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222화 (222/853)

제 222장. 제발 살려 주십시오!

“난 너희들이 이처럼 악독할 줄 몰랐어. 나에게까지 손을 뻗다니!”

자맥은 한에 사무친 얼굴로 말했다.

요하는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됐어. 그래도 사저니까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을게! 우리가 사저를 부른 건 다른 게 아니야. 당분간 우리는 이곳을 떠날 수도 없고, 여기엔 또 다른 적도 없으니 사저의 요수들은 딱히 필요 없지 않아?”

자맥은 안색을 흐리며 말했다.

“내 요수를 원한다는 거야?”

“맞아!”

요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요계는 조금만 더 힘쓰면 경지를 돌파할 수 있는데 아무래도 우리의 요수를 죽이기는 아까워서 말이야. 사저가 우리를 위해 몇 마리 바쳐 줬으면 좋겠어.”

자맥은 비분에 찬 얼굴로 말했다.

“겨우 그것 때문에 내 신식을 망가뜨리려고 한 거야?”

요계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누가 사저더러 숨으래? 사저가 숨지 않았더라면 우리도 이렇게 하지 않았을 거야. 지금 여기에 재미있는 일도 없고, 그래서 원래 사저의 요수들과 함께 사냥 경기라도 하려고 했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말이야. 사저가 우리를 이렇게 만든 거야.”

“좋아!”

자맥은 침통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녀의 눈빛은 매우 단호했다.

“내 요수를 원한다면 모두 가져가!”

요하는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사저가 이렇게 시원시원하게 나올 줄 알았어. 사저가 요수들에게 반항하지 말라고 명령을 전해줘. 정말 싸움이 시작된다면 수습하기 힘들 테니까!”

자맥은 눈을 감았다.

그녀는 이곳으로 온 뒤, 두 사람이 가져간 공혼충의 신식을 거두어들여서 요하와 요계가 그녀의 신식을 망가뜨릴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상대는 여전히 압도적인 우세를 차지했다. 그들 손에 있는 수많은 요수들을 차치하더라도, 그들에게 조종당하고 있는 대한의 무인들도 강한 전투력을 가지고 있었다. 정말 전쟁을 치른다면 자맥은 승산이 전혀 없었다. 심지어 포위를 뚫을 가망도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내키지 않더라도 당분간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됐어.”

자맥은 눈을 뜨고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요하와 요계는 서로 마주 보며 속으로 명령을 내렸다.

순간, 수많은 요수들의 비명소리가 들리며 사방에서 피가 튀었다. 요수들은 전혀 반항하지 않고 풀썩풀썩 제자리에 쓰러졌다. 그들은 동족에게 목이 물어뜯겨 목숨을 잃었다.

대한의 무인들도 이 광경에 깜짝 놀라 겁먹은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아 삼사십 마리의 요수들이 모조리 죽임을 당했다.

“하하하하!”

요하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혈주 삼사십 알이 있다면, 그와 요계 중 한 사람은 지금의 경지를 돌파하고 진원 경지 5단계에 도달할 수 있었다.

다른 한 사람은 대한의 무인들에게서 불전지비를 알아내고 그들을 다 죽인다면 또 혈주를 가득 얻을 수 있었다. 특히 요하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대한의 몇몇 미인들이었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아름답고 몸매가 좋았다. 이 며칠 동안 그는 온갖 방법을 대면서 소녀들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요계가 옆에서 그를 꼼짝하지 못하게 단속하는 바람에 기회를 찾을 수가 없었다.

요하는 사촌 동생을 보내고 제멋대로 할 생각에 한소칠 무리를 보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음, 이 혈주들을 먼저 요계더러 쓰라고 해야지. 그녀가 혈주를 연화하여 흡수하면서 진원 경지 5단계를 돌파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야. 그 시간이면 내가 마음껏 즐길 수 있을 거야.’

요하는 생각할수록 흥분되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요하는 요계에게 말했다.

“요계, 혈주는 네가 먼저 써.”

요계의 얼굴에 감동의 물결이 피어올랐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대한의 무인들이 있는 곳을 바라보며 명령을 내렸다.

“혈주를 주워 와!”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누구도 일어서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동안 요하와 요계에게서 많은 수모를 당했던 지라 두 사람을 죽여 버려도 시원치 않을 판인데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 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분부가 떨어졌는데 시간을 끄는 것도 능사가 아니었다. 만약 그들의 화를 돋우기라도 한다면 괴롭힘은 더더욱 심해질 것이다.

만화궁의 야함은 씩씩거리며 일어서더니 덧니를 드러내며 말했다.

“내가 갈게!”

양준은 눈알을 굴리고서 입을 열었다.

“내가 다녀올 테니 넌 좀 쉬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필수명은 그 소리에 눈을 뜨고 비웃으며 말했다.

“왜? 잡히자마자 충성심을 표현하는 거야? 이런 일도 앞다투어 하게?”

“그래. 남 밑에 있으니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잖아!”

양준은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필수명과 그의 사제는 경멸 어린 비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소리에 많은 사람들이 언짢은 기색을 드러냈다.

양준은 요수들이 죽은 곳을 돌아다니며 혈주 삼사십 알을 모았다. 그리고 또 성큼성큼 삼라전의 세 사람 앞까지 걸어갔다.

요계는 차가운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며 경계의 표정을 드러냈다. 양준은 자맥이 데려온 사람이라서 방어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혈주를 이리 던져!”

양준과 세 장 정도의 거리가 되자, 요계가 싸늘하게 말했다. 양준더러 가까이 오지 말라는 뜻이었다.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교묘한 힘을 써서 연이어 혈주 삼사십 알을 하나하나 던졌다. 요계는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받았다.

자맥은 옆에서 차가운 얼굴로 보고 있다가 요계가 혈주를 다 건네받은 뒤에야 입을 열었다.

“이제 너희들이 원하는 것을 가졌으니 다른 용건이 없다면 난 먼저 갈게.”

요하와 요계는 서로 마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사저, 어디 가려고?”

자맥은 안색이 변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어디를 가든 너희들이 상관할 바 아니잖아!”

요계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저 성격은 여전하네. 우리는 사저를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외지에는 위험이 가득해서 요수들의 보호가 없다면 위험해. 사저가 나갔다가 괜히 잘못되기라도 하면 우리가 사부님에게 뭐라고 말하겠어?”

자맥은 믿을 수 없다는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나까지 조종하겠다는 거야?”

요하가 말했다.

“사저, 무슨 그런 말을 해? 우리는 같은 식구니까 서로 챙기자는 거지.”

요계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사저의 안전을 생각해서 남으라는 거지.”

자맥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녀의 얼굴은 비분에 차 있었다. 오는 길에 양준은 이미 그녀에게 요하와 요계는 절대 정도껏 하지 않고, 그녀를 끝까지 괴롭힐 것이라고 말했었다.

“그들이 네 요수를 건드렸다면 너도 건드릴 수 있어!”

양준은 이렇게 그녀에게 말했었다.

자맥은 원래 약간의 희망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보니 양준의 말이 맞았다. 이런 곳에서 자맥을 죽이고 뒤처리를 잘한다면 아무런 단서도 남을 리 없었다. 대한의 무인들은 전부 죽이면 그만인데, 요하와 요계가 무서울 것이 뭐가 있겠는가?

그녀의 요수를 먼저 죽이고, 또 그녀를 상대하는 것까지 이 모든 것은 양준의 추측대로였다.

‘양준이 선견지명이 있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사람 마음을 잘 관찰한다고 해야 할지. 참…….’

자맥은 침묵했다. 그녀의 시선은 점점 차가워졌다.

요계는 갑자기 미간을 찌푸리더니 양준에게 고개를 돌리고 그를 질책했다.

“너는 왜 거기 서 있어? 썩 꺼지지 않고.”

말을 마친 그녀는 또 경멸 어린 시선으로 자맥을 바라보았다.

“사저, 수하를 이렇게 가르치는 거야? 교양이라고는 전혀 없네.”

자맥은 대답하지 않았다. 양준은 머쓱한 웃음을 짓더니 조심스럽게 물러났다. 그는 자맥을 매섭게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두 분, 저 계집더러 제 안에 있는 공혼충을 내보내라고 하면 안 되겠습니까? 그럼 두 분께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자맥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려 양준을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너 방금 날 뭐라고 불렀어?”

“저 계집이라고 했다! 왜?”

양준은 마치 뒷배라도 찾은 것처럼 허리를 펴며 맞서기 시작했다.

“하하…….”

자맥은 화가 나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감히 날 그렇게 부르다니. 누가 네 주인인지 잊은 모양이구나.”

이 말은 양준이 그녀에게 했던 말이었는데, 지금 고스란히 돌려주었다.

“전에 혼낸 것이 부족했구나!”

자맥이 살기등등하게 화를 내자 양준은 바로 고통스러운 얼굴로 바닥에 쓰러지더니 데굴데굴 굴렀다. 그는 두 손으로 배를 움켜쥔 채, 끊임없이 구르며 요하와 요계에게 소리쳤다.

“두 분, 살려주세요. 전 진심으로 두 분을 충성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이쪽에서 일어난 뜻밖의 상황은 당연히 대한 무인들의 주의를 불러일으켰다.

양준과 얼마간이라도 접촉이 있었던 사람들은 그의 염치없는 말에 하나같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특히 만화궁의 네 소녀들은 더욱 실망감이 들었다. 한소칠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양준이 이토록 기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필수명과 그의 사제는 잠깐 멍하니 있다가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뭐라고 하는 거야? 두 사람에게 충성을 바치겠다고? 하하하… 참 어이가 없군. 어쩐지 굳이 나서서 일을 찾아서 한다고 했어. 역시 개처럼 충성을 보여주려고 그런 거잖아!”

말을 마친 그들은 땅에 침을 내뱉었다. 그들의 눈에는 경멸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것은 수치였다. 대한의 무인들은 비록 조종당하고 있었지만, 양준처럼 비굴하게 굴지는 않았다.

양준은 창피한 줄도 모르고 목청을 돋우며 열심히 울부짖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제가 이렇게 간절한 것을 보아 제발 살려주십시오!”

요하와 요계는 이토록 재미있는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자맥은 그들이 대적해야 하는 적수였고, 양준은 자맥이 데려온 무인이었다. 하지만 지금 두 사람이 서로 등을 돌린 것이다.

‘상황이 재미있게 돌아가는데!’

양준의 목숨을 살려주는 것이 시급해서가 아니라 자맥에게 충격을 주기 위해서라도 요하와 요계는 더 이상 이 상황을 내버려 두지 않기로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