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2장. 천재지변
마음을 가라앉힌 양준은 천천히 머릿속의 깨달음을 느껴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묘한 정보가 튀어나왔다.
연단진결(煉丹真訣)!
천천히 살펴보던 양준은 이것이 연단술과 관련된 정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은 공법도, 무공도 아닌, 어떻게 좋은 단약을 제조할 수 있을지 알려주는 내용이었다.
머릿속에 떠오른 연단진결의 정보에 의하면, 이 연단진결에는 무수한 연단 대사들의 경험과 깨달음이 들어 있고, 많은 연단 수단들이 담겨 있었다. 이것은 절세 보물과 같은 존재였다.
양준은 무도의 정상에 오르기를 바랐던지라 연단술에 집중력을 흐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하응상은 이런 것이 필요할 것 같았다. 만약 이 연단진결의 도움을 받는다면 그녀의 실력은 크게 늘 수 있었고, 그녀의 체질과 능력으로 등급이 더욱 높은 단약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양준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는 급히 나가지 않고 자세히 살펴보았다.
하지만 살펴본 지 몇 분도 지나지 않아, 금방 피로해졌다. 가라앉은 지 얼마 안 된 따끔함이 또 머릿속에서 퍼져왔다.
“쓰읍!”
숨을 두 번 들이쉬자 온신련이 작용을 발휘하며 천천히 손상된 신식을 복구했다. 그러자 괴로움이 좀 가셨지만, 피로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의 신식의 힘이 방금 전 짧은 순간에 전부 소모된 것이다.
신식의 힘은 체내의 원기처럼 한계가 있었다. 원기가 소진되면 무인은 전투를 할 수 없고, 신식의 힘도 사라져서 신식을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이는 신유 경지의 고수들이 신식을 수련할 수 있어도 일반적인 상황에서 쓰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다.
원기의 회복은 쉬우나 신식의 회복은 어려웠다. 신식과 연관된 천재지보와 단약은 일반적인 보물들보다 훨씬 귀중했다.
양준은 지금 진원 경지 3단계에 불과했다. 이미 신식을 수련하여 일반적인 신유 경지 4~5단계의 고수들 못지 않았지만, 머릿속의 연단진결을 엿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미간을 찌푸린 채, 네다섯 시진을 기다린 양준은 그제야 신식의 힘이 다시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온신련의 도움이 있어도 네다섯 시진이 걸려야 회복되는데 일반적인 신유 경지의 무인이라면 신식의 힘이 모두 소진되었을 때, 적어도 열흘이나 보름 남짓한 시간이 흘러야 이 정도로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신식에 도움이 되는 단약을 몸에 지니고 다녀야겠어.’
양준은 속으로 생각했다.
또 한 번 같은 행동을 시도해 본 양준은, 몇 분 후 신식이 또다시 소모되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번에 양준은 그것이 다시 회복되기를 기다리지 않고, 만약영액을 복용했다. 그러자 신식의 힘이 신속하게 치료되었다.
반 시진도 지나지 않아 그는 정신이 들고 기운이 넘쳤다.
연이어 열몇 번 더 시도한 끝에 양준은 드디어 조금씩 유용한 정보를 습득할 수 있었다.
그것은 영진(灵阵)이었다. 연단에 도움을 주는 영진은 연단하는 솥 안에 새길 수 있었는데, 단약을 제조할 때 단약의 품급과 등급을 향상시켜 주었다. 하지만 효과도 그다지 좋지 않았고, 항상 안정적으로 효과가 나타나는 것도 아니었다.
방대한 신식의 힘을 소모하고, 또 만약영유를 열몇 번 복용하여 겨우 이것을 깨우친 양준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노력과 수확이 비례를 이루지 않자, 괜한 고생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연단진결의 오묘함과 신묘함은 그의 미약한 신식의 힘으로는 전부 엿볼 수 없었다.
양준은 저도 모르게 아쉽다고 생각하며 천천히 연단진결을 거두었다. 그리고 앞으로 신식이 다시 회복되면 좀 더 계획을 짠 뒤 살펴보기로 마음먹었다.
신식이 짧은 시간에 조금 강해진 것을 느낀 것이 그나마 기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만… 이 연단진결은 어떻게 이곳에 있을 수 있었는가? 그리고 어떻게 이런 방식으로 머릿속에 들어온 것일까?
검은 책을 만든 사람이 연단진결을 장악하고 싶었다면, 얼마든지 그것을 검은 책 한 장에 봉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양준은 실력이 일정한 정도로 올랐을 때, 검은 책에서 그 지식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의 지금 실력으로는 이렇게 방대하고 현묘한 정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만약 이번에 온신련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그는 신식을 다쳤을 것이다.
덕분에 양준은 단성 유상의 현묘함에 대한 비밀을 깨달았다. 수많은 연단사들이 단성 유상에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연단진결 덕분이었다.
다만, 유상을 거쳐 연단진결의 깨달음을 얻을 경우, 수확이 아주 적었다. 양준은 이 사실을 엉겁결에 알게 되었다.
그는 이곳의 모든 물건을 싹쓸이했다.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메마른 우물밖에 없었다.
‘이젠 떠나야겠어.’
정좌 자세로 몇 시진이나 앉아 있던 양준은 몸의 상태를 최고치로 끌어올리고 나서 나갈 길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는 이 밀폐된 공간 안에 분명 숨겨진 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참을 찾아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이에 그는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길이 없으면 어떻게 나가지? 들어온 곳으로 솟구쳐 나가야 하나? 밖에는 신유 경지 고수 두 명 하고, 진원 경지 고수들이 지키고 있을 텐데.’
그가 만약담을 나가는 순간, 바로 잡힐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양준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생각했다.
또 밀실에서 한참 동안 자세히 탐색한 그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양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는 눈앞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검은 책이 그더러 이곳으로 와서 만약영액을 챙겨가게 했으면 그가 나갈 길도 준비해 두었을 것이다.
‘하지만 왜 찾을 수 없는 거지? 뭔가를 놓쳤나?’
양준은 그 어떤 곳도 놓치지 않고, 샅샅이 열 번도 넘게 훑어보았다.
반나절 뒤.
그의 인내심은 바닥나고 말았다.
양준은 이곳에 비밀 통로가 없다는 것을 확신했다. 나가려면 만약담에서 뛰쳐나가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았다.
‘그냥 잡히라는 건가?’
만약담은 약왕곡의 금지된 곳이었다. 비록 그는 지금 운은봉의 제자라고 할 수 있었지만, 지금 만약담 밑바닥에서 나간다면 좋은 결과를 맞이하기 힘들 것이다.
이를 악문 양준은 끝내 위로 나가기로 결심했다. 비록 밖에는 많은 고수들이 지키고 있었지만, 빠르게 도망친다면 살아남을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마음을 굳힌 뒤, 양준은 위로 솟구쳐 올랐다. 손을 뻗어 만져 본 그는 주먹으로 돌파하며 나아갔다.
이 주먹은 그저 떠보는 것에 불과했다.
만약담이 약왕곡에서 이토록 오랫동안 존재했으니 분명 많은 고수들이 내려와서 그 안의 현묘함을 파헤치려고 공격을 펼쳤을 것이다.
그 고수들이 이 밑바닥의 봉인을 열지 못한 것은 진법이 원인인 것 같았다.
양준도 자신이 날린 주먹 한 방으로 만약담 밑바닥을 뚫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쿠르릉-
하지만 일은 항상 기묘하게 돌아갔다. 그가 주먹을 날리자 위쪽을 막고 있던 무언가가 산산조각 나면서 와르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만약담의 물이 머리 위로 쏟아졌다.
양준은 안색이 변했지만 머뭇거리지 않고 물을 맞으며 신속히 위로 올라갔다. 그의 진원이 용맹하게 움직였다. 그는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공격당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신속하게 반격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그가 공중까지 솟구쳤는데도 아무런 공격을 받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본 양준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만약담 옆에는 시체가 산처럼 쌓여 있었고, 피가 강을 이루고 있었다.
만약담 옆에 우뚝 서 있는 단성 유상도 산산조각 난 채로 땅바닥에 흩어진 상태였다.
공기 중에 피비린내가 바람을 타고 불어왔다. 그의 귓가에는 죽고 죽이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양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는 공중에서 몸을 굽혀 땅에 착지했다.
사방을 둘러본 그는 몇백 장 밖까지 전투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약왕곡 열두 개의 산봉우리들은 모두 연기로 자욱했다. 높은 곳에 서서 산골짜기의 마을을 굽어보자 모든 곳이 발칵 뒤집혀 매우 혼란스럽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공중에서 많은 신유 경지의 고수들이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각종 거센 무공들과 신기한 비보들이 모두 위엄을 자랑했다.
‘누군가 약왕곡을 공격했어! 누가 이런 짓을 한 거지?’
게다가 지금은 연단 대회가 열리는 민감한 시기였다.
약왕곡은 몇천 년 동안 내려오면서 그 어떤 세력과도 척을 진 적이 없었다. 정파든, 사파든, 강하든, 약하든, 약왕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중립의 원칙을 고수했다.
사악한 무인들도 약왕곡으로 찾아와 연단을 부탁했다.
중립의 원칙을 고수했기에 약왕곡은 몇천 년 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누군가 약왕곡을 공격해 살육을 벌이고 있었으며, 심지어 단성 유상까지 파괴해 버렸다.
이것은 천재지변이었다!
약왕곡은 천하의 모든 세력과 다 이어져 있었다. 약왕곡 마을 안에서는 크고 작은 수많은 세력들이 지키고 있었다. 만약 누군가 약왕곡을 공격한다면 그게 누구든 세상과 등을 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약왕곡의 주둔하고 있는 세력들은 모든 것을 마다하지 않고, 약왕곡을 괴롭힌 세력을 응징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전쟁의 상황을 보니 약왕곡이 열세에 처한 것 같았다.
‘단성 유상마저 망가지다니. 이건 천하의 손해로군.’
양준은 어쩐지 단성 유상이 망가진 것이 자신의 머릿속에 연단진결이 마구 들어온 것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되었다. 이전까지 연단진결은 단성 유상 안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자리에 서서 멍한 얼굴로 한참 있던 양준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신법을 펼쳐 운은봉이 있는 방향으로 뛰어갔다.
동경연과 하응상이 아직 그곳에 있었고, 소부생과 전혀 무술을 할 줄 모르는 두 부인들도 그곳에 있었다. 비록 몽무애가 강하다 해도, 지금 상황이 어떤지 누구도 단언할 수 없었다.
양준은 바람과 같은 속도로 운은봉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양옆의 풍경은 빠른 속도로 뒤로 밀려났다. 그가 신식을 펼치자 사방 십 리 범위의 상황들이 일목요연하게 펼쳐졌다.
하늘을 찌르는 살기와 사기가 약왕곡에 가득 차 있었다. 약왕곡의 제자들과 싸우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사기로 가득한 사람들이었다.
‘사악한 기운이 잔뜩 흐르는 사람들이라니!’
양준은 이 사람들이 어느 사악한 세력 출신인지 알지 못했다.
사마의 길로 전락한 무인들과 약왕곡의 제자들 말고 각지에서 온 무인들도 전쟁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모두 약왕곡을 도와주러 온 사람들이었지만, 고수가 많지 않았다. 때문에, 곳곳에는 그들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