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8장. 첫 번째 관문
연단사들의 특수하고 중요한 지위로 말미암아 이들은 모두 눈이 높았다. 게다가 오랫동안 단약과 약 가마만 상대하다 보니 대부분은 세상 물정을 잘 모르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진택은 연단사 중에서도 특출난 천재로서 이런 고고함과 냉담함이 더욱 뚜렷했다.
그는 간단하게 몇 마디 하고 나서 굳은 얼굴로 커다란 약 항아리를 열었다. 이윽고 기이한 약 향기가 장내에 가득 퍼졌다. 코로 들이마시자 모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시험은 간단합니다. 이것은 소 사숙께서 오늘 시험을 위해 직접 만드신 단약입니다. 이 단약 한 알을 먹고 약 기운을 흡수한 다음, 몸에 이상이 없는 것이 확인되면 관문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그럼 시작하십시오.”
진택은 말을 마치고 한쪽에 비켜섰다. 약왕곡의 젊은 제자 세 명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와 냉담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내려다보았다.
몇백 명의 연단사들은 시험대 아래에 멍하니 서 있을 뿐, 용감하게 선두에 나서는 이는 없었다.
진택은 간단하다고 말했지만, 모두들 알고 있었다. 소부생의 시험이라면 뭔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다들 남이 앞장서기를 기다리며 누구도 나서려 하지 않았다.
약왕곡의 제자들도 조급해하지 않았다. 높은 시험대에 떡 하니 서서 조용히 기다릴 뿐이었다.
한참이나 지나서야 누군가 한마디 물었다.
“혹시 무슨 단약인지 알 수 있을까요?”
약왕곡의 제자 한 명이 냉소하며 대답했다.
“당연히 독단이죠!”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다들 소부생의 시련을 쉽게 통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독단으로 시험하는 것은 사람들의 예상을 크게 벗어났다. 목숨은 하나뿐인데 만약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고 여기서 죽으면 너무 억울한 게 아닌가.
진택이 담담하게 말했다.
“독단이지만 생명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닙니다. 단, 자질이 부족한 분이라면 복용 후, 몇 달간 앓아 누울 수도 있습니다.”
치명적이지 않다는 말에 많은 이들의 마음이 또 한번 동요되었다. 소부생은 연단계 거장으로서 사람 목숨을 해할 리가 없었다.
독단을 이곳에 놓아둔 것은, 아마 혼란한 틈을 이용하려는 이들을 물리치기 위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 찾아온 이는 거의 자신감이 넘치는 이들뿐이었다. 잠시 고민한 끝에, 누군가 시험대에 뛰어올랐다.
“시험해 봐야지.”
“나도.”
누군가 앞장서자 많은 이들이 호응했다.
곧이어 열댓 명이 시험대 위로 올라갔다.
“가져가십시오.”
약왕곡의 제자가 손짓으로 가리켰다.
그들은 각자 앞으로 나가 약 항아리에서 단약 한 알을 꺼내 입에 넣었다.
“여러분, 약 기운을 흡수하십시오.”
단약을 복용한 십여 명은 서둘러 가부좌를 틀고 앉아 각자의 공법을 돌렸다.
시험대 아래의 몇백 명의 연단사들은 모두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살펴보았다. 모두들 어떠한 현상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
겨우 몊 분이나 지났을까, 독단을 복용한 연단사 중 한 명이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더니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시험대 아래쪽에 있던 이들이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누구도 소부생이 제련한 독단의 약 기운이 이처럼 강력할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사람들의 놀라움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위쪽에서 뿡뿡뿡 소리가 연이어 울렸다. 곧이어 고약한 악취가 바람을 따라 풍겨 왔다.
그 연단사가 방심하다 보니 연이어 요란하게 방귀를 뀌었던 것이다.
가까이 있던 사람들은 이를 미처 눈치채지 못하고, 그 악취를 코와 입으로 들이켰다가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토할 뻔했다.
연단사의 창백하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올랐다. 이번에는 약 기운 때문이 아니라 부끄러워서였다. 많은 이들이 보는 앞에서 이렇게 구린 방귀를 연속 세 번이나 뀌다니.
수많은 안타까움, 혐오감, 경멸이 어린 눈길들이 그 연단사에게로 향했다. 연단사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서둘러 일어서더니 시험대에서 뛰어내려 도망쳤다.
“능력도 안 되면서 소 대사의 시험에 참여하다니. 주제 파악을 못 하네.”
“완전 망신살이 뻗쳤구먼!”
“어느 가문 연단사지? 소문 나면 얼굴이나 들고 다닐 수 있겠어?”
등 뒤에서 끊임없이 쏟아지는 야유에 그 연단사는 잠시도 머물지 못하고 눈 깜짝할 사이에 인파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사람들이 그 연단사의 추태에서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시험대에서 ‘쿵’ 소리가 들려왔다. 시선을 돌려 보니 독단을 복용한 두 연단사가 뒤로 벌렁 나자빠져 있었다. 그들은 눈을 부릅뜬 채, 좌선하는 자세를 유지하고 인사불성이 되었다.
약왕곡의 젊은 제자 세 명은 서로 마주 보더니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고는 두 사람 곁으로 걸어가 그들을 아래쪽으로 걷어차 버렸다.
그들의 태도는 냉담했고, 표정은 거만했다. 마치 발로 찬 것이 사람이 아닌, 물건인 듯했다.
그러나 누구도 감히 그들을 비난하지 못했다. 사전에 이미 모두에게 이는 소부생이 직접 제련한 독단이라고 알려주었기 때문이었다. 올라와서 복용할 담력이 있으면 그에 따른 결과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
“죽진 않았습니다.”
곧 누군가 다가가서 둘의 숨결을 느껴 보았다. 둘은 죽지 않았지만 웬 영문인지 꼼짝 않고 움직이지 못했으며, 아무리 불러도 깨어나지 못했다.
“윽, 뜨거워!”
또 한 명의 연단사가 벌떡 일어섰다. 밖으로 드러난 그의 살갗은 핏빛이 되어 뜨거운 열기를 뿜었고, 정수리에서는 열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옷을 찢었다. 얼마 안 돼 웃통을 다 드러냈지만, 조금도 열기가 해소되지 않은 것처럼 여전히 옷을 찢고 있었다.
동경연은 얼굴에 홍조를 띠고 얼른 손으로 눈을 가렸다.
아래쪽에서 무인 몇 명이 시험대 위로 올라가더니 새파랗게 질린 얼굴빛으로 그 사람을 끌고 내려갔다. 아마 그 연단사와 한 가족으로, 그의 추태를 가만히 보고 있을 수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시작한 지 몇십 분이 채 안 되어, 첫 번째 독단 시험 도전자들이 전원 실패했다.
사람은 각자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중독된 다음의 증상도 각자 달랐다. 이처럼 처참한 상황에도 누구 하나 운은봉의 제자가 되려는 다짐을 접지 않았고, 오히려 점점 더 열정이 넘쳐났다.
소부생이 만든 독단 한 항아리는 분명 똑같은 단약일 것이다. 그러나 과연 대사의 솜씨답게 사람마다 서로 다른 약 기운을 나타냈다. 이 때문에 독단을 삼킨 연단사들은 소부생의 연단 솜씨가 너무나 현묘해 일반인들이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첫 번째 도전자들이 실의에 빠져 퇴장한 뒤, 또다시 서른 명이 시험대에 올라갔다.
시간이 흐르자, 누군가는 독단에 중독되어 쓰러지거나, 정신을 잃거나, 아니면 각종 추태를 보였다. 이백여 명이 시험대에 올랐지만, 누구 하나 소부생이 설치한 관문을 넘지는 못했다.
현장의 분위기는 점점 가라앉았다.
또 한 무리가 독단에 중독되었다. 그중 한 명은 중독되어 온몸이 돌처럼 굳었지만, 정신만은 또렷해 소리를 질렀다.
“인정 못 합니다. 인정 못 해요. 어찌 독단 한 알로 자질을 판단한답니까. 운은봉에 가서 소 대사를 뵙게 해주십시오. 소 대사님, 제게 기회를 주십시오.”
“끌어내!”
진택이 차갑게 소리쳤다.
약왕곡의 제자들은 냉혹한 표정으로 그자에게 걸어가더니 곧장 시험대 아래로 그를 내던져 버렸다.
그자는 여전히 큰소리로 외쳤다.
“소 대사님, 저를 당신의 후계자로 뽑아 주십시오.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다들 미쳤군.”
양준은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연신 고개를 저었다.
동경연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소 대사님이 연단계에서 얼마나 명망 높이신 분인지 몰라서 그래. 저런 추태를 보여도 조롱하는 이가 없잖아.”
양준은 고개를 돌려 보았다. 그자를 비웃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대다수는 담담한 표정이었고, 적지 않은 이들은 동정하는 눈치였다.
“그분은 우리 연단사들에게 신적인 존재야. 고생 좀 하고, 망신 좀 당하면 어때? 제자만 될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어.”
동경연은 가볍게 붉은 입술을 깨물었다. 얼굴에는 긴장감과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정말로 독단을 먹을 셈이야? 너도 도전자들 봤잖아. 먹자마자 쓰러지는 건 그나마 괜찮은 편이지. 만약 관문을 넘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옷을 벗어 젖히면…….”
양준이 웃으며 말했다.
동경연의 예쁜 얼굴이 곧 창백해졌다.
“음, 여기 모인 이들은 모두 젊은이들이군. 아마 네가 옷을 벗어 젖히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할 거야. 동씨 가문 낭자가 옷을 벗고 다닌다는 소문이 회자되면 어쩌려나?”
“그 정도는 아니겠지…….”
“아니면 사람들 앞에서 방귀를 뀌면…….”
“그만해!”
동경연이 당황해하며 말했다.
어떤 추태든지 어린 소녀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일단 그런 일을 겪게 되면 평생 마음속 그늘로 남을 것이고, 앞으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을 것이다.
동경연은 양준을 흘겨보고는 작은 주먹을 휘둘렀다.
“날 그냥 오라버니한테 보내려는 속셈이지. 하지만 난 꼭 시험 볼 거야! 이날을 위해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준비했는데.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순 없어!”
곧이어 목소리를 낮추더니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만약 내가 정말 추한 꼴 보이면, 그때는 바로 끌어내 줘…….”
양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보아하니 동경연은 시험대에 오르려고 굳게 마음을 먹은 듯했다. 이제 와서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이때, 인파 속에서 술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급 상품 연단사야! 왕씨 가문 출신 연단 천재 왕제인(王齊人) 아니야? 저 사람도 왔군.”
“왕제인이라면 소 대사의 관문을 통과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 이제 좀 볼만하겠군.”
“저거 봐. 웅(熊)씨 가문 출신 지급 중품 연단사도 있네.”
“저기 저 사람은 상(常)씨 가문 지급 중품 연단사야.”
“명문 세가의 연단사들도 나섰네.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겠군.”
이번에 시험대에 올라간 연단사들은 모두 명문 세가 출신의 젊은 연단사들이었다.
방금 전까지 올라갔었던 이들은 모두 작은 지역에서 온 연단사들이었다. 관문을 통과한 이가 없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명문 세가 출신 연단사들이 시험대에 오르자, 모두들 기대에 찬 눈빝으로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