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5장. 기사회생하다
자신에게 말을 건 이가 양준이라는 걸 발견한 순간, 말하는 그의 태도가 바로 바꼈다. 일 년 전, 양준이 백씨 가문의 백운풍과 전투를 벌인 일에 대해 그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종문에 무슨 일이 생겼어? 어디로 가는 거야?”
양준이 다급하게 물었다.
“설명하기 어려워.”
그는 난감한 기색을 띠더니 양준의 손을 뿌리치고 말했다.
“직접 장문인과 장로들께 물어봐.”
말을 마친 그는 다급히 떠나갔다.
양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바로 이때, 마음속에서 감응이 느껴져 고개를 들고 바라보니 멀리서 하얀 인영이 날아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바로 소안이었다.
소안은 여전히 차갑고 아름다웠다. 일 년 동안 그녀의 실력은 훨씬 강해져 있었다. 실력이 강해짐과 동시에 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차가운 기운도 전보다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그녀가 내뿜는 차가운 기질은 세상 모든 것을 얼어붙게 만들 것 같았다. 오직 양준과 눈을 마주칠 때에야 그녀의 눈에는 부드러운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향기와 함께 그녀는 양준의 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어여쁜 얼굴에 미소를 담고 물었다.
“돌아왔어?”
양준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다급히 물었다.
“이곳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소안은 반짝이던 눈동자를 흐리더니 양준의 팔을 잡고 말했다.
“변고가 좀 생겼어. 가면서 얘기하자.”
말을 하면서 그녀는 몸을 날려 공중에 우뚝 섰다. 양준도 진원을 운행하여 그녀와 함께 날아갔다.
진원의 파동을 느낀 소안은 양준을 돌아보고 깜짝 놀랐다.
“너 벌써 진원 경지 3단계야?”
양준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네.”
“실력이 오르는 속도가 빠르네.”
“사저도 마찬가지예요. 벌써 진원 경지 8단계잖아요.”
양준도 소안의 실력에 깜짝 놀랐다. 자신은 외지에서 수련한 데다 또 각종 기연을 마주치다 보니 이렇게 빨리 성장한 것이었지만, 소안은 그저 종문에 남아서 수련했을 뿐인데도 이 정도까지 성장했다. 그녀도 자신과 같은 환경이었다면 훨씬 더 빨리 성장했을 것이다.
양준의 칭찬을 들은 소안은 얼굴을 붉히더니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빙심결은 마음의 수련을 중시하지. 일 년 동안 마음을 수련하면서 실력도 같이 향상되었어.”
양준은 달리 짚이는 것이 있었다. 그녀는 분명 합환공을 꾹 참아내며 마음을 수련하였기에 이토록 발전이 빨랐을 것이다. 그는 히죽 웃고는 다가가 그녀의 얼굴에 입을 맞추었다.
소안은 저도 모르게 그를 흘겨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디로 가는 거예요? 장문인이 폐관하는 곳으로 가는 건가요?”
소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갑자기 어두운 얼굴로 쓴웃음을 짓더니 말했다.
“장문인께서 네가 돌아오면 가장 먼저 널 데리고 오라고 하셨어.”
“장문인께 무슨 일이 생겼나요?”
양준은 소안의 안색이 나쁜 것을 보고 다급히 물었다.
소안은 입술을 꽉 깨물더니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다치셨어. 중상이야…….”
“누가 한 짓이에요?”
양준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능태허의 실력은 몽무애 못지않았다. 두 제자의 일로 십 년 넘게 마음고생을 하지 않았더라면 진작 신유 경지를 돌파하고 그 위에 도달했을 것이다.
이러한 고수가 중상을 입다니. 게다가 소안의 안색을 보니 그 상처가 가볍지 않을 것 같았다.
‘누가 그런 거지?’
“장문인의 둘째 제자!”
“네?”
양준은 깜짝 놀랐다. 그러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사람은…….”
“응, 곤룡골에서 탈출했어. 게다가 사공이 크게 늘어 탈출한 날에 능소각의 신유 경지 고수와 격전을 벌이고, 장문인에게 중상을 입혔지. 사 장로 주비는 그 자리에서 살해당했고, 다른 장로들도 중상을 입으셨어. 제자들은 수없이 죽고 다쳤어…….”
소안은 미간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장문인께서 필사적으로 막지 않으셨다면 능소각은 이미…….”
“언제 있었던 일인가요?”
“한 달 반 전의 일이야…….”
소안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 전투의 여파가 아직까지 진정되지 않았어. 능소각은 지금 사기로 가득해. 제자들은 매 순간마다 공법을 운행해서 사기를 막아야 하고, 장로들은 모두 중상을 입었지. 많은 제자들이 이 일에 연루될까 두려워 이미 종문을 떠나고 있어.”
양준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는 드디어 종문이 왜 이 꼴로 된 것인지 깨달았다.
다만, 둘째 제자가 곤룡골에서 벗어난 것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곤룡골 바닥은 수백 년 동안 무수한 사람들을 봉인했지만, 누구도 벗어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장문인의 두 번째 제자가 성공한 것이다.
능태허가 그를 생포한 것도 사제의 정을 봐서 그를 죽이지 못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저 경지만 없애고 곤룡골에 가두어 둔 것이었는데 십몇 년이 지난 지금, 능소각에 화근을 심어둔 셈이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능태허는 그때 분명 그를 살려 두지 않았을 것이다.
말하는 사이, 두 사람은 어느새 장문인이 폐관하는 곳에 도착했다.
안에 들어가지 않고도 사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 짙은 사기에 양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들어가. 장문인께서 줄곧 너를 기다리셨어.”
소안이 가볍게 말했다.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마음이 찌릿해졌다.
일 년 전, 유명산에서 헤어질 때만 해도 능태허는 기운이 넘쳤으며 귀왕곡의 귀려와 막상막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고목처럼 검은 기운에 뒤덮여 있었다.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몸속에 침입한 사마지기를 억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양준이 돌아온 것을 느낀 것인지 침대에 누워 있던 능태허는 손을 살짝 움직이며 천천히 눈을 떴다.
양준은 다급히 앞으로 다가갔다.
방 안에는 능태허를 제외하고, 능소각의 연단사가 함께 있었다.
이 연단사의 실력은 높지 않았는데, 대략 진원 경지 7, 8단계 정도의 선배 제자였다.
“사숙, 장문인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양준은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그 사람은 천천히 고개를 젓더니 말했다.
“낙관적이지 않아. 아마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아…….”
양준은 앞으로 다가가 두 손가락으로 능태허의 맥을 짚은 채, 눈을 감았다.
신식으로 능태허의 몸을 살펴본 양준은 마음이 아팠다.
능태허의 오장 육부는 모두 위치가 틀어져 있었고, 온몸의 뼈도 수없이 부러져서 진원이 흐르지 못하고 있었으며 공법도 운행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뿐만 아니라 온몸에 사악한 기운이 퍼져 그의 생명력을 침식하고 진원을 갉아먹고 있었다. 만약 순수한 원기가 심장을 보호하지 않았더라면 능태허는 진작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능태허의 부상은 중하다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그는 지금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언제든지 세상을 떠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가 지금까지 간신히 버틴 것은 아마도 양준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린 듯했다. 그가 양준을 외지에 수련하러 보냈지만, 지금까지 아무런 소식도 없자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약은 쓰셨나요?”
양준이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연단사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장문인께서 이미 이 꼴이 되셨는데 어떤 약을 받아들이실 수 있겠어? 전에는 그나마 단약을 복용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사용할 수 없어.”
양준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사부님의 몸은 지금 너무나도 허약했다. 바로 기사회생할 수 있을 정도의 단약이 아니라면 복용해도 마지막 원기만 소모할 뿐이었다. 그렇게 되면 정말 세상을 떠날 수도 있었다.
‘다행이야. 아직 시간이 있어.’
양준은 미간을 찌푸린 채, 사색에 잠겼다. 그러다가 한참 뒤, 입을 열었다.
“사숙, 제가 장문인께 드릴 말씀이 있는데 잠시 자리를 비켜 주시겠습니까?”
능소각의 연단사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일어나서 떠났다. 비록 그는 양준과 능태허가 무슨 사이인지 알지 못했지만, 장문인이 기절하기 전에 양준이 돌아오면 반드시 그의 앞으로 데려오라고 당부한 적이 있었다. 장문인이 이토록 양준을 중시하는 것으로 볼 때, 두 사람의 관계가 일반적인 관계는 아닐 거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연단사가 떠나자 양준은 검은 책의 공간에서 만약영고를 꺼냈다.
감히 많이 쓰지는 못하고, 엄지 손톱 절반 만한 크기를 떼어냈다.
그는 만약영고가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 있을지 알지 못했지만, 지금 모든 희망을 이것에 걸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건 몇천 년의 시간과 몇백만 알이나 되는 단약의 정수가 모인 결정체였기 때문이었다.
양준은 방안에 있던 물을 데워 그 안에 만약영고를 녹여 냈다. 그리고 물잔을 들고 한 손으로 능태허의 입을 벌리고서 조금씩 약액을 쏟아 넣었다.
따뜻한 물 반 잔을 능태허는 한참이 걸려서야 다 마실 수 있었다.
양준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두 손으로 능태허의 가슴팍에 있는 요혈을 누르고 천천히 진원을 주입했다. 그것은 약효를 연화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동시에 그는 신식을 펼쳐 능태허의 몸속 변화를 관찰했다.
만약영고의 약효가 나타나며 양준은 메말랐던 능태허의 몸에 생기가 돌기 시작하는 것을 발견했다. 심지어 온몸을 순환하는 혈액도 점차 빨라졌고, 심장 박동 소리도 점점 강해졌다.
‘가능하겠어!’
양준은 기뻐하며 진원을 조금 더 많이 내보냈다.
그는 능태허의 몸이 너무나도 약해진 나머지, 만약영고의 약효를 받아들이지 못할까 봐 걱정했다. 만약 만약영고도 소용이 없다면 그가 직접 능태허의 목숨을 끝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은 자신의 아버지의 사부님이자, 자신의 사부님이기도 했다. 그가 어찌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행히 만약영고는 효용을 발휘했다.
한참 뒤, 능태허의 단전에는 점차 옅은 진원이 흐르기 시작했다. 양준의 노력으로 진원은 약효를 감싸고 경맥 안을 채우면서 파열된 경맥을 신속하게 복구시켰다. 신식으로 살펴보자 모든 과정이 또렷하게 보였다. 능태허의 몸속에 있는 오장 육부도 신속하게 제자리를 찾았다.
능태허의 창백하던 얼굴이 점차 혈색을 찾았고, 고통스러워하던 안색도 조금씩 편해지는 것이 보였다.
이 모습을 본 양준은 더욱 열심히 진원을 주입했다.
만약영고는 확실히 기사회생의 작용이 있었다.
한참 뒤, 문밖에서 갑자기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양준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고 귀를 기울였다.
잠시 뒤, 누군가가 다급히 다가와 문밖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