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56장. 네놈이 왜 여기 있는 것이야?
연이은 며칠 동안, 양준과 동경연은 모두 원기를 조절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양준은 이러한 수련이 원기를 더욱 잘 조절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그의 진원도 점차 순수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경지는 이미 2단계 정상에 다다랐고, 조금만 더 수련하면 곧 진원 경지 3단계를 돌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날, 양준과 동경연이 방 밖에서 원기를 조절하는 기술을 연마하고 있을 때, 갑자기 주변을 둘러싼 산봉우리들이 떠들썩한 것을 발견했다. 많은 사람들이 산을 오르고 있었다. 그중 약왕곡의 제자들도 있었고, 외부인도 꽤 많았다.
“이게 어찌 된 일이지?”
동경연은 수련을 멈추고 주변 산봉우리들을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둘러보았다.
“약왕곡에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온 거지?”
양준도 고개를 저으며 어리둥절해했다.
“며칠 뒤면 연단 대회가 열릴 거야.”
향씨 이모와 난씨 이모가 여유롭게 걸어오면서, 입을 열었다.
“약왕곡은 평소에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지만, 이곳은 다른 세력들과도 연관이 있는지라 이때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산으로 올라와 각 대장로를 방문하지.”
향씨 이모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곳곳이 떠들썩할 거야. 금지 구역인 단성봉과 우리 운은봉을 제외하고 말이야.”
“맞아, 그래도 우리 운은봉은 조용할 거야!”
난씨 이모도 생긋 미소를 지었다.
동경연이 웃으며 말했다.
“만약 사부님께서 운은봉의 출입을 허용하셨으면 사람들이 떼로 몰려오겠네요! 그러면 다른 산이 오히려 조용해지겠죠.”
향씨 이모는 그녀를 살짝 흘겨보며 말했다.
“그럼 나와 난씨 이모만 죽어 나가지. 그 많은 손님들께 차를 따르고 접대하느라 바빠서 눈코 뜰 새나 있겠어?”
그동안 지내 오면서 향씨 이모와 난씨 이모는 동경연을 무척 좋아하게 되었다. 두 부인에게 자식이 없으니 동경연을 딸로 여기고 아껴 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동경연은 말도 예쁘게 하고, 태도도 예의가 발랐다. 그들이 일반인이고, 시녀 출신이라고 무시하지 않는 점이 참 마음에 들었다.
향씨 이모의 말이 끝나자마자, 소부생이 문을 열고 나오더니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운은봉도 오늘은 조용할 수 없겠구나.”
“사부님!”
“소 선생님!”
양준과 동경연은 다급히 예를 올렸다. 소부생이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의기양양하게 걸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사부님,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나요?”
동경연이 앞으로 다가가 살뜰하게 묻자 양준은 팔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이 사촌 동생은 자신의 앞에서는 새침하게 굴었지만, 소부생과 향씨, 난씨 이모 앞에서는 더없이 고분고분했다.
“손님들이 먼 곳에서 찾아오셨는데 당연히 반갑지.”
동경연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전 사부님이 다른 사람들이 오는 것을 싫어하시는 줄 알았는데 아니신가 보네요.”
소부생이 웃음을 터뜨리더니 말했다.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 다르지. 내게 부탁하러 온 사람이라면 당연히 반갑지 않지만, 오늘 올 손님은 그렇지 않단다.”
“하하… 오늘 나는 자네에게 부탁할 일이 있어 찾아온 것인데, 자네가 그렇게 말하면 손님을 내치는 게 아닌가?”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산길 아래쪽에서 한 인영이 신속히 다가오고 있었다.
‘이 목소리는… 설마…….’
향씨 이모와 난씨 이모는 감히 소부생에게 농담을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들도 찾아온 사람이 누군지 모르는 것 같았다.
중도 8대 가문의 가주가 온다고 해도 소부생에게 정중하게 대할 텐데, 누가 이렇게 그를 편하게 대한다는 말인가!
하지만 소부생은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웃으며 대꾸했다.
“내칠 리가 있겠나? 자네에게 목숨을 빚진 적도 있는데.”
그 말에서 향씨 이모와 난씨 이모는 찾아온 손님이 소부생의 목숨을 살려준 생명의 은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숙연한 얼굴로 공손히 맞이했다.
아래쪽에서 인영이 번쩍 나타났다. 수백 장 밖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사람들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게다가 찾아온 사람은 한 사람이 아니라 두 명이었다.
앞에 있는 사람은 소부생과 나이가 비슷한 노인이었는데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했고, 뒤에 따르는 사람은 소녀였다. 이 소녀는 두 눈을 별처럼 반짝이며 순수한 빛을 뿜었는데 연녹색 치마를 입고 있었다. 매끈한 이마에는 하늘색 보석이 반짝이고 있었고, 얼굴은 면사포를 써서 용모가 잘 보이지 않았다.
바람이 불어와 그녀의 면사포와 치맛자락을 흔들어 놓았다. 그러자 그녀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처럼 전혀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매력을 뽐냈다.
양준은 흠칫 놀랐다. 그는 괴이한 미소를 지은 채, 눈앞에 있는 소녀를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지켜보았다.
그 소녀도 노골적인 시선을 느낀 듯, 미간을 찌푸리며 무심결에 양준을 슬쩍 훑어보았다.
순간, 별처럼 반짝이는 그녀의 눈에는 짙은 기쁨이 드리웠다. 길고 촘촘한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깜빡거렸다.
눈을 마주치자 양준은 슬쩍 미소를 지었다. 소녀의 눈도 반달 모양으로 휘어졌다.
이 소녀는 바로 하응상이었고, 그녀와 함께 도착한 노인은 몽무애였다.
“몽 형, 오랜만이네!”
소부생이 다가가며 공수했다.
몽무애는 미소를 지은 채 공수하며 화답했다.
“소… 어… 켁, 쿨럭쿨럭, 쿨럭쿨럭…….”
말을 꺼내던 몽무애는 목에 가시라도 걸린 것처럼 요란하게 기침을 했다. 기침 때문에 눈앞이 어지럽고 귀가 멍하며 의식이 흐릿해질 지경이었다.
“사부님!”
하응상은 깜짝 놀라 다급히 몽무애의 등을 두드렸다.
“몽 형, 다쳤나?”
소부생은 무거운 안색으로 얼른 다가가 몽무애의 맥을 짚으려고 했다.
몽무애는 다급히 손을 저었다. 한참 기침을 한 그는 가까스로 숨을 가다듬고는 멍한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며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네놈이 왜 여기 있는 것이야?”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일 년 전, 양준이 능태허에 의해 유명산에 보내진 뒤, 일 년 동안이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의 소중한 제자가 넋이 나가서 한숨을 푹푹 쉬며 속상한 나날을 보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설득을 들은 제자는 드디어 그리움의 그늘에서 벗어났다. 그 이후 하응상의 실력은 점차 눈에 띄는 발전을 보였다. 제자가 이미 양준을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에서 양준을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하응상의 눈에서 철철 넘치는 정을 본 몽무애는 그녀가 양준을 잊은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단지 그리움을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 두었을 뿐이었다.
이 순간, 몽무애는 홱 돌아서서 떠나고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제자를 이곳에 데려온 자신의 뺨을 여러 대 후려치고 싶었다.
그는 하응상이 요즘 우울해하는 데다 약왕곡에서 연단 대회를 연다기에 기분 전환하라고 그녀를 데리고 나온 것이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양준을 보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젠장, 다 내 탓이야. 다 내 탓이야!’
몽무애는 목을 메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운은봉에서 몽무애가 비분에 찬 얼굴로 있을 때, 사부님을 부축하고 있는 소녀의 얼굴은 미소로 가득했다.
소부생은 의아한 얼굴로 하응상과 양준을 번갈아 보더니 금세 뭔가를 깨달은 듯했다. 향씨 이모와 난씨 이모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동경연은 몰래 양준의 곁으로 다가오더니 손가락으로 그를 쿡, 찔렀다.
“오라버니… 그렇게 빤히 쳐다보면 어떡해. 저 여인의 얼굴이 빨개졌잖아.”
“아는 사이였구먼?”
소부생은 싱글벙글 웃으며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양준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제자의 예를 올렸다.
“몽 주인…….”
그리고 고개를 돌리더니 부드러운 얼굴로 말했다.
“사저!”
하응상은 귓불이 빨개진 채,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제…….”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 것이 마음이 크게 흔들린 것 같았다.
“흠흠…….”
몽무애는 얼른 기침을 두어 번 하며 달달한 분위기를 깨뜨렸다. 심지어 양준에게 인사도 건네지 않고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손님을 계속 밖에 세워 둘 셈인가?”
소부생은 웃음을 터뜨리더니 말했다.
“몽 형, 안으로 드시게!”
소부생처럼 인생사에 훤한 사람이 어찌 몽무애의 제자가 양준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을 모를 수 있겠는가?
그때 보았을 때, 몽무애는 자신의 제자를 보물처럼 여겼다. 지금 소녀의 첫사랑이 시작되었으니, 몽무애가 이걸로 골머리를 앓는 것 같았다.
그도 몽무애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이토록 순진한 여제자가 그의 밑에 들어왔다면 그도 제자가 나쁜 사람에게 빠져 상처받을까 봐 걱정했을 것이다.
몽무애는 소부생과 앞으로 걸어갔다. 하응상은 양준을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몽무애의 뒤를 바짝 뒤쫓아 갔다.
몽무애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자야, 저놈이 얼마나 풍류스러운지 보거라. 어딜 가든 곁에 항상 미인이 따라다니지 않느냐. 두 눈 똑바로 뜨고 제대로 살피거라.”
하응상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 영감탱이가…….”
동경연은 불만 가득한 얼굴로 입을 삐죽거렸다.
향씨 이모와 난씨 이모는 입을 다물고 미소를 지으며 의아한 눈길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차를 따르러 들어갔다.
“오라버니… 저 분은 누구야?”
사람들이 다 방으로 들어가자 동경연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능소각에서 알게 된 사저야.”
양준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단지 그것뿐이야?”
동경연은 히죽히죽 웃으며 물었다.
양준은 대답 없이, 그녀에게 눈을 흘기고 나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동경연은 제자리에 서서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눈을 굴리다가 말했다.
“흥, 내가 모를 줄 알고? 누굴 애로 아나!”
한참 생각한 그녀는 또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