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59장. 꼬시기라도 할까 봐 겁나십니까?
몽무애와 소부생은 한참 다퉜다. 결국 어떤 합의를 보았는지 두 노인은 모두 웃는 얼굴로 걸어 나왔다.
소부생은 하응상이 단성 유상 앞에서 연단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만약담을 열어 주기로 약속했다.
만약담을 열려면 많은 돈이 필요했다. 만약담에 많은 단약을 넣어야만 단성 유상이 현묘한 힘을 발휘하여 사람들이 깨달음을 얻게끔 하기 때문이었다. 그때마다 만약담에 넣는 단약 수가 최소 백 알 정도 되었다. 넣는 단약의 수가 많고, 단약의 품질이 높을수록 단성의 힘이 오래도록 유지되었다.
이렇게 재료를 많이 소모하기 때문에 약왕곡이라고 해도, 만약담은 일 년에 고작 한두 번 정도밖에 열 수 없었다. 보통 약왕곡의 장로들이 스스로 깨달음이 필요하거나 최우수 제자를 위해 여는 경우가 많았다.
약왕곡 사람들을 제외하고, 외부의 연단사들이 단성에서 연단에 대한 깨달음을 얻으려면 연단 대회를 통과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오 년에 한 번씩 열리는 연단 대회에 참가하는 연단사들은 매번 넘쳐날 정도로 많았다. 이 연단사들이 연단 대회에서 제련한 단약은 그 품질과 수에 상관없이 모두 만약담에 쏟아 넣는 용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연단 대회에서 상위 오십 명을 뽑아 단성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었다.
몇천 년 동안 만약담에 단약을 얼마나 많이 쏟아부었는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곳을 만약담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만약담과 단성 사이의 현묘함에 대해 약왕곡에서도 많은 이들이 알아보려고 했지만, 결국 알아내지 못했다. 이곳은 이미 연단사들 마음속에 더없이 신성한 존재로 자리매김되어 있었고, 단성은 연단사들이 꿈에도 그리는 보물이었다.
하응상을 위해 곧 만약담을 열기로 했다는 것을 알게 된 양준은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그는 하응상과 함께 만약담에 갈 수는 없었지만, 대신 지마를 보내 알아보게 할 수 있었다.
준비를 마치고, 전혀 문제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양준은 하응상을 찾아가 지마가 담긴 파혼추를 그녀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기운을 감출 수 있는 동경연의 고옥도 빌려와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고옥 없이는 지마의 사기를 숨길 수 없었다.
이틀 뒤, 모든 준비를 마친 소부생은 직접 하응상을 데리고 단성봉에 들어가 만약담 앞으로 갔다.
몽무애도 뻔뻔스럽게 따라가려고 했으나 소부생에게 거절당하고 말았다.
몽무애조차도 가까이할 수 없는 곳이었다. 이 점에서 약왕곡이 그곳을 얼마나 중히 여기는지 알 수 있었다.
하응상이 만약담으로 떠난 하룻동안 몽무애는 심심했는지 양준을 찾아와 속마음을 터놓았다.
대화를 나누는 도중, 몽무애는 계속해서 양준이 없는 동안 소안이 얼마나 말랐는지, 또 얼마나 누군가를 그리워했는지, 해홍천은 또 얼마나 끈질기게 달라붙었는지 등을 말해주며 양준의 안색을 살폈다.
그의 말을 들은 양준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몽 주인, 제가 하 사저를 꼬시기라도 할까 봐 겁나십니까?”
몽무애는 안색이 흠칫 변했다. 그는 양준이 이토록 뻔뻔스럽게 나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양준아, 난 네가 성장하는 모습을 직접 봐와서 안다. 너는 그렇게 양아치 짓을 할 녀석이 아니야. 응상이는 나이도 어리고 순진해서 꼬드김에 넘어가기 쉬워……. 난 단지 그 아이가 감정 때문에 상처받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소안은 천하에서 최고의 여인이 아니더냐. 그녀의 환심을 사기를 바라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여인의 마음에 든 것이 얼마나 행운이더냐! 품에 여인을 안고 있으면서 다른 여인을 탐내서는 안 되지않겠느냐?”
몽무애는 처음으로 이렇게 양준과 하응상에 대한 이야기를 대놓고 털어 놓았다. 그의 태도는 사뭇 진지했다.
양준이 웃으며 말했다.
“몽 주인, 한 가지만 여쭙겠습니다.”
“그래.”
“하 사저가 앞으로 평생 혼자서 외롭게 살기를 바라시나요?”
“내가 어찌 그 애가 평생 홀로 늙어가기를 바라겠느냐?”
몽무애는 눈을 흘기며 말했다.
“걔는 내 보물 같은 제자다. 난 그 아이가 평생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랄 뿐이야.”
“그럼 이 세상에 하 사저와 어울릴 만한 사람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몽무애는 고개를 저으며 도도하게 말했다.
“없어! 내 보물 같은 제자에게 걸맞는 인물은 아직 만나본 적이 없다.”
“그럼 소안은요? 하 사저와 비교해서 어떤 것 같습니까?”
양준이 웃으면서 물었다.
몽무애는 흠칫 놀랐다가 말을 이었다.
“소안 그 아이도 보통내기가 아니지. 하지만 내가 으스대는 것이 아니라 아무래도 우리 응상이가 조금 더 낫지!”
“설령… 소안이 전승동천에서 전승을 얻었다고 해도 그런가요?”
양준이 목소리를 깔고 물었다.
몽무애는 안색이 변하더니 물었다.
“정말로 소안이 전승을 얻었느냐?”
양준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몽무애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정색하며 말했다.
“정말 그렇다면 그 아이는 앞으로의 발전이 무궁무진할 것이다. 응상이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겠군!”
“하하!”
양준은 소리를 낮추며 웃었다.
몽무애는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양준이 왜 말을 빙빙 돌렸는지 깨달았다.
소안과 하응상이 비슷하다면 소안도 양준과 사귀고 있는데 하응상이라고 못할 것이 없지 않는가?
“남자라면 사랑도 대범하게 해야죠. 우물쭈물 몸을 사리는 것이야말로 하 사저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것이니까요.”
양준이 덤덤하게 말했다.
몽무애는 입을 달싹였지만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자, 화가 나서 벌떡 일어나 욕설을 퍼부었다.
“너 이 녀석, 진작에 착한 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봤어. 변태, 양아치 같은 놈! 이 넓은 땅에서 하필 왜 능소각에 머물러서 이런 꼴을 보는 건지!”
지금 후회해도 소용없었다. 그의 보물 같은 제자는 이미 모든 마음을 양준에게 준 뒤였다. 이 양아치는 굳이 다가오는 여인을 거절하지 않는 듯하니, 사건은 이미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몽무애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너 이 망할 녀석, 만약 우리 응상이 마음을 아프게 하면 네 양씨 가문을 멸할 것이야!”
말을 마친 그는 씩씩거리며 홱 돌아서서 떠나갔다.
양준은 코를 매만지며 그의 말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몽무애는 무공이 뛰어나 양준의 신분을 알아챘다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아마도 장문인에게서 알아낸 것 같은데, 장문인이 알려줄 정도라면 몽무애는 걱정할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얘기였다.
그래서 양준은 몽무애가 자신의 신분을 떠벌릴까 봐 걱정하지 않았다.
하루 뒤, 하응상과 소부생이 함께 돌아왔다.
하응상은 파혼추와 고옥을 몰래 양준에게 돌려준 뒤, 폐관하러 들어갔다.
단성 유상 앞에서 하룻동안 깨달음을 얻은 그녀는 엄청난 수확을 얻을 수 있었다. 반드시 시간을 들여 깨우친 것을 익혀야 했다.
파혼추를 몸속에 숨긴 양준은 그제야 지마를 불러냈다.
“그쪽 상황은 어때?”
“수비가 완벽하더군. 신유 경지 고수 네 명이 삼십 장 밖에서 지키고 있었고, 열 명이 넘는 진원 경지의 고수가 밑에서 순찰하고 있었네.”
지마가 다급히 대답했다.
“잠입은 했어?”
“만약담 아래를 한 바퀴 돌아봤지만, 별다른 것은 발견하지 못했네. 다만, 특이한 진법이 있었는데, 열 수가 없었네.”
“어떤 진법?”
지마는 다급히 정신을 집중하여 신식을 펼쳤다. 그는 자신이 본 것을 신식으로 양준에게 보여 주었다.
“이 진법은…….”
양준은 한참을 보고 나서야, 이 진법이 검은 책 다섯 번째 장에서 나타난 문양과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둘 사이에 분명 무슨 연관이 있는 것 같았다. 만약 추측이 틀리지 않았다면 검은 책 다섯 번째 장에서 나온 문양은 진법을 여는 열쇠 같았다.
‘그래도 직접 가서 봐야겠어! 하지만 수비가 그렇게 삼엄한 곳에 어떻게 들어가지?’
“주인, 내가 듣기로는 연단 대회가 열리는 날, 그곳의 수비가 좀 느슨해질 거라고 했네. 약왕곡에 원래 사람이 많지 않은 데다가 연단 대회가 열릴 때마다 항상 떠들썩해서 많은 사람들이 산 아래로 내려가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더군. 그렇게 되면 신유 경지 고수 두 명밖에 남지 않으니 기회일 수도 있네!”
“신유 경지 두 명이라…….”
양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딘 두 명이라 해도 신유 경지였다. 당연히 고옥으로 숨긴 기운과 진원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두 명의 신유 경지 고수들 외에도 다른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었다.
‘누군가 날 대신해 그들을 유인해 주면 좋을 텐데.’
이는 지마가 해결할 수 있었다. 그의 속도가 빠르기만 하다면 충분히 운은봉으로 돌아와 하 사저에게 숨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양준이 그쪽의 볼일을 마친 뒤, 지마를 거두러 와도 늦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지마 혼자서 모든 수비를 다 유인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도움을 줄 사람이 하나 더 필요해.’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사색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