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221화 (221/853)

제 221장. 덫에 걸리다

자맥은 엄청난 고통을 받고 있는 듯, 두 손으로 머리카락을 꽉 움켜쥐고 온몸을 새우처럼 웅크렸다. 몸이 굳고 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렸다.

이 상황은 양준이 전에 그녀를 괴롭혔을 때 반응과 똑같았다.

양준과 냉산은 서로 마주 보았다. 서로 간의 눈빛에서 놀라움을 읽을 수 있었다.

자맥의 고통은 한참 동안 지속되다가 겨우 가라앉았다. 그녀는 옷이 땀에 흠뻑 젖어 있었고, 온몸에 힘이라고는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에는 뼈를 파고드는 한기가 맺혀 있었다.

“걔들이야. 걔들이 나에게 경고하며 부르고 있어!”

자맥은 이를 악문 채 얼굴에는 살기가 떠올랐다. 그녀는 말을 마치고 양준의 옷자락을 잡으며 진지하게 바라보았다.

“나 대신 걔들을 죽여줘.”

양준은 빙그레 웃었다.

“진작부터 그 생각을 하고 있었지.”

며칠 전, 양준이 먼저 제안했을 때 자맥은 거절했었다. 그러나 상황은 극적으로 돌아갔다. 자맥은 원칙이 있어 동문을 죽이려 하지 않았으나, 그녀의 두 동문은 그녀와 같은 마음이 아니었다.

“어디야?”

양준이 물었다.

“저쪽이야. 한 시진 정도 가야 해.”

자맥이 한 방향을 가리켰다.

“한 시진이라, 우선 계획을 잘 짜야 해.”

양준은 미간을 찡긋하다가 자맥을 등에 업고서 그녀가 말한 방향으로 걸어갔다.

자맥은 양준의 등에 업히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둘은 원래 적대적인 관계였다. 그런데 지금은 힘을 합쳐서 그녀의 두 동문을 대적하게 되었다. 뒤바뀐 적과 동문 사이에 그녀는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가는 길에 자맥은 두 동문의 상황을 간단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둘은 한 집안 출신으로 사촌 관계였고, 둘 다 진원 경지 4단계 실력이었다.

한 명은 요하(姚河), 다른 한 명은 요계(姚溪). 각각 요수 쉰여 마리씩 데리고 있어, 더하면 백 마리를 넘겼다. 단지 요수의 수만 보더라도 자맥의 두 배를 넘었다. 지금 자맥에게는 요수 이삼십 마리밖에 없었다.

정면 돌파는 불가능했다. 그러나 방법을 강구해 그중 한 명을 먼저 죽이면 죽은 자가 조종하던 요수들이 스스로 무너져 혼란이 생길 것이고, 혼란한 틈을 타 나머지 한 명도 처리할 수 있었다.

자맥은 분노 때문에 두 동문의 모든 소식을 낱낱이 모두 털어놓았다. 양준은 조용히 들으면서 모두 기억해 두고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을지 끊임없이 궁리했다.

“네 사형 적혈은? 걔가 그곳에 있다면 큰일이야.”

적혈은 진원 경지 7단계의 고수인 데다, 6급 요수 한 마리를 노예로 부리고 있어 상대하기 힘들었다.

자맥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없기를 바라야지.”

한 시진 뒤, 세 사람은 드디어 그들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자맥도 양준의 등에서 내려와 감격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옷과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고 차가운 얼굴로 걸어갔다.

멀리서 양준은 많은 요수들과 열 명이 넘는 인영들을 보았다.

자맥이 다가오자 그쪽에서는 두 사람이 일어났다. 바로 삼라전의 요하와 요계였다. 두 사람은 히죽거리며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는데, 전혀 미안한 기색이 없었다. 그들의 호령에 백 마리도 넘는 요수들은 뿔뿔이 흩어지더니 자맥의 요수들을 포위했다.

“사저, 드디어 왔네.”

요하는 깐족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는 전혀 자맥을 안중에 두지 않은 듯, 가볍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요계는 깔깔 웃으며 가소롭다는 듯이 자맥을 바라보았다.

“너희들이 나더러 오라고 했잖아?”

자맥은 싸늘하게 그들을 바라보면서 그들과 십여 장 정도의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삼라전의 세 제자는 서로 일촉즉발의 분위기를 풍기며 대치하고 있었다.

십여 장 밖에서 만화궁의 네 소녀들이 풀이 죽은 얼굴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수라문의 야청사와 주패, 영월문의 진학서와 서소어도 둘러앉아 있었다. 그 외에도 쌍자도, 수월당, 문심궁, 비우각 등 많은 문파의 제자들이 모두 살아 있었다.

양준을 본 진학서와 서소어 두 사람은 쓴웃음을 지었다. 같은 나락으로 떨어진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씁쓸함이었다.

양준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들의 무리는 16~7명 정도 되었다. 원래 인원은 이것보다 많았는데 그동안 많이 죽은 것 같았다.

“너희 둘은 저리 가 있어!”

요하는 양준과 냉산을 힐끔 보더니 손가락질하며 명령했다.

자맥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양준과 냉산은 진학서 일행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두 사람이 합류하자 만화궁의 한 소녀는 양준을 바라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도 결국 피해 가지는 못했구나.”

양준은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너는 이름이 뭐야?”

지난번, 무승의가 그를 괴롭힐 때, 만화궁의 이 소녀가 그를 편들어 몇 마디 말해 주었다. 그 때문에 양준은 이 소녀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네 소녀는 꽃처럼 출중한 미모를 가지고 있었는데, 각자 특징이 있어 함께 앉아 있는 모습은 수려한 풍경화를 방불케 했다.

그 소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한소칠(寒小七)이라고 해!”

장난스러워 보이는 다른 한 소녀가 입을 삐죽거렸다.

“너도 참, 잡혀 있는 처지에 여자애 이름이나 물어보고 말이야. 그다지 좋은 사람 같지 않은데.”

양준은 그녀에게 눈썹을 치켜세웠다.

“남자 본색이라는 말 들어본 적 없어? 네 이름은 뭔데?”

소녀는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난 야함(夜晗)이야!”

이 말을 들은 야청사가 웃으며 말했다.

“나랑 성이 같네. 살아서 나갈 수 있다면 야함 동생과 친하게 지낼 거야.”

한소칠은 웃으며 다른 두 사매도 소개했다. 그 중에서 얌전한 소녀는 화약은(花若隱)이었고, 요염해 보이는 소녀는 유청여(柳青如)였다.

비록 모두 사지로 몰린 상황이었지만, 양준이 나타나자 다른 사람들도 분분히 나서서 이름을 밝혔다.

수월당의 풍천흔(風淺痕), 문심궁의 좌방(左方)과 여심원(厲心遠), 비우각의 저경산(儲景山)…….

각 종문의 최우수 제자들이 한데 모여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 며칠 동안의 걱정과 우려는 모두 사라진 듯했다.

“흥, 다 죽을 마당에 서로 안부나 묻고 말이야. 살아남은 뒤에 수다를 떨어도 늦지 않아.”

분위기를 깨는 목소리가 사람들의 웃음소리를 잘랐다.

양준이 고개를 돌리고 보니 한 남자가 그에게 경멸의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그를 힐끗 본 양준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야청사가 냉소를 짓더니 말했다.

“필수명(畢修明), 잡혀 들어온 후로 넌 하루가 멀다 하게 찬물만 끼얹더라. 도대체 무슨 뜻이야?”

필수명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별 뜻은 없어. 쓸데없는 녀석 하나 들어온 게 그렇게도 좋아할 일이야? 저 녀석이 우리를 살려줄 거라고 기대라도 하는 거야?”

진학서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살고 싶은 생각이 없다면 자결하면 될 것을 왜 굳이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망쳐? 그리고 양 사제를 모욕하지 마. 양 사제는 경지만 낮을 뿐이니까 말이야.”

이번엔 필수명 옆에 있던 사람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경지가 낮으면 쓸모없는 녀석인 거지! 난 정말 저런 녀석이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 있는지 모르겠어. 진작에 죽을 것이지, 지금까지 연명하고 있다니.”

이 사람은 필수명과 같은 문파 출신인 듯했다. 둘은 당연히 같은 편이었다.

한소칠이 싸늘하게 말했다.

“너희들은 말이 너무 많아.”

만화궁의 세 소녀 야함과 화약은, 유청여도 분노에 찬 눈길로 그를 노려보았다.

필수명과 그의 옆에 있던 사람은 비록 양준이 눈에 거슬렸지만, 사람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두려워 코웃음을 치고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이렇게 난리를 치자 화기애애하던 분위기는 전부 사라지고 말았다. 사람들은 모두 기분이 무거워졌다.

야함은 뾰로통한 표정으로 양준을 위로했다.

“양준이라고 했지? 쟤들은 신경 쓰지 마. 저 둘은 하루 종일 우울하게 있다 보니 남이 즐거워하는 꼴을 못 보나 봐.”

양준은 고개를 저었다.

“난 신경 안 써. 그냥 개가 짖는다고 생각하지 뭐.”

옆에 있던 한소칠은 잠시 당황하다가 생긋 웃기 시작했다.

“너 뭐라고 했어?”

필수명과 그의 옆에 있던 사람은 동시에 눈을 번쩍 뜨고 사나운 표정으로 살기를 내뿜으며 양준을 바라보았다.

“귀가 멀지 않았다면 들었을 것 아니야?”

양준은 어두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너 죽고 싶어?”

필수명이 소리를 지르더니 벌떡 일어섰다.

“너희들 다 죽고 싶지?”

요하가 노기 띤 목소리로 말했다.

“죽고 싶다면 지금 소원을 이뤄 줄게!”

필수명은 겁먹은 표정으로 요하를 힐끗 보더니 그제야 씩씩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화난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 두고 봐. 조만간 널 혼내 줄 거야!”

“응, 기다릴게!”

양준이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한의 무인들 사이의 분위기는 일촉즉발이었으나, 천랑국 세 사람 사이의 분위기도 미묘했다. 자맥이 돌아온 뒤로 요하와 요계는 그저 웃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하지 않았다.

한참 뒤에야 자맥은 한숨을 내쉬며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왜 이러는 거야?”

요하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왜긴? 자맥 사저, 몰라서 물어?”

“종문에 있을 때, 사부님이 날 좀 더 돌보아 주셔서 그래?”

자맥이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요하와 요계는 움찔하더니 표정을 굳혔다.

자맥이 이어 말했다.

“너희들은 나보다 일찍 입문했지만, 실력이 나보다 빨리 늘지 못했잖아. 결국 내키지 않으면서도 날 사저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지. 그런데 그렇다고 이게 날 배신한 이유나 핑계가 된다고 생각해?”

“넌 정말 네가 자질이 뛰어나다고 생각해?”

요계가 비웃으며 말했다.

“만약 사부님이 너를 더 지원해 주시지 않았으면 네가 어떻게 지금의 위치까지 오를 수 있었겠어? 자질만 놓고 보면 우리가 너보다 못한 게 뭐야?”

“너희들은 항상 나보다 못했잖아!”

자맥은 전혀 물러서지 않고 당당하게 맞섰다.

요하의 얼굴에 언짢은 기색이 떠올랐다.

“그래? 그런데 사저는 왜 지금 같은 상황이 올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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