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29장. 떠나려고 해
이 말은 사실이었다. 옷 한 겹을 사이에 두고 있다면 몸과 직접 접촉하는 것보다 원기를 통제하기 힘들었다.
한소칠은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양 사제는 바른 사람인데 뭘 걱정해?”
야함은 우물거리며 말했다.
“걱정하는 게 아니라… 난… 아이 참…….”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녀는 유청여 사저의 품에 숨어들었다.
자맥은 옆에서 냉소했다. 그 웃음소리는 의미심장하여 모든 사람들의 안색이 굳어졌다.
“조용히 해!”
양준은 그녀를 노려보고 나서 손을 내밀어 야청사의 평평한 배를 덮었다.
양준의 손이 닿자마자 야청사는 흠칫 몸을 떨며 이를 꽉 깨물었다. 그녀는 물기가 촉촉한 눈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마치 양준의 속마음까지 꿰뚫어 보려는 표정이었다.
겉으로 드러난 피부에는 옅은 붉은빛이 감돌았다.
양준은 마음껏 원기를 움직였다. 그는 눈으로 야청사의 몸을 이리저리 훑어보며, 손에 진양원기를 끊임없이 주입했다.
“음흉하기는!”
야청사는 양준의 표정 변화를 알아챘다. 양준이 눈알을 굴리는 모습에 그녀는 참지 못하고 얼굴을 붉힌 채, 욕을 내뱉었다.
“보이지도 않는데 뭐.”
양준은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볼 수 없는 것은 맞았다. 여인들이 모두 가슴을 가리는 속옷을 입은 데다가 야청사가 옷을 전부 벗은 것도 아니라서 양준이 보고 싶어도 보이는 것이 없었다.
“뻔뻔스러워!”
야청사는 이를 악물다 못해 부서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말은 이렇게 해도 그녀의 얼굴에 걸린 웃음기는 가실 줄 몰랐다. 그녀는 양준의 행동에 웃음이 나왔다. 여태까지 이렇게 그녀의 몸을 마구 훑어본 남자는 없었다.
“반듯한 사람이라더니.”
자맥이 옆에서 비웃으며 덤덤하게 한소칠을 바라보았다. 한소칠의 얼굴이 저도 모르게 빨개졌다.
미인이 앞에 있는데 어느 남자가 쳐다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가 만약 정말로 꿈쩍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이상한 일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야청사의 허리 부분에 무언가가 톡 튀어나왔다. 양준이 건드리려고 하는데 야청사가 다급하게 말했다.
“조심해. 흉터라도 생기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때야?”
양준은 할 말을 잃고 손을 들어 칼로 배를 살짝 그었다. 그리고 공혼충을 꺼내서 태워버렸다.
“다음!”
양준은 고개를 돌려 다른 여인들을 바라보았다.
여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한참 머뭇거렸다. 한소칠은 그제야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내가 할게!”
만화궁의 네 소녀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그녀는 솔선수범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말을 마친 그녀는 대범하게 양준의 앞에 앉아 천천히 옷을 풀고서 눈을 감았다.
그녀의 모습에 양준은 더욱 대범하게 행동했다. 양준은 그렇게 한 명, 한 명의 공혼충을 꺼냈다.
마지막으로 서소어의 차례가 다가왔다. 그녀가 앉자마자 얼굴을 붉히며 옷섶을 풀려고 하는데 양준이 손을 내밀어 저지했다.
“넌 그럴 필요 없어!”
“원기를 다루기 힘들다며?”
서소어가 가볍게 물었다.
“여러 번 해보니 옷을 입고서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양준이 바로 해명했다.
그 말을 들은 서소어는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도 모자랐는지 양준은 손을 뻗어 자신의 옷에서 천을 찢어내 눈을 가렸다.
이 모습을 본 야함은 뾰로통해서 말했다.
“왜 서소어 차례가 되니 눈을 가리는 거야?”
양준은 그 소리를 듣고는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남자가 있는 여인이잖아. 내가 눈을 가리지 않는다면 진 사형이 날 죽이려고 할 걸.”
“그래.”
야함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곧 웃음을 터뜨렸다.
“다정하기도 하셔라.”
“저기… 너희들은 날 어떤 인간으로 보는 거야? 정말 무슨 변태라고 생각한 거야?”
여인들의 얼굴에는 모두 미안한 기색이 어렸다. 한소칠도 미안해하다가 갑자기 표정이 싸늘해지더니 입을 열었다.
“그럼… 아까도 눈을 가릴 수 있었다는 거야?”
공혼충을 꺼내려면 손과 진양원기만 움직이면 되었다. 눈으로 보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원래는 여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는데 지금 양준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자 한소칠은 갑자기 경계하기 시작했다.
양준은 대답하지 못하고 안색이 어두워졌다.
한소칠의 몸이 순간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
여인들도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곧이어 냉소를 지으며 달려들어 양준을 두들겨 팼다.
*반 시진 뒤, 여인들은 깔깔 웃고 떠들며 다른 사람들과 뭉쳤다. 진학서는 제일 먼저 뛰어와 사매의 손을 잡고 다급히 물었다.
“괜찮아?”
서소어는 방금 있었던 일을 말해 주었다.
진학서는 감격에 겨워 양준을 바라보았다.
“양 사제, 얼굴이 왜…….”
양준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별것 아니야…….”
“쌤통이야!”
자맥이 옆에서 고소해하며 말했다.
양준은 멋쩍은 웃음을 짓고는 건곤대에서 요상단 두 병을 꺼내 진학서에게 넘겨주었다.
“양 사제, 이건 왜…….”
진학서는 약병을 받아 들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만일을 대비해서 진 사형이 가지고 있어. 그리고 만약 무승의를 만나면 절대 믿지 마.”
양준이 무거운 얼굴로 당부했다.
“무승의는 왜?”
무승의의 이름이 나오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양준은 전에 그의 사제와 있었던 일에 대해 간단하게 말해 주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좌방은 화가 나 욕을 했다.
“그래, 제검성이 왜 갑자기 사라졌나 했어. 무승의의 명령을 받고 양 형을 죽이러 간 거였구나. 지난번에 무승의에게 물었더니 그저 길을 찾으러 간 거라고 했었는데, 며칠이면 돌아온다고.”
진학서는 그 말에 더욱 분노했다.
“속도 시커먼 데다 수단도 악랄해. 요상단 한 병 때문에 사람을 죽이려고 하다니!”
한소칠도 미간을 찌푸렸다.
“우리 다 그 인간을 잘못 봤어. 계속 그 녀석을 따라다녔으면 무슨 봉변을 당했을지 몰라.”
요상단 때문에 양준을 공격할 수 있는 무승의라면 혈주를 차지하기 위해 모여 있던 대한의 무인들도 충분히 공격할 수 있었다.
“다음에 마주친다면 이 누님이 혼내 줘야겠어!”
야청사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멀리서 온 터라 구성검파가 얼마나 대단한 줄 몰랐다.
지금 대한의 무인들은 한데 뭉쳐 있었고, 천랑국의 요수 무리도 더 이상 없다 보니 무승의를 제외하면, 적혈과 그의 6급 요수만 조심하면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6급 요수를 노예로 부린다고 해도 적혈 혼자의 힘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무리였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들이 흩어지지 않는 한, 이곳에서는 무적의 존재였다.
진학서는 양준의 태도에서 무언가 낌새를 눈치채고 말했다.
“양 사제, 혹시…….”
양준은 미소를 짓더니 공수하며 말했다.
“난 떠나려고 해.”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고, 안색이 어두워졌다.
“떠난다고? 왜?”
양준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야청사는 눈을 굴리더니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
“방금 전에 널 때린 것 때문에 그래? 그렇다면 이 누님을 때려.”
“그런 거 아니야. 나를 생각해서 그런 거야.”
양준은 길게 해명하지 않았다.
그 말을 들은 자맥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뭔가 짐작가는 것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짚이는 것이 있어 자맥과 양준을 번갈아 보았지만 결국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럼 이렇게 하자.”
양준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려 냉산을 바라보았다.
“너도 남아서 이들과 함께 지내.”
그는 말하면서 마음속으로 지마를 불렀다.
하지만 지마는 또 반응이 없었다. 양준은 이 노마두가 또 스스로 신식을 봉인했다는 것을 깨닫고 봉인을 푼 뒤 지마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고는 표정을 굳힌 채 냉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난 너희 귀왕곡과 원수를 진 사이야. 금호와 우성곤은 모두 내가 죽였어. 나중에 네가 그들을 위해 복수하고 싶다면 능소각으로 와서 날 찾아.”
만약 십몇 일 전이라면 양준은 분명 냉산을 살려 두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함께 어려움을 겪으면서 정이 들어 차마 죽일 수 없었다.
냉산은 눈을 깜빡이더니 고개를 저었다.
“안 그래.”
양준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러면 더 좋고.”
양준은 말하면서 그녀의 이마를 바라보았다.
“전에 줬던 선물은 내가 신유 경지에 오르는 날 다시 회수하러 올게.”
냉산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너무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그녀는 양준이 말하는 선물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바로 그녀의 머릿속에 찍힌 낙인이었다. 낙인이 풀리지 않는 한, 그녀는 영원히 양준의 노예일 것이고, 생사도 스스로 결정할 수 없었다.
두 사람에게 찍은 낙인은 지마가 심은 것이었기 때문에, 낙인을 풀려면 양준이 스스로 신법을 펼쳐야 했다. 때문에, 양준이 신유 경지에 도달해야 그녀들의 낙인을 지울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럼 우리는 여기서 작별하자고. 앞으로 또 봐.”
양준이 웃으면서 공수 인사했다.
“조심히 지내!”
양준은 돌아서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떠났다. 자맥은 말없이 양준을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