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257화 (257/853)

제 257장. 새언니죠?

양준은 설마 약왕곡에서 몽무애와 하응상을 만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연단 대회가 곧 열린다는 말을 듣고 능소각에서 누군가 올 것이라고 예상하기는 했지만, 그게 하응상일 줄은 몰랐다. 그녀는 특별한 체질이라 평범한 젊은 연단사들과 그녀의 연단술은 비교할 수준이 아니었다. 만약 그녀가 대회에 참가한다면, 결과는 볼 필요도 없이 그녀가 우승을 차지할 것이다.

잠시 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양준이 싱긋 웃으며 문을 여니, 하응상이 어색한 얼굴로 문밖에 서 있었다.

“사제!”

하응상은 눈빛 속에 기쁨과 그리움을 가득 담은 채 나지막이 양준을 불렀다.

“들어와서 얘기해요.”

양준이 몸을 비키며 말했다.

하응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방으로 발을 들였다.

“두 사람은 무슨 일로 이곳에 온 거에요?”

양준이 하응상에게 물을 따라서 건네주며 물었다.

“이곳에 천고의 연단사가 있는데, 사부님께서 그분께 가르침을 받으라고 해서 같이 왔어.”

하응상은 얌전히 앉아서 양준을 바라보았다. 일 년 동안 보지 못했더니 조금 긴장되고 떨렸지만, 기쁜 마음이 더 컸다.

“네, 소 선생님은 최고의 연단사죠.”

양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제는 어떻게 이곳에 있어?”

하응상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

“유명산에 간 거 아니었어?”

“말하자면 길어요.”

양준은 쓴웃음을 짓고는, 자세하게 말하지 않았다.

“이곳에 볼일이 있어서요.”

“무슨 일이야? 내가 도울 일은 없어?”

양준도 그녀에게 숨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방 안에서 누군가의 신식이 움직이고 있는 게 희미하게 느껴졌다. 몽무애가 이 방을 감시하고 있다는 것은 생각해 보지 않고서도 알 수 있었다.

양준은 히죽 웃으며 하응상에게 가까이 다가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는 살며시 그녀의 귀에 입을 가져갔다.

하응상은 흠칫 떨며 저도 모르게 몸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는 빨개진 얼굴로 꼼짝도 하지 못했다. 심지어 숨도 제대로 쉬고 있지 않았다.

양준이 그녀의 새빨간 얼굴에 대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단성봉에 있는 만약담을 보러 왔어요.”

“아…….”

하응상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두 손으로 찻잔을 꽉 움켜쥐었다. 그녀는 양준이 하는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쿨럭쿨럭… 쿨럭쿨럭…….”

멀지 않은 방에서 몽무애의 격렬한 기침소리가 들렸다.

“몽 형!”

몽무애의 맞은편에서 소부생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위로를 건넸다.

“어떤 일은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두는 것이 최선이지. 우리가 억지로 막을 수는 없다네.”

“그래, 그래.”

몽무애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서둘러 신식을 거두어들였다.

비록 그가 제자를 많이 아끼긴 했지만, 그렇다고 제자의 사생활을 시시각각 엿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불과 십몇 장 밖에서 소중한 제자가 고약한 녀석과 단둘이서 한 방에 있다는 생각을 하니 몽무애는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휴, 안 보는 게 상책이야!’

방 안에서 하응상의 몸은 한참이나 굳어져 있었다. 여전히 귓가에서 뜨거운 숨결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녀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가라앉히고, 한참 뒤에야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아… 사제는…….”

“쉿!”

하응상은 다급히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나도 거기 가 볼 생각이야.”

“사저도요?”

양준이 놀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응상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사부님께서 그곳에 신묘한 무언가가 숨겨져 있다고 하셨거든. 그래서 나를 들여보내고 싶다고 하셨는데, 이곳 주인께서 출입을 허락하실지 모르겠네.”

“사저라면 소 선생님께서 허락하실 수도 있겠네요!”

생각에 잠겨 있던 양준은 저도 모르게 눈앞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그도 지금까지 만약담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알지 못했다. 만약 하응상의 손을 빌려 그곳을 잘 알아본다면 일이 쉽게 풀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혼자서 갈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겠지만, 소부생이 그에게 만약담 출입을 쉽게 허락할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몽무애는 소부생의 목숨을 살려주었고, 하응상의 특별한 체질을 생각했을 때, 이들에게는 만약담의 출입을 허락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사저는 참 복덩이야. 때를 맞춰 잘 왔네.’

양준은 마음속으로 매우 기뻐했다.

기쁜 와중에 갑자기 문밖을 바라본 양준은 코웃음을 치더니 손가락으로 원기를 튕겼다.

쾅!

꽉 닫혔던 문이 활짝 열렸다.

“아이고…….”

동경연은 문에 기댄 채 방 안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그만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뭐 하는 짓이야?”

양준이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

동경연은 다급히 일어나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 내고, 생긋 웃었다. 그리고 흥미진진한 얼굴로 하응상을 훑어보았다.

“이 분은…….”

하응상이 천천히 일어나며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제 사촌 동생이에요……. 동씨 가문의 아가씨죠.”

양준이 나지막이 말했다.

“동씨 가문? 저번에 능소각에 찾아왔던…….”

“바로 그 동씨 가문이에요. 지난 번에 능소각에 왔던 사람이 얘 오라버니예요.”

“동씨 아가씨군요.”

“실례했습니다…….”

동경연은 하응상의 앞으로 바짝 다가들며 그녀를 자세하게 훑어보았다. 그 바람에 하응상의 얼굴은 또 상기되었다.

“흠… 새언니죠?”

하응상은 깜짝 놀랐다가 떨리는 얼굴로 양준을 힐끗 훔쳐보고는 손을 저었다.

“아, 아니에요. 새언니는… 따로 있어요…….”

“곧 언니가 새언니가 될 것 같은데.”

동경연은 능글맞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단언했다. 이내 헛기침을 하면서 의자를 가져오더니 하응상과 양준의 앞에 앉았다. 그리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며 히죽거렸다.

“사부님께서 부르셔서 먼저 가볼게요.”

하응상은 어찌할 바를 몰라 얼굴을 붉히다가 다급히 자리를 피했다.

동경연은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게 아닌데!”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

양준이 이상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서로 부둥켜안고 정담을 속삭여야지. 그리고 뜨겁게 밤을…….”

동경연은 상기된 얼굴로 부끄러워하며 말끝을 얼버무렸다.

양준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끼어드는 바람에 흐름이 깨졌다고는 생각 안 해봤어?”

동경연은 몸을 흠칫 떨더니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미안해, 오라버니, 다음엔 둘이 같이 있을 때 방해하지 않을게.”

“응, 알면 됐어. 그러니 이만 돌아가.”

양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다른 방에서 몽무애와 소부생은 즐겁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

차를 몇 잔 마신 몽무애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이번에 찾아온 이유를 알고 있겠지?”

소부생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다마다. 내게 몇 가지 연단술을 전수받으러 왔겠지. 그건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지만… 다른 것은…….”

“왜? 어려운가?”

“어려운 건 아니지만 자네의 제자가 그곳에 들어갈 자격이 되는지가 중요하지. 자질이 부족하면 힘들게 만약담을 열어도 소용없네. 만약담을 한 번 여는 것도 무척 힘든 일이라네.”

그 말을 들은 몽무애는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내 제자가 어떻게 자질이 부족하겠나? 그 아이가 자격 미달이면 세상에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거네.”

“그렇게 자신하는가?”

소부생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몽무애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믿지 못하겠으면 지금 바로 시험해 보게!”

소부생은 안색이 변하더니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

“좋네! 그렇다면 나도 얼른 봐야겠군.”

“응상아!”

몽무애가 소리 높여 불렀다.

“네!”

하응상이 곧바로 대답하며 방으로 들어왔다.

“소 선생이 네 연단 기술을 시험해 보시겠단다. 잘 하거라. 실망시키지 말고.”

몽무애가 헤실헤실 웃으며 말했다.

“네!”

*소부생이 하응상을 시험하고 있을 때, 양준과 동경연도 근처에서 조용히 듣고 있었다.

소부생은 그들이 엿듣고 있다는 걸 눈치챘지만, 그의 제자도 들으며 연단 지식을 습득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이번 시험은 자그마치 하룻동안이나 지속되었다. 소부생은 연단의 길에서 마주칠 수 있는 각종 상황에 대해 쉬운 것부터 어려운 문제까지 질문했다.

하응상은 하나하나 진지하게 대답했다.

반나절 뒤, 소부생의 표정은 기쁨으로 가득해졌고, 하루 뒤에는 기쁨이 놀라움으로 탈바꿈했다. 하응상을 바라보는 눈빛도 달라져 있었다.

그의 눈빛은 마치 절세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 탐욕의 눈빛으로 반짝였다.

또 하루가 지난 뒤, 소부생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떤가?”

몽무애는 소부생의 표정을 살피더니 의기양양해서 물었다.

소부생은 무거운 얼굴로 한참 말이 없다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기본기와 이론 지식도 풍부하고, 많은 경험들은 노인인 나도 감탄할 지경이네.”

하응상을 시험하는 도중, 소부생도 그녀의 대답에서 많은 것을 깨우쳤다. 이것은 시험이라고 하기보다는 서로 지식을 겨루는 것에 가까웠다. 다만 소부생이 묻고, 하응상이 대답하는 방식이었을 뿐이다.

“당연하지!”

몽무애는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몽무애의 입은 이미 귀까지 걸려 있었다.

소부생은 옅게 웃더니 의미심장하게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이론은 이론이지. 이론만 안다고 진짜 실력이 다 대단한 건 아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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