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223화 (223/853)

제 223장. 양준의 연극

“사저, 좀 살살해.”

요계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힘들 지경이었다.

자맥은 고개를 들고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

“왜? 내가 내 수하를 혼내는 것도 상관하려고?”

“다른 사람이라면 당연히 신경 쓰지 않지. 하지만 사저도 쟤가 우리 두 사람을 주인으로 모시겠다고 말하는 걸 들었잖아? 그래서 지금부터는 우리가 저 녀석의 주인이야. 사저가 억지를 부리려는 건 아니겠지?”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며 대치했다. 자맥은 씩씩거리다가 한참 뒤에야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래, 너희들이 그렇게 가지고 싶다니 사저인 내가 양보해 줘야지!”

요하는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전쟁에서 승리라도 한 것처럼 의기양양한 표정이었다.

바닥에서 데굴데굴 구르던 양준은 그제야 천천히 비명과 발버둥을 멈췄다. 그의 옷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일어나더니 요하와 요계에게 공수하며 감격에 차서 말했다.

“두 분, 감사합니다. 그동안 전 이 고약한 인간에게서 갖은 고생을 했습니다.”

요하는 의미심장하게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사저 성격이 고약하긴 하지. 하지만 넌 아주 정확한 선택을 했어. 우리를 따르면 고생도 덜할 거야!”

“두 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양준은 점점 더 굽신거렸다.

필수명은 비웃음을 금치 못했다.

“줏대 없는 인간 같으니라고. 누구를 따르든 끝은 죽음이라는 걸 모르나?”

양준은 또 허리를 곧게 펴더니 일그러진 웃음을 지으며 자맥을 바라보았다. 그는 막말을 마구 내뱉었다.

“고약한 계집, 내 몸 안에 있는 공혼충부터 꺼내! 안 그럼 험한 꼴 당하게 될 거야!”

호랑이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강한 척 으스댄다는 말이 바로 이 꼴이었다.

요하와 요계는 점점 더 으쓱해졌다. 그들은 더 이상 자맥과 정면으로 대적할 필요가 없었다. 양준의 배신만으로 충분히 자맥의 체면을 깎아 놓은 셈이었다.

“그래, 좋아! 그렇게 원한다면 소원을 이뤄 주지! 하지만… 쟤네 밑으로 들어간다고 좋은 결과를 맞이할 것 같아? 결국에는 죽게 될 거야. 그때 가서 후회하지 마!”

양준은 콧대를 쳐들고 기고만장하게 외쳤다.

“그건 너 같은 계집이 상관할 일이 아니야. 내가 원한다는데 네가 어쩔 거야!”

요하와 요계는 서로 슬쩍 눈빛을 교환했다. 그들은 이 대한의 무인이 참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바보가 아니라면 이렇게 정면으로 자맥에게 대들지 않았을 것이다.

요씨 남매가 의기양양해 있을 때, 대한의 무인들은 창피하여 얼굴을 들지 못할 정도였다. 비록 그들은 양준과의 친분이 깊지 않았지만 이 순간, 그들도 그가 창피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당사자는 전혀 이런 생각이 들지 않는 듯했다.

유독 냉산만이 무심결에 기침을 하는 척하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녀의 눈빛에는 참을 수 없는 웃음기가 스쳐 지나갔다.

자맥과 양준의 연기에 그녀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양준이 전에 꾸민 계획에 대해서는 더욱 그랬다. 지금의 상황은 그의 예상과 거의 다른 점이 없었다. 냉산은 반드시 이 고비를 넘겨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이 바로 그 중요한 순간이었다. 그녀는 만화궁의 한소칠 옆으로 다가가 몰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그 말을 들은 한소칠은 눈빛을 반짝거리며 놀란 얼굴로 냉산을 바라보았다. 냉산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한소칠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녀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녀는 들은 얘기를 다른 세 명의 소녀들에게 들려주었다.

“빨리 안 꺼내고 뭐해?”

양준은 자맥을 재촉하며 한시라도 빨리 요하와 요계에게 충성을 바치려고 애썼다.

자맥은 그를 훑어보더니 앞으로 다가가서 손으로 양준의 배를 눌렀다.

양준은 눈을 껌벅거리며 요하에게 말했다.

“이 여자가 절 해치지는 않겠죠?”

요하가 냉소하며 말했다.

“사저는 그럴 사람이 아니야.”

“그럼 됐어요, 그럼 됐어.”

양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뒤, 그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더니 공혼충 한 마리를 토해냈다.

자맥이 공혼충을 거두기도 전에 그는 다급히 앞으로 뛰어가 마구 밟으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 욕은 거칠고 악독하기 그지없었다.

요하와 요계는 그 욕을 듣고 깜짝 놀랐고, 자맥은 안색이 새파래져 몸을 덜덜 떨었다. 그녀는 살기등등한 얼굴로 양준은 바라보았다.

“그만해!”

요하는 멍청한 양준을 두고 볼 수 없어 다급히 저지했다.

“공혼충의 체질은 특이해서 밟아도 안 죽어.”

“아, 그렇군요. 몰랐어요!”

순간, 모든 사람들이 할 말을 잃었다. 양준이 눈치가 빠르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멍청하다고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요하는 가볍게 목을 가다듬으며 양준을 바라보았다.

“네가 우리를 따르기로 했으니까 우리가 너한테 어떻게 할 건지는 알고 있지?”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벌레 한 마리 심는 건데요, 뭐.”

요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아, 네가 현명하게 우리를 선택해서 마음에 들기는 하지만, 우리는 너에 대해 잘 몰라. 공혼충을 심는 것도 만일을 대비하기 위한 거야. 앞으로 우리를 잘 따른다면 보상도 섭섭하지 않게 할게.”

“형님, 높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양준은 열심히 아부를 떨었다.

“자, 손을 내밀어.”

요하는 의기양양하게 자맥을 힐끗 보더니 양준에게 명령을 내렸다.

양준이 시원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요하는 공혼충 한 마리를 꺼내 양준의 손에 올려놓으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요계가 소리쳤다.

“잠깐!”

“왜 그래?”

요하는 고개를 돌리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요계는 경계 어린 얼굴로 양준과 자맥을 번갈아 보더니 갑자기 냉소를 하였다.

요하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그는 사촌 동생의 시선에 담긴 뜻을 알 것 같았다. 순간, 이마에서 땀이 배어 나왔다. 그는 자맥의 눈치만 살피고, 양준을 굴복시키는 방식으로 자맥에게 수모를 안겨줄 생각에 이것이 함정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던 것이다.

요하는 다급히 공혼충을 거두어들이고, 경계의 눈빛으로 양준을 노려보며 말했다.

“네가 수련하는 공법을 보여줘 봐! 원기의 속성을 봐야겠어!”

공혼충의 상극은 열이었다. 그 때문에 양성과 화성(火性) 속성의 무공을 수련하는 무인들은 조종할 수 없었다. 그래서 대한의 무인들 중 열화교의 사람들은 이미 진작에 몰살당했다.

요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자맥은 경멸의 미소를 보냈다.

대한 쪽의 몇몇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긴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진학서와 서소어는 더욱 입술이 바짝바짝 타 들어갔다. 전에 양준은 두 사람 앞에서 싸운 적이 있는지라 그들은 양준의 원기 속성을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저들이 양준의 원기 속성을 살펴보려고 하니 양준이 들킬까 봐 속이 조마조마했다.

한소칠과 야함은 서로 마주 보더니 몰래 화약은과 유청여에게 눈빛을 보냈다. 만화궁의 네 소녀들은 몰래 진원을 운행하며 언제든 손을 쓸 준비를 했다.

야청사와 주패도 마찬가지였다.

*요계는 양준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차갑게 명령을 내렸다.

“공법을 운행해 보라니까. 안 들려?”

그의 뒤에 있는 요수 백여 마리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양준은 다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금신의 기운을 내보냈다.

이내 검은 기운이 퍼져 나오면서 양준을 겹겹이 감쌌다. 이 검은 기운에는 난폭함과 피비린내, 살육의 냄새가 배어 있어 양준을 사악한 인상으로 물들였다.

양준 원기의 속성을 느낀 요하와 요계 두 사람의 표정이 서서히 풀어졌다. 열 속성을 띠는 원기만 아니라면 공혼충이 무서워할 것은 없었다.

“사공을 수련하고 있었어?”

요하가 호기심이 동한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네.”

“실력도 없고 진원 경지도 안 되는데 어떻게 살아남았어?”

요하는 궁금해졌다.

양준이 민망해하며 입을 열었다.

“반년 전에 산골짜기에 떨어져서 겨우 기어올라왔어요. 절벽에서 올라오자마자 이 자맥이라는 계집한테 잡힌 거지만요.”

요하가 웃음을 터뜨렸다.

“참 운이 좋아.”

하지만 이 말이 그가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았는지에 대한 해답이 되기도 했다. 이합 경지의 무인이 산골짜기에 떨어지게 된다면 단번에 올라올 방법이 없었다.

“손을 내밀어 봐.”

요하는 경계심을 풀었다. 요계도 더 이상 양준을 신경 쓰지 않았다.

사공을 수련한 무인이 무슨 수로 판을 뒤집을 수 있겠는가?

요하는 공혼충 한 마리를 양준의 손에 던져 주었다. 그 공혼충은 순식간에 양준의 몸속으로 기어 들어가 경맥을 따라 단전으로 들어갔다. 그 속도는 매우 빨랐다.

“꺼져! 필요하면 호출할 테니까. 우리는 지금 사저와 잘 얘기를 해봐야겠어.”

요하는 양준에게 손을 내저으며 쫓았다.

양준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가 어쩐지 소름이 돋아 요하는 흠칫 놀랐다. 그가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자맥이 뛰어오면서 공격하기 시작했다.

“젠장… 악…….”

요하는 두 글자밖에 내뱉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으며 두 손으로 머리를 잡고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마치 혹독한 고문을 받고 있는 듯했다. 신식이 다친다면 누구도 그 순간의 고통을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자맥은 요하의 몸을 지나쳐 바로 요계에게 공격을 날렸다.

변고가 너무 빨리 일어난 탓에 요계는 미처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자맥에게 가슴을 맞았다. 그녀는 가슴이 움푹 파이며 날아가 버렸다. 공중에는 그녀가 날아가면서 토한 피로 가득했다.

요계는 바닥에 떨어기도 전에 줄곧 앞에서 굽신거리며 아부를 떨던 대한의 무인들이 요하의 목에 공격을 가하는 것을 발견했다.

뚜둑!

요하의 처참한 비명소리가 뚝 그치더니, 그의 목이 축 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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