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249화 (249/853)

제 249장. 전원 실패

사람들이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시험대 위까지 전해졌다. 지급 중, 상품 젊은 연단사 열댓 명은 모두 의기양양한 표정을 드러냈다.

그들은 매우 교양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험대에 올라 먼저 진택에게 제자로서의 예를 올린 다음, 차례로 약 항아리 앞에 가 섰다.

“왕 형, 먼저 올라가. 우리 중에서 왕 형만이 지급 상품 연단사잖아.”

상씨 가문 연단사는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채 손을 내밀어 청했다. 다른 이들도 맞장구를 쳤다.

왕제인은 빙그레 웃고는 공수하며 말했다.

“그럼 먼저 올라가마.”

왕제인은 말을 마치고 뒤돌아 운은봉 쪽을 향해 예를 올렸다. 그런 다음에야 독단 하나를 꺼내 아무렇지도 않게 입 속에 넣고는 한쪽에 걸어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약 기운을 흡수했다.

그의 이런 행동은 관문을 통과할 자신감이 있음을 보여준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운은봉 쪽을 향해 예를 올리지 않았을 터였다.

그곳은 소부생이 거주하고 있는 산봉우리였다.

약왕곡의 세 제자들은 그 모습을 지켜보고 모두 코웃음을 쳤다.

‘지급 상품 연단사가 뭐가 대수라고! 소 사숙께서 제련한 독단은 타고난 자질이 없으면 천급 연단사가 와도 해독할 수 없을걸.’

‘왕제인은 정말 자신이 대단한 줄 아는 모양이군!’

셋은 서로 마주 보고 속으로 냉소를 지었다. 그들은 조용히 왕제인의 추태를 지켜보려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전자들이 모두 독단을 복용하고 자리에 앉았다.

시험대에서는 도전자들이 약 기운을 해소하고, 아래쪽에서는 구경꾼들이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다. 하나같이 목을 길게 빼들고 지켜보는 것이 본인이 도전하는 것보다 더 긴장한 듯했다.

역시 명문 세가 출신 연단사들은 달랐다. 하나같이 연단의 조예가 깊고 자질이 뛰어났다. 이전 도전자들은 가장 길어 봤자, 고작 십 분쯤 버텼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번 도전자들은 족히 이십 분은 지난 뒤에야 서서히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지급 하품 연단사가 입에 흰 거품을 물고 기절했다. 뒤이어 어떤 이는 시험대에서 뛰쳐나갔다. 그리고 멀리서 방귀 소리가 들려왔다.

믿고 있던 명문 세가 출신 연단사들마저 잇따라 문제가 생겼다. 그 결과에 모두들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명성을 거저 얻은 게 아니었다. 소부생이 설치한 관문이 모두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어려운 것이었다.

대략 사십 분의 시간이 지나자 시험대에는 왕제인만이 남아 있었다. 다른 도전자들은 모두 퇴장했다.

수많은 이들이 긴장한 눈초리로 왕제인을 바라보았다. 만약 왕제인마저 이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누군들 통과할 수 있을까.

한참 지나 왕제인이 몸을 움찔했다. 이내, 그의 미간에 검은 기운이 옅게 감돌았다.

도전이 시작된 뒤부터 줄곧 단정하게 앉아만 있던 진택의 눈동자에 빛이 반짝이더니 왕제인의 반응을 뚫어지게 지켜보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검은 기운은 더욱 뚜렷해졌다.

별안간 검은 기운이 다시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대신 왕제인이 왈칵 검은 피를 토해 냈다.

사람들 속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지금까지 이런 반응을 보인 이는 처음이었다. 관문을 통과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왕씨 가문의 무인 몇 명이 서둘러 시험대에 올라가 왕제인 옆으로 다가갔다.

왕제인은 손을 내저으며 간신히 몸을 일으키더니 일말의 기대를 품고 진택을 바라보았다.

진택이 가볍게 탄식하며 말했다.

“실패다.”

왕제인의 얼굴빛이 잠시 어두워졌다가, 이내 표정을 가다듬고는 단념하지 않고, 공수하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통과한 것입니까?”

진택은 그나마 그가 지금까지 시험을 치른 연단사 중 뛰어난 인재인 것을 감안하여, 인내심을 가지고 한마디 더 해주었다.

“마지막 고비만 넘으면 통과할 수 있었다. 아쉽구나.”

“한 수 배우고 갑니다.”

왕제인은 쓴웃음을 짓고는 시험대에서 뛰어내렸다.

또다시 모두 실패했다.

왕제인 같은 연단계 귀재도 소부생의 관문을 통과하지 못했다. 이는 모든 이의 예상을 벗어난 결과였다.

왕제인이 내려간 뒤, 현장은 한동안 고요했다. 누구도 감히 시험대에 오르지 못했다. 그 누구도 소부생이 설치한 관문을 통과할 자신이 없었고, 시험대에 올라 추태를 보일 용기도 없었다.

약왕곡의 제자들은 시종일관 차분했다. 시험대에 오르는 이가 없어도 그들은 서서 기다렸다.

양준은 동경연을 힐끗 보았다. 그녀는 두 손을 꽉 쥐었다 풀었다를 끊임없이 반복했다. 극도로 긴장한 모습이었다. 얼굴에는 도전하려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자신감이 부족한 듯했다.

‘지급 상품 연단사도 실패했어. 범급 중품인 내가 성공할 수 있을까?’

“어떤 기회는 놓치면 평생 후회할 거야.”

양준이 담담하게 말했다.

동경연은 몸을 흠칫 떨더니 고개를 돌려 양준을 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 깊은 고민의 빛이 스쳐 지나가더니, 곧이어 눈빛이 단호해졌다. 그녀는 깊게 심호흡을 하고는 말했다.

“그래. 올라가자!”

양준은 슬며시 웃으면서 동경연과 함께 시험대에 올랐다.

누군가 또 도전하자 아래쪽에서 환호성이 터지고, 응원하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동경연은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곧이어 누군가 가슴 쪽 표식을 보고 그녀의 등급을 알게 되었다.

“고작 범급 중품 연단사군…….”

“저렇게 낮은 등급으로는 아마 또 망신을 당할 거야.”

“불쌍하군. 계집애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추태를 보이면 앞으로 낯을 들고 다닐 수나 있겠어?”

동경연은 그 말들을 들으면서 붉은 입술을 꼭 깨물고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약왕곡의 젊은 제자 세 명은 보기 드물게 그녀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름다운 여인은 어디를 가도 호감을 얻었다.

“낭자, 자, 시작하죠.”

동경연은 가볍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약 항아리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독단 한 알을 꺼내든 채, 뒤돌아 양준을 쳐다보며 의견을 구했다.

양준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 내가 옆에 있으니까.”

동경연이 만약 정말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양준은 그녀를 서둘러 챙겨 내려갈 생각이었다. 그녀가 많은 이들 앞에서 추태를 보이게 할 수는 없었다.

시험대에는 약왕곡의 제자들을 제외하고 동경연과 양준 둘뿐이었다. 게다가 양준의 차림새를 보면 동경연의 시종임을 알 수 있었다. 약왕곡의 제자들은 양준을 시험대에서 내쫓지 않았다.

동경연은 독단을 입 속에 넣고 꿀꺽 삼킨 다음에야 한쪽으로 걸어가 가부좌를 틀고 앉은 채, 약 기운을 해소하기 시작했다.

양준은 두 손을 뒷짐 지고 꼿꼿이 그 자리에 서서 경계 어린 눈초리로 동경연을 지켜보았다.

십 분의 시간이 흐르고, 동경연은 아무 반응도 없었다.

이십 분의 시간이 지났지만, 그녀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양준은 저도 모르게 눈을 가늘게 뜨고 몰래 신식을 펼쳐 동경연의 몸을 훑어보았다. 체내의 원기가 빠르게 흐르면서 경맥 내의 찌꺼기를 태우고 있었다. 이런 찌꺼기들은 독단에 함유된 독소였다.

“어, 쟤 좀 괜찮은데. 꽤 오래 버티네!”

아래쪽에서 누군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전에 도전했던 몇백 명의 도전자 가운데서 명문 세가 출신 연단사 몇 명을 제외하고, 이처럼 오랫동안 버틴 사람은 거의 없었다. 게다가 이전에 도전했던 범급 연단사들은 고작 몇 분도 버티지 못했다.

동경연의 활약은 모든 이의 이목을 끌었다.

“어떻게 버티는 거지? 연단사 체질인가? 왕제인 못지 않군.”

“나 쟤 알아. 동씨 가문 동경연이야.”

“뭐, 동씨 가문 낭자라고?”

사람들이 놀라는 가운데, 동경연의 미간에 검은 기운이 옅게 나타났다. 검은 기운은 곧 짙어지더니 빠르게 그녀의 체내에 스며들며 사라져 버렸다. 대신 동경연이 입을 벌려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검은 기운을 토해 냈다.

동경연은 검은 기운을 토해 내고, 놀란 듯이 눈을 떴다.

진택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는 줄곧 굳어 있던 얼굴에 웃음꽃을 피우며 연신 칭찬했다.

“좋아, 좋아. 드디어 소 사숙의 시험을 통과한 이가 나왔군.”

‘합격이라고?’

시험대를 바라보던 수백 명의 사람들은 지금 상황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현장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각지에서 온 삼백여 명의 연단사들이 시험대에 올라가 도전했다. 그중에는 자질이 뛰어난 귀재들도 있었고, 지급 상품 연단사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영문도 모른 채 실패하고 말았다. 그런데 지금, 범급 중품의 연단사가 어떤 상처도 입지 않고 관문을 통과한 것이다.

동경연 본인도 깜짝 놀랐다. 그녀는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놀란 표정으로 진택을 바라보았다.

양준은 가볍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아가씨, 선배님께서 대사님의 시험에 통과하셨다고 하네요.”

“정… 정말?”

동경연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듯했다.

진택은 좀 전까지 보이던 냉엄한 표정은 찾아볼 수 없었고,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친절하기 그지없었다.

“시험에 통과한 걸 축하하네. 앞으로 소 사숙의 제자가 되겠군. 음… 그럼 사매라고 부르마.”

동경연은 한참 동안 멍하니 있었다.

그러고는 벌떡 일어나더니 기쁨에 겨워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고, 금세 눈시울이 붉어졌다.

동경연은 한참 동안 쭈뼛쭈뼛하다가 그제야 진택에게 인사를 건넸다.

“경연이 진 사형께 인사드립니다.”

진택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소 사숙께서 널 제자로 들이는 건 우리 약왕곡의 행운이다.”

두 사람이 인사를 나누자 분위기는 금세 훈훈해졌다. 아래쪽에 있던 이들은 이 광경에 모두 어안이 벙벙해졌다.

약왕곡의 진택이 언제 이렇게 친절하게 누구를 대한 적이 있었는가. 매번 단약 제련을 부탁할 때면, 그는 항상 뚱한 얼굴로 마치 세상 모두가 그에게 빚을 진 것처럼 굴었다.

그런데 지금 진택은 뒤쪽 어금니가 다 드러나도록 웃고 있었다. 원래 그가 웃을 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그의 눈에 차지 않았을 뿐이었다.

“사매가 소 사숙의 시험을 통과했으니, 이제는 우리 약왕곡의 제자야. 만약 다른 일이 없으면 이쪽 일이 마무리되는 대로 나와 함께 약왕곡에 갈 수 있다. 만약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서둘러 처리하렴.”

진택이 웃으며 말했다.

동경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약왕곡에 입문하려면 우선 동씨 가문에 알려야 했다. 그러나 일이 이 정도까지 진행된 이상, 동경한도 그녀를 저지하지 않을 것이다.

약왕곡에 들어가는 것은 동씨 가문의 체면을 세워주는 일이었다. 세상의 모든 세력이 약왕곡과 관계를 맺으려 했다. 그런데, 동씨 가문 낭자가 약왕곡 소 대사의 직속 제자가 되었다. 이는 누구도 견줄 수 없는 우세를 차지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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