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1장. 중도 추씨 가문
양준이 귀를 기울이고 들어보니, 종문 내에서 여러 개의 옷자락이 나부끼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능태허 외에도 여럿이 출동한 것 같아 곧바로 소안과 함께 다락방에서 뛰어내려 그쪽으로 날아갔다.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능태허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어떤 손님이 이런 때에 찾아왔는고?”
저쪽에서도 늙고 무덤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능 장문인, 오래간만입니다.”
양준은 그 목소리를 듣고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걸음을 재촉해 곧 능태허의 옆에 다다랐다. 장로들도 이미 나와 능태허의 등 뒤에 서 있었다.
양준과 소안이 함께 온 것을 보고 장로들의 얼굴빛이 금세 괴이해졌다. 특히 소현무는 진작 손녀와 양준 사이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눈앞에서 확인하자 여전히 눈을 희번덕거렸다. 게다가 소안의 차갑기만 하던 얼굴에는 아직 옅은 홍조가 남아 있었다. 이를 보자 소현무는 기분이 언짢아졌다.
그는 위협적인 눈빛으로 양준을 노려보았다.
양준은 겸연쩍게 웃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능태허는 찾아온 이의 얼굴을 확인하고 놀라서 물었다.
“그대는 동씨 가문의 풍위 아닌가?”
찾아온 이는 하하 웃으며 공수 인사했다.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양준은 얼굴빛이 급변하며 서둘러 물었다.
“무슨 일 있으신가요?”
동씨 가문의 풍운쌍위는 동경한의 안전을 책임지기 때문에 항상 곁에서 그를 호위했다. 그런데 풍위가 갑자기 능소각을 찾아온 것을 보면 동경한이 그에게 중요한 소식을 전하려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풍위를 보낼 리가 없었다.
풍위는 표정을 바로 하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공수하며 말했다.
“양 공자, 저희 도련님께서 능소각을 떠나 대피하라는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사주 때문입니까?”
양준은 양미간을 찌푸리더니 곧 그 원인을 알아차렸다.
풍위가 깜짝 놀랐다.
“종문에서도 벌써 알고 계시군요.”
‘어쩐지 주변이 스산하다 했어.’
능태허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네.”
풍위가 다시 권했다.
“그럼 왜 아직 여기 계신 겁니까? 어서 피하시죠. 이번에 능소각에 찾아올 이들은 상대하기 힘들 겁니다.”
“어떤 이들이오?”
소현무는 풍위가 심각한 말투로 말하자 저도 모르게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중도의 추(秋)씨 가문입니다.”
풍위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8대 가문 중 하나인 추씨 가문?”
위석동과 다른 이들도 얼굴빛이 급변했다.
“맞습니다. 추씨 가문의 주도 하에 백씨 가문과 자미곡도 손을 잡았습니다. 세 세력이 뭉치면 능소각이 상대하기 어렵습니다. 우리 동씨 가문도 그들을 건드릴 수 없고요.”
풍위가 진지한 표정으로 권했다.
“때로는 용맹을 떨칠 필요는 없습니다. 언젠가 재기할 기회는 다시 올 겁니다.”
능소각에서 사주가 나왔으니 중도 8대 가문이 이 일에 참여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이처럼 큰일에는 사태를 통제할 수 있는 세력이 앞장서서 처리해야만 했다. 하지만, 백씨 가문과 자미곡에서도 사람을 보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었다. 아마도 지난 번 양준과 백운풍의 싸움에서 체면을 잃고서 이번 기회에 불난 집에 부채질하려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속도가 무척이나 빠릅니다. 오는 내내 그들을 얼마 떨어뜨리지 못했습니다. 아마 반나절 뒤면 도착할 겁니다. 전 말씀 전했으니,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는 이곳에 오래 머무를 수가 없었다. 만약 추씨 가문 사람을 만나면 변명하기가 힘들었다.
풍위는 말을 마치고 바로 떠났다. 모두들 그 자리에서 경악스러움에 휩싸였다.
위석동이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동씨 가문에서 이리 친절하게 언질을 줄 이유가 없는데 함정이 아닐까요?”
능태허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아니네. 양준이 동씨 공자와 친분이 있으니 의심할 것 없네.”
능태허의 말에 장로 넷은 모두 경이로운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가 무슨 재주로 동경한 같은 인물과 알고 지내는지 궁금했다.
“모든 제자들에게 곤룡골로 집합하라고 명하게.”
능태허는 즉시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다시 한마디 했다.
“양준, 넌 남아라.”
“네.”
장로들은 명을 받고 급히 자리를 떴다. 양준과 능태허만 남게 되었다.
“저번에 나와 순간 이동을 했던 장소를 기억하느냐?”
능태허가 불쑥 물었다.
“기억합니다.”
“그럼 잘됐구나. 그곳에 진원을 주입하기만 하면 진법이 스스로 작동될 거다. 잠시 뒤에 제자들을 데리고 그곳으로 가거라. 추씨 가문 사람들이 그곳까지 쫓아가지는 못할 거다. 다 떠난 다음 진법을 파괴하고 다른 곳에 가서 자리를 잡거라. 형세가 잠잠해질 때까지 나오지 말고.”
“사부님은 안 떠나십니까?”
양준은 그의 속뜻을 알아듣고 놀라서 물었다.
“능소각은 도리에 어긋나는 짓을 한 적이 없다. 잘못이 있다면 내가 사람 보는 안목이 없어서 제자를 잘못 들인 죄뿐이다. 왜 떠나겠느냐? 만약 나까지 가 버리면 능소각은 더욱 불리해질 것이다. 난 남아서 그들과 도리를 따질 것이다. 사주가 능소각 출신이라는 이유로 우리 종문을 멸하겠다? 악인 중에는 그들 가문 출신도 있는데, 왜 그들은 가만두는 것이냐?”
능태허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 그들이 기세등등한 것이 단단히 벼르고 온 것 같습니다. 그들과 도리를 따질 수 있을까요?”
양준이 다급하게 말했다.
“난 이미 남기로 결정했으니 그리 알아라.”
능태허는 단호했다. 그는 자신감 넘치게 빙그레 웃었다.
“게다가 설령 정말 싸운다 해도 얼마든지 상대해 줄 수 있다… 허허!”
양준은 정신을 번쩍 차리고 놀라서 물었다.
“사부님 설마…….”
“그래. 다 네 덕분이다.”
능태허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신유 경지 이상에 오르셨나 봐.’
이번 재난을 겪으면서 십몇 년 동안의 속박과 틀을 벗어던지고 경계를 돌파한 듯했다. 아마 지난 몇 달 동안, 능소각의 유일한 경사일 것이다.
양준은 능태허가 신유 경지 이상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마음을 가다듬고 더는 권유하지 않았다. 그는 서둘러 움직였다.
*곤룡골,
능소각에 남아 있던 모든 이들이 모였다.
양준은 다시 한번 소무영 무리를 보게 되었다. 거의 1~2년 동안 보지 못한 사이, 소무영 역시 이미 이합 경지 9단계까지 도달한 상태였다. 실력 향상 속도가 괄목할 만했다.
“양 사형……!”
소무영도 흥분해서 소리를 질렀다. 이운천을 비롯해서 그 무리들이 뒤를 따랐다.
“오랜만이야.”
양준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둘러보았다. 소무영 외에, 다른 제자들도 모두 기동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사형이라고 불러야 할지, 매형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네.”
소무영이 능글맞게 웃으며 양준을 바라보았다. 양준과 소안 사이를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편한 대로 불러.”
양준은 코를 매만지며 말했다.
“매형, 대단해.”
소무영은 감탄하는 눈길로 양준을 바라보며 엄지를 치켜들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난 우리 누님이 평생 시집도 못 가고 혼자 살 줄 알았는데, 사형한테 관심을 가지다니. 진짜 대단해! 어떻게 꼬신 거야?”
소무영이 한창 말하고 있는데 소안 쪽에서 차가운 시선이 날아왔다. 그는 저도 모르게 목을 움츠리더니 흠칫흠칫 몸을 두어 번 떨면서 겸연쩍게 웃었다.
“모두 도착했느냐?”
위석동과 소현무가 둘러보며 큰소리로 물었다.
“장문인은 어디 계시지?”
하배수가 물었다.
“장문인께서는 능소각에 남겠다고 하십니다.”
양준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뭐라고?”
장로들의 얼굴빛이 크게 변했다.
장로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모두의 눈에는 단호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위석동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장문인께서 남겠다고 하시니, 나도 남지. 사제는 제자들을 데리고 어서 떠나시오.”
소현무가 도도하게 웃으며 말했다.
“대사형, 저도 장문인의 곁에 남겠습니다. 셋째야, 제자들은 네가 맡거라.”
하배수가 허허 웃더니 고개를 돌려 우자재를 바라보았다.
“자네가 가장 어리니, 자네가 제자들을 맡게나.”
우자재는 주위를 둘러보아도 본인보다 어린 장로가 없었다. 그는 코를 만지며 말했다.
“저도 남겠습니다.”
장로들은 서로 눈을 부릅뜨고 마주 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소현무가 말했다.
“그럼 다 남는 거로 하고, 양준은 잠깐 오너라.”
“부르셨습니까?”
“장문인께서 네가 길을 안다고 했다. 그럼 이번에 너와 소안이 제자들을 이끌고 떠나거라. 꼭 능소각을 이어 가야 한다. 알겠느냐?”
“예.”
“갑시다.”
위석동은 손을 젓더니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곧바로 몸을 날려 능소각으로 돌아갔다. 다른 이들도 서둘러 쫓아갔다.
“우리도 출발하자.”
양준도 말을 길게 하지 않았다. 능태허는 이미 신유 경지 이상에 다다랐고, 장로 네 명도 실력이 강했다. 다섯 명이면 찾아온 이들의 공격을 얼마든지 막아낼 수 있었다. 하물며 이번에 꼭 싸울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여기 있는 이들은 반드시 떠나야 했다. 이들은 능소각의 미래였다. 만약 이들이 능소각에 남아 있으면 능태허와 장로들은 찾아온 이들과 대화하려고 해도 제약이 있었다.
백여 명은 양준의 뒤를 바짝 쫓아 곤룡골을 따라 빠르게 내려갔다.
얼마 안 되어 찾으려던 곳에 이르렀다. 아래쪽에서는 아직도 사악한 기운이 들끓고 있었다. 진법은 몇백 장 아래에 있었다.
모두 얼굴이 하얗게 질려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특히 젊은 제자들의 표정은 처량하기까지 했다.
“실력이 높은 사숙들은 저랑 먼저 내려가시죠. 소안도요.”
양준은 말하고 나서 앞장서서 아래쪽으로 뛰어내렸다. 곧 7~8명의 제자들이 함께 뛰어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