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53장. 너희에게 임무를 주셨어
두 부인은 그날 양준을 대하는 태도와 말투에서 약간의 불쾌감을 표출했었지만, 그 뒤로는 매일 웃는 얼굴로 그를 대하며 운은봉의 일상생활을 돌보면서 묵묵히 챙겨주었다.
하루는 소부생이 양준과 동경연을 방으로 불러들였다.
두 사람은 소부생 앞에 바르게 서 있었다. 양준은 담담한 표정이었으나, 동경연은 많이 긴장한 듯했다.
소부생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간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았지만, 너희들의 성정은 대충 파악했다. 사람은 겪어 봐야 알 수 있다고 하지만 나도 살 만큼 살았는지라 사람 보는 안목은 있단다. 경연이는 마음이 착하고 명문 세가 출신인 데도 불구하고, 겸손하고 예의가 바르더구나. 내게서 전수받은 지식으로 나중에라도 나쁜 짓은 하지 않을 것 같구나. 원한다면 내 제자가 되겠느냐?"
"네, 물론입니다."
동경연은 만면에 희색을 띠고 재빨리 대답했다.
소부생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양준을 보았다.
"너는 비록 나이가 어리지만, 많은 고난을 겪어 동년배보다 많이 성숙하구나. 진원이 검처럼 날카롭고 매서운 것이 사람도 많이 죽여 봤겠지. 네 손속이 매섭기는 하나, 무고한 사람을 죽이지는 않은 것 같으니 다행이구나."
양준은 이에 반박하지 않고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경연이와 추구하는 바가 다르지. 자질이 경연이보다 뛰어나기는 하나, 목표가 따로 있으니 강요하진 않으마. 너를 제자로 거두지도, 연단술을 전수하지도 않을 것이다."
"사부님."
동경연은 그가 양준을 쫓으려는 줄 알고 깜짝 놀라 소리쳤다.
소부생은 손을 내젓더니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내 시험을 통과했으니 이것도 인연이겠지. 다른 것을 전수하마. 잠시나마 경연이와 함께 운은봉에 머물 거라."
"소 선생님, 감사합니다."
양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소부생이 정말로 내쫓으려 한다면 자신도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소부생이 직접 운은봉에 머물러도 된다고 말해 주자 마음이 놓였다.
이렇게 되면, 양준이 일을 처리하는 데 마음의 부담이 없어진 것이다.
"이건 공법이다. 하루에 한 시진만 수련하면 된다."
소부생은 작은 책자 하나를 건네더니 눈을 감고 더는 말하지 않았다.
양준은 책자를 받아 들고 동경연과 함께 집 밖으로 물러났다.
반나절이 지난 뒤, 두 사람은 책자에 있는 공법을 마음속 깊이 새기고 각자 방으로 돌아가 수련했다.
체내 108개의 경맥을 동시에 운행해야 하는 이 공법은, 무슨 공법인지 이름도 없고 운행 경로도 기이했다. 양준은 지마와 함께 오랫동안 연구했지만, 지마의 넓은 식견으로도 이 공법의 효력을 알아낼 수 없었다. 단지, 해로운 점이 없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소부생의 시간은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 어렵사리 동경연을 제자로 들였는데, 그녀를 해할 리가 없었다.
양준은 가부좌를 틀고 침대에 앉아 호흡을 조절한 다음, 미지의 공법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시간은 유수와 같아 눈 깜짝할 사이에 한 달이 지났다.
한 달 동안 양준은 모처럼 한가한 나날을 보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뜨는 해를 마주하고, 금신의 권법술을 수련한 다음, 이어서 미지의 공법을 한 사진 동안 수련했다.
그 다음으로는 그만의 무위를 열심히 수련했다.
보람찬 하루하루가 재빨리 지나갔다.
양준은 여러 번 단성봉의 상황을 알아보려 했다. 그러나 마땅한 이유나 구실이 없어 가까이 가기도 전에 쫓겨나는 바람에 속수무책이었다.
운은봉의 두 부인도 양준을 잘 대해 주었다. 매일 약선 요리를 끓여 그와 동경연에게 먹였다. 두 사람은 요리 수준이 뛰어나 간단한 재료로도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동경연은 그간 두 부인과 더욱 친숙해졌다. 모두 여인이기에 서로 어울리기도 편했다.
한 달 간의 수련을 거쳤지만, 양준의 실력은 크게 변화가 없었다. 미지의 공법은 수련해도 원기가 더 증가되지도 않았고, 다른 무슨 신비한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소부생이 말한 것처럼 이 공법은 하루에 한 시진만 수련하면 충분했다. 시간이 더 길어지면 온몸의 진원이 들끓어 통증을 참기 어려웠다.
한 달이 지나고, 어느 날 양준과 동경연이 아침 식사를 끝내자 두 부인이 미소를 머금은 채 바구니 두 개를 건넸다.
"향씨 이모, 이게 뭐예요?"
동경연은 의아해하며 바구니를 받아 양준에게 하나를 건넸다.
향씨 이모가 웃으며 말했다.
"대사님께서 너희에게 임무를 주셨어."
"정말이에요?"
동경연은 아주 기뻐했다. 그간 그녀는 수련에 수련을 거듭했을 뿐이었다. 소부생이 어떤 연단술도 전수하지 않아 갑갑하던 참이었다. 그녀는 연단술을 배우기 위해 운은봉에 입문했는데, 지금까지 단약의 그림자도 보지 못했으니 조급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사부가 임무를 주셨다는 말에, 임무를 잘 완수한 뒤 사부의 환심을 사서 이 기회에 연단술을 가르쳐 달라고 말하려 했다.
"무슨 임무요?"
양준은 담담하게 물었다.
"대사님께서 너희들에게 약초를 좀 구해 오라고 하셨어."
향씨 이모는 미소 지으며 채집해야 할 약초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두 사람에게 약초들의 습성과 모양을 상세하게 가르쳐 주었다.
양준과 동경연은 약초를 잘 기억한 다음, 바구니를 메고 길을 나섰다.
약왕곡 운은봉 산허리에서 양준과 동경연은 약 광주리를 메고서 약재를 찾아 다녔다.
소부생이 지시한 이번 임무는 어렵지 않았다. 채집해 오라고 한 약재들은 귀중하지도, 희귀하지도 않은 것으로 이 산에도 자라는 것들이었다. 다만, 햇수에 대한 요구가 좀 까다로울 뿐이었다.
최소 삼십 년 이상 되어야 했다.
두 사람은 산을 넘고 들을 건너며 열심히 찾아다녔다. 오후가 될 때까지 분주히 돌아다녀서야 어느 정도 수확할 수 있었다.
“일미철골초(一味鐵骨草)가 부족해. 향씨 이모가 철골초를 열 뿌리 채집해야 된다고 했어.”
동경연이 손가락을 꼽으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오라버니, 아직 한 뿌리도 찾지 못했어.”
양준은 사방을 둘러보더니 말했다.
“운은봉엔 이런 약초가 없는 것 같은데 다른 산으로 가 볼까?”
동경연은 눈알을 굴리고 나서 생글생글 웃었다.
“그럼… 단성봉 같은 곳은?”
양준이 그녀를 노려보았다.
동경연은 말하지 않고도 그 뜻을 알아차리고는 양준과 함께 단성봉으로 걸어갔다.
단성봉은 출입이 금지된 곳이었다. 산봉우리로부터 삼백 장 아래까지 일반 제자들은 다가갈 수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아래는 마음껏 출입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목표가 명확하여 곧장 단성봉으로 향했다.
“우리 흩어져서 찾아보자.”
양준은 가볍게 목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응.”
동경연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양준이 뭘 원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굳이 말하지 않고 당부했다.
“하지만 조심해야 해.”
“알고 있어.”
약 광주리를 멘 양준은 단성봉 꼭대기에 다가가 대수롭지 않은 척, 철골초를 찾으면서 몰래 주변의 기척을 살폈다.
반 시진 뒤, 의도적으로 접근한 끝에 양준은 산봉우리에서 백 장 거리에 다다르게 되었다.
몰래 고개를 들어 살펴본 양준은 단성봉에 석상 하나가 우뚝 솟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석상은 단성의 유상(遺像)이었다.
석상은 높이가 삼십 장 정도 되었는데, 기세가 웅장했다. 양준은 백 장 가까이 떨어져 있으면서도, 석상의 가슴팍 위까지 볼 수 있었다. 석상은 얼마나 오랫동안 세워져 있었는지 얼룩덜룩했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도 여전히 꿋꿋하게 자리를 버틴 채, 쓰러지지 않고 있었던 것 같았다.
양준은 신식을 펼쳐서 살펴보고 싶었으나 조금 꺼려졌다. 지금은 아무도 보이지 않지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고수가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마, 가서 염탐 좀 해볼 수 있어?”
양준이 전음으로 물었다.
“신유 경지 고수들이 지키고 있다면 나도 살펴보기 힘들다네.”
지마가 대답했다.
지금 그의 실력이 높지 않아, 몸에 지닌 마기(魔气)를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그의 특징이 너무나 선명했다. 파혼추를 감싼다면 검은 연기로 변하기 때문에 신유 경지 고수들의 눈을 피할 수 없었다.
‘전혀 방법이 없나? 운은봉에 온 지 한 달이 넘었는데 저기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도 알아내지 못하다니.’
“웬 놈이냐!”
양준이 수심에 잠겨 있을 때, 위에서 갑자기 화가 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림자 하나가 위에서 내려와, 양준의 앞에 이르러서는 그를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 사람은 절대적인 신유 경지 고수였고, 실력도 나쁘지 않은 듯했다. 약왕곡의 제자들은 대다수가 연단사지만, 전투와 수비를 책임지는 고수들이 존재했다.
“너는 어느 봉의 제자냐? 단성봉 아래로 삼백 장은 접근 금지인 것을 모르느냐?”
그 사람은 차가운 목소리로 호통쳤다.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생각을 바꿨다.
“묻잖아, 네 사부님은 누구냐? 단성봉에 함부로 들어오면 어떻게 되는지 말씀해 주지 않으셨느냐?”
양준은 그제야 공수하며 말했다.
“선배님을 뵙습니다. 저는 운은봉 소 선생님의 제자입니다. 선생님의 명을 받고 오늘 약초를 캐러 하산했습니다.”
“소 선생님?”
그 사람은 당황하더니 곧 정신을 차렸다.
“네가 바로 얼마 전에 운은봉으로 입문했다는 그 소년이냐?”
“그렇습니다!”
그 사람은 조심스럽고도 경계 어린 시선으로 양준을 훑어보았다. 그는 신식을 펼쳤다가, 금방 거두어들였다.
차갑던 안색이 점차 누그러졌다.
양준이 덧붙여 말했다.
“약초를 찾다가 저도 모르게 여기까지 들어온 것 같습니다. 용서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