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240화 (240/853)

제 240장. 적의 검법을 빼앗다

구성검파의 비밀 공법은 종문에 큰 공헌을 한 이 만이 익힐 자격이 있었다. 무승의 또래에서는 오직 그 만이 익힐 수 있었다. 이 점에서 종문 웃어른들의 그에 대한 기대를 엿볼 수 있었다.

이 검법은 대성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만 갈래의 검이 하나가 된다. 그때야말로 진정 천지를 찢고 산천이 움찔할 정도의 위력을 가질 수 있었다. 무승의는 아직 실력이 부족해 온몸의 진원으로 이천여 갈래의 검기를 만들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아흔 갈래의 검빛밖에 응결해 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 일격의 위력은 대단했다.

자맥의 아름다운 눈동자는 떨리고 있었다. 이백 장 가까이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날카로운 검의가 엄습해 오는 것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주위의 공기마저 마치 날카로운 날이 되어 그녀의 살갗을 베는 것만 같았다.

이 공격은 이미 그녀가 감당하고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 있었다. 만약 무승의가 이 검법으로 그녀를 상대했다면 그녀는 이미 분골쇄신 되었을 것이다.

그녀는 겁에 질린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양준의 실력으로 이 일격을 막아 낼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양준은 이미 검은 기운에 싸여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다. 어둠 속에서 오직 핏빛 눈망울만이 섬뜩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눈빛에는 광기와 냉정함이 서려 있었다.

이는 모순의 결합체로 기괴하기 그지없었다.

양준은 덮쳐 오는 아흔 갈래의 검기를 피하지 않았다. 수라검을 움켜쥐고, 있는 힘껏 앞으로 내리쳤다. 방금 수라검이 삼켜 버린 사악한 기운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기묘한 파동이 폭발하면서 양준이 위치한 자리를 중심으로 땅이 일렁이는 듯하더니, 모래와 자갈들이 흩날렸다.

그러나 수라검에는 검기도, 검빛도, 아무것도 없었다.

이 일격의 기이함도 자맥의 상상을 초월했다.

양준은 검을 내리친 뒤, 몸을 곧게 폈다.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는 손을 들어 핏빛 장검을 어깨에 메었다.

미소에는 자신감이 서려 있었다.

무승의의 동공이 삽시간에 수축되었다. 그는 어떠한 공격도 보지 못했지만, 가슴에서는 죽음을 마주한 강렬한 떨림이 느껴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무승의의 아흔여 갈래나 되는 검기가 양준의 눈앞으로 날아왔다. 그런데 공중에 사발 크기만 한 검은 구멍이 나타났다.

이 장면은 마치 누군가의 실수로 먹물 한 방울을 두루마리 그림에 떨어뜨린 것같이 너무나 기괴했다.

검은 구멍은 나타나자마자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것은 마치 모든 것을 삼켜 버릴 듯했다. 검은 빛이 지나가자 자맥은 눈앞이 캄캄해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어둠 속에서는 오로지 소리만 들려왔다. 누군가가 검기에 적중된 것 같았다.

자맥은 가슴이 떨렸다. 그 소리는 양준이 서 있는 쪽에서 들려왔다. 그녀가 미처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무승의 쪽에서도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천지가 다시 고요해졌다.

한참 뒤에야, 자맥은 비로소 빛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눈앞에 모든 것이 점점 선명해졌다.

천지가 청명해지고, 석양은 이미 산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하늘에는 노을이 붉게 타오르며 세상을 핏빛으로 물들였다.

격렬한 심장 박동 소리가 들려왔다. 자맥은 긴장한 표정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제자리에 서 있었다. 웃옷은 이미 갈기갈기 찢어져 그의 튼튼하고 다부진 상체가 드러났다.

건장하지는 않지만 단단해 보이는 몸에는 앞뒤로 몇 개의 검붉은 점이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점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검기에 뚫린 상처였다.

‘패한 건가?’

자맥은 저도 모르게 입을 막았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는 눈빛이었다.

다시 무승의를 보니, 그 역시 원래의 위치에 그대로 서 있었다. 그는 몸을 곧게 펴고 두 눈에는 오기와 방자함이 서려 있었다.

이 순간 장검은 바로 그의 앞에 세워져 있었다. 산들바람에 그의 옷자락이 나부끼자, 피 한 방울이 그의 가슴에서 번지며 점점 커졌다.

그는 입가를 실룩였다. 힘들게 무슨 말을 하려 했지만 할 수가 없었다. 곧이어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그의 눈에 비쳤던 방자함과 오기가 점점 사라지고 빛을 잃었다.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자맥은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동귀어진(同歸於盡)인가?’

“콜록콜록……!”

양준 쪽에서 가벼운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자맥은 흠칫 떨고는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았다. 양준이 수라검에 기대서 비틀거리며 쓰러질 듯했다.

“나 좀 부축해 주면 안 될까?”

양준은 어렵게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입가에는 쓴웃음이 걸려 있었다.

‘나쁜 자식, 과연 죽지 않았군!’

자맥은 이를 가볍게 깨물고 눈알을 굴렸다. 그리고 잠시 망설이다가 천천히 양준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복잡한 표정으로 양준을 바라보며 갈등에 사로잡혔다.

‘지금 양준을 제거하면 앞으로 머릿속 낙인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데.’

하지만 유명산에서 눈앞의 남자가 그녀를 위해 필수명과 그 사제를 죽이고, 요수의 포위 공격에서 목숨을 구해 준 것을 떠올리면 손을 쓸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번에도 양준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결코 무승의의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양준은 이미 그녀를 두 번이나 구해 주었다.

‘어떡하지…….’

“땅에 떨어진 것 좀 주워 줄래?”

양준이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자맥은 생각을 멈추고 고개를 숙여 바라보았다. 땅 위에는 자그마한 주머니가 떨어져 있었다. 그녀는 허리를 굽혀 그것을 주워서 양준에게 건네며 호기심 어린 말투로 물었다.

“이게 뭐야?”

“별거 아니야.”

양준은 빙그레 웃으면서 건곤대를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자맥을 확 당겨서는 한쪽 팔을 그녀의 어깨에 얹고 그녀에게 몸을 기대었다.

“무승의한테 가 보자.”

양준이 눈짓했다.

자맥은 그를 흘겨보았지만, 고분고분 그를 부축해 무승의에게로 걸어갔다.

양준은 무승의 앞에 이르러 그의 품속을 더듬더니 끝내 작은 병 하나를 찾아냈다. 작은 병에는 액체가 절반가량 담겨 있었다.

“하하하!”

양준은 크게 기뻐했다. 그의 짐작대로 무승의도 유염액을 가지고 있었고, 심지어 제검성보다 훨씬 많았다.

“그건 또 뭔데?”

자맥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분명 좋은 물건일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차마 달라는 소리를 하기는 힘들었다.

“나중에 말해 줄게! 우선 어디 가서 치료 좀 하자!”

양준이 빙그레 웃었다.

*산 비탈 동굴 안에서 양준은 상체를 드러낸 채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무승의와의 싸움에서 입은 상처는 그리 심하지 않았다. 몸의 상처도 무승의의 검기에 당한 것이 아니라, 검의에 당한 것이었다. 만검귀일의 검의가 양준의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양준은 지금 두 손으로 수라검을 받쳐 들고 검의를 깨치고 있었다.

수라문의 진문 비보를 얻은 다음, 양준은 능소각에서 백운풍과 싸울 때 딱 한 번 사용했었다.

당시 그는 수라검을 몸에 흡수한 지 얼마 안 되었기에 제대로 숙지할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수라검에 대해서도 그냥 천급 비보쯤으로 알고 있었다.

일 년 남짓이 지난 뒤, 수라검은 줄곧 양준의 단전에서 원기로 키워지며 그와 친해졌고, 이제야 드디어 하나가 되었다.

양준은 이번에 수라검을 사용하며 수라검이 천급 비보일 뿐만 아니라 아주 특이한 효력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바로, 상대의 검법을 빼앗아 본인 것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는 검법에 한해서만 효과가 있었다.

무승의의 마지막 일격을 막아 내기 위해 수라검은 양준의 금신에서 대량의 사악한 기운을 사용했다. 그 힘으로 검은 구멍을 만들어 무승의가 펼친 검법의 살상력을 삼키고, 검의만 남겼던 것이다.

때문에 양준은 피하지 않고 육신만으로 일격을 받아 낼 수 있었다.

검의는 검법 초식에 깃든 정신으로, 한 사람의 신식과 비슷했다. 검의가 없는 초식은 모양만 갖추었을 뿐, 크게 위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양준은 지금 그 초식의 검의를 깨치면서 만검귀일의 현묘함을 엿보고 있었다.

일단 깨치기만 하면, 그에게도 펼칠 수 있는 검법이 생기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검법은 등급도 낮지 않았다. 무려 구성검파의 비밀 공법으로, 현급 검법이었다.

수라검은 아마 이 특이한 효력 때문에 수라문의 진문 비보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남의 검법을 빼앗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혹시라도 조심하지 않으면 빼앗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본인이 큰 타격을 입을 수 있었다.

양준은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검의를 깨우쳤다. 머릿속으로 무승의가 만검귀일을 펼칠 때의 동작과 진원 파동을 끊임없이 되새겼다. 수라검에서도 기묘한 움직임이 전해지며 공명을 불러일으켰다.

*자맥은 동굴 입구에 서서, 따분하고 복잡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는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입술을 오므렸다. 몰래 양준을 기습해 죽일까 궁리하기도 했지만, 오래도록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갈등만 하고 있었다.

한참이나 지나서야 자맥은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며 뒤돌아 떠났다.

양준은 천천히 눈을 뜨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그녀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주인, 저 계집이 주인에게 살의를 품었지만, 한참이나 망설이다가 결국 포기했네.”

지마가 일깨워 주었다. 그는 줄곧 자맥의 움직임을 경계하고 있었기에 그녀의 표정과 모습을 낱낱이 볼 수 있었다.

“알아. 현명한 선택을 한 거야.”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눈을 감고 하던 일을 이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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