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6장. 양준이 살린 건 아니겠지?
곧이어 소현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양준이 돌아왔다며?”
“네, 안에 있습니다.”
소안이 대답했다.
이어서 대장로 위석동의 목소리가 들렸다.
“넌 왜 나와 있는 것이냐? 장문인의 곁을 지키라고 하지 않았느냐?”
이 말은 연단사에게 하는 말이었다.
“양준이 장문인께 할 말이 있다고 해서…….”
“허튼소리!”
위석동이 호통쳤다.
“장문인께서 의식을 잃으셨는데 무슨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냐.”
위석동은 장문인이 왜 양준을 중히 여기는지 알 수 없었다. 그가 기절하기 전에 남긴 유일한 말은 바로 양준이 돌아온 뒤, 자신을 만나러 오게 하라는 것이었다.
비록 전에 양준이 이합 경지 1단계의 실력으로 백운풍을 이기긴 했지만, 장문인이 이토록 그를 중시할 이유는 되지 못했다. 정말 장문인이 양준을 미래의 후계자로 점 찍었단 말인가?
이 추측에 위석동은 매우 언짢아졌다. 그는 양준과 사이가 좋지 않으니 양준이 득세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말하는 사이, 그는 다른 몇몇 장로들을 데리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네 장로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양준이 온몸으로 진원을 움직이며 두 손으로 장문인의 가슴팍을 누른 채 진원을 주입하고 있었다.
“네 이놈!”
위석동은 버럭 화를 냈다. 장문인은 지금 숨이 간당간당하여 건드릴 수조차 없는 상태인데 어떻게 진원의 주입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이게 목숨을 노리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는 호통친 뒤, 손을 들어 양준의 등으로 장풍을 쏘았다.
소안의 눈에 차가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소안이 나서기도 전에 소현무가 위석동의 장풍을 막았다.
두 사람의 장풍이 부딪히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 장로, 지금 뭐 하는 짓이오?”
위석동은 차가운 얼굴로 소현무를 쏘아보며 화를 냈다.
소현무가 미간을 찌푸린 채 입을 열었다.
“대사형이야말로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위석동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뭘 하냐고? 이 고얀 녀석이 지금… 고얀 녀석, 얼른 손을 떼지 못할까. 장문인을 죽이려는 것이냐?”
“조용히 하십시오!”
양준은 고개를 돌리고 차가운 안색으로 버럭 화를 냈다.
비록 그는 대장로 위석동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방금 전 위석동이 자신을 공격한 것이 장문인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여겨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위석동이 시끄럽게 계속 떠들어 대자 짜증이 났다.
위석동은 깜짝 놀랐다. 그는 양준이 자신에게 이런 말투로 말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위석동은 짐짓 위엄을 부리며 양준을 혼내려고 했으나 갑자기 가벼운 기침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조용히 누워 있던 능태허가 입을 열었다.
“그만하게.”
목소리는 매우 허약했으나 능태허의 목소리임은 틀림없었다.
네 장로는 모두 깜짝 놀라 눈알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그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들이 환청이라도 들은 게 아닌가 의심했다.
“장문인?”
위석동은 확신할 수 없어 반신반의한 얼굴로 고개를 내밀고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정말로 장문인인 능태허가 눈을 뜨고 이쪽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깨어나셨습니까?”
소현무는 앞으로 다가갔다. 삼 장로 하배수와 오 장로 우자재도 앞으로 다가가 살펴보았다.
“장문인…….”
장문인이 정말 정신이 들었다는 것을 확인하자 장로들의 목소리가 떨리면서 눈물이 핑 돌기 시작했다. 심지어 권세를 다투기 좋아하는 위석동도 마찬가지였다. 장문인이 깨어나자 그들은 무너진 하늘에서 솟아날 구멍을 찾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음속을 짓누르고 있던 큰 돌덩이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능소각에서 누가 없어져도 다 괜찮았지만, 능태허만은 안 되었다. 특히 지금처럼 중요한 순간에 능소각에 그가 없는 것은 큰일이었다.
“모두들 나가게.”
장문인이 나지막이 분부했다.
“네!”
그들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다급히 예를 올린 뒤 떠나갔다. 떠나기 전에 그들은 모두 놀란 눈빛으로 양준을 훑어보았다. 도대체 그가 무슨 대단한 수단을 썼기에 저승 문턱을 밟고 있던 장문인을 다시 살려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떠나가자 양준은 능태허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사부님!”
능태허는 평온한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돌아왔으니 됐어. 돌아왔으니 됐다.”
말하다가 그는 표정이 풀어지더니 또다시 잠이 들었다.
하지만 더는 그에게 생명의 위험이 없다는 걸 알기에 양준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문밖에서 네 장로는 서로를 바라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연단사도 마찬가지였다.
반 시진 전까지 능태허는 목숨이 위태로웠는데 어떻게 반 시진도 지나지 않아 깨어났다는 말인가? 게다가 안색을 보니 전보다 홍조를 띠는 것이 기혈을 많이 회복한 것 같았다.
“최근 장문인께 무슨 단약을 복용하게 했나?”
위석동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연단사에게 질문했다.
연단사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약을 드린 적은 없습니다. 장문인의 몸은 이미 약물의 주입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약을 쓴다면 돌아가셨을 것입니다.”
몇 사람의 안색이 더욱 놀라움으로 가득해졌다.
“설마 양준이 살린 건 아니겠지?”
우자재가 의아한 말투로 물었다. 그들은 모두 장문인의 부상을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대단한 수단이라도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는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깨어났다는 말인가?
“그럴 리가.”
하배수는 양준에게 그토록 대단한 능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애가 실력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그럴 실력이 있다고 해도 상처를 치료하려면 단약이 있어야지 않겠나? 어디 가서 기사회생할 수 있는 약을 얻었다는 말인가?”
위석동은 미간을 찌푸린 채, 중얼거렸다.
“참 희한한 일이군.”
소현무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장문인께서 깨어나셨으면 됐지. 그걸 따져서 뭐 하겠소? 장문인의 부상이 안정된 후, 물어보면 알 게 아니오. 지금 아무리 추측한다고 해도 다 소용없는 일이오.”
“음, 그 말이 맞소.”
몇몇 장로들은 홀가분한 표정을 지었다. 장문인이 깨어난 것은 더없이 기쁜 일인데 굳이 어떻게 깨어난 것인지 따져서 무엇 하겠는가?
“됐다. 난 이만 돌아가서 상처를 치료해야겠어.”
위석동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더는 따지지 않았다.
다른 장로들도 다급히 그를 따라갔다. 이들도 저번 전투에서 심각한 부상을 당했다. 한동안의 치료를 거쳐 많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상처가 완치되려면 아직도 시간이 필요했다.
연이은 며칠 동안, 양준은 줄곧 능태허에게 만약영고를 먹였다. 그러자 그의 몸은 점차 좋아졌다. 4~5일이 지나자 능태허의 상처는 거의 완치되었다.
다만, 몸속에 아직도 사기가 남아 있어 그의 얼굴에 때때로 검은 연기가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며칠 뒤, 능태허가 폐관하는 곳.
능태허는 웃는 얼굴로 의미심장하게 양준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난 네가 나에게 무슨 약을 썼는지, 어디에서 구한 약인지 묻지 않겠다. 하지만 기억해 두거라. 이번에 내가 기사회생한 것은 내가 소원을 이루지 못해 죽기 아쉬워서 살아난 것이니 너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양준은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능태허의 이 말은 매정하게 들릴 수 있었지만, 능태허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생각해낸 계책이라는 것을 양준이 어찌 모르겠는가?
기사회생할 수 있는 약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큰일이었다. 사람은 죄가 없어도 보물을 품고 있다면 없던 죄도 생길 수 있었다. 능태허가 어찌 양준이 위험에 처하는 것을 보고만 있겠는가?
“사부님, 여기 사부님의 건곤대입니다!”
양준은 품에서 건곤대를 꺼내 능태허에게 건네주었다.
능태허는 받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사부가 주었던 물건을 다시 돌려주는 경우가 어디 있단 말이냐?”
양준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지금은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검은 책의 저장 공간을 사용할 수 있게 되자 건곤대는 별로 소용이 없었다.
능태허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가지거라. 정 쓸 일이 없다면 다른 사람에게 주거라.”
양준은 머쓱하게 웃고 나서 순순히 건곤대를 품에 넣었다.
양준이 미간을 찌푸리다가 물었다.
“사부님의 상처는…….”
능태허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괜찮아졌다. 실력도 전성기 때로 완전히 회복되었어. 심지어 더 뛰어넘은 것 같기도 하고…….”
양준은 무척 기뻐하며 흥분해서 말했다.
“하지만 사부님 몸속의 사기는 아직 깨끗하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능태허는 미간을 찌푸리고 생각에 잠겼다.
“나도 이 점이 이상하다. 네가 나에게 먹인 약은 아주 기묘해. 만약 몸속의 사기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다면… 더 높은 경지에 이를 수 있을 것 같구나!”
능태허는 진작 신유 경지의 정상에 도달했었다. 여기서 한 단계 더 상승한다면 신유 경지 이상이었다.
신유 경지 이상에 도달한 사람은 한 종문에 한두 명밖에 없었다. 대단한 종파라 해도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만약 능태허가 정말로 신유 경지 이상에 이른다면 전화위복인 셈이었다.
‘만약영고가 무도를 일깨워 주는 효과가 있는 건가?’
양준도 만약영고에 이토록 신묘한 작용이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우물에서 가장 정수인 부분이니 어쩌면 더 강한 효과가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사부님, 축하드립니다!”
양준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능태허는 두 제자의 일로 십 년이나 넘게 경지가 멈춰 있었다. 진작 여기까지 도달했어야 하는 것을 지금까지 시간을 끈 것이었다.
능태허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양준은 진지한 얼굴로 나지막하게 물었다.
“사부님, 둘째 제자가 정말로 곤룡골에서 탈출했나요?”
그 말을 들은 능태허의 눈빛에 숨겨졌던 음울함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때 내가 그의 경지를 폐지하고 곤룡골에 가두었지. 하지만 그가 십 년이 넘게 지난 지금 탈출할 줄 누가 알았겠느냐? 예상 밖이었지. 아마 밑에서 기연을 만나 실력이 크게 늘어난 거 같구나. 사악한 무공이 대성공을 이룩한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