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3장. 새하얀 안개 속 밀림
양준은 양준대로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 4급이나 5급 요수에게밖에 노수인을 써 본 적이 없었다. 그도 6급 요수에게 쓰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양준의 현재 실력은 이합 경지 8단계 수준으로, 요수의 등급으로 친다면 4급 정상과 비슷했다. 이 실력으로 노수인을 사용할 때 4급 요수는 손쉽게 조종할 수 있었고, 5급 요수도 부릴 수 있었지만, 눈앞에 이 6급 요수를 조종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현재 요수의 몸속에서는 양준이 주입한 노수인과 공혼충이 제어권을 두고 충돌하고 있었다. 지금 당장은 요수가 양준의 명령에 복종하고 있지만, 기껏해야 한 시진 뒤면 노수인이 버티지 못하고 산산조각 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이 6급 요수는 또다시 적혈의 통제 하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었다.
‘상황이 좋지 않아. 반드시 한 시진 안에 전투를 끝내야 해. 그렇지 않으면 변수가 생길 거야!’
양준은 6급 요수 한 마리에게 다시 한번 노수인을 주입했을 때, 똑같이 효과가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만약 효과가 없다면…….
여기까지 생각한 양준은 끊임없이 타고 있는 요수에게 명령을 내렸다. 아직까지 요수는 양준의 말을 순순히 잘 따르고 있었다. 요수는 양준의 명령에 따라, 속도를 높여 조금씩 적혈과의 거리를 좁혔다.
한참 뒤, 쉬지 않고 달리던 적혈은 바쁜 와중에 고개를 돌리고 뒤를 살피다가 하마터면 욕설을 퍼부을 뻔했다.
백 장 정도 벌어져 있던 거리가 지금은 오십 장이나 가까워져 있던 것이다. 조금 있으면 따라 잡힐 판이었다.
“저기로 가야 되나?”
적혈의 머릿속에 갑자기 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바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잠시 머뭇거렸다.
그곳은 적혈이 예전에 무심결에 발견한 곳으로, 안개가 자욱하여 안에 무엇이 있는지 전혀 확인할 수 있는 기묘한 밀림이었다.
적혈은 원래 들어가 살펴보려고 했으나, 6급 요수가 그곳을 무척 두려워하고 있는 데다가 그도 불안감을 느껴 탐색하려는 생각을 접었었다. 하지만 지금 뒤에서 양준이 점점 더 바짝 쫓아오자 압박감을 느낀 적혈은 모험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6급 요수에 저놈의 실력까지 더해지면 이길 수 없어. 그곳은 요수가 두려워하니 분명 요수는 들어오지 못할 테고, 그러면 저놈 혼자서만 들어올 테지. 그렇다면 나에게 승산이 있어.’
여기까지 생각한 적혈은 섬뜩한 눈빛을 번뜩이며 순식간에 결정을 내렸다.
그는 지형을 잠깐 관찰한 뒤, 갑자기 몸을 돌려 안개가 자욱한 수풀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양준과 적혈 사이의 거리는 십 장 정도로 가까워졌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라면 6급 요수도 공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양준도 마음껏 적혈을 향해 공격을 날릴 수 있었다.
짧은 시간 동안, 적혈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양준의 공격에 맞았다. 다행히 몸속의 진원이 거대하여 공격의 살상력을 막아낸 덕분에 피만 약간 흘렸을 뿐, 근골은 다치지 않았다.
한에 사무친 얼굴로 양준을 뒤돌아본 적혈이 입가에 음산한 미소를 짓더니, 갑자기 방향을 돌려 새하얀 안개가 자욱한 밀림 속으로 들어갔다.
양준은 그 뒤를 바짝 뒤쫓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가 타고 있던 요수가 안개 밖에서 갑자기 몸을 멈추는 바람에 양준은 관성 작용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공중에서 다급히 몸을 비틀고 착지한 양준은 주변의 지형을 살펴보기도 전에 귀를 찌르는 처참한 비명소리를 들었다.
적혈이었다!
그는 커다란 고통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소름이 돋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양준의 낯빛이 흐려졌다. 곧이어 그의 머릿속에도 극심한 고통이 전해졌다. 이 고통은 낯익은 느낌이었는데, 과거에 지마와 몸을 두고 싸우다가 의식이 파괴되었을 때 느꼈던 고통과 같았다.
양준은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그의 이마에는 실핏줄이 불거져 나오고 땀이 폭포처럼 흘러내렸다. 그는 온몸을 덜덜 떨었다.
“윽…….”
곧이어 더욱 처참하고 강렬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적혈의 비명소리보다 더욱 처참했다.
지마가 울부짖는 소리였다.
지마는 비명을 지르며 날뛰었다. 그의 비명소리에는 당황과 공포가 가득 담겨 있었다.
“지마!”
양준은 극심한 두통을 억지로 참으며 소리를 질렀다.
“왜 그래?”
“주인…….”
지마의 목소리는 왠지 떨리고 있었다.
“여기는 뭐 하는 곳인가? 내 영혼이 공격당하고 있네!”
그의 말을 들은 양준은 바로 깨달았다. 어쩐지 머릿속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익숙하다 했더니 영혼이 공격받고 있는 느낌이었다.
적혈이 자신을 유인하여 안개 가득한 이 밀림에 들어온 것은 분명 다른 꿍꿍이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적혈 자신도 지금 몇십 장 밖에서 처참하게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을 보니, 그도 이곳의 오묘함을 모르고 들어왔다가 당한 것 같았다.
지금 두 사람 모두 영혼이 공격당하는 고통을 느끼고 있으니 싸울 수가 없게 되었다.
“주인,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게! 이 안개는 너무 이상하네. 육신을 다치게 하지 않고, 영혼만 공격하고 있어!”
지마가 다급히 재촉했다.
그는 만 년 된 노마두였지만, 지금은 그저 육신 없이 영혼밖에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때문에, 지금 그가 느끼는 괴로움과 고통은 양준과 적혈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강했다.
짧은 시간 동안 지마는 영혼의 힘이 감소되는 것을 느꼈다. 이 발견에 두려움을 느낀 지마는 재빨리 도망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알았어, 조금만 참아!”
양준은 힘겹게 고개를 들고 적혈을 힐끗 보았다. 그도 연기 속에서 이리저리 부딪히며 나가는 길을 찾으려고 하는 듯 보였으나 찾지 못하고 애를 먹고 있었다.
양준은 이를 악물고 극심한 고통을 참으며 들어온 방향으로 뛰어갔다.
쉬지 않고 달렸으나 주변은 여전히 안개 속이었다.
양준은 마음속으로 흠칫 놀라며 일이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안개 속으로 들어온 뒤 기껏해야 몇 장 밖에 걷지 않았는데 왜 출구가 안 보이는 거지?’
그는 포기하지 않고 또 백 장을 넘게 뛰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지마… 여기 좀 이상해. 나갈 수가 없어!”
양준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지마는 비명을 지르다가 그 말을 듣고 절망에 빠졌다.
“설마 내가 오늘 이곳에서 죽게 되는 건가?”
그는 전승동천에 오랫동안 봉인되어 있었다. 전승동천의 금기가 파괴되면서 겨우 풀려나게 된 그는 양준에게 제압당했지만 밖으로 나올 수 있어서 무척 기뻤다. 그러나 지금 또 생사의 위기에 놓이자 지마는 절망에 빠졌다.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머릿속의 고통을 억누르려고 애쓰는 한편, 주변의 지형을 관찰하며 곤경에서 벗어날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이곳이 이토록 괴이한 이유는 분명 무슨 진법이 쳐져 있는 것이 분명했다.
“머리가 너무 어지러워…….”
양준은 갑자기 눈앞에서 별이 돌더니 발걸음마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큰일이군. 그건 영혼이 훼손되었다는 징조야. 몇 번 더 반복되면 영혼이 아예 파괴될 것이네!”
양준의 안색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그는 억지로 고통을 참으며 머리를 굴렸다.
그러던 양준의 눈이 갑자기 반짝였다.
“지마, 금신 안으로 들어가 봐!”
“금신이라니? 오…….”
지마는 처음에 알아듣지 못했지만 곧이어 깜짝 놀랐다. 그는 다급히 양준의 금신 안으로 숨어들었다.
곧이어 지마의 웃음소리가 전해졌다.
“하하하, 주인, 이 금신은 정말 대단해. 안개의 공격을 막아 주다니. 나는 이제 안전해졌어!”
양준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네가 안전해도 난 위험해!”
금신은 많은 것을 담고 있어 그 어떤 원기도 모두 흡수할 수 있었다. 양준은 이 안개에 무슨 대단한 공법이 숨어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영혼을 공격하는 것도 기운의 발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어 지마에게 금신에 들어가 보라고 한 것이었다. 과연 그의 추측대로였다.
“주인, 반드시 버텨야 하네!”
지마는 초조한 마음으로 양준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자신은 고통에서 벗어났지만, 양준이 죽는다면 그도 액운을 면치 못할 것이다.
“내 영혼도 금신에 넣을 수 있는 방법은 없어?”
양준은 실핏줄이 튀어나오고 온몸이 땀에 흠뻑 젖었다. 그는 두 주먹을 꼭 쥔 채, 온몸을 덜덜 떨었다.
“주인은 아직 신유 경지에 오르지 못해서…….”
지마는 한숨을 내쉬었다. 신유 경지에 오르지 못해 신식을 수련하지 못한 양준이 어찌 영혼을 금신에 주입할 수 있겠는가?
양준은 이를 악물고 최선을 다해 머릿속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참았다. 그의 원기는 저도 모르게 흩어지고 있었다.
고통은 한참이나 지속되었다. 어지러운 느낌이 또다시 양준을 덮쳐왔다. 양준은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영혼이 두 번째로 공격당한 것이다. 이 속도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영혼은 전부 파괴되어 사라고 말 것이다. 그 전에 반드시 눈앞에 위기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