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247화 (247/853)

제 247장. 차기 약왕곡 곡주

동경한이 한창 화를 내고 있는데, 문밖에서 심부름꾼이 들어와 굽실굽실하며 물었다.

“동씨 공자님이십니까?”

동경한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소.”

“안녕하십니까. 어떤 분이 공자님께 서신을 보내서 전해 드리러 왔습니다.”

심부름꾼이 아부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동경한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이리 주시오.”

심부름꾼은 서둘러 서신을 건넸다.

동경한은 부랴부랴 서신을 뜯고는, 다 읽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풍운쌍위 중 한 명이 서신을 전한 심부름꾼에게 은전을 줘 내보냈다. 그는 동경한이 미간을 잔뜩 좁히고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

“아가씨의 행방을 알아내셨습니까?”

동경한은 이마를 문지르며 숨을 크게 내쉬고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양준에게 간 듯해.”

“양 공자에게 가셨다면 걱정 안 하셔도 되겠네요.”

*객잔, 양준은 동경연을 위해 바로 옆에 방 하나를 더 마련했다.

양준이 세심하게 챙겨주자 동경연은 금세 양준에게 호감을 느꼈다.

“오라버니 최고!”

이튿날, 동경한이 양준을 방문했다. 양준은 자초지종을 간단히 설명했다. 동경한도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동경연이 이렇게 협박까지 하자, 그도 감히 억지로 끌고 가지 못했다. 양준의 신분이 밝혀지는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었다.

동경한은 어쩔 수 없이 여동생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일주일이 지나갔다.

그동안 양준은 대부분 수련에 시간을 투자했다. 약왕곡은 무인들이 많긴 했지만, 천지의 영기가 넘쳐 수련하기에 좋은 장소였다.

가끔씩 동경연에게 끌려 나가 놀기도 했다. 그리고 동경연이 연단사인 것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등급이 높지 않았고, 갓 걸음마를 뗀 정도의 범급 중품밖에 안 되었다.

그녀는 동씨 가문의 큰아가씨로서 어려서부터 호의호식하였고, 가문에서도 막대한 인력과 물력을 동원해 그녀를 양성했다. 원하는 단약이 있으면 그냥 가문에 요구하면 되는데 그녀가 연단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때문에 그녀는 연단술을 직접 경험해 본 적은 거의 없었다.

그녀에게 있어 약왕곡은 천당과도 같은 곳이었다. 이곳의 모든 것이 그녀를 매료시켰다.

어느 날,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양준의 방문이 벌컥 열렸다. 동경연이 흥분한 채로 뛰어 들어왔다.

“오라……!”

“오라는 무슨 오라?”

양준은 그녀를 노려보며 말문을 막았다.

동경연은 혀를 홀랑 내보이더니 재빨리 말투를 바꿔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양 호위, 나랑 어디 좀 가줘야겠다.”

그녀는 동씨 가문 낭자이고, 동씨 가문과 양씨 가문은 인척 관계가 있었다. 만약 누군가 동경연이 양준을 부르는 호칭을 들으면 금방 양준의 신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때문에 둘은 상의를 거쳐 양준이 동경연의 호위인 것처럼 위장하기로 했다.

명문 세가의 자제들이 외출할 때면 곁에 하인 몇 명을 두는 것은 예삿일이므로 이런 호칭이 합당했다.

양준은 바깥의 하늘빛을 보고 덤덤하게 말했다.

“아가씨, 혼자 가시죠. 오늘은 제가 할 일이 있어서.”

동경연은 화내지 않고 가볍게 웃었다.

“양 호위, 그곳에 들어가기 싫어?”

양준은 깜짝 놀랐다.

“오늘이 그 때인가요?”

며칠간 양준은 줄곧 동경연에게 단성봉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나 동경연은 자세히 말해 주지 않고, 그저 시간이 되지 않았다고만 했다. 오늘 그 일을 말하자 양준은 일말의 희망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갈 거야, 말 거야?”

동경연은 의기양양해서 양준을 바라보았다.

양준은 재빨리 침대에서 내려왔다.

*약왕곡 마을에서 동경연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인파 속을 누볐다. 양준은 경장(勁裝)을 입고 뒷짐을 진 채, 진중한 표정으로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 모습은 영락없는 동경연의 시종이었다.

마을 동쪽 끝에 이르자 동경연은 조그만 얼굴이 금세 벌겋게 달아올랐고, 흥분과 긴장감에 휩싸였다. 양준은 심지어 그녀의 심장 박동 소리마저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깊이 숨을 들이쉬고 손으로 가슴을 부여잡은 채, 한참이나 지나서야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양준이 이리저리 둘러보니 이곳에는 많은 이들이 모여 있었다. 게다가 이들의 옷, 가슴 쪽에는 독특한 꽃잎이 수놓아져 있었다. 단엽짜리도 있고, 쌍엽짜리도 있었으며, 또 금⋅은⋅백 세 가지 색상이 있었다.

이들은 뜻밖에도 모두 연단사였다.

지급 중⋅하품의 연단사가 가장 많고, 범급의 연단사도 꽤 있었다. 이곳에는 적어도 이백여 명의 연단사들이 모여 복작거렸다.

동경연은 어디에선가 은빛의 단엽화 연단사 표식을 찾아내 가슴 쪽에 꽂고는, 가슴을 쭉 폈다. 만천하에 자신이 범급 중품 연단사라고 알리고 싶은 모양이었다.

“무슨 일을 꾸미는 거야?”

양준은 어렴풋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기다려 봐! 들어갈 수 있는지는 이번 기회를 봐야 해.”

동경연은 진지한 표정을 하고서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두 눈을 감은 채 천천히 신식을 펼쳤다. 근처에 있는 연단사들의 속삭임이 귀에 들려왔다.

얼마 안 지나, 그의 얼굴빛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뜻밖에도 이들은 모두 약왕곡 운은봉(雲隱峰)의 장로 소부생(蕭浮生)의 제자로 들어가 연단술을 배우기 위해서 이곳에 모인 것이었다.

양준은 눈을 뜨고 동경연을 바라보며 물었다.

“스승이라도 모시려고?”

동경연은 애교 있게 웃으면서 말했다.

“당연하지. 소 대사님께서 제자를 받으신다잖아. 흔치 않은 기회야. 이번에 가출한 것도 바로 오늘을 위해서야.”

그러고는 또 불쌍한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양 호위, 설마 우리 오라버니한테 얘기할 건 아니지?”

“다른 건 관심 없고, 이게 내 목적과 무슨 상관이지?”

“운은봉이야. 네가 가려는 곳에서 멀지 않아. 만약 네가 운은봉에 들어갈 수 있다면…….”

동경연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양준은 마음이 움직였다. 운은봉에 들어갈 수 있다면 단성봉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찾을 수 있었다. 둘은 산 두 개를 사이 두고 있었다.

“하지만 난 연단술을 전혀 몰라.”

동경연은 가볍게 웃었다.

“소 대사님이 제자를 받으실 때, 분명 현묘한 기준이 있을 거야. 설령 네가 연단을 못해도 자질만 있다면 기회가 있을 수도 있어. 양 호위… 내가 널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데. 오라버니한테 비밀로 해줘, 응? 그리고 내가 소 대사님의 제자가 되면 가문의 명예를 빛내는 거잖아. 설령 아버지께서 나중에 아신다 해도 그냥 날 칭찬할 거야. 그러니 괜한 짓 하지 마.”

동경연은 양준의 팔을 가볍게 흔들며 말했다.

양준은 담담하게 말했다.

“먼저 들어간 다음에 다시 말해.”

“난 분명 통과할 수 있을 거야. 이날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거든. 두고 봐. 근데 양 호위가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

동경연은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양준은 슬며시 고개를 저었다.

동경연이 말한 방법이 이런 방법이었다니, 정말 뜻밖이었다. 방법은 좋았지만 양준은 자신이 없었다.

‘연단을 한 번도 접해 보지 못한 내가 시험을 통과할 수 있을까?’

하지만 지금은 울며 겨자 먹기로 한번 시도해 볼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자신이 손해 보는 일도 아니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더욱 많은 연단사들이 이곳에 모여들었다. 모두 동경연과 마찬가지로 긴장하면서도 기대감에 차 있었다. 심지어 경건한 표정을 비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운은봉 소부생에 대한 연단사들의 존경심을 알 수 있었다.

양준은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적지 않은 일들을 알게 되었다.

소부생은 약왕곡 십대 장로 중에서 으뜸이었다. 그의 연단술은 약왕곡의 곡주보다도 훨씬 뛰어나며 세상에 몇 안 되는 현급 상품에 이른 연단사였다.

현급 위에는 바로 영급이었다. 이는 아무도 도달한 적이 없는 등급이었다.

소부생은 평생 연단술에 심취해 있었다. 약왕곡의 한 산봉우리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아직 제자를 들인 적이 없었다. 또한 결혼도 하지 않고 평생을 연단술에 바쳤다.

연단계에서 소부생은 비할 데 없는 위엄과 명망을 가지고 있었다.

몇 달 전, 약왕곡에서 소부생이 제자를 거두려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세상이 술렁였다. 수많은 연단사들이 소부생의 제자가 되어 연단술을 전수받으려고 약왕곡으로 몰려들었다.

중도 8대 가문과 일류 세력들은 더욱이 가문 중의 연단사를 보내려 했으나 모두 소부생에게 거절당했다.

오늘 약왕곡 마을에서는 오직 소부생만을 위한 시험이 마련되었다. 그리고 시험에 통과한 자만이 운은봉에 입문할 수 있었다.

소부생은 제자를 거두는 데 딱히 규정이 없었다. 어디에서 왔든지, 어떤 세력에서 왔든지, 자질만 있으면 모두 그의 연단술을 배울 수 있었다.

단, 나이가 스물다섯을 초과하면 안 되었다.

그러므로 이곳에 모인 이들은 모두 젊은 연단사들이었다. 어떤 이들은 운은봉에 입문하기 위해 연단 대회마저 포기했다.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다.

양준은 동경연의 뒤에 서서 주위를 경계하는 한편, 몰래 살펴보았다.

해가 중천에 뜨고 인파의 소동이 전해지더니 마침내 약왕곡의 제자들이 나타났다.

약왕곡의 제자들은 소부생의 제자가 아니라, 다른 봉의 연단사로서 부탁을 받고 시험을 감시할 뿐이었다.

앞쪽의 멀지 않은 곳에는 미리 준비해 놓은 시험대가 있었다. 시험대는 높이와 너비가 모두 십여 장에 달했다. 시험에 참가하러 온 연단사들은 모두 시험대 주위를 둘러쌌다.

약왕곡의 제자 넷이 시험대에 올라갔다. 앞장선 이는 중년 남자로 가슴 쪽에 금빛 삼엽화가 수놓아져 있었다. 그는 손에 커다란 약 항아리를 들고 위풍당당하게 걸어 나왔다.

여기저기서 감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약왕곡의 진택(秦澤)이야. 서른다섯밖에 안 된 나이에 천급 상품 연단사가 됐다며.”

“약왕곡의 일대 귀재로 차기 약왕곡 곡주라고 하던데.”

“쉿, 조용…….”

진택이 시험대에 올라 커다란 약 항아리를 탁상 위에 놓았다. 그의 뒤를 따르던 약왕곡의 제자 셋도 걸음을 멈추었다.

진택은 인파를 휙 둘러보고는 공수했다.

“여러분, 오늘 소 사숙께서는 제자를 받기 위해 관문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감찰을 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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