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0장. 만약담 밑
연단 대회는 예정대로 열렸다. 각지에서 찾아온 수많은 연단사들이 약왕곡에 모였다.
운은봉 사람들은 연단 대회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오직 동경연만이 구경할 생각에 마음이 들떠 있었다. 소부생도 저지하지 않고, 그녀가 식견을 넓힐 수 있게 내버려 두었다.
하응상과 몽무애는 잠깐 운은봉에 머무르고 있었다. 매일 동경연과 함께 소부생에게서 연단의 이론 지식을 배웠다. 가르침이 끝나면 하응상은 양준의 곁에 와서 말없이 앉아 있었다. 때로는 양준과 대화도 나누며 매일 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연단 대회는 무려 열흘이나 지속되었다. 드디어 내일이 연단 대회의 결승전이었다.
그리고 대회가 끝난 후, 상위 오십 명을 뽑아 대회에서 만들어진 모든 단약을 들고 오십 명의 연단사들과 함께 만약담으로 향하게 된다. 그들이 단성 유상에서 깨달음을 얻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깊은 밤, 양준은 귀신처럼 방 안을 누볐다.
이튿날이 결승전이었다. 그렇다면 오늘 밤이 약왕곡에서 가장 바쁜 시간일 것이다. 여러 날 기다리며 준비해 왔던 것이 드디어 행동에 옮길 때가 된 것이다.
동경연에게서 빌려온 고옥을 손에 쥔 그는 끊임없이 진원을 주입하며 몸의 기운과 진원의 흔적을 감추었다.
양준은 산속에서 바람처럼 몸을 움직이며 단성봉 가까운 곳으로 접근했다.
반 시진도 지나지 않아 양준은 단성봉에서 삼백 장 떨어진 곳에 도착했다. 더 위로 올라간다면 금지된 곳이었다.
귀를 기울이고 한참 동안 있다가 양준은 몸을 웅크리고 계속해서 위로 올라갔다. 백 장 가까이 올라가서야 그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양준은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며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렸다.
검은 구름이 천천히 밀려오더니 달빛을 막았다.
이 잠깐 새에 양준은 또다시 오십 장이나 앞으로 나아갔다. 여기까지 무탈하게 도달하자, 양준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동경연의 신기한 고옥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게 없었더라면 그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을 것이다.
“지마, 네가 나설 차례야.”
양준이 전음으로 말했다.
“알겠네!”
지마가 신속하게 대답했다.
지마는 파혼추를 감싼 채,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단성봉에서 갑자기 화가 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냐!”
목소리가 들리자 사방에서 사람들이 움직이며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쫓아왔다.
“낄낄…….”
괴상한 웃음소리가 전해졌다. 그 소리는 마치 귀신이 곡을 하는 것처럼 소름 끼쳤다.
만약담을 지키던 두 신유 경지의 고수는 원래 추격할 생각이 없었으나 그 소리를 듣자 안색이 변했다.
신유 경지 고수 중 한 사람이 외쳤다.
“사마다!”
두 사람은 동시에 일어나 지마가 있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두 사람은 허공에서 눈빛을 교환한 뒤, 둘 중 한 사람이 다시 만약담 근처로 돌아갔다. 다른 한 사람만 지마를 쫓아갔다.
짧은 순간에 양준은 또 이십 장이나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숨을 돌리기도 전에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회색 토끼였다. 약왕곡에는 요수가 없었지만, 토끼 같은 작은 동물들은 많이 있었다. 이런 토끼는 쉽게 잡을 수 있었다.
노수인에 걸린 토끼는 양준의 명령에 따랐다.
그는 힘을 써 토끼를 삼십 장 밖으로 던져 땅에 착지시켰다. 토끼는 느긋하게 일어나더니 또다시 십몇 장을 달려갔다. 그제야 양준은 토끼에게 빨리 뛰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윽고 그 기척은 만약담 근처에 남아 있던 신유 경지 고수에게 발각되었다.
기척을 감지한 신유 경지 고수는 눈빛을 번뜩이더니 소리가 난 방향으로 손바닥을 날렸다. 일격을 날린 그는 몸을 날려 그곳으로 날아갔다.
‘바로 지금이야!’
양준은 심호흡을 하고 보법을 펼쳐 바로 만약담 근처에 도착했다. 그는 금지된 곳에 뭐가 있는지 확인할 새도 없이 곧바로 만약담으로 뛰어들었다.
남겨진 신유 경지의 고수는 백 장 넘게 달려가서야 회색 토끼를 잡을 수 있었다. 그는 버둥거리는 토끼를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괜히 놀랐군.’
그리고 토끼를 땅에 던졌다.
솩- 솩- 솩-
옷깃이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지마를 쫓아갔던 열몇 명의 사람들도 돌아왔다.
“어떻게 되었어?”
“놓쳤네. 그 사마의 속도가 너무 빨랐어. 그리고… 이상한 느낌이 들더군.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어.”
방금 전 지마를 쫓아갔던 신유 경지 고수가 대답하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넌 왜 여기 있어?”
“이쪽에서 기척이 들리길래 쫓아왔더니 토끼였어.”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더니 갑자기 안색이 확 변했다.
“유인 당한 거야!”
그들은 다급히 만약담 근처로 돌아가 자세히 살펴보았다.
만약담은 아무 일도 없었고, 단성도 괜찮았다. 모든 것이 고요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며 방금 전의 사마가 도대체 뭘 하려 했었는지 궁금해했다. 하지만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다. 이곳은 약왕곡의 근거지였다. 만약 정말 무슨 일이 생긴다면 약왕곡의 손해일 뿐만 아니라, 천하의 모든 연단사들에게도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그 죄는 신유 경지 고수 두 명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만약담은 깊지 않았는데, 깊이가 십몇 장 정도 되어 보였다.
양준은 만약담에 뛰어든 뒤, 빠른 속도로 잠입했다. 잠입하는 와중에 양준은 이미 손에 검은 책을 들고, 다섯 번째 장을 펼치고 있었다.
드디어 만약담 밑바닥에 도착했을 때, 다섯 번째 장에서 빛이 나타나더니 양준의 몸을 감쌌다.
곧이어 만약담 아래쪽에서 은밀한 문양이 나타났다. 양준의 몸은 만약담 밑바닥을 가르고 더욱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
눈앞이 흐릿해지더니 양준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주변에 물이 없었다. 이곳은 밀폐된 공간이었다. 밀폐되었으나 답답하지 않았고, 공기 중에는 향기가 느껴졌다.
이윽고, 몸을 감쌌던 빛이 신속하게 양준의 몸속으로 들어왔다. 이 순간, 양준의 머릿속에 뭔가가 떠올랐다.
그는 머릿속에 떠오른 정보를 바로 알아보지 않고, 주변 환경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아마도 만약담의 아래쪽인 것 같았다. 만약담에 있는 신비로운 진법 덕에 그가 들어와도 일반 사람들은 발견할 수 없었다. 실력이 아무리 강한 사람이 만약담에 잠입한다 해도 이곳을 발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쩐지, 몇천 년 동안 누구도 만약담의 비밀을 밝혀내지 못했다 했어. 비밀이 이곳에 숨겨져 있었구나.’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된 양준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는 멀지 않은 곳에 우물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우물의 넓이는 대야만 했는데, 가까이 다가가자 우물 속에 투명하고 흰색을 띠는 액체가 있는 것이 보였다.
이 우물의 주위에는 현묘한 그림과 문자로 가득했는데 심오한 진법인 것 같았다.
진법의 작용을 받아 위쪽에서는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원기둥 모양의 기운이 나타났다. 그것은 달빛처럼 끊임없이 기운을 우물 속으로 쏟아 넣고 있었다.
기운의 시작은 바로 만약담의 밑바닥이었고, 기운이 끝나는 곳은 바로 이 우물이었다.
우물 가까이에 다가가 냄새를 맡자 이곳에 풍기던 향기가 우물 속의 액체에서 피어오르는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내민 양준이 그 액체를 찍어 입에 넣자 달콤한 맛이 혀끝에서 퍼졌다. 이 액체는 순식간에 따뜻한 기운으로 변해 사지와 뼛속으로 스며들었다.
양준은 몸을 흠칫 떨었다. 그는 자신의 실력이 진원 경지 2단계의 정체기를 순식간에 돌파하고, 진원 경지 3단계로 올라간 것을 느꼈다.
보이지 않는 기운이 퍼지면서 양준의 표정이 변했다. 그는 만약담 위쪽에 있는 고수들에게 들킬까 두려웠다.
하지만 뜻밖에도 이 밀폐된 공간은 진급하는 그의 기척을 완전히 막아줘, 바깥까지 기척이 새어 나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는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큰일날 뻔했네.’
양준은 기쁜 표정을 지었다.
‘이 우물에 들어 있는 액체는 도대체 정체가 뭐지? 효과가 이렇게 좋다니.’
보름 전에 양준은 이미 진원 경지 2단계 정상에 도달했다는 것을 느꼈지만, 여태까지 아무리 노력해도 경지를 돌파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오늘 액체 한 방울 때문에 경지를 돌파한 것이다.
양준은 방금 머릿속에 들어온 정보가 그의 마음속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마음을 가다듬고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양준은 놀란 얼굴로 눈을 번쩍 떴다.
원하던 답을 찾아낸 것이다.
우물 안에 있는 우유 빛깔을 띠는 액체는 만약영액(萬藥靈液)이라는 것이었다.
만약담에는 해마다 천 알이 넘는 단약이 던져졌다. 이 단약에 들어 있는 기운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만약담 진법의 작용을 거쳐 전부 이 우물에 응집된 것이었다. 또 이 우물의 작용으로 만약영액으로 변한 것이었다.
이건 절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꾸준히 단약을 투척해야 만들어질 수 있었다.
약왕곡은 무려 오육천 년이나 이 행위를 지속해 오고 있었다. 해마다 천 알이 넘는 단약이 만약담에 던져졌으니, 만약담이 모은 단약의 수만 최소 몇백만 알은 되었다.
몇백만! 이 얼마나 놀라운 숫자인가.
단약의 품급이 아무리 낮다고 해도, 질이 아무리 좋지 않다고 해도 이렇게 많은 숫자가 모이면 세상을 뒤흔들 수 있는 기운을 만들 수 있었다. 게다가 약왕곡은 단성이 더욱 오랫동안 신묘함을 유지하게 하려고 많은 천급, 지급의 단약을 쏟아 넣었다. 심지어 현급 단약을 넣을 때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기운이 모두 이 우물 하나에 모여 만약영액이 된 것이었다.
이는 몇천 년의 시간을 걸쳐, 몇백만 알의 단약이 모여서 만들어진 액체로, 만약영액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 효과도 놀라웠다. 경지를 증진시킬 수 있고, 장기적으로 복용하면 환골탈태가 가능했다. 멍청이라도 이 만약영액을 꾸준히 마신다면 천재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연단에도 보조적인 작용을 일으켰다. 그 어떤 단약을 제조하든 만약영액을 한 방울만 넣으면 품질이 반 단계는 높아졌다.
절대 이 반 단계를 낮잡아 보면 안 되었다. 현급 상품의 연단이 반 단계 상승한다면 영급 단약의 문턱을 넘는 셈이었다. 이건 소부생이 평생 동안 감히 추구하지도 못한 일이었다.
상처를 치료할 수 있고 경지를 늘릴 수 있고… 이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