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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련전봉-226화 (226/853)

제 226장. 내가 상대해 주지

진학서가 이런 고민에 잠겼는데 다른 사람이라고 왜 생각이 없을까? 만화궁의 네 소녀나, 야청사와 주패도 모두 입을 꾹 다물고 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 어느 쪽도 돕지 않고 조용히 상황이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들 중 양준과 자맥의 관계를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수많은 눈빛들이 자신에게 쏠리자 양준은 냉소를 짓더니 필수명을 쏘아보며 말했다.

“넌 얘의 무공을 파괴하고 싶은 거야? 아니면 네 사제의 하인으로 삼고 싶은 거야?”

누군가 자맥을 탐내고 있는데 양준이 가만히 두고 볼 리 없었다. 지금 자맥은 그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었다.

“그 계집이 내 사제의 단전을 치료하지 못한다면, 뭐가 됐든 그게 그 계집의 운명이야!”

필수명의 표정이 한층 더 험악해졌다.

“네 사제에게 그런 복은 없을 거야!”

양준이 태연하게 웃으며 말했다.

“자맥은 이미 내 하인이거든!”

양준의 말을 들은 자맥의 가슴이 크게 들썩거렸지만, 그녀는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양준이 그녀를 하인이라고 한 것은 오히려 좋게 말한 셈이었다. 그녀의 생사가 양준의 손에 달려 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비록 분하긴 했지만 자맥은 양준이 밉지 않았다. 양준이 지금 그녀의 편을 들어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이 말을 듣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자맥이 반박하지 않는 것을 보고 하나같이 눈을 커다랗게 뜨고는 자맥과 양준을 번갈아 보면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요하와 요계에게 조종당해 갖은 수모를 겪었는데, 양준과 자맥의 관계는 그들과 정반대였다.

‘이게 무슨 상황이야? 양준은 뭘 어떻게 한 거지?’

냉산의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굳이 따지자면 그녀와 자맥의 지위는 같았던 것이다.

“내 하인이니까 생사도 내가 결정해. 넌 그럴 자격 없어.”

양준은 진작부터 필수명이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허허…….”

필수명은 냉소를 지으며 양준을 바라보았다.

“이 천랑국의 여우에게 홀려 정신이 어떻게 되었구나. 자신이 어느 쪽인지도 판단하지 못하고 저 계집의 편을 들다니. 하긴, 한눈에 보아도 여우같이 아무에게나 몸을 줄 것 같군.”

여인들은 이 말에 모두 미간을 찌푸렸다. 필수명의 말은 너무 노골적이라 듣기 거북했다.

자맥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더니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비록 그녀의 옷차림이 개방적이고 말투와 행동에서 그런 느낌이 풍기긴 했지만, 그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녀가 순수한 소녀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비켜! 저 놈을 죽여야겠어!”

자맥이 이를 악물고 원한에 사무친 눈빛으로 필수명을 바라보았다. 이렇게까지 치욕을 당했으니 화해는 이미 물 건너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넌 나서지 마!”

양준이 차갑게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녀는 실력이 필수명보다 높아 그와 겨루게 된다면 승산이 컸다. 하지만 일단 필수명과 대립하는 순간, 대한의 무인들도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상황은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 버릴 것이 분명했다.

“몰라! 죽여 버릴 거야!”

자맥은 울분에 차서 몸속의 진원도 폭주하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어!”

양준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자맥은 순간 당황하여, 저도 모르게 화가 가라앉았다. 그녀는 영리한 편이라 양준이 뭘 걱정하고 있는지 당연히 알고 있었다. 냉산은 눈치를 살피다 얼른 다가와 자맥을 끌고 갔다. 그들은 모두 영혼이 괴롭힘 당할 때의 고통을 느껴 본 데다, 양준의 성미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정말 그의 뜻을 거스른다면 또 한 번 괴롭힘을 당하게 될 것이다.

필수명은 서늘한 눈빛으로 자맥을 노려보았다.

“사형, 저 계집을 그냥 봐주면 안 돼!”

필수명의 사제가 또 날뛰기 시작했다.

필수명의 눈에 뭔가 단호한 눈빛이 서리더니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자맥을 덮치려고 했다.

하지만 양준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내가 상대해 주지!”

양준은 덤덤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필수명은 미간을 찌푸리고 혐오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고작 천랑국 계집 때문에 나와 척을 지겠다는 거냐?”

“말했잖아. 자맥은 내 하인이라고. 그녀의 생사는 내가 결정해.”

“넌 내 상대가 아니야. 난 널 죽이고 싶지 않아.”

필수명이 짜증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싸워 보지도 않고 네가 어떻게 알아?”

양준을 오랫동안 훑어보던 필수명은 경멸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그래, 네가 그렇게 죽고 싶다니 하는 수 없지. 먼저 널 죽이고 그 다음에 저 요망한 계집을 해치우겠어!”

필수명은 말하는 동시에 양준에게 힘껏 공격을 날렸다. 진원을 움직이자 장풍이 윙윙, 소리를 내며 양준을 향해 뻗어 나갔다.

상황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필수명이 진짜로 공격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실력은 진원 경지 4단계였지만, 양준은 고작 이합 경지 8단계밖에 되지 않았다. 그의 실력으로 공격한다면 양준이 어떻게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겠는가?

‘방금 전에 양준이 목숨을 살려준 것에 대해 조금도 고마워하지 않는다는 거야?’

필수명은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도의라고 할 것이 없었다.

“그만둬!”

한소칠이 소리를 질렀다.

야청사는 이미 핏빛을 감싼 채, 뛰어오고 있었다.

자맥과 냉산 두 사람도 입을 떡 벌린 채,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양준도 빠르게 필수명을 향해 일격을 날렸다.

원기끼리 부딪히자 천지간의 기운이 크게 충돌했다.

필수명은 저도 모르게 열몇 걸음을 뒤로 물러난 뒤, 제대로 설 수 있었다. 하지만 양준은 끄떡없었다.

뛰어오던 야청사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녀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고, 몸을 감싼 핏빛도 보일 듯 말듯하게 희미해졌다.

자맥과 냉산의 눈빛은 더더욱 휘둥그레져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쇠 같은 주패도 실눈을 뜬 채, 날카로운 얼굴을 씰룩거렸다.

진학서와 서소어 두 사람은 입을 떡 벌린 채,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사람들의 표정은 모두 달랐지만 양준이 필수명을 공격으로 밀어낸 것을 보고 놀란 마음은 똑같았다.

진원 경지가 이합 경지에게 밀리다니…….

작은 경지 5개를 사이에 두고 있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중간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커다란 경지까지 있지 않는가!

필수명도 깜짝 놀란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다가 왼손과 오른손을 맞잡으며 진원을 움직여 몸속에 침입한 진양원기를 내보내려고 했다. 오른쪽 손바닥이 불에 타는 것처럼 새빨개졌다. 이 빨간색은 빠른 속도로 그의 팔로 뻗어가고 있었다.

“원기의 순도가 어떻게 이렇게 높을 수 있지……?”

필수명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양준은 냉소하더니 보법을 펼쳐 잔영을 남기며 순식간의 필수명의 앞까지 다가왔다. 그는 한 손을 뻗어 필수명을 덮치려 했다.

필수명은 비명을 지르며 다급히 양손바닥을 들어 대응했다.

발운장(撥雲掌)!

장풍이 구름을 헤칠 수 있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지급 상품의 무공이었다. 이 무공의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양준은 이에 한 손으로 공격을 날리며 맞부딪혔고, 필수명이 허리를 숙이자, 양준은 살짝 비틀거리다가 다시 자세를 잡고 단전을 가라앉힌 뒤, 다시 한번 주먹을 휘둘렀다.

필수명은 이렇게 쉬지 않고 연이어 쏟아지는 공격을 감당할 수 없었다. 이내 양준의 주먹이 필수명의 가슴팍에 꽂혔다.

염양삼첩폭!

한 달 전, 양준의 염양삼첩폭은 진원 3단계인 제검성에게 깔끔하게 풀려 그에게 전혀 타격을 주지 못했었다. 하지만 진원 4단계인 필수명에게는 몸속에 침입한 진양원기를 풀어낼 능력이 없었다.

양준의 원기가 한 달 전보다 훨씬 순도가 높아진 원인도 있었지만, 이 모든 것은 유염액의 효능 덕분이었다. 그 외에도, 제검성은 일등 문파인 구성검파 출신이었으나, 필수명은 이등 문파 출신이라 기본적으로 실력의 차이가 있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염양삼첩폭이 필수명의 몸속에서 폭발하자 필수명은 비명을 지르며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는 저도 모르게 피를 왈칵 토했다.

필수명과 싸우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양준은 좋게 끝낼 생각이 없었다.

그가 필수명의 목숨을 구해 주자마자 필수명은 은혜를 갚기는커녕 공격하려고 했다. 이런 사람은 남겨 두어도 화근이 될 뿐이었다. 게다가 이전부터 양준을 비웃고 조롱했으니 그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양준에게 호되게 당한 필수명은 더 이상 으스대지 못하고 공포와 원망이 서린 눈빛으로 양준을 노려보며 전력을 쏟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전에 이미 양준은 두 손바닥을 치켜들더니 원기를 폭발시켰다.

수혼기!

큰소리가 들리더니 불처럼 타오르는 호랑이와 소가 달려오며 양준과 삼각을 이루었고, 그대로 필수명을 향해 공격해 왔다.

필수명은 깜짝 놀라 두려움에 떨었다. 한 번의 공격은 겨우 막을 수 있었지만, 다음 수는 미처 막지 못했다.

두 수혼은 양준과 몸을 겹치며 공격하여 단번에 필수명의 가슴팍에 구멍을 뚫었다.

선혈이 사방에 튀며 필수명은 뒤로 벌렁 넘어졌다. 눈알이 툭 튀어나온 것이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양준이 주변을 둘러보자 사람들은 모두 경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전투는 순식간에 일어났다가 또 순식간에 끝났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다. 이합 경지 8단계의 무인이 전광석화처럼 진원 경지 4단계 무인의 목숨을 손쉽게 빼앗다니.

특히 자맥과 냉산은 더더욱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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