 좀 더 기다렸다가 상황이 더 심해지면… 그때 같이 도와주자.”
마지막 한마디는 단호했다. 큰 결심을 내린 것이 틀림없었다.
냉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이를 악물고 양준 쪽을 응시했다.
그녀는 자맥보다 더 많은 것을 생각했다. 양준을 죽이고 머릿속의 낙인을 없앤다고 해도, 자맥에게는 노예로 부릴 수 있는 요수 몇십 마리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혈혈단신이므로 살길을 잘 마련해야 했다.
양준의 ‘주화입마’ 현상은 점점 더 심해졌다. 검은 연기가 너무 짙어진 탓에 양준의 모습을 거의 볼 수가 없었고, 그저 대략적인 윤곽만 확인할 수 있었다. 몇십 장을 사이에 두고 있었지만, 둘은 여전히 검은 연기에서 배어 나오는 사악한 기운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족히 몇십 분의 시간을 기다리고 나서 자맥이 말했다.
“보아하니 지금은 완전히 주화입마에 빠졌어. 정말 벗어날 방법이 없는 것 같아.”
“갈 거야, 말 거야?”
냉산이 자맥을 흘끔 바라보았다.
자맥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여자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양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온몸의 진원을 조심스레 모으면서 시시각각 양준의 움직임을 경계했다.
오십 장, 사십 장, 삼십 장…….
그와 가까워짐에 따라 두 여인의 심장은 억제할 수 없이 마구 쿵쾅거렸다. 그녀들의 생사와 관련된 일인만큼, 도저히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이십 장, 십 장…….
이제 오 장 거리만 더 가면 두 여인은 함께 공격해 순식간에 양준을 죽일 수 있었다. 그를 죽이면 그녀들의 머릿속 낙인이 지워질 것이다. 마치 자유가 그녀들을 향해 손짓하는 것만 같았다. 자맥이든, 냉산이든 예쁜 얼굴에는 저도 모르게 홍조와 기대감이 피어올랐다.
오 장…….
두 여인이 모질게 마음을 먹고 거침없이 공격를 펼치려는 순간, 검은 연기 속에서 양준이 새빨간 두 눈을 번쩍 떴다.
그 눈은 신비한 힘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한눈에 자맥과 냉산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만 같았다.
두 여인은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췄다. 온몸이 전율하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그녀들은 양준의 눈에서 형용할 수 없는 사악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그 눈에는 여전히 침착함과 조소의 빛을 담고 있었다.
곧이어, 검은 연기에 싸여 있던 양준이 입을 벌려 사악하게 웃어 보였다. 검은 연기 속에서 그의 새하얀 이가 드러나자 더욱 공포스러웠다.
자맥과 냉산은 양준의 두 눈과 사악한 미소에 그만 제자리에 선 채 굳어 버렸다. 조심스레 모으던 진원도 저도 모르게 가라앉았다.
“너…….”
자맥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녀는 양준이 주화입마에 빠졌는지, 안 빠졌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이렇게 뒷통수를 치다니… 벌을 좀 줘야겠군.”
양준이 콧방귀를 뀌며 두 손을 뻗었다. 백호인과 신우인이 위세를 부리며 나타났다. 진양원기로 만들어진 수혼과 달리, 이번에 나타난 짐승의 혼은 현재 양준 본인처럼 검은색으로 사악한 기운과 신묘한 힘을 띠고 있었다.
짐승의 으르렁거리는 소리 속에서 두 수혼은 좌우로 달려들어 두 여인을 땅에 내리눌렀다.
“잘못했어. 우린 네가 주화입마에 빠진 줄 알았어!”
자맥이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실력이 수혼보다 훨씬 더 높았지만, 여전히 반항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녀는 더는 영혼의 고통을 받고 싶지 않았다.
“내가 주화입마에 빠지면 너희들이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아?”
양준이 냉소했다. 만약 그녀들의 마음속 생각을 꿰뚫어 보지 않았다면, 양준도 이렇게 사정을 봐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들의 방금 전 행동은 단지 자기 보호 차원에서 한 행동이었다.
의념을 발동하자 두 수혼이 흩어졌다. 두 여인은 냉큼 기어 일어났다. 그녀들은 여전히 공포에 질려 두려워하고 있었다.
양준은 그녀들을 담담하게 바라보다가 잔인하게 웃으며 말했다.
“죽을 죄는 면하되, 벌은 피할 수 없지. 무슨 벌을 받을래? 너희들이 말해 봐!”
자맥은 몸을 흠칫 떨더니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
“영혼 고문만 아니면 뭐든.”
“정말?”
양준은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래.”
자맥이 고개를 거듭 끄덕였다. 영혼 고문은 정말 죽기보다 싫었다. 세상에서 가장 악독한 고문이었다.
“너는?”
양준은 냉산을 힐끗 쳐다보았다.
“나… 나도 마찬가지야…….”
냉산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