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3장. 창운사지
몇리 밖에서 벽록색 독가스가 주위에 수백 장을 뒤덮고 있었다. 독가스가 뒤덮이자 모든 나무와 꽃과 풀들이 시들어 갔다. 땅에는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무인들의 시신이 가득했다. 피와 살이 썩어서 새하얀 뼈가 앙상하게 드러나 있었다.
하늘에서는 끊임없이 공격당하거나 죽은 신유 경지 고수들의 시체가 떨어졌다. 이 사람들은 대부분 강한 세력의 고수들이었는데, 사기로 가득한 신유 경지 고수들에게 몰려 열세에 처해 있었다.
양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는 약왕곡에 왜 이렇게 큰 변고가 나타난 것인지 알지 못했지만,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운은봉까지 절반 정도 다다랐을 때 갑자기 온몸이 피투성이인 한 남자가 길을 가로막았다. 이 남자는 손에 큰 칼을 들고 있었는데, 칼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지고 살점이 붙어 있었다.
남자는 음산하게 웃은 뒤, 늑대 같은 눈길로 마주 오는 양준을 바라보며 칼에 붙은 살점을 입에 넣고 마구 씹기 시작했다. 마치 무슨 맛있는 음식이라도 먹는 것처럼 남자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양준은 주변을 훑어보았다. 그는 남자의 발치에서 한 사람의 시체를 발견했다. 그 시체는 약왕곡의 제자는 아니었고, 다른 종문 출신인 것 같았다. 이미 죽은 지 한참 지난 것 같았는데 얼굴의 살이 한 점 뜯겨 나간 모습이었다.
“또 맛있는 것이 찾아왔군!”
남자는 기괴한 웃음을 지으며 일그러진 얼굴로 말했다. 그의 진원은 불안하게 솟구치며 사악한 기운을 내뿜었다.
진원 경지 5단계!
양준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더니 차가운 얼굴로 신식을 펼쳐 순식간에 남자의 머릿속으로 침입했다.
순간, 남자의 얼굴이 굳어지더니 두 눈이 살짝 풀렸다.
양준의 신식은 신유 경지 4,5단계의 고수들보다 못하지 않았지만, 신혼기(神魂技)를 연습해 본 적이 없는 그로서는 이렇게 거칠게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정도로도 충분했다.
눈 깜짝할 새에 남자는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미처 공격을 펼치기도 전에 양준의 주먹이 가슴을 적중했다.
퍽!
그는 소리와 함께 이백 근에 달하는 대포알처럼 날아가더니 가슴팍 부근이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푹 꺼져 들어갔다.
남자의 몸은 공중에서 피로 분수를 뿌리며 터져 버렸다. 심지어 진원을 조종하여 막을 시간조차 없었다.
양준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스쳐 지나갔다.
잠시 뒤, 양준은 운은봉에 도착했다.
다른 산과 비교했을 때, 운은봉에는 죽은 사람이 가장 적었다. 이곳은 항상 조용하여 사람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곳의 전투는 가장 격렬했다.
아직 산봉우리에 오르지 않았는데도 고개를 들자, 몽무애가 신유 경지의 무인들과 미친 듯이 접전을 벌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몽무애는 위력이 엄청나고 수단이 대단했다. 하지만 지금 그의 경지도 신유 경지 정상에 불과했다. 그와 접전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은 족히 여섯 명은 되어 보였고, 그중 두 사람은 이미 신유 경지 8단계였다. 또한 나머지 네 사람도 결코 약하지 않았다. 모두들 신유 경지 5단계 이상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전승동천 때 대치했던 혈전방의 고수들보다 훨씬 강했다.
일곱 명의 신유 경지 고수들은 운은봉 산꼭대기에서 불꽃이 보일 정도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전투 중, 한 사람이 소리쳤다.
“무슨 노인네가 저렇게 세!”
만약 일반적인 신유 경지 정상이었다면, 여섯 명의 공격을 받고 진작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몽무애는 전혀 열세에 처하지 않고 사람들이 아연실색할 만한 무공을 선보였다.
이 사람들은 소부생을 잡으라는 명을 받고 온 사람들이었다. 원래 두 명만 의기양양하게 왔지만, 운은봉에 독착하자마자 몽무애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두 명의 신유 경지 고수가 죽자 여섯 명은 운은봉에 강자가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고 함께 쳐들어온 것이었다. 그런데도 아무런 우세를 차지하지 못했다. 그들 여섯 명이 손을 잡고 공격을 펼친다면 신유 경지 이상인 고수들도 피하기 마련인데, 몽무애는 신유 경지 정상밖에 되지 않으면서 그들의 공격을 전부 막아냈다.
몽무애가 펼친 무공의 살상력은 엄청났는데, 모두 듣도 보지도 못한 공법이었다. 여섯 명은 점차 겁을 먹었다. 그들은 이번에 만만치 않은 상대를 만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 영감은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여섯 명은 어리둥절했다.
‘운은봉에서 신유 경지인 사람은 소부생뿐이라고 하지 않았어?’
소부생은 무거운 얼굴로 서서 조용히 공중에서 벌어지는 접전을 지켜보았다.
그는 신유 경지였으나 평생 연단만 수련한 탓에 싸울 줄 몰랐다. 그래서 무공도 익숙하게 펼칠 수 없는지라 도움이 되지 못했다.
우아한 두 부인들도 그의 뒤에 서 있었고, 그 뒤에는 동경연과 하응상이 있었다. 네 여인은 모두 표정이 굳은 채, 긴장하고 있었다.
“주인, 돌아왔는가!”
지마가 기쁨에 차 환호했다. 다음 순간, 양준은 운은봉 꼭대기에 모습을 드러냈다.
파혼추가 곧장 날아왔다. 양준은 손을 뻗어 그것을 받았다. 그러자 그것은 검은 연기로 변해 양준의 몸속으로 사라졌다.
소부생은 덤덤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동경연은 다급히 양준에게 손을 저으며 그더러 얼른 오라고 했다.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양준은 사람들 옆으로 다가가며 낮은 소리로 물었다.
“하루 전에, 창운사지(蒼雲邪地)에서 갑자기 약왕곡을 공격했어. 기세가 대단한 것이 오래전부터 준비했던 것이 틀림없어. 마을을 지키던 각 세력의 고수들도 죽고 다쳤지. 그들은 약왕곡 각 산봉우리에 쳐들어가서 제자들을 잡아갔어. 연단 대회에 참석한 연단사들도 피해를 입었고…….”
하응상은 하룻동안 일어난 일들과 그녀가 알고 있는 것을 얘기했다.
그녀의 말에서 양준은 많은 정보를 알게 되었다.
창운사지는 세상에서 가장 큰 사마 조직이었다. 그곳은 모든 사악한 무인들의 근거지였는데 대한의 서남쪽 전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서남의 모든 곳은 창운사지 구역이었다.
창운사지에는 고수가 많고 세력이 강했는데, 중도 8대 가문 중 그 어떤 가문에도 뒤처지지 않았다.
창운사지는 앞서 몇 달 전부터 이미 이번 공격을 준비해 온 것이 분명했다. 그들은 곳곳에서 각 큰 세력들의 적계 제자를 납치했다. 동경연이 약왕곡의 변두리에서 습격당한 것도 창운사지 사람이 공격한 것이었다.
이번에 특별히 연단 대회가 열린 날에 전쟁을 일으킨 것은 납치한 적계 제자들을 방패로 내세워 마을의 많은 세력들이 그들을 공격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그래서 약왕곡이 수세에 몰리게 된 것이었다.
그들의 이번 목표는 약왕곡을 멸하려는 것이 아니라 천하의 연단사를 포획하려는 것이었다. 약왕곡의 제자든, 연단 대회에 참가하러 온 연단사든, 잡을 수 있는 만큼 잡으려 했다.
그들은 심지어 단성 유상도 노렸다. 다만, 단성 유상은 너무나도 큰데다 약왕곡 신유 경지의 고수들이 필사적으로 가로막자 미처 빼앗지 못했다. 그리고 양측이 격전을 벌이는 와중에 단성 동상이 그만 부서지고 만 것이다.
창운사지 사람들이 온갖 비열한 수단을 사용하자 약왕곡 쪽은 당해낼 수 없었다.
운은봉에서는 마침 몽무애가 손님으로 왔기에 망정이지, 만약 그러지 않았더라면 소부생은 진작 잡혀갔을 것이다.
양준은 곧 눈앞의 상황을 이해했다.
그는 속으로 창운사지의 대담한 행동에 놀라면서도 그들이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이렇게 많은 연단사를 잡아가는지 생각해 보았다.
공중에서의 전투는 여전히 진행되고 있었고, 몽무애는 수적으로는 밀렸지만 전혀 수세에 몰리지 않았다.
“결진(結陣)!”
흑발의 노인이 소리쳤다.
그 소리에 여섯 명이 똘똘 뭉치더니 현묘한 진법을 설치했다. 여섯 명이 함께 초식을 펼치자 몽무애도 신음을 흘리며 안색이 하얘졌다.
그가 숨을 돌리고 있을 때, 여섯 명은 다시 눈빛을 주고받더니 그중 신유 경지 5단계의 고수가 진법에서 뛰쳐나가며 운은봉 쪽으로 몸을 날렸다.
나머지 다섯 명은 맹렬하게 공격을 펼치며 몽무애의 시선을 끌려고 했다.
“감히!”
몽무애는 노호했다. 하늘을 뒤덮는 커다란 수인이 날아와 다섯 명의 몸을 사정없이 흔들었다. 그리고 그 기세를 몰아 운은봉으로 날아가는 사람에게 일격을 날렸다.
고목성수(枯木聖手)! 현급 상품의 무공이었다!
보이지 않는 장풍이 순식간에 덮쳐오자 창운사지의 고수는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다급히 몸을 피했다.
장풍이 그의 한쪽 팔을 스쳐 지나가자 그의 팔은 순식간에 마비되었다. 그러자 팔은 마치 고목처럼 신속하게 메말라 갔다.
그 사람은 안색이 변하더니 다급히 공법을 운행하여 막았다.
다행히 장풍에 살짝 스쳐 지나갔을 뿐이라 막을 수 있었다. 메말라 가던 팔이 점점 혈색을 회복하는 것을 보고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키득키득 괴이한 웃음소리를 내며 속도를 빨리하여 독수리처럼 아래쪽을 향해 덮쳤다.
양준 무리는 적을 상대하려고 진원을 미친 듯이 움직이며 준비하고 있었다.
산꼭대기에 남아 있는 사람 중 소부생 한 사람만 신유 경지였다. 하지만 전투를 할 수 없는 신유 경지였다. 공격하는 사람은 신유 경지 5단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들을 모두 죽이고도 남을 실력이었다.
하늘을 뒤덮는 사기가 얼굴 가까이에서 느껴졌다. 그 사람은 일그러진 얼굴로 크게 웃으며 말했다.
“소부생, 죽기 싫으면 반항하지 마! 나는 그저 네놈을 우리 성지로 초대하려는 것이지 죽일 생각은 없으니까!”
소부생은 안색을 바꾸지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그 사람은 날아오면서 향씨 이모와 난씨 이모, 또 동경연과 하응상을 바라보며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맛있어 보이는 미인들이 많구먼… 아쉽지만 오늘은 내가 볼일이 있으니 나중에 예뻐해 줄게!”
그는 말하면서 손을 뻗어 소부생을 잡아가려고 했다.
소부생은 코웃음을 치더니 손을 뻗어 습격했다.
그 사람은 차가운 웃음을 띤 채, 손쉽게 소부생의 무공을 깨뜨리고 한 손으로 신속하게 소부생의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 숨을 들이쉬더니 공중으로 날아가려고 했다.
바로 이때, 양준과 하응상, 동경연이 동시에 그를 공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