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239화 (239/853)

제 239장.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한다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려왔다.

짧은 시간 동안, 둘은 몇백 합을 겨루었다.

콰앙!

둘의 그림자가 뒤엉켜 십여 장 높이의 상공까지 치솟았다가 다시 땅바닥으로 추락하면서 지면에 크고 깊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슉- 슉-

양준과 무승의는 이미 몇십 장 밖까지 벗어나 계속 격전을 벌였다.

자맥은 멀리서 구경하며 눈도 깜박이지 않았다. 아름다운 눈동자에는 이채가 반짝였다.

그녀는 양준의 생사를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그의 전투력에 놀랄 뿐이었다.

“전보다 더 강해졌네!”

자맥은 가볍게 입술을 깨물었다.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어려 있었다.

넉 달 전까지만 해도 양준은 적혈과 정면으로 맞붙어서 적수가 되지 못했다. 나중에 괴이한 무공으로 6급 요수를 제압하고 나서야 겨우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양준은 무승의와 막상막하로 맞붙어 싸우고 있었다. 전투력만 놓고 보면 무승의는 적혈보다 강했다.

자맥은 양준의 성장 속도에 부러움과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녀가 잠깐 생각에 잠긴 사이, 양준과 무승의는 이미 몇백 장 밖까지 멀어져 있었다. 그녀는 발을 동동 구르며 황급히 따라갔다. 격렬하고 멋진 전투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가는 길에 혈흔이 보였지만 양준의 것인지, 무승의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싸움은 이미 가열되어 둘 중 하나가 죽지 않는 이상, 끝낼 수 없었다.

자맥이 그쪽에 다다랐을 때, 마침 두 사람은 다시 떨어져 삼십여 장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었다.

무승의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침착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대신 끝없는 광기가 보였다. 그는 눈동자마저 떨리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의 입가에는 검붉은 피가 흘러나왔고, 얼굴도 약간 창백한 것으로 보아, 적지 않게 부상을 입은 듯했다.

양준 역시 몸에 검흔이 몇 갈래나 되었는데 살갗이 밖으로 뒤집히고 선혈이 낭자했다. 특히 두 주먹에는 작은 검흔들이 가득했다.

무승의는 검신으로 온몸을 감싸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하고 있었다. 양준이 그에게 상처를 입히려면 어쩔 수 없이 먼저 자신이 다쳐야 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사악하게 웃고 있었다.

석양을 마주하며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모습은 너무나 멋있었다. 자맥은 그 모습에 반해 예쁜 얼굴에 홍조를 띠었다.

“여덟 살 때, 처음 수련을 시작했는데…….”

무승의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약간 잠긴 채,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열네 해가 흘렀군.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또래 중에는 적수가 없었다. 아무도 내 적수가 될 자격이 없었고, 아무도 날 이길 수가 없었지. 중도 8대 가문의 공자들도 모두 내 적수가 되지 못했어.”

그는 숨을 한 번 깊게 들이마시더니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네가 대단한 건 인정하지. 진원 1단계 실력으로 나와 비등하게 맞서고 있으니. 오늘 나도 식견을 넓혔다. 세상에 귀재가 없는 게 아니라,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어.”

“죽기 전에 깨달았으니 인생을 헛산 건 아니군.”

양준이 잔인하게 웃었다.

무승의는 눈썹을 찌푸리고는 콧방귀를 뀌었다.

“네가 정말로 날 이길 거라고 생각하냐? 난 아직 전력을 쏟지 않았어.”

“나도 마찬가지야.”

양준은 차가운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더니 입꼬리를 살짝 끌어 올려 알 수 없는 미소를 머금었다.

그 말에 무승의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럼 한쪽이 죽을 때까지 끝장을 보자.”

무승의는 승부욕이 발동되어 소리쳤다.

어려서부터 그는 웃어른들의 찬사와 또래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고, 구성검파에서는 그를 미래의 기둥으로 여겼다. 어떤 이는 무승의가 성장하는 순간, 구성검파가 거대 세력의 반열에 들 거라고 단언했다.

지금까지 그런 대접을 받아왔던 그가 오늘 본인보다 경지가 훨씬 낮은 상대에게 맞아 상처까지 입었다. 무승의는 이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양준이 그의 목숨을 빼앗으려 했지만, 지금은 설령 양준이 포기하려 해도 무승의가 그만둘 수 없었다.

둘 사이에는 반드시 승부를 갈라야 했다. 그렇다면 한 명은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무승의든, 양준이든, 살아남은 자야말로 진정한 천재인 것이다.

문과에는 일등이 없고, 무과에는 이등이 없다. 무승의의 머릿속에서 젊은 세대 중 단연 본인이 으뜸이었다. 무릇 그의 자리를 엿보는 이는 모두 그와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철천지원수였다.

무승의의 광적이던 얼굴빛이 평온해졌다. 곧이어 섬뜩하고 불안한 검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자맥은 얼굴빛이 급변하더니, 주저없이 뒤로 몇십 장 날아가서야 멈췄다.

양준의 표정도 차분해졌다.

“일격으로 끝내는 거야. 이걸 받아내면 네가 이긴 거고, 받지 못하면 죽는 거지.”

무승의는 방어를 포기하고 모든 진원을 공격으로 전환했다. 온몸의 진원이 칼날로 변해 일제히 체내로부터 튀어나왔다. 몸 밖을 감싸고 있던 검신도 순간 산산이 흩어졌다.

순식간에 무승의의 주변은 백 갈래의 검기에 둘러싸였다.

진원으로 된 검기는 거대한 살상력과 무시할 수 없는 파괴력을 갖고 있었다. 백 갈래의 검기가 동시에 쏟아진다면 누구라도 막아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가 장검을 다시 한번 휘두르자 또다시 백 갈래의 검기가 쏟아졌다.

곧이어 또 백 갈래…….

천지를 가리는 검기가 무승의의 곁을 맴돌았다. 천지가 마치 검의 세계가 된 듯했다.

양준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가 손을 뻗자 수라문의 진문 비보, 수라검이 그의 손에 나타났다. 그리고 다시 경맥 속에 진원을 단전에 몰아넣어 저장했다. 대신 금신의 원기가 용솟음치며 흘러나왔다.

검은 기운이 감돌며 사람을 불안에 떨게 하는 기운이 양준의 몸에서 터져 나왔다. 금신의 원기는 진양원기와 전혀 다른 사악한 기운이었다.

살육과 파괴의 기운이 넘쳐나는 원기는 수라검의 기운과 비슷한 점이 있었다. 양준은 원래 수라검의 위력을 최대로 끌어 올리려고 했다. 그러나 생각과 달리 수라검을 들고 금신의 원기를 사용하는 순간, 수라검이 금신의 원기를 미친 듯이 흡수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수라검은 붉은색과 검은색이 뒤섞인 빛을 내뿜었다.

그 빛이 폭발하는 순간, 모든 광명을 삼켜 버렸고, 천지는 순식간에 빛을 잃었다.

멀리 있던 자맥은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무승의의 검기도 희미해졌다.

챙-

수라검에서 검명이 울려 퍼졌다. 검명과 기운의 잔물결이 무승의의 수많은 검기와 이어져 공명을 불러일으켰다.

갈래갈래 검기가 흔들리면서 마치 무승의의 통제를 벗어나 날아갈 것만 같았다.

무승의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그는 급히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자신의 검기를 다스려 수라검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했다.

양준은 경악스러운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감지했다. 곧이어 그의 눈에서 기쁨의 빛이 반짝였다. 그는 계속해 수라검에 원기를 주입했다. 이 순간, 그는 이 천급 비보에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되었다. 사람과 검 사이에 희미한 연계가 생기게 된 것이다. 수라검은 마치 양준의 신체의 일부분이 된 듯했다.

두 사람 모두 최후의 일격을 필사적으로 축적했다. 둘은 몇십 장을 사이에 두고 무표정하게 상대방을 주시했다.

무승의의 몸 밖에 둘러진 검기는 이미 이천여 갈래에 달했다.

마지막 몇 가닥의 검기가 그의 체내에서 뿜어져 나오자, 그의 얼굴은 핏기를 잃고 창백해졌다. 그리고 끊임없이 숨을 헐떡였다. 지금 그의 모습은 마치 유약한 일반인처럼 보였다.

“이는 우리 구성검파의 비밀 공법 만검귀일(萬劍歸一)이다. 안타깝게도 내 실력으로는 이천 개의 검기밖에 만들지 못하지만, 모두 내 진원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무승의는 차가운 목소리로 외쳤다.

양준은 검명이 끊이지 않는 수라검을 움켜쥐고서 웃었다.

“내 초식은 이름이 없지만, 위력은 작지 않을 거다. 조심해라.”

자맥은 한쪽 옆에서 놀란 눈빛으로 지켜보다가 저도 모르게 입가를 실룩거렸다.

둘은 분명 서로 상대방을 죽이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방금 전까지도 사활을 걸고 치열하게 싸웠었다. 그런데 마지막 고비에 와서 서로의 초식을 설명하며 상대방을 일깨워 주다니.

‘남자들은 참 이상한 동물이군.’

무승의는 이 일격으로 양준을 죽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때문에 그는 자신의 공격을 다 드러내 보인다고 해서 태세에 영향을 미칠 거라고 걱정하지 않았다.

양준 역시 무승의보다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싸우는 것이 싫어 자신의 검에 대해 일깨워 준 것이었다.

이천여 갈래의 검기에 싸인 무승의가 움직였다.

순간 그의 얼굴빛이 매우 기이하게 변했다. 진중함 속에 경건함을 띠고서 검법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생명의 꽃을 피우는 것만 같았다.

장검을 빙빙 돌리자 검 끝에서 빛이 번쩍였다.

천지를 가리는 검기가 동시에 울리며 검명이 끊이지 않았고, 날카로운 검의가 하늘로 솟구쳤다.

이내, 이천여 갈래 검기에서 절반이 사라지고 천여 갈래만 남았다. 곧이어 또 절반이 사라지고 오백여 갈래가 남았다.

삼백 갈래… 이백 갈래… 백 갈래… 아흔 갈래…….

이내, 무승의의 얼굴빛이 상기되며 의기양양해졌다.

그가 장검을 휘두르자 아흔여 갈래의 검기가 천지를 뒤덮으며 양준을 향해 날아갔다.

만검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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