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58장. 실패해 본 적이 없습니다
몽무애는 언짢은 얼굴로 말했다.
“그럼 이 자리에서 뭐든 시험해 보게. 만약 내 제자가 자네를 탄복시키지 못한다면, 자네를 아버지라고 부르겠네!”
동경연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배를 끌어안고 한참이나 어깨를 들썩거렸다.
소부생도 쓴웃음을 지으며 하응상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제조한 단약 중 가장 높은 등급이 몇 급이냐?”
“현급 하품입니다…….”
하응상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소부생은 몸을 흠칫 떨더니 안색이 크게 변하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치 그녀의 표정에서 거짓의 흔적을 찾으려는 듯했다. 하지만 별처럼 반짝이는 두 눈은 티없이 맑아 거짓말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현급 하품? 젊은 나이에 현급 하품 연단사의 수준에 이르렀다는 말인가?’
약왕곡에서 가장 뛰어난 천재인 진택이 올해 서른다섯 살로, 이제 천급 상품의 단약을 제조할 수 있었다. 나이로 따지면 무려 그녀의 두 배였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천재가!’
“현급 하품 단약을 제조할 때 성공률은 어느 정도지?”
소부생이 정색하며 물었다.
“딱 한 번 해보았습니다. 그것도 아주 힘겹게 성공했습니다.”
“음…….”
소부생은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운이 좋아 단약 제조의 성공한 것을 실력으로 칠 수는 없었다.
그는 다급히 질문을 바꾸었다.
“그럼 천급은?”
“실패해 본 적이 없습니다.”
“뭐라고!?”
소부생은 깜짝 놀랐다.
“실패한 적이 없다고?”
하응상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럴 리가!”
소부생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직접 제조해도 무조건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거늘.”
연단술은 항상 일정한 위험이 따랐다. 소부생은 연단의 길에서 정상에 오른 사람이었지만, 그도 무조건 연단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었다.
몽무애가 괴상한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세상에 불가능이란 없네. 만약 믿지 못하겠다면 직접 시험해 보게.”
소부생은 어두운 얼굴로 침묵하다가 한참 뒤, 일어서며 사람들에게 손을 저었다.
“따라오너라!”
그가 먼저 걸어가자 다른 사람들도 따라갔다.
소부생은 평소 자신이 묵던 방으로 들어갔다. 그 방 바닥에는 지하로 향하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이 운은봉 지하에 굉장한 것이 숨겨져 있는 듯했다.
구멍을 따라 내려가자, 거대한 석실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 석실은 방 열몇 개 정도 되는 크기였는데, 각종 향로로 가득했다. 주변에는 약을 쌓은 화물대가 있었고, 그 위에는 각종 약재가 놓여 있었다.
“약재가 많군.”
몽무애는 들어오자마자 주변을 둘러보며 이것저것 열어 보고 만지작거렸다. 손을 떼기 아쉬운 눈치였다.
소부생은 그의 행동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내가 평생 고생스레 모은 것이네.”
그에게 단약 제조를 부탁한 사람들은 많은 천재지보들을 보수로 지급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들이 쌓이다 보니 이렇게 많아진 것이다.
소부생이 하응상을 보며 말했다.
“이 안에 있는 약재는 모두 사용해도 되는 것이니, 네가 가장 자신 있는 약재로 단약을 제조해 보거라.”
“네!”
하응상은 대답한 뒤, 석실을 빙 둘러보았다.
동경연과 양준은 다급히 앞으로 다가가 그녀를 도와주었다. 하응상이 약재를 고르면 두 사람은 그녀를 대신해 약재를 옮겨 주었다.
하응상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약재를 모두 골랐다.
소부생이 앞으로 다가가 그녀가 고른 약재를 살펴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이 재료들은 모두 천급 중품 단약을 제조하는 것인데 자신 있느냐?”
하응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시작하거라. 솥은 아무거나 사용해도 된다.”
소부생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솥은 필요 없어요…….”
“솥이 필요 없다고?”
소부생의 말이 끝나자마자 하응상의 진원이 갑자기 솟구쳤다.
그녀는 가져온 약재 중 하나를 집어 들더니 진원으로 투명한 실을 만들어 손에 든 약재에 주입했다. 약력이 신속하게 약재에서 제련되며 허공에 뜨더니 투명한 이슬로 변했다. 코를 찌르는 향기를 뿜으며 약액이 순식간에 제련되었다.
그녀는 손가락을 튕겨 이 약액을 다른 한 손에 넘기고는 손 위에 띄웠다. 그리고 또 다른 약재를 집어 들더니 같은 방법으로 제련했다. 곧 투명한 약액이 또 나타났다.
약력을 흡수당한 약재들은 하나같이 영기를 잃고 고목처럼 축 늘어졌다.
“세상에…….”
동경연의 눈은 놀라움으로 가득했다. 입은 더더욱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 수법은 단순한 연단이 아니야. 세상이 놀랄 정도로 대단한 수단인 걸.’
소부생도 놀라움을 금치 못한 채, 중얼거렸다.
“약액을 이렇게도 제련할 수 있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
일각도 지나지 않아 모든 약재는 약액으로 변해 하응상의 한 손에 모였다.
그녀는 두 손을 움직여 진원을 한 번, 또 한 번 약액에 주입했다. 잠시 뒤, 그녀가 손을 꽉 움켜잡자 천지 기운이 빠르게 손으로 모여들었다. 무슨 변화가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녀가 다시 손을 펼쳤을 때, 녹색의 단약이 만들어져 있었다.
단약은 동그스름하고 속이 꽉 찼으며, 잡티가 전혀 섞여 있지 않았다. 단약 위에는 선명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것이 단약을 더욱 현묘해 보이게 했다.
“단문(丹紋)!”
소부생은 두 눈이 갑자기 휘둥그레지면서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한번 보시지요.”
하응상은 단약을 집어 들고 소부생에게 건네주었다.
“살살, 살살해. 아이고, 손톱이 단문을 망가뜨리지 않게 조심하거라…….”
소부생은 떨리는 두 손으로 단약을 받아 들고 신줏단지 모시듯 조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호들갑 떨기는!”
몽무애가 가소롭다는 듯이 말했다.
“문외한이 뭘 안다고!”
소부생은 몽무애를 흘겨보고는, 조심스럽게 단약을 집어 들고 눈앞으로 가져갔다.
“정말 단문이잖아… 진짜 단문이야.”
소부생은 품위를 잃고 호들갑을 떨었다.
“사부님, 단문이 뭐예요?”
동경연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단문은…….”
소부생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단문은 최고의 단약을 만들었을 때 나타나는 문양이야. 마치 우리 몸속에 있는 경맥처럼 단약의 경맥이라고 보면 된다. 단약은 현천지범으로 등급이 나뉘지만, 같은 등급의 단약이라고 해도 단문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야. 단문이 있는 단약은 천지의 조화를 품었다고 볼 수 있지. 단문이 없는 단약보다 단문이 있는 단약의 약효가 배로 강하단다. 그리고 단문은 단약의 영기가 유실되는 것을 막아 주지. 아무리 오래 두어도 약효가 사라지지 않아.”
소부생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난 근 몇 년 동안 줄곧 단문에 대해 연구했단다. 하지만 범급 단약에만 가끔씩 단문이 나타나고, 지급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더구나. 그리고 천급은…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었단다.”
그는 뜨거운 시선으로 하응상을 바라보며 말했다.
“천급 단약을 제조할 때 단문이 생기는 확률이 몇 할 정도 되느냐?”
하응상은 입술을 꽉 깨물고 몽무애의 눈치를 살피며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소부생이 오늘 받은 충격도 클 텐데 그녀는 도무지 진실을 말할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몽무애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사실대로 말하거라.”
“육 할 정도 됩니다.”
“스읍…….”
소부생은 숨을 들이쉬었다.
육 할의 확률로 단문이 생긴다니. 단문이 있는 단약은 다른 단약들보다 두 배의 약효를 낼 수 있었다.
‘이 수단은… 신기할 지경이군!’
안색이 변한 소부생이 또 물었다.
“단운은? 단문보다 한 수 위인 단운(丹雲)은 나타난 적이 없느냐?”
하응상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흠, 신유 경지에 오른다면 단운이 나타날 수도 있겠어.”
소부생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떨리는 몸으로 석실을 한참이나 배회했다. 그러다 갑자기 입을 열었다.
“모두 나가거라. 몽 형과 할 얘기가 있다!”
세 젊은이는 바로 예를 올린 뒤 물러났다.
잠시 뒤, 아래에서 분노에 찬 몽무애의 호통소리가 들려왔다.
“꿈 깨! 내 평생 제자라고는 쟤 하나밖에 없는데 자네에게 넘겨주겠는가! 자네가 이렇게 뻔뻔스러운 줄 알았더라면, 그때 자네 목숨을 구해 주는 게 아니었네. 자네가 6급 요수에게 물려 죽는 것을 보고만 있었어야 했어.”
“자네는 연단도 못하면서 저 아이에게 뭘 가르칠 수 있겠는가? 저렇게 좋은 보석을 자네 밑에 두면 재능을 썩히는 꼴이라네. 내게 오는 것이 맞지.”
몽무애는 괴상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가르칠 수 없는 것을 자네라고 가르칠 수 있겠는가?”
“난 내 평생의 깨달음을 모두 전수해 줄 생각이네! 그 아이가 가장 짧은 시간에 현급 상품의 연단사가 되도록 돕겠네!”
“현급 상품이 뭐가 대수라고! 내 제자를 너무 얕잡아 보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