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6장. 진원 경지
시간은 조금씩 흘러 경맥의 진양원기는 서서히 미묘한 변화를 가져왔다. 경맥은 오랫동안 원기로 가득 차 있자 천천히 전보다 넓어지고 두꺼워졌으며 더욱 단단해졌다.
경맥의 변화는 진양결의 운행 속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진양원기도 서로 융합되면서 조금씩 순도가 높아졌다. 시큰거리는 통증이 사라졌을 때, 양준은 또 양액 다섯 방울을 터뜨려 전과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양준이 수련하고 있을 때 바깥의 안개는 수시로 그의 영혼을 공격했고, 온신련은 흔들리면서 양준의 영혼을 복구했다.
*열흘이 지나자 지마가 수련 중인 양준을 불렀다.
또 한 방울의 세혼로가 만들어진 것이다.
양준은 그것을 복용하지 않고 약병에 넣었다.
아무리 귀한 천재지보여도 효능을 볼 수 있는 건 딱 한 번뿐이었다. 그 이후에는 복용해도 처음과 같은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양준은 진귀한 세혼로를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가지고 가서 단약으로 제련한 뒤, 복용한다면 더 큰 작용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양준은 시간이 흐르는 것조차 까맣게 잊고, 계속해서 수련을 이어 갔다. 수시로 지마가 그를 불렀고, 그때마다 양준은 만들어진 세혼로를 약병에 넣었다. 이렇게 세혼로가 열 방울이 넘게 모아져 반 병 가까이 찰 때쯤, 양준의 경지 또한 천천히 진원 경지의 문턱에 다다르게 되었다.
이번 수련은 자그마치 넉 달의 시간이 걸렸다. 아무런 단약도 복용하지 않고 아무런 양기도 흡수하지 않은 채, 진양결만 운행하고 의지로 원기를 수련하여 드디어 이합 경지 9단계의 문턱을 넘어선 것이다.
비록 이곳에 남은 가장 주요한 원인은 세혼로를 모으기 위해서였지만, 이번 진급에 시간이 이렇게 오래 걸린 것으로 봐서 진원 경지라는 문턱을 넘는 것이 매우 어려운 것은 분명했다.
진원 경지는 많은 무인들이 평생토록 넘지 못하는 문턱이었다. 백발이 성성할 때까지 노력해도 진원 경지에 도달하지 못해 하염없이 눈물만 쏟는 무인들도 많았다.
마치 족쇄가 몸에 채워져 원기를 봉쇄한 것처럼 마지막 돌파를 가로막는 것만 같았다.
양준은 심호흡을 하고 두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다. 양준은 정신을 다시 금신에 집중했다. 그곳에는 줄곧 보존하고 있던 구음응원로가 있었다.
이것은 하응상과 구음 산골짜기에서 얻은 보물이었다. 나중에 소안에게 절반 나누어 주고 절반 남겨 두었었는데, 드디어 오늘에야 쓸 곳이 생긴 것이다.
양준은 구음응원로를 단전 안에 주입했다.
진양결이 미친 듯이 빨리 운행하며 구음응원로를 흡수하자, 서늘한 기운이 단전 안에서 폭발했다. 그것은 믿을 수 없는 속도로 퍼져 나가더니 경맥을 따라 온몸으로 흩어졌다.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양준의 온몸에 얼음이 가득 맺혔다.
구음응원로는 원기를 수련하는 보물이었다. 유염액보다 등급이 더 높았고, 수많은 음기가 모인 결정체이기도 했다. 그 속에 담긴 한기는 양준의 진양원기도 감당하기 힘들었다.
구음응원로의 약효가 지나간 곳의 진양원기는 순식간에 응고되었다. 두 기운이 서로 맞부딪히자, 물보라 같은 파문이 밖으로 퍼졌다. 물보라의 확산과 함께 한계까지 순수해졌다고 생각했던 진양원기는 한 번, 또 한 번 순도가 높아졌다.
한기가 점차 사라지고 경맥에서는 원기가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샘물처럼 맑고 듣기 좋았다.
촤악-
양준의 옷과 머리끝에 맺혔던 얼음들은 순식간에 가루로 부서졌다.
천지의 색깔이 변하며 난폭한 기운이 공중에서 점점 더 많이 모여들었다. 그렇게 모인 기운은 이내 맹렬한 기세로 양준의 몸속으로 들어왔다.
이는 대경지를 돌파할 때 발생하는 현상이었다.
양준은 몸을 흠칫 떨었다. 온몸의 모공들이 확장되면서 진양결이 소리를 내며 울렸다. 천지간의 위엄을 한 몸에 받은 듯한 느낌이었다.
천지의 기운은 경맥을 지나 일부분은 피와 골수로 스며들어 육신을 강화했고, 또 양준이 미처 흡수하지 못한 다른 일부분은 금신에 의해 남김없이 흡수되었다.
일반적인 무인들은 자질이 아무리 뛰어나고 실력이 아무리 강해도 이 기운의 3할 밖에 흡수하지 못했다. 이 3할의 가장 중요한 작용은 무인의 육신을 수련하여 원기의 충격을 견디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양준은 처음 대경지를 돌파하고부터 지금까지 못해도 9할은 흡수했고, 이번에는 10할을 모두 흡수했다. 금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천지 기운은 흐트러졌다가 서서히 평온해졌다. 양준이 기운을 천천히 거두자 겉보기에 일반 사람들과 다른 점이 없었다.
길게 한숨을 내쉰 양준은 다시 눈을 떴다.
진원 경지에 도달했다!
지금까지 고생하며 각종 어려움을 겪은 뒤, 드디어 진원 경지에 오르게 된 것이다!
진원 경지는 양준이 우러러보던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도 진원 경지 고수의 행렬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가 진원 경지에 오르는 데는 2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전에 허투루 보냈던 삼 년까지 더해도 오 년이었다.
오 년 만에 진원 경지에 오르다니. 어디를 가도 천재로 불릴 만했다.
가볍게 주먹을 쥐어 보자 온몸에서 믿을 수 없는 폭발력이 느껴졌다. 경맥에서 흐르는 원기도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전의 흐릿하고 안개 같던 원기에 비해, 지금의 진원은 더욱 단단하고 강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몸속에 흐르는 것은 더 이상 원기가 아닌 진원이었다. 두 가지는 등급이 다른 존재였다.
단전 안에는 원래 칠팔십 방울의 양액이 있었는데, 지금은 이십여 방울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 양액에 담긴 기운은 이전에 비해 서너 배에 달했다. 이런 양액이 폭발한 살상력은 전보다 훨씬 무시무시할 것이다.
진원 경지 이후 몸 속의 진원은 등급을 나누었다. 일품부터 구품까지였는데, 일품이 가장 강하고 구품이 가장 약했다. 겨우 이런 등급으로 무인들의 실력을 가늠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세상 사람들이 인정하는 등급 계산법이었다.
일반적인 무인은 진원 경지에 다다른 뒤, 천재지보의 보조적인 도움이 없다면 대부분 구품짜리 진원 밖에 형성하지 못했다. 천재지보를 얻더라도 팔품에 오를 뿐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도 크나큰 행운이라 많은 사람들이 기뻐하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등급의 진원을 가진 무인은 전투 도중 보통 원기보다 강한 기운을 발휘할 수 있는데, 자신보다 등급이 높은 진원을 가진 고수를 만난다면 경지가 한 단계 높아도 상대가 되지 못했다.
진원의 등급은 무인들의 수련 과정에서 점차 강해지고 향상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신유 경지 정상에 오른다고 해도, 특별한 기연을 만나지 않는 이상, 진원은 삼사품에 불과했다. 이품에 달하는 사람은 무척 적었고, 일품은 그저 전설 속에서나 존재했다.
무인이 진원 경지에 도달한 뒤, 몸속의 진원 등급은 이후 그의 발전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 이것은 평생을 다지는 기반이었다. 천재들이 진원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 진원의 등급은 최소한 칠품이거나 심지어 육품에 달할 수도 있었다. 시작점이 높을수록 그들의 전망은 더욱 좋았다.
양준은 몸속 진원의 등급이 얼마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절대 팔구품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최소한 육칠품이겠지. 그것보다 더 높을 수도 있겠군.’
유염액, 구음응원로 둘 다 원기를 수련하는 천재지보인데다 구하기 어려운 이 두 가지를 양준은 모두 사용했다. 이런 조건을 고려해 볼 때 그의 진원은 절대 등급이 낮을 수 없었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바라본 양준은 깜짝 놀랐다.
“지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양준이 깜짝 놀라 물었다.
그는 자신이 안개 속 밀림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의 옆에 있던 세혼로를 형성할 수 있는 바위도 사라지고 없었다. 그들이 있는 곳은 허허벌판이었는데, 멀리 내다보자 울창한 숲이 보였다.
“며칠 전에 이상한 기운이 몰려오더니 주인을 이곳까지 이동시켰네. 하지만 그때 주인은 진원 경지의 마지막 관문을 돌파하고 있어서 방해하지 않았네.”
양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보아하니 자신은 이미 그 외지에서 튕겨 나온 듯했다.
능태허가 전에 말한 적이 있었다.
외지에 들어가 수련할 때, 나오는 문을 찾을 필요가 없다고. 그건 찾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진법이 자동으로 닫히는데, 언제 닫힐 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길면 이삼 년이 넘을 수도 있고, 짧으면 몇 달이라고 했다.
이번에 보니 대략 일 년쯤 지난 것 같았다.
외지의 수련이 끝났다.
‘세혼로가 아쉽군. 열흘이 넘어야 한 방울이 만들어지니 만약 그곳에 오래 머물러 있었더라면 더욱 많이 모을 수 있었는데…….’
하지만 양준은 이미 열 방울 넘게 모은 것에 만족했다.
이곳은 유명산인 것 같았다. 대한의 유일한 금지된 구역이었다. 그날, 능태허와 함께 들어오면서 마주친 것은 죄다 5, 6급 되는 요수들이었는데 수가 많고 매우 사나웠다.
지금은 이곳을 나갈 때, 스스로를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 다른 사람들의 흔적이 없는 걸로 봐서는 다들 진작 유명산을 떠난 것 같았다.
“주인, 여기 좀 이상하네!”
“뭐가 이상한데?”
“날아서 주변을 살펴보게!”
지마는 자세하게 말해주지 않았다.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신식을 펼쳤다. 순간, 사방 십몇 리의 범위가 모두 머릿속에 들어왔다. 폐관하여 진원 경지까지 오르면서 신식까지 무의식중에 많이 강해졌다.
근처에는 별다른 위험과 생명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양염지익을 사용해 공중으로 날아오른 양준은 지면을 내려다보고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