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243화 (243/853)

제 244장. 어쩌다 쫓기고 있었던 거야?

“주인, 왜 그러는가?”

지마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원기가 강해. 아마도 사악한 공법을 수련했거나 마도에 빠진 무인인 듯하군.”

양준은 손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말했다.

무인은 이합 경지일 때, 마음이 양극으로 갈라진다. 그래서 이 경지를 이합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힘이 솟아오르는 쾌감을 만끽하며,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각종 감정에 휘둘리는 자를 사사(邪士)라고 불렀다. 이런 자들은 일반적으로 잔인하고 피에 굶주리며 난폭했다.

많은 무인들이 이러했다. 실력이 높을수록 나중에는 남들과 다른 수련의 길을 걷게 된다. 양준이 방금 죽인 이들이 바로 그러한 자들이었다. 정상적인 수련 방식과 비교해 어떤 수련 방식이 옳고 그르다 명확하게 판단할 수는 없지만, 전반적으로 사사는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사사들의 가장 큰 집결지는 바로 창운사지(蒼雲邪地)였다.

그곳은 사방 몇천 리의 범위 안에 크고 작은 마두들이 모여 있었고, 사악한 무인들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애당초 능소각 대장로인 위석동이 양준에게 진급령을 내릴 때, 창운사지에 가서 그보다 실력이 낮지 않은 사사를 죽이라고 했었지만, 양준은 이를 거절했었다.

‘쟤는 어쩌다 저런 놈들에게 쫓기고 있던 거지?’

양준은 의문이 담긴 눈빛으로 고개를 돌려 소녀를 바라보았다.

소녀는 그의 발길에 차여 땅바닥에 주저앉은 다음부터 줄곧 일어서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공포와 두려움에 싸여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방금 전 그녀는 간발의 차이로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예리한 장검은 심지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적지 않게 잘라 냈다. 목에는 붉은 혈흔이 남아 있었고, 소녀는 손으로 그 상처를 움켜잡았다. 그녀의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양준이 바라보자 소녀는 가슴이 철렁했다. 얼굴에도 두려움이 가득했다.

이제서야 그녀는 자신이 도대체 어떤 사람을 건드렸는지 알게 되었다. 일 각도 안 되는 시간 동안, 그는 7~8명을 죽였다. 정말 사람을 풀 베듯 죽였다는 말이 지나치지 않았다.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앞으로 다가가 그녀의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소녀는 연신 뒤로 물러나며 두려운 나머지 긴 속눈썹을 바르르 떨었다.

양준은 가볍게 웃고서 그녀의 손을 떼어내고 목에 난 상처를 보았다.

“약 꾸준히 바르면 흉터도 남지 않을 거야.”

그는 말하는 한편, 품 속에서 상처를 치료하는 단약을 꺼내서 건넸다.

소녀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거절했다.

“나한테도 단약이 있어…….”

‘경계심이 높군.’

양준은 개의치 않고 단약을 거두어들였다. 소녀는 계속 벌벌 떨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양준이 아무런 악의도 없는 것 같자, 그제야 용기를 내어 약병을 찾아내더니 단약 한 알을 복용했다.

“방금 제압당했을 때, 왜 몸을 뒤로 젖히지 않았어?”

양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난… 누구와 싸워 본 적이 없어…….”

소녀는 얼굴이 빨개졌다. 어릴 적부터 줄곧 수련을 해 왔지만 기껏해야 남들과 대련을 한 것이 전부였다. 사활을 건 싸움은 해본 적이 없었다. 장검으로 제압당하는 순간, 넋이 나가서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다.

양준은 자세히 그녀를 훑어보았다. 소녀는 살결이 매끄럽고 옷차림도 화려했다.

‘명문 세가의 여식이 틀림없군. 그러니 나와 비슷한 나이에 이합 경지 절정의 실력인데도, 실전 경험은 하나도 없지.’

이는 응석받이로 키운 결과였다.

“그나저나 어쩌다 저런 놈들한테 쫓기고 있었던 거야?”

“나도 몰라.”

소녀가 금세 억울해하며 말했다.

“내가 가출했는데… 아니… 잠깐 밖에서 놀고 있었는데 그 무리들이 나타났지 뭐야. 내가 빨리 도망치지 않았으면 진작 잡혔을 거야. 하나같이 왜 그리 못 생겼는지, 깜짝 놀랐어.”

양준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양준이 만만하게 보이자 소녀는 저도 모르게 담대해져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넌 사람을 그렇게 내팽개치는 게 어디 있어. 얼마나 위험했는 줄 알아? 내가 죽었으면 귀신이 되서라도 널 저주했을 거야.”

양준은 깊은 눈빛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 잠시 뒤에 눈길을 거두어들이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쩌면 아까 네가 소리친 건 무심코 한 실수일지도 몰라. 그런데 네가 나한테 했던 짓을 실력이 낮은 이에게 했다면 어떻게 됐을 것 같아? 운이 안 좋으면 그 자리에서 토막 시체가 됐겠지.”

소녀는 순간 당황하다가 고개를 숙이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잘못했어…….”

그녀는 말을 마치고 다시 고개를 들더니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넌 너무 모질어. 모두들 불의를 보면 선뜻 나서서 도와줘야 한다고 하는데, 넌 실력이 뛰어나니까 이 정도는 이용당해 줘도 상관없잖아.”

양준은 그냥 가볍게 웃기만 하고 해명하지 않았다.

방금 전 사내 몇이 소녀를 둘러쌌을 때, 그는 그들의 눈빛에서 흘러나오는 음탕한 빛을 놓치지 않았다. 원래는 그들이 떠나간 다음, 따라가서 상황을 지켜보려고 했으나, 놈들이 자신까지 가만두려 하지 않았다. 마침 그의 뜻에도 맞는 터라 그냥 다 죽여 버리고 말았다.

양준은 일어서서 소녀의 말을 무시하고 신법을 펼쳐 약왕곡으로 향했다.

소녀는 멍하게 가만히 있다가 급히 일어서서 따라갔다. 이곳은 약왕곡에서 불과 몇 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그녀는 어디선가 또 악당들이 튀어나올까 두려웠다. 일단 약왕곡에 들어가 피하고 싶었다.

그녀는 양준을 뒤쫓아 약왕곡 마을에 들어섰지만 더는 그를 찾을 수가 없었다.

“나랑 나이 차이도 별로 나지 않아 보이던데. 그 정도의 실력이면 어느 가문의 자제일까?”

소녀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한참 동안 생각을 더듬어 보아도 딱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약왕곡 마을에 들어서자 향긋한 약 냄새가 기분을 상쾌하게 했다. 양준은 발이 가는 대로 마을을 거닐었다. 이곳의 점포는 객잔이나 술집 말고는 죄다 단약, 약초를 파는 곳이었다.

갖가지 영초, 기과(奇果), 단약 등 없는 것이 없었다. 각양각색의 약재가 점포에 진열되어 있었다. 그중에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약재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그런 약재들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역시 약왕곡이야!’

양준은 속으로 감탄했다.

연단사가 이런 곳에 온다면 다시는 어디도 가고 싶지 않을 것이다. 연단사는 약재에 각별한 애착을 가졌다. 이곳에 이렇게 많은 약재들이 있는데 그들이 떠나고 싶어 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점포마다 이곳을 찾아온 무인들이 멈춰 서서 구경하거나 점포 주인과 흥정을 해 약재를 사갔다. 또 많은 연단사들이 거래를 성사해 무인들을 도와 단약을 제련했다.

약왕곡 마을에 있는 연단사들은 모두 약왕곡의 제자였다. 이곳에 와서 단약을 제련하려는 무인들도 대다수는 약왕곡의 이름 때문에 찾아왔기에 당연히 다른 세력의 연단사는 찾을 리가 없었다.

양준은 오랫동안 마을을 구경했다. 거닐면서 살펴본 결과, 연단사도 등급이 나뉘어 있었다.

연단사의 등급은 각각 범급, 지급, 천급, 현급으로 나뉘고, 다시 급마다 상중하 삼품으로 나뉘었다.

이곳에 있는 대다수는 지급 정도의 연단사들이었다. 예를 들어 눈앞 점포에 앉아 있는 연단사는 가슴 쪽에 은빛의 쌍잎 꽃이 수놓아져 있었는데, 이는 지급 중품 연단사임을 말해 주는 표식이었다. 또한 그가 능숙하게 지급 중품의 단약을 제련해 낼 수 있음을 뜻하기도 했다.

꽃잎 개수가 등급을, 금⋅은⋅백 삼색이 품급을 나타내었다. 연단사의 옷에 수놓아진 장식을 보면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천급 이상의 연단사는 아주 적었으며, 현급은 아예 보이지 않았다.

약왕곡의 장로들은 현급 연단사였다.

많은 점포에서는 모두 완제품으로 된 단약을 팔고 있었다. 양준은 일반적인 단약에 별로 흥미가 없었다. 그러나 영혼의 힘을 키워 주는 단약, 양신단(養神丹)에는 완전 매료되었다.

이런 단약은 그가 수련한 신식을 강화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온신련에 영양을 보충해 주어 칠색 온신련이라는 궁극적 목표를 이루게 할 수 있었다. 온신련이 칠색 정도로 진화하면 그 효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러나 양신단은 매우 적었고, 일반 단약보다 몇 배나 더 비쌌다.

일반 지급 하품 단약 한 병에는 열 알이 들어가며 가격은 오천 냥이었다. 하지만 지급 하품 양신단 한 병은 적어도 삼만 냥은 되었다. 족히 여섯 배가 비쌌다.

양준은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 그저 한숨만 쉴 뿐이었다.

오랫동안 돌아다니다가 날이 어두워지는 것을 보고서야, 양준은 객잔을 찾았다.

약왕곡 마을의 밤은 더욱 시끌벅적했다. 양준은 되는 대로 음식을 대충 먹고, 객잔을 나와 소식을 알아보았다.

그가 이번에 약왕곡에 온 것은 만약담에 가 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만약담은 약왕곡의 금지 구역이어서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계속해서 며칠 동안 양준은 줄곧 약왕곡에서 소식을 알아보았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 점점 초조해졌다.

약왕곡의 만약담은 주봉 단성봉(丹聖峰)에 있었다. 그곳에는 만약담뿐만 아니라 그 옆에 단성상까지 있어 연단사들 마음속의 성지였다. 평소에도 많은 고수들이 수비하고 있어 약왕곡 제자들도 접근할 수가 없었다. 오직 곡주와 장로들만이 단성상이 남겨 준 연단의 비밀을 깨우치러 갈 자격이 있었다.

양준은 단성상에 대한 소문을 많이 들었다. 단성이 가끔 나타나 연단사 마음속의 의문을 풀어주고 심지어는 연단술을 전수해 많은 이들이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때문에 약왕곡에서는 삼엄하게 만약담을 보호했다.

이렇게 빈틈없이 방어하는 곳에 어떻게 접근할 수 있겠는가?

만약담은 능소각의 금지 구역인 곤룡골과는 달랐다. 곤룡골은 비록 금지 구역이긴 하지만, 그곳은 길게 이어져 있고 위험이 많아 접근하는 사람 자체가 없었다.

*양준이 좋은 방법을 찾지 못한 채, 성안에서 헤매고 있는데 눈에 익은 인물이 스쳐 지나갔다.

양준은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가볍게 웃었다.

그는 몰래 남자를 따라갔다. 남자는 얼마 안 가 점포 안으로 들어갔다.

양준이 고개를 들어 보니, 점포에는 ‘동씨 약방’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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