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251화 (251/853)

제 251장. 운은봉

동경연은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자신의 합격 소식을 동경한에게 말해 주었다.

동경한은 뚱한 얼굴로 그녀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으며 꾸짖었다.

“소란스럽긴! 이런 큰일은 미리 나와 상의했어야지.”

동경연은 머리를 감싸 쥔 채 여전히 방글방글 웃고 있었다.

뒤따라오던 진택이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동경한은 얼굴빛을 가다듬고 인사를 건넸다.

“진 선배님을 뵙겠습니다.”

“음. 동 공자, 경연이는 이미 사숙의 시험을 통과했기에 약왕곡의 제자이자 소 사숙의 제자이며, 나의 사매이기도 합니다. 여전히 동씨 가문의 사람이긴 하나, 누구도 함부로 경연이를 때릴 수는 없습니다.”

진택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동경한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진택은 계속해서 그를 꾸짖었다.

“연단사는 고귀한 직업입니다. 창과 몽둥이를 다루는 무인들과는 다르죠. 두뇌가 중요합니다. 아시겠죠? 그런데 머리를 쥐어박으면 어쩌자는 겁니까? 사매는 연단의 귀재입니다. 정말로 머리를 다치기라도 하면 당신이 그 손실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소 사숙과 약왕곡의 노여움을 당신이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동경한은 진택의 호된 꾸지람에 말문이 막혔다.

진택은 가볍게 콧방귀를 뀌며 말을 이었다.

“날 선배님이라고 불렀지요? 경연이는 이제부터 내 사매가 되었으니 서열로는 당신보다 높습니다. 어찌 윗사람의 머리를… 이 정도 도리쯤은 알고 계시겠죠?”

동경한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니, 그냥 인사만 하고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약왕곡에서 식구를 싸고도는 것은 알겠지만, 그… 그래도 내 누이동생이잖아. 이젠 꾸지람도 못 한단 말인가? 이 정도로 식구 챙기는 건 또 처음 보네! 정식으로 입문하기도 전에 이 정도인데, 정말 제자가 되면 아주 큰일 나겠군.’

동경한은 가슴이 갑갑하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했다. 진택이 누이동생을 이 정도로 두둔하고 나서는 것을 보니 약왕곡에 들어가도 크게 고생은 하지 않을 것 같았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동경한은 고분고분 잘못을 시인했다.

그제야 진택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음, 동 공자도 교양이 없는 분 같지는 않군요.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으니 앞으로 주의하시면 됩니다.”

동경한은 억지 웃음을 지었다. 미소가 어찌나 굳었는지 우는 것보다 보기 흉했다.

진택은 동경연을 뒤돌아보며 말했다.

“사매, 할 말 있으면 빨리 하고 나오렴. 밑에서 기다리마.”

그는 말을 끝내고 바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진택이 올라온 것은 동경연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기 위해서였다.

진택이 떠난 뒤에야, 동경한은 이를 갈며 누이동생에게 말했다.

“어쭈, 이제 컸다는 거야? 동 선배님이라고 불러 줘?”

“아버지한테 말씀 잘 전해줘.”

동경연은 익살스럽게 웃고는 앞으로 걸어가 오라버니의 팔을 잡아 흔들며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동경한은 하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래. 아버지도 널 막진 않으실 거야.”

“응! 분명 자랑스러워하실 거야.”

동경연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동경한은 고개를 돌려 양준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약왕곡에 들어가면 조심해. 경연이한테 불똥 튈 일 없도록.”

이는 단성봉에 관한 일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알았어.”

양준이 대답했다.

*반 시진 뒤, 양준과 동경연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진택과 약왕곡의 제자들은 그들이 내려오자마자 약왕곡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약왕곡에는 큰 산봉우리 열두 개가 있었다. 운은봉은 그중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으며, 단성봉과는 산 두 개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일행은 산기슭에 이르자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산기슭에는 비석 하나가 세워져 있었고, 비석에는 ‘운은봉’이라는 세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비석 오른쪽 하단에는 작게 붉은색 글씨로 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양준은 시선을 고정한 채 들여다보였다.

‘함부로 들어오는 자는 죽는다!’

붉은색 글씨는 약왕곡의 강렬한 기세와 비범한 기백을 두드러지게 보여 주었다. 문 앞에 이런 위풍당당한 비석을 세울 수 있는 것은 약왕곡뿐이었다.

진택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동경연과 진택이 앞에서 나란히 걷고, 약왕곡의 세 제자가 그 뒤를 따랐다. 양준은 두 손을 뒷짐 진 채 맨 뒤에서 걸었다.

약왕곡의 젊은 제자들은 동경연을 숭배하듯이 바라보았지만, 양준에 대해서는 여전히 거들떠보지도 않고, 말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

연단사들은 모두 의사소통에 서툴고, 콧대가 하늘을 찌르는 이들이었다. 특히나 약왕곡의 연단사들은 더욱 그러했다.

동경연은 출신이 비범하고 타고난 미모를 지녔기에 당연히 그들의 관심을 받았다. 양준도 소부생의 시험을 통과해 운은봉에 입문할 자격은 주어졌지만, 그의 신분은 한낱 호위에 불과했다. 콧대 높은 이들이 그처럼 지위가 낮은 사람과 사귈 리 없었다.

그들이 말을 하지 않자, 양준 역시 말 한마디 없이 걸어가면서 몰래 주변을 살펴보았다.

동경연은 험한 산길에 들어서면서부터 참새처럼 재잘재잘 물었다. 그녀는 곧 마음속 성역으로 들어가 우러러 마지않던 고수를 만난다는 생각에 긴장하면서도 기대되었다.

진택은 말이 많지 않아, 거의 침묵하며 걸었다. 하지만 동경연의 물음에는 귀찮아하지 않고 일일이 자세하게 대답해 주었다.

둘의 대화에서 양준도 일부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운은봉에는 몇십 년 전부터 소부생 혼자 지내고 있었고, 그를 시중 드는 하인 두 명 외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두 하인도 수련을 거치지 않은 일반인이라고 했다.

소부생은 평생 연단에 심취해 결혼도 안 하고, 제자도 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 들어 생각을 바꿔 제자를 들이고, 본인의 모든 깨달음을 전수하려 했다. 그래서 오늘과 같은 시험이 있게 된 것이었다.

“사부님께서는 왜 마음을 바꾸신 거죠?”

동경연은 호기심이 일어 물었다.

그녀의 말을 듣고, 진택의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잠깐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사숙님의 뜻을 내가 어찌 알겠니. 나중에 네가 직접 여쭤 보거라.”

“네.”

운은봉 앞쪽은 별다른 점이 없었다. 온통 괴석이 들쑥날쑥 솟아 있고, 산림이 울창했으며 가끔 산짐승이 출몰했다. 그것도 모두 토끼 아니면 노루 같은 작은 산짐승들로, 어떤 위험도 없었다.

그러나 뒤쪽에 이르러서는 천지의 영기가 넘쳐흘러 가슴이 탁 트이고 기분이 상쾌해졌다. 산속에는 기이한 화초들이 많이 자라고 있었다. 각양각색의 화초들이 바람에 춤추는 모습은 참으로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약초가 정말 많네요. 훔쳐 가는 사람은 없나요?”

동경연은 길을 걷는 내내 산림을 지키는 이가 보이지 않자 궁금해서 물었다.

“누가 감히! 약왕곡의 약초를 훔쳤다간 구족이 멸할 텐데!”

진택이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동경연은 살기등등한 진택의 말에 혀를 홀랑 내밀었다.

산속에 심을 수 있는 약초들은 그리 귀중한 것이 아니었다. 이런 것 때문에 약왕곡에 밉보이는 것은 수지가 맞지 않았다.

반 시진 뒤, 그들은 산 정상에 이르렀다. 산 정상에는 대략 일고여덟 채 정도의 집들이 있었는데, 대부분은 새로 지은 집이었다.

소부생이 제자들을 위해 준비한 처소인 듯했다.

이곳에 이르자, 진택은 걸음을 멈추고 약왕곡의 세 제자를 돌아보았다.

“너희들은 여기서 기다리거라.”

세 명은 그 말을 듣자마자 낯을 붉히더니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사숙, 저희도 들어가고 싶은데요.”

“너희들은 왜?”

진택이 불쾌해하며 물었다.

그중 한 명이 얼굴에 동경의 빛을 띤 채 말했다.

“약왕곡에 입문한 이후로 멀리서 소 대사님을 딱 한 번 뵈었습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진택은 눈살을 찌푸린 채 잠깐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조용히 들어가. 사숙께서는 방해받는 걸 싫어하신다.”

“예, 절대 조용히 하겠습니다.”

세 명의 제자들은 금세 날 듯이 기뻐했다.

양준은 옆에서 이들을 지켜보았다. 세 사람의 표정에는 기쁨 외에도 경외심을 품고 있었다. 진택마저도 얼굴빛을 바르게 했다.

‘연단사들 마음속에서 소부생의 명성은 내 상상을 초월하는군. 약왕곡의 제자들도 그를 만나는 것을 영광으로 느낄 정도라니.’

진택의 인도 하에 일행은 일렬로 늘어선 집들을 향해 곧장 걸어갔다.

아직 가까이 가지도 않았는데, 맞은편에서 두 명의 아름다운 부인들이 걸어왔다. 둘 다 몸매가 풍만하고 아름다웠다. 옅은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들에게는 은은한 요염함과 단아함이 감돌고 있었다.

두 부인은 얼핏 보면 스물대여섯 남짓 되어 보였다. 그러나 사실은 둘 다 마흔이 넘는 나이였다.

그녀들은 25년 전부터 운은봉에 와서 소부생의 시중을 들었는데, 그때 그녀들의 나이가 열예닐곱 살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두 부인은 수련을 한 적이 없는 일반인이었지만, 여전히 젊음을 유지하고 있었고, 미모도 그대로였다. 심지어 평범한 무인들보다도 보양을 더 잘한 듯했다. 이 모든 것은 소부생 덕분이었다.

그녀들이 다가오자, 진택은 서둘러 공수하며 공손하게 말했다.

“신입 제자들을 데려왔습니다. 사숙께 말씀 전해주십시오.”

“이 두 사람인가?”

둘 중 옅은 남색의 긴 치마를 입은 부인이 빙그레 웃으며 동경연과 양준을 바라보았다.

“선배님께 인사드립니다.”

동경연은 양준과 함께 서둘러 예를 올렸다.

부인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 향(香)씨 이모라고 부르렴. 이쪽은 난(蘭)씨 이모다.”

동경연은 히죽 웃고는 영리하게 다시 한번 예를 올렸다.

향씨 이모가 이어 말했다.

“이곳에서는 너무 조심하지 않아도 돼. 집처럼 생각하렴. 너희 둘은 아마 여기서 오랫동안 지내게 될 거야. 너무 조심하고 그러면, 너희뿐만 아니라 우리도 편치 않아.”

난씨 이모도 웃으며 말했다.

“그래. 우리가 처음 운은봉에 왔을 때가 딱 너희들 나이였는데 벌써 이십여 년이 흘렀구나.”

동경연은 두 사람의 친절한 태도에 긴장하고 있던 얼굴도 점차 풀어졌다.

“저기 사숙께서는…….”

진택은 그녀들이 인사를 다 나눈 다음에야 공손히 물었다.

“대사님께서는 연단하시는 중이야. 합격 소식은 이미 전해드렸어. 연단 수련이 끝나면 만나 주실 테니, 너희들은 우선 돌아가도록.”

이 말에 약왕곡 젊은 제자들의 얼굴빛이 어두워졌을 뿐만 아니라 진택도 살짝 실망한 표정이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진택은 재빨리 얼굴빛을 가다듬고 다시 한번 공수하고는 약왕곡 제자 세 명을 거느리고 물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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