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220화 (220/853)

제 220장. 무슨 꿍꿍이를 꾸미려는 거야?

그들은 또 쉬지 않고 반나절을 걷다가, 잠깐 쉬어 가기로 했다. 요수 몇십 마리 가운데서 절반만 가까이에 두고 나머지 절반은 주변 상황을 알아보게 내보냈다.

양준이 한창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체력을 회복하고 있는데, 양쪽에서 향기로운 체향이 코를 자극했다. 곧이어 자맥과 냉산이 양옆에 착 붙어 앉았다. 그녀들은 마치 춥기라도 한 듯이 그의 옆에 거의 들러붙어 있었다.

양준은 눈썹을 찌푸리고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냉산은 그의 눈빛에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얼굴을 확 붉혔다. 자맥은 억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왜 그래?”

“너희 둘 요 며칠 동안 이상해. 무슨 꿍꿍이를 꾸미려는 거야?”

양준이 어두운 얼굴로 물었다.

자맥이 억울해하며 말했다.

“꿍꿍이는 무슨. 우리 둘은 항상 네 곁에 있었어. 어디 작당할 기회라도 있었나?”

‘작당할 시간이 없긴 했지만, 여전히 찜찜해.’

“왜 우리가 이상하다고 생각해?”

자맥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양준의 품으로 다가갔다.

“그냥 느낌이 그래…….”

“깔깔… 네 느낌이 잘못된 거야.”

자맥은 몸을 흔들며 요염하게 웃었다.

한창 몸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는데 냉산마저 다가왔다. 양준은 저도 모르게 온몸을 흠칫 떨었다.

결국 그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자맥을 와락 덮쳐 땅에 눕혔다.

“아악……!”

자맥이 놀라서 비명을 질렀으나 전혀 두려워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아름다운 눈동자에는 정욕이 일렁였고, 얼굴에는 미소를 머금은 채 양준을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까짓, 사내 구실도 못 하는 녀석이 뭐 어쩌려고?’

다른 한쪽에 있던 냉산은 깜짝 놀라 얼이 빠진 것처럼 보고만 있었다.

“이건 네가 자초한 거야. 너 나한테 수작 부리려 했지? 아니야?”

양준의 표정이 험상궂어졌다.

“내가 언… 언제… 수작 부렸어?”

자맥이 빨간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장님인 줄 알아?”

양준이 냉소했다.

자맥은 괜히 일을 벌였다가 본전도 못 찾았다고 생각하던 중, 갑자기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와락 양준을 밀쳐 버리고는 얼굴빛이 크게 변했다.

“잠깐만. 내 요수가 죽었어! 근처에 적이 있어.”

그녀의 말에 양준의 확 달아올랐던 몸은 적지 않게 식어 버렸다. 그는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

“몇 마리 죽었어?”

“여섯 마리! 순식간에 당한 것 같아. 5급 한 마리랑, 4급 다섯 마리.”

자맥은 놀란 얼굴로 미간을 좁혔다. 그녀는 황급히 양준에게서 빠져나왔다.

“누가 죽인 거야, 몇이나 돼?”

양준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자맥은 일정 범위 내에서 자신이 공혼충으로 조종하고 있는 요수의 생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도 그저 느끼는 것일 뿐, 직접 본 것이 아니므로 다른 정보는 알아낼 수 없었다.

“몰라.”

자맥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럼 가서 확인해 보자.”

양준이 그 자리에서 결정했다.

“위험할 수도 있잖아. 만에 하나, 전에 도망친 고수라도 만나면…….”

자맥이 주저했다.

그녀가 말하는 것은 무승의였다. 지금 이곳에서 한순간에 요수 여섯 마리를 죽일 수 있다면, 상대의 실력은 무척이나 강한 것이 틀림없었다.

“만약 그라면 더 좋지.”

양준은 저도 모르게 왠지 기대되었다. 무승의는 전에 사제를 보내 자신을 암살하려 했었다. 양준은 그 사실을 여전히 잊지 않고 있었고, 조만간 그 빚도 받아 낼 생각이었다. 하물며 무승의에게는 유염액이 있을 수도 있었다.

복수를 하든지, 보물을 빼앗든지 아무튼 양준은 무승의를 가만둘 생각이 없었다.

양준이 고집스럽게 나오자 자맥도 그의 뜻을 거스르지 못했다. 설령 무승의를 만난다 해도, 그녀의 요수 대군과 맞선다면 그도 크게 우위를 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맥은 나머지 요수들을 거느린 채 요수가 죽은 곳으로 달려갔다. 냉산도 다리에 힘이 다 풀린 상태로 겨우 뒤를 쫓아갔다. 두 여인은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앞장서 걸으며 고의로 양준을 뒤에 떨어뜨렸다.

양준도 개의치 않고 뒤따라가며 주위를 살폈다.

“어찌 된 거야?”

냉산은 날카롭게 자맥의 변화를 감지하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뭐가?”

자맥은 잠깐 정신을 어디에 팔았는지 냉산의 물음을 듣지 못한 듯했다.

“너 좀 이상해졌어. 양준을 유혹해서 난감하게 하겠다며? 그런데 방금 전에 너…….”

냉산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훑어보았다. 그녀는 한참이나 생각해서야 겨우 적당한 단어를 골랐다.

“왜 네가 더 느끼는 거 같은데?”

자맥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귀밑이고, 목이고 모두 빨갛게 되어 이를 악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 말해. 앞으로 유혹하는 건 관두는 게 좋겠어. 아니면… 괜히 불장난으로 스스로를 망칠 수도 있으니까…….”

“그럼 설마……!”

냉산은 깜짝 놀랐다.

‘완전 밑졌잖아!’

자맥도 양준이 사내 구실을 못 한다고 여겨 그가 경박하게 굴어도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실상은 그녀의 생각과 전혀 달랐다.

순간의 감촉은 아직도 자맥의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그때를 떠올릴 때마다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몰랐다. 자맥은 사실 겉모습처럼 그렇게 개방적이고 대담하지 않았다.

‘아니지… 정말 남자라면 나와 냉산을 계속 옆에 두고도 어떻게 꿈쩍도 하지 않을 수가 있어? 이런 상황에서 참아 낼 수 있는 남자가 몇이나 돼? 정말 쟤가 성인군자라도 되는 건가?’

별의별 생각을 다 하는 와중에 어느덧 요수 여섯 마리가 죽은 곳에 도착했다.

땅 위에는 혈흔이 남아 있었으나 요수의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이미 혈주가 되어 누군가 취한 모양이었다. 오직 가루 더미들만 남아 있었다.

양준은 주위를 살펴보더니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자맥은 쪼그리고 앉아 가루를 뒤지다가 곧 얼굴빛이 변했다.

“왜 그래?”

냉산이 물었다.

“공혼충이 없어졌어.”

자맥은 얼굴빛이 창백해졌다. 또다시 다른 가루 더미를 세심히 뒤졌다. 이어서 가루 여섯 더미를 다 뒤졌지만, 공혼충이 하나도 없었다.

“그만 찾아. 네 요수를 죽인 사람은 구성검파의 고수가 아니야. 이곳에는 검기가 남긴 흔적이 없어.”

양준이 의미심장하게 자맥을 바라보았다.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거야?”

자맥은 안절부절못했다. 어렴풋이 무엇인가를 짐작했지만, 무의식적으로 확인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내가 더 말할 필요 있어? 네가 더 잘 알 텐데?”

양준이 코웃음을 쳤다.

“아니야…….”

자맥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목소리가 점점 낮아지며 마음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별안간 자맥은 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 요수가 또 죽었어!”

양준은 냉소하며 마음속 짐작을 더욱 굳혔다. 그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자맥을 보며 물었다.

“가볼래?”

자맥은 갈등하며 한참을 망설이다가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더는 요수를 밖으로 분산시키지 않고 모두 불러들인 채 서둘러 요수가 죽은 곳으로 달려갔다.

반 시진 뒤, 자맥은 또 한 번 실망하며 몸을 일으켰다. 이곳에 있는 가루 더미에도 여전히 공혼충이 없었다. 방금 전과 마찬가지로 모두 사라져 있었다.

“네 동문들이 죽인 거야?”

냉산도 드디어 알아차리고 의아한 눈빛으로 자맥을 바라보았다.

공혼충은 천랑국 무인들만 가지고 있는 수단으로, 만약 무승의가 요수를 죽였다 해도 공혼충을 가져갈 수는 없었다. 그는 아직 그 정도의 실력이 안 되었다.

이렇게 짧은 시간 내에 자맥의 요수들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은 손을 쓴 사람의 실력이 대단히 높거나 아니면 인원수가 많아야 했다.

여기에 공혼충이 소실된 단서까지 더하면 손을 쓴 사람의 신분은 거의 다 드러난 터였다.

같은 삼라전의 무인으로서 자맥은 두 동문이 그녀의 공혼충을 어떻게 거두는지를 알 뿐만 아니라, 순식간에 많은 요수들을 죽일 수 있는 실력도 갖추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손아귀에 적지 않은 대한의 무인들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맥은 이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고, 믿고 싶지도 않았다.

‘동문인데 어떻게 나한테 이렇게 모질게 굴 수 있지?’

그녀는 깊게 숨을 몰아쉬더니 눈을 감고는 인식을 밖으로 확산시켜 자신이 조종하는 공혼충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어떻게 해도 찾을 수가 없었다.

잠시 뒤, 자맥이 눈을 번쩍 떴다. 그녀의 눈빛에 음험하고 사나운 기운이 서리더니 차갑게 주위를 훑어보았다. 그리고 연신 냉소를 지었다.

“일단 여기서 떠나자.”

양준은 눈썹을 찌푸리고 다짜고짜 자맥의 팔을 잡아당겼다.

두 시진 뒤, 셋은 이미 백 리 밖에 있었다. 수십 마리의 요수 중에서 한꺼번에 열 마리가 죽었고, 그중 두 마리는 5급 요수였다. 덕분에 자맥의 전력은 크게 줄어들었다.

자맥은 한쪽에 앉아 쉬면서 얼굴빛이 수시로 바뀌었다. 때로는 차가워졌다가, 때로는 의문스러워하다가, 때로는 고통스러워하다가, 때로는 잔인해졌다. 냉산과 양준은 서로 마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자맥의 마음속은 온통 갈등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양준이 냉산에게 위로 좀 해주라고 눈짓했다. 그러나 냉산은 못 본 척 시선을 돌렸다.

양준은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고 조용히 있었다.

한참 뒤, 자맥은 고통스럽게 신음하더니 길게 숨을 토해 내며 애처로운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걔네가 왜 그런 짓을 했을까?”

“그건 그들한테 물어야지.”

양준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우리는 동문이야. 경쟁 상대이기도 하지만, 이렇게까지 할 건 없잖아.”

자맥은 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동문이 뭐가 대수라고? 가까울수록 원래 가장 무서운 법이거든.”

양준은 자맥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너희들은 동문끼리 서로 죽이기라도 해?”

양준과 냉산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자맥은 아연실색했다. 그녀가 눈썹을 찡그리며 탄식했다.

“우리들은 삼라전에서 파생된 작은 종문이라서 그랬는지, 원래 동문들이 적다 보니 천랑국에 있을 때는 서로 챙겨주고 그랬어. 설령 경쟁하는 사이라고 해도, 이처럼 모질게는 하지 않았어.”

“여긴 너희 천랑국도, 삼라전도 아니잖아.”

양준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니 더더욱 서로를 도와야지.”

자맥은 여전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원래는 마음이 독한 여자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순진하네!”

양준이 냉소했다. 자맥의 독기는 오직 대한의 무인들의 한해서만 발동했다. 동문과 대적할 때는 대한의 무인들을 대할 때처럼 모질지 못했다.

자맥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다시 입을 열어 말하려다 순간 낯빛이 고통스럽게 변했다. 그대로 땅바닥에서 데굴데굴 구르면서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처참하게 울부짖었다.

양준과 냉산은 얼굴빛이 변하더니 급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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