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261화 (261/853)

제 261장. 만약영액

만약영액은 각종 단약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었지만, 그것의 효력은 이미 단약의 효과를 훌쩍 뛰어 넘은지 오래였다. 더구나 우물에 새겨져 있는 특이한 진법은 수시로 천지의 기운을 흡수하고 있었다. 몇천 년 동안 이렇게 반복되어 왔다면 이 우물안에 있는 약액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다.

약왕곡은 이런 보물이 숨겨져 있는 산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저 단성 유상밖에 이용할 줄 몰라 그것의 만 분의 일의 효율도 사용하고 있지 못했다.

하지만 바로 이 단성 유상의 존재 덕분에 약왕곡과 천하의 연단사들이 이곳에 수천 년 동안이나 끊임없이 단약을 던져, 지금의 만약영액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이기도 했다. 만약 단성 유상이 없었더라면 우물 안의 약액도 없었을 것이다.

양준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마음속의 흥분을 가라앉혔다.

‘만약 약왕곡에서 자신들이 몇천 년 동안 쌓아온 보물이 외부인의 손에 넘어갔다는 것을 알면 무슨 표정을 지을까?’

양준과 약왕곡은 아무런 원한이 없었다. 이번에 온 것도 그저 검은 책의 지시에 따른 것이지 남의 보물을 빼앗으려는 의도는 없었다. 마음속으로 미안함을 표한 양준은 검은 책을 든 채 다급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 만약영액은 마땅한 물건 없이는 담아 갈 수 없었다. 양준은 능태허가 준 건곤대로 만약영액을 담으려고 시도해 보았으나 실패했다.

하지만 그는 진작 준비한 것이 있었다.

양준은 한 장을 넘겨 검은 책의 여섯 번째 장을 펼쳤다.

진원 경지로 진급했을 때, 양준은 이미 여섯 번째 장을 펼칠 수 있었다. 그는 여섯 번째 장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 알면서도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다섯 번째 장에 나타난 진법 문양의 뭔가 비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그의 생각은 정확한 것이었다. 검은 책의 앞 다섯 장에는 향로를 제외하고 이미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향로를 꺼낸 양준은 여섯 번째 장에 진원을 주입했다.

곧이어 검은 책장에 갑자기 문양 하나가 나타났다. 이 문양은 한눈에 진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만 다섯 번째 장의 문양과 전혀 달랐다. 이 문양은 진원이 주입되자 꿈틀거리며 미친 듯이 양준의 진원을 흡수했다.

문양은 끊임없이 반짝거렸고, 양준의 진원도 금방 고갈되었다.

양준은 단전 안의 양액을 터뜨렸다. 그러자 메마른 단전에서 다시금 진원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소중한 양액을 열 방울이나 소모해서야 여섯 번째 장이 포화되기 시작했고, 문양이 변하면서 앞 여섯 장이 하나로 뭉쳐졌다.

신식이 그 속에 깊이 침투되자 양준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검은 책을 얻은 지 이삼 년이 지났고, 진작에 이것이 진혼석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오늘에서야 양준은 이 책의 기본적인 기능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진혼석은 원래 뭔가를 저장할 수 있는 보물이었다.

저장 비보는 항상 전설 속에 존재했다. 양준은 검은 책을 얻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그것이 진정한 가치를 발휘할 수 있기를 바랐다. 특히 일 년 전에 외지로 수련하러 갔을 때, 능태허가 그에게 건곤대를 주면서 그는 저장 비보의 중요성과 편의를 깨달았다.

그럴듯한 저장 비보가 있다면 많은 번거로움을 줄일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의 소원이 드디어 이루어진 셈이었다.

검은 책의 앞 여섯 장이 하나로 합쳐지며 독립적인 공간이 형성되었다.

조금밖에 저장할 수 없는 건곤대와 달리 이 공간은 더없이 방대했는데, 집 몇십 채는 합친 듯한 크기였다. 살아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물건을 담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중에 검은 책의 뒷장들을 펼친다면 필요 없는 장도 한데 융합되어 공간의 크기를 더욱 넓힐 수 있을 것이다.

신식으로 이 거대한 공간을 살펴본 양준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렇게 큰 공간이 생기자 우물의 액체를 담지 못할까 봐 걱정할 일은 없었다.

잠시 뒤, 양준은 신식을 거두고, 검은 책을 들고서 한 손으로 진원을 조종했다. 그리고 정확하게 만약영액을 우물에서 꺼내 검은 책 속으로 주입했다.

만약영액은 한 방울 한 방울이 더없이 진귀하여 양준은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조금만 다른 곳에 정신을 팔았다가 쏟을까 두려웠다. 다행히 소부생에게서 원기를 조종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운 덕분에 진원을 조절하는 수법이 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양준은 초반에 매우 조심스럽게 행동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빨라졌다. 마지막에 이르자, 보지도 않고 한 손으로 만약영액을 이끌어내 바로 검은 책의 공간에 넣을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무려 6~7시진이 훌쩍 지나갔다.

일을 마친 양준은 허리가 시큰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손의 움직임도 기계적으로 변했다.

그렇게 꺼낸 만약영액은 무려 천 근을 웃돌았다.

우물 안을 들여다보자 만약영액보다 더욱 짙은 뭔가가 있었다. 여전히 우유 빛깔이었지만 반고체 상태였다.

만약영유(萬藥靈乳)!

만약영액보다도 한 등급 높은 존재였다.

이 우물은 오랫동안 존재했다. 약왕곡 사람들은 몇천 년 동안이나 끊임없이 만약담에 각종 단약을 투척했고, 그 단약의 기운들이 이 우물 속에 침전된 것이다. 귀한 성분일수록 바닥에 가라앉아 밑바닥에 응결된 것이었다.

아래쪽의 만약영유를 바라본 양준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이를 악문 채, 계속해서 검은 책에 그것을 담았다.

또 서너 시진이 지나자, 만약영유도 모두 깨끗하게 검은 책에 담을 수 있었다. 그가 챙긴 만약영유는 비록 만약영액만큼 많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이삼백 근은 되었다.

만약영유의 효과는 영액의 두 배였다.

이것만 있다면, 소부생이 그토록 소망하던 영급 단약도 제조할 수 있었다. 손톱만 한 만약영유는 단약의 등급을 한 단계나 높여 주었다.

만약영유를 다 저장하자, 맨 아래층에 있던 또 다른 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는 아예 고체로 되어 있었고, 아마 이 우물에서 가장 귀중한 보물인 듯했다.

바로 만약영고(萬藥靈膏)였다!

효력은 만약영유의 두 배였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양준은 또다시 조심스럽게 그것을 거두었다.

한참 뒤, 양준은 이마의 땀을 닦고 가부좌를 한 채 바닥에 앉아 가볍게 숨을 들이쉬며 체력을 회복했다.

만약영고는 영액과 영유에 비했을 때 양이 많지 않았다. 몇십 근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 몇십 근은 몇천 년 동안, 몇백만 알의 단약에서 가장 중요한 기운만을 모아 만들어진 것이었다.

지금 이 순간, 우물은 완벽하게 비워졌고, 몇천 년 동안 누적된 모든 것이 양준의 주머니 속에 들어갔다.

미간을 찌푸리고 생각에 잠긴 양준은 이 모든 것이 누군가가 몇천 년 전에 계획해 놓은 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깥의 단성 유상은 이 판에서 가장 큰 미끼였다. 연단사들이 유상에서 깨달음을 얻으려면 반드시 만약담에 단약을 넣어야 했다.

이렇게 투입된 단약은 그 기운과 정수가 모두 이곳에 쌓였다. 그렇게 몇천 년이 지나자, 우물 속에서 만약영액이 형성된 것이다.

‘검은 책을 만든 사람이 이 판을 설계한 것일까?’

양준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설계가 아주 교묘한 것이 깨달음을 얻으려는 연단사의 심리를 이용하여 아낌없이 단약을 쏟아붓게 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단성 유상이 존재하는 한, 만약담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몇천 년이 지나면 우물에는 다시 만약영액이 가득 찰 것이다.

하지만 변화가 빠른 세상에서 약왕곡이 이미 몇천 년 동안 유지된 것도 기적이었다. 몇천 년 뒤에 누군들 이곳이 존재한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양준이 한창 사색에 잠겨 있을 때, 이 밀폐된 공간에 이상한 반응이 나타났다.

다급히 눈을 뜬 양준은, 크지 않은 공간에서 각종 신묘한 문자와 문양들이 반짝이는 것을 발견했다.

문자는 매우 오래되 보였고, 현묘하여 알아볼 수 없었다. 문양도 온갖 모양으로 가득했지만, 양준은 한눈에 이 문양들이 모두 진법과 진도(陣圖)라는 것을 알아챘다.

문자와 문양들은 밀실에서 빛을 뿜으며, 신기하게도 물속의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양준은 미간을 찌푸린 채, 이 모든 것을 잘 살펴보았다. 그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었다.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밀실이 환해지더니, 수많은 문자와 문양들이 미친 듯이 양준을 향해 날아왔다.

문자와 문양들이 양준의 머릿속으로 파고들자, 그는 머리가 어질어질해졌다. 끊임없이 들어오는 문양과 문자들 때문에 양준은 머리가 폭발할 것 같았다. 이마 위의 실핏줄도 툭툭, 불거져 나왔고,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는 모습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이런 기괴한 현상은 한참 지속되다가 맨 마지막에는 양준의 몸속으로 빛이 들어왔다. 이윽고 밀실 전체가 어둡고 탁해졌다.

양준은 머리가 너무 아팠다. 잠시 뒤, 뜨뜻한 열감이 전해지더니 아픔이 사라졌다.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쉰 양준은 온신련이 작용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같은 상황은 유명산의 하얀 안개 속에서 겪었던 고통과 비슷했다. 모두 신식이 다쳤다가 온신련이 자동적으로 복구할 때 일어나는 느낌이었다.

양준은 머릿속에 뭔가 꽉 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런 정보는 검은 책에서 나온 것과는 전혀 다른 등급이었다.

검은 책을 처음 펼쳤을 때도 정보가 머릿속에 들어왔지만, 주입된 정보의 양은 매우 적어, 신식을 수련하지 않고도 쉽게 깨우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의 머릿속에 주입된 정보의 양은 아주 방대했다. 양준 스스로도 그것이 뭔지 모를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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