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230화 (230/853)

제 230장. 사형이 근처에 있어!

양준이 떠나고 한참 뒤에야 진학서가 입을 열었다.

“사실 저 천랑국 여인이 우리를 따라다녀도 나쁠 건 없는데. 양 사제가 괜한 걱정을 했네.”

야청사가 요염하게 웃으며 말했다.

“너 정말 저 천랑국 여인을 아무렇지 않게 대할 수 있다고 생각해?”

진학서는 멈칫하더니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자맥은 전에 그들과 적으로 지냈고, 또 천랑국의 무인이기도 했다. 그녀에게는 여전히 공혼충이라는 대단한 수단이 있는데 어찌 그녀를 아무렇지 않게 대할 수 있겠는가?

그녀가 남는다면 사람들은 양준의 체면을 봐서 그녀를 괴롭히지는 않겠지만, 분명 사사건건 그녀를 경계하고 방어했을 것이다. 그녀도 홀로 외부인으로서 크게 난감할 게 분명했다. 양준은 이것 때문에 그녀를 데리고 떠난 것이었다.

“냉산, 저 여인은 정말 양 사제의 하인이야?”

진학서는 호기심이 동해 냉산에게 물었다.

냉산은 그를 힐끗 보더니 차가운 얼굴로 돌아서서 떠나갔다.

“내가 무슨 실수라도 했어?”

진학서는 어이가 없었다. 그는 냉산 눈에 비친 혐오의 기색을 보았다. 그는 무심결에 냉산의 아픈 곳을 건드렸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밀림에서 길을 가고 있던 자맥은 양준의 뒷모습을 복잡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몇 번이나 입을 열려고 했지만 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소리 없는 정적이 두 사람을 감쌌다. 양준은 앞에서 걸음을 재촉하다가 가끔씩 멈추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고 생각에 잠긴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또 다시 길을 떠났다.

자맥은 꼬리처럼 양준의 뒤를 바짝 따랐다.

이튿날, 자맥은 결국 이 침묵을 견딜 수 없었다. 그녀는 심술을 부리는 것처럼 제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양준은 몇백 장 밖까지 날아갔다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다시 돌아왔다. 그는 자맥이 제자리에 멈춰 서서 매끈한 턱을 치켜들고 그를 싸늘하게 노려보는 것을 발견했다.

“너 뭐해?”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언짢은 얼굴로 물었다.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자맥은 씩씩거리더니 딱딱하게 한마디 내뱉었다.

“네가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어.”

“내가 어떻게 했는데?”

양준은 의아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사람들과 떨어질 필요가 없었다고. 그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면 너의 안전을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잖아. 지금 이곳에서 고수는 내 사형과 무승의 두 명밖에 안 남았어. 그들과 함께 있으면 이 두 명을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 그러니까 그들과 떨어지기로 결심한 건 현명한 선택이 아니야!”

양준은 그녀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입가에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설마 넌 내가 네 처지를 배려해서 저들을 떠난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자맥은 상기된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다가 되물었다.

“그럼 아니야?”

“너 너무 스스로를 대단하게 여기는 거 아니야?”

양준이 한차례 비웃더니 말을 이었다.

“넌 천랑국의 무인이야. 어제까지만 해도 우리는 서로 죽이려고 했던 적이었어. 네가 아무리 고분고분하게 굴어도 속으로 내 목숨을 취하고 싶어 한다는 것도 알고 있어. 너나 나나 서로 의리라고 할 게 없는데 내가 뭐 하러 네 처지까지 신경 쓰겠어.”

자맥은 양준의 말을 듣고 화가 나 씩씩거리다가 이를 악물었다.

“그렇게 매정하게 말할 필요는 없잖아!”

필수명을 죽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전에 필수명의 비웃음과 조롱에 화가 나 있기는 했지만 어느 정도는 자맥을 위해 화풀이를 해준 것도 있었다. 하지만 양준은 절대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고, 지금도 똑같이 우기고 있었다.

‘체면이 그렇게 중요한가?’

“우리 사이에 정이라고 할 만한 게 있어?”

양준이 헤실헤실 웃으며 말했다.

자맥은 두 손을 뻗어 양준의 가슴팍을 밀어내며, 차갑게 말했다.

“그럼 날 놔줘!”

양준은 가볍게 웃고는 더 이상 자맥을 괴롭히지 않고 그녀를 풀어주었다.

자맥은 연이어 뒷걸음질 치며 양준과의 거리를 벌렸다. 그녀는 끝까지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네 말이 맞아.”

양준이 갑자기 고개를 끄덕였다.

“너 때문에 그들을 떠난 것도 있어…….”

분노하던 자맥의 눈에는 저도 모르게 감동의 물결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도 넌 내 통제를 받으니 내 하인인 셈이잖아. 네가 다른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하면 나도 체면이 안 서거든.”

자맥의 얼굴이 다시 싸늘해졌다.

‘이 망할 자식이!’

자맥은 속으로 욕하면서 양준을 흘겨보았다.

“하지만… 그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아니야!”

양준은 손가락 하나를 들고 흔들어 보였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뭔데?”

자맥은 숨을 깊게 들이쉬며 물었다.

“무승의를 찾으러 가려고!”

양준의 얼굴에는 독한 기색이 서렸다.

“그를 죽여 버려야겠어!”

무승의는 사제를 보내 양준을 죽이려고 했다. 양준도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무승의는 반드시 자신이 한 행위에 대가를 치러야 했다.

무승의는 구성검파의 고수로서 지위가 낮지 않았다. 일단 그가 이곳에서 도망친다면 밖에서 그를 죽이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양준은 이곳에서 끝장을 내고 싶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 잡기 힘들 것이다.

더구나 그에게는 유염액 같은 보물이 있으니 양준은 더더욱 그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만약 사람들과 함께 움직였다면 무승의를 죽여도 유염액을 얼마 얻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양준은 유염액을 독점하고 싶었다.

“간도 크네. 내 사형에게서 살아남은 자라면 실력이 보통이 아닐 텐데. 네가 대단하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넌 네가 무승의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

자맥은 괴물을 보는 듯한 표정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군.’

“이길지 말지는 싸워 봐야 알지.”

양준은 코웃음을 치며 의미심장한 얼굴로 말했다.

“그리고 너라는 조수가 있잖아? 내가 왜 널 데리고 나왔겠어?”

자맥은 차가운 얼굴로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너 나가 죽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감동받은 내가 바보지.’

“하하!”

양준은 신나게 웃으며 손을 뻗어 자맥의 얼굴을 잡고 야릇하게 말했다.

“그렇게 매정하게 얘기하지 마. 나와 한동안 지내다 보면 나에게서 많은 장점들을 보게 될 거야. 그때는 나한테 반할지도 몰라.”

“뻔뻔하기는!”

양준의 진정한 의도를 알게 된 자맥은 더는 화를 내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네가 계속 주변을 둘러보며 길을 가던 게 무승의의 행적을 찾는 것이었구나. 그래서 단서 좀 찾았어?”

“아니.”

양준이 고개를 저었다.

“무승의 같은 고수가 자신의 행적을 감추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지.”

양준은 자신감이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무승의가 이곳에 남아 있는 한, 난 반드시 그를 찾아낼 거야.”

“내가 도와줄 수도 있어!”

자맥이 가볍게 웃었다.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가 바라던 바야!”

그리고 며칠 동안, 양준과 자맥은 무승의의 행적을 쫓으며 요수를 수색했다.

요하와 요계가 그날 조종하고 있던 요수는 백 마리가 넘었다. 나중에 그중 삼사십 마리는 죽임을 당했지만, 아직도 수십 마리의 요수가 남아 있었다. 아마도 이곳에서 살아남은 요수는 그것뿐일 것이다.

이 며칠 동안, 수확은 크지 않았다. 자맥은 공혼충으로 요수 일곱 마리밖에 조종하지 못했다. 조종당한 요수들은 도처에 흩어져 수색하는 범위와 효율을 크게 증가시켰다.

열흘이 지났지만 자맥이 조종하는 요수는 열다섯 마리 정도밖에 늘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날, 양준은 드디어 무승의의 행적을 발견했다.

흩어져서 수색하고 있던 요수 한 마리가 갑자기 죽임을 당한 것이다. 양준과 자맥이 다가가서 살펴보니 주변에는 검기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무승의야!”

양준은 단호하게 말했다. 이 검기는 구성검파의 제자들만 펼칠 수 있는 공법이었다.

그리고 쓰러져 죽임을 당한 요수는 5급 요수였다. 5급 요수를 일격에 죽일 수 있는 정도라면, 이 검기를 사용한 사람의 실력이 낮지 않다는 것이었다.

여러가지 단서를 조합해 봤을 때, 양준은 곧바로 무승의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내 실낱 같은 행적을 찾아 쫓아갔지만 반나절 뒤, 또 무승의의 행적을 놓치고 말았다.

양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처음으로 신식을 수련하지 못한 것이 불편하다는 것을 느꼈다.

‘사람 한 명 찾는 것도 이렇게 힘들다니. 신식을 수련했더라면 달랐을 텐데.’

신식을 사용할 수 있다면 사방 십몇 리 정도는 한눈에 살펴볼 수 있었다.

이때, 자맥의 안색이 갑자기 변하며 양준에게 말했다.

“사형이 근처에 있어!”

양준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더니 물었다.

“적혈?”

“응.”

자맥의 안색이 매우 어두워졌다.

“6급 요수와 함께 있는 데다 그의 실력도 대단하니 그는 무적이라고 할 수 있어. 만약 그를 마주친다면 넌 반드시 죽을 거야. 우리 좀 숨어 있자!”

“그도 여기 있다고? 설마 그도 무승의를 쫓고 있나?”

양준의 머리는 빠른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전에 천랑국 삼라전의 네 사람은 요수 무리를 조종하여 대한의 무인들을 공격했다. 그 당시 무승의만 겨우 도망치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천랑국 무인들에게 사로잡혔다. 그 일이 있은 후, 적혈은 그가 조종하는 6급 요수를 데리고 추격에 나섰다.

‘그동안 적혈은 무승의를 추격하고 있었나 보군.’

양준도 똑같이 무승의를 쫓고 있었다. 두 사람의 목표가 같다 보니 마주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