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246화 (246/853)

제 246장. 눈 깜짝할 새에 사라졌다고?

양준이 한참 궁리하고 있을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일어서서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동경연이 수줍게 웃으며 서 있었다.

“흠흠!”

그녀의 얼굴에는 방금 전 적대시하던 모습이 사라지고 대신 친근함과 호기심이 담겨 있었다.

“네가 여기를 어떻게 알고 왔어?”

양준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역시 여기 있었네. 오라버니가 전해 달래. 방법이 생각났다고.”

동경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쑥 빼들고 방 안을 들여다보더니 가볍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양준은 그 말을 듣고 잠깐 어리둥절해했다. 이윽고 입꼬리를 천천히 끌어 올려 이상한 미소를 짓더니 몸을 옆으로 비키며 말했다.

“그래? 우선 들어와.”

동경연은 두려움도 없이 곧바로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흥미진진하게 방 안을 훑어보고는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왜 이런 곳에 머물러? 너무 허름하잖아, 너 그래도… 콜록콜록…….”

동경연도 양씨 가문 공자의 신분을 함부로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얼른 뒷말을 삼켰다.

“네 오라비가 방법이 있다고 했다고?”

양준은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

동경연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너한테 직접 말해 줬어?”

“그럼.”

동경연은 긴 속눈썹을 조금씩 떨었다.

“근데 왜 나한테 직접 말하지 않고 널 통해서 전달하지?”

“내가 오나, 오라버니가 오나 다 똑같지. 이 일은 내가 전적으로 맡기로 했어. 오라버니는 다른 일 때문에 이미 약왕곡을 떠났으니까 만나기 힘들 거야.”

동경연은 침대에 털썩 걸터앉으며 태연하게 말했다..

동경연이 사실인 것처럼 말하고 있었지만, 양준은 그녀를 온전히 믿을 수 없었다.

“정말?”

“널 속여서 뭐 하겠어. 걱정하지 마. 네가 말하는 그곳에 갈 수 있게끔 내가 도와줄게.”

동경연은 가슴을 쭉 펴고 손으로 툭툭 치면서 장담했다.

“하하…….”

양준은 헛웃음을 터뜨리며 동경연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동경연은 양준의 웃음소리에 팔에 소름이 돋았다. 그녀는 몰래 침을 꿀꺽 삼키고, 덜덜 떨며 말했다.

“왜 그리 무섭게 웃어?”

양준은 얼굴빛을 가다듬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말해 봐. 넌 어떻게 그런 걸 안 거야?”

“뭘?”

동경연은 못 알아들은 척했지만, 표정이 매우 어색했다.

“내가 어딜 가려고 하는지 알잖아. 네 오라버니가 알려줬다고 하지 마. 분별없이 아무한테나 내 얘기를 하고 다닐 사람이 아니야.”

양준은 실눈을 뜨고 그녀를 쳐다봤다.

동씨 약방에서 동경한은 양준과 이야기하기 전에 동경연을 따돌렸다. 이는 그녀에게 양준의 신분을 알려 줄 생각이 없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지금 와서 왜 이유 없이 그녀를 이 일에 말려들게 하겠는가. 게다가 두 사람은 헤어진 지 한 시진도 안 되었다. 한 시진 전에 속수무책이었던 동경한이 이렇게 짧은 시간에 어떻게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있겠는가.

또한 동경연이 눈동자를 굴리는 것이 빤히 보였다. 양준은 그 모습을 보고, 그녀에게 다른 속셈이 있음을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정말로 오라버니가 알려준 거라니까.”

동경연은 딱 잡아뗐다.

양준은 웃는 얼굴로 동경연의 팔을 잡은 채 밖으로 끌어내려 했다.

“왜… 뭐 하는 거야!”

동경연은 죽기 살기로 버티면서 소리를 질렀다.

양준은 양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너 또 소리 지르면 기절시킬 거야!”

동경연은 바로 입을 꾹 다물고 있는 힘을 다해 뒷걸음질 쳤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문 앞까지 끌려오고 말았다.

“도대체 뭘 하려는 거야?”

동경연은 가련한 표정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동경한한테 데려다 줄게. 걔 안 떠난 거 알아.”

“안 돼……. 내가 얼마나 힘들게 빠져나왔는데. 돌아가면 난 끝장이란 말이야!”

동경연은 대경실색했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말해.”

“좋아. 다 얘기할게!”

양준은 그제야 그녀를 놓아주었다.

동경연은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양준을 노려보았다. 그러고는 양준에게 붙잡혔던 손목을 주무르고, 어수선하게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나서야 씩씩거리며 침대로 돌아가 앉았다.

“말해 봐. 거짓말하면 정말 네 오라비한테 돌려보낼 거야.”

양준이 정색하며 말했다.

“몰래 엿들었어.”

동경연은 양준을 살펴보다가 그의 안색이 어두워지는 것을 보고 곧바로 덧붙여 말했다.

“거짓말 아니야. 내가 직접 엿들었어.”

“이합 경지 절정밖에 안 되는 네가 어떻게 풍운쌍위의 신식을 피해서 엿들었다는 거야?”

양준이 동경한과 이야기를 나눌 때, 풍운쌍위는 줄곧 근처의 움직임을 경계하고 있었다. 만약 동경연이 정말 엿들었다면 두 늙은이의 신식의 감지를 피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다 방법이 있지.”

동경연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침대 가에 앉아 다리를 흔들거렸다.

양준이 믿지 않자, 동경연은 금세 내키지 않아 하며 말했다.

“나 이래 보여도 동씨 가문 출신이야. 몸에 호신 비보 한두 개쯤 지니고 다닌다고… 어…….”

“비보라고?”

양준은 눈썹을 치켜세우고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어떤 비보길래 신유 경지 고수의 신식을 피할 수 있는 거지? 게다가 풍운쌍위의 실력은 이미 신유 경지 7, 8단계 정도는 될 텐데. 이 둘을 속일 수 있다니, 비보가 엄청 대단한 물건인가 보네.’

동경연은 말실수했다는 것을 깨닫고 걱정하는 기색이었다. 그녀는 머뭇거리다가 양준에게 말했다.

“보여 줄 테니까 빼앗지 마.”

양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어떤 비보일지 매우 궁금했다.

양준이 약속하고 나서야 동경연은 조심스럽게 품 속에서 고옥을 꺼냈다.

양준이 자세히 살펴보니 고옥은 색상이 누르스름하고 가공한 흔적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안쪽에 교차된 무늬가 새겨져 있는 것이 누군가 제련한 물건인 듯했다.

동경연이 옥에 원기를 주입하자, 온몸의 기운이 순식간에 모두 사라졌다.

동경연이 말했다.

“넌 아직 신유 경지가 아니라 신식을 쓸 수 없어서 이 비보의 힘을 모르겠지만, 나 정말 거짓말한 거 아니야. 이걸 이용해서 그 두 노인네를 속였다니까.”

그녀가 말할 때, 양준은 신식을 펼쳐 그녀의 주위를 살펴보았다.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 신식이 그녀가 있는 곳을 지나쳐도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그가 눈을 감고 있었다면 이곳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흥미로운 비보로군!’

“잘 넣어 둬. 남한테 들키지 말고.”

양준이 정색하며 신신당부했다.

동경연은 가볍게 웃으며 대꾸했다.

“재물은 드러내지 않는 법이지. 내가 바보도 아니고!”

그녀는 말하는 한편, 고옥을 다시 품 속에 집어넣었다.

“그래서 어디까지 엿들었는데?”

양준이 미소를 머금고 물었다.

“거의 다 들었는데.”

동경연이 혀를 홀랑 내밀었다.

“그럼 어디까지 알아?”

“네가 가려는 곳이랑 그리고… 내 사촌 오라버니라는 거랑…….”

동경연도 이는 정말 기가 막힌 일이라고 생각했다. 우연히 ‘오라버니’라고 불렀을 뿐인데, 정말 사촌 오라버니였을 줄이야.

“좀 전에 단성봉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했지? 정말이야?”

“물론이지. 하지만, 지금은 가르쳐 줄 수 없어.”

동경연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눈알을 굴리며 말했다.

“조건을 걸겠다? 원하는 게 뭔데?”

“우리 오라버니가 날 잡아 가지 못하게 해 줘!”

동경연이 다급하게 말했다.

양준은 눈썹을 잔뜩 찌푸렸다. 그는 진작 동경연이 가출해서 나왔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동경한이 약왕곡에 나타난 것도 결국 가출한 여동생을 뒤쫓아온 것이었다.

‘아무리 친척이라지만, 동씨 가문의 일인데 어떡하지?’

그녀는 며칠 전에도 악당들에게 쫓기고 있었다. 정말 변고라도 생긴다면 동씨 가문에서 가만히 있을 리가 있겠는가.

“오라버니……!”

동경연은 양준이 침묵하자 가련한 모습을 하고서 그의 팔을 흔들며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집에만 있으니 너무 답답해. 며칠만 밖에서 놀게 해 줘. 제발 나 여기 있다고 말하지 마.”

양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동경연은 한참 애원하다가 결국 모질게 마음먹고 협박했다.

“내 조건 안 들어주면 오라버니가 양씨 가문의 공자라는 걸 만천하에 까발릴 거야. 그땐 누가 더 손해일까.”

양준은 골치가 아파 이마를 문질렀다.

동경연은 자신을 협박했다고 죽일 수 있는 상대도 아니었다.

양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네 행적은 경한한테 말해 줘야 해.”

동경연은 대뜸 벌떡 일어나더니 악담을 퍼부었다.

“나쁜 놈! 치사하기는.”

“내 말 좀 들어 봐! 대신 네가 곤란하지 않도록 편들어 줄게. 그러니 너도 내 일 방해하지 마.”

양준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

“응. 알았어. 말 잘 들을 게.”

동경연은 병아리가 쌀을 쪼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양준은 하는 수 없이 고개를 저으며 서신을 작성했다.

*동씨 약방, 동경한이 한창 노발대발하고 있었다.

“경연이가 사라졌다고? 어떻게 없어질 수가 있어? 너희들은 다 뭐 하는 놈들이야? 인간이 몇인데? 눈 깜짝할 새에 사라졌다고?”

동씨 가문 제자들은 동경한의 호통에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저희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고요. 뭐 우리 실력이 대단한 것도 아니고, 약왕곡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아가씨가 또 얼마나 쏘다니는데요. 아니, 인파 속에 묻혀서 종적을 감춘 걸 저희가 무슨 방법이 있겠습니까!’

모두들 마음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감히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다.

“뭘 멍하니 보고만 있어. 다들 바보라도 된 거야? 당장 나가서 찾지 못해! 경연이를 찾지 못하면 돌아오지도 마. 알아서 사라지란 말이다. 쓸모라곤 없는 것들.”

동경한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고함을 질렀다.

제자들은 사면을 받은 죄인들처럼 서둘러 뿔뿔이 흩어졌다.

‘어이쿠, 아가씨, 어서 돌아오십쇼. 아니면 우리 다 죽게 생겼습니다.’

“도련님, 약왕곡에서는 무력을 엄금합니다. 아가씨에게 위험한 일이 생길 일은 없을 겁니다. 곧 돌아오실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풍운쌍위 중 한 명이 위로했다.

“내가 어찌 걱정을 안 하겠어. 녀석이 세상이 무서운 줄도 모르고, 며칠 전에도 사고를 쳤는데. 그러고도 또 도망치다니.”

동경한이 한탄하며 말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여동생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풍운쌍위는 서로 마주 보고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