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272화 (272/853)

제 272장. 추억몽

진법이 있던 위치에 도착한 양준은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여기서 뭘 하면 되지?”

마른 체구의 남자가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는 신유 경지 3단계로 능소각에서 집사 일을 보고 있었다.

“진법을 찾고 있습니다.”

양준은 가벼운 목소리로 대답하면서 시선을 재빨리 움직였다.

잠시 뒤, 양준이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여기입니다.”

모두가 그의 시선을 따라 바라보았다. 그곳은 주위와 다름없는 그냥 바위였다.

“다 같이 이곳에 진원을 주입하면 되요.”

양준은 말하면서 한 손을 내밀어 바위를 지그시 눌렀다. 곧이어, 양준의 진원이 사납게 용솟음쳤다.

그는 다른 한 손으로 소안을 잡았다. 두 사람이 함께 힘을 쓰는 것은 합환공 전승을 얻고 나서 처음이었다.

둘이 손을 맞잡자 각자의 진원 파동이 한 단계 올라가고, 진원의 흐름도 뚜렷이 빨라졌다. 이런 변화를 지켜보던 몇몇 사숙들은 은근히 놀라는 눈치였다.

다른 이들은 더 물어보지 않고, 양준을 따라 진원을 주입했다. 거의 열 명에 가까운 이들이 함께 진원을 주입하자 얼마 안 되어 거대한 바위에 지난번과 같은 반응이 일어났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모두가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양준은 진원을 주입하면서 설명했다.

“여기는 다른 공간으로 넘어가는 통로입니다. 종문 선조께서 남기신 진법이지요. 이쪽은 능소각과 연결되어 있고 출구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한 사숙이 호기심에 차서 물었다.

“다른 곳은 능소각과 얼마나 떨어져 있지?”

“장문인께서는 만 리 정도 떨어져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곳에 들어가면 모두 안전할 겁니다.”

모두들 깜짝 놀랐다.

허공 통로는 모든 이의 식견과 이해 범주를 벗어난 것이었다.

“우리 종문에 이런 통로가 있었다니! 처음 알게 된 사실이군.”

사숙은 놀라서 눈알이 빠져나올 지경이었다.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제 됐습니다. 저와 소안을 제외하고 다른 분들은 각자 할 일이 있습니다. 두 사숙께서는 먼저 건너가셔서 저희를 기다리며 주위 상황을 살펴봐 주세요. 남은 분들은 올라가서 진원 경지에 이르지 못한 제자들을 데리고 와 주십시오.”

양준은 망설임 없이 사람들을 지휘했다.

양준은 젊은 제자였지만 남들이 모르는 비밀을 아는 것만 봐도 능태허가 그를 중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양준의 지시는 신속하고 합리적이어서 사숙들은 별다른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곧바로 신유 경지 1, 2단계 고수 두 명이 허공 통로에 뛰어 들어갔다. 다른 이들은 남은 제자들을 데려오기 위해 다시 위로 올라갔다.

양준과 소안만이 그 자리에 남아 계속해서 진원을 주입했다.

소안을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던 양준이 갑자기 말했다.

“사실 전 중도 양씨 가문 출신이에요.”

소안의 아름다운 눈동자가 반짝이더니 놀라서 되물었다.

“뻐꾸기 양씨 가문?”

양준이 쓴웃음을 지었다.

“네!”

“그런데 갑자기 그 얘기는 왜 해?”

소안은 호기심에 찬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양준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사저 마음을 훔치고 싶어요. 그러니까 솔직해야죠.”

양준이 솔직하게 말하자, 소안은 마음이 두근거리며 얼굴에는 홍조가 피어올랐다.

둘은 운우지정을 나눈 적도 많았지만, 지금 기분은 마치 이제 막 사랑이 싹튼 남녀가 둘 사이에 장벽을 하나하나 허물어 가며 천천히 서로를 알아가는 느낌이었다.

소안은 특히 양준의 솔직하고 성실한 모습에 마음이 두근거렸다. 어느 소녀가 좋아하는 남자에게 구애받는 것을 바라지 않겠는가. 소안도 마찬가지였다. 전승동천에서의 합환공 때문에 둘은 미처 서로를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갈라놓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행복도, 기쁨도 있었지만, 과정이 빠져 있었다.

지금 양준은 그 과정을 만들어 가며 소안의 마음속 불안감을 없애 주려 했다.

“쿨럭쿨럭…….”

위쪽에서 가벼운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양준이 고개를 들어 보니 사숙 한 명이 젊은 제자 한 명을 데리고 내려오고 있었다. 그는 그 제자의 비명에도 아랑곳없이 제자를 허공 통로 안에 던져 넣었다.

“하던 일 계속해…….”

사숙은 둘 사이 미묘한 분위기를 알아채고 곧바로 다시 위로 올라갔다.

그러나 사숙이 올라가자마자 잇달아 사람들이 내려오는 바람에 둘은 더 이상 이야기를 이어 갈 수 없었고, 마주 보며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난 네 지나온 이야기를 듣고 싶어.”

소안이 홍조를 띤 얼굴로 옆 사람의 눈치 따위 보지 않은 채, 양준의 귓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무사히 대피한 다음에 모두 말해 줄게요.”

“그래!”

소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볍게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그리고 난 너와 함께 어디 놀러 가고 싶어…….”

“그럼 우리 둘이 손잡고 세상 구경 다녀요.”

양준이 웃으며 말했다.

“응!”

소안은 행복에 취해 양준의 어깨에 머리를 가볍게 기댔다.

곤룡골 아래쪽, 사악한 기운이 일렁이고 종문에 재난이 닥쳐올 무렵, 남녀 한 쌍은 공중에 서로 기대고 서 있었다. 바람이 불어오자, 긴 머리카락이 휘날리고 옷자락이 나부꼈다.

두 사람은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바랐다.

오가는 능소각의 제자들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요상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능소각 십 리 밖, 많은 이들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중에는 신유 경지 9단계 고수 네 명이 있었고, 나머지 신유 경지 고수도 열댓 명이나 되었다. 그 밖에도 진원 경지, 이합 경지 무인이 4~50명가량 되었다. 그들은 스물 남짓 된 여인의 지휘 하에 능소각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얼마 안 되어 그들은 능소각 앞에 이르렀다.

“여기가 바로 사주의 출신지라고?”

스물 남짓한 여인은 꽃처럼 아름다웠고, 몸매가 늘씬했다. 맑은 눈에, 희고 부드러운 살결을 가지고 있었다. 보랏빛의 화려한 긴 치마는 그녀의 고귀한 기질을 더 돋보이게 했다.

여인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고, 눈동자에는 경멸과 의혹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담담하게 물었다.

“이등 종문에서 어떻게 사주 같은 인물을 배출해 낸 거지?”

곧바로 그녀 뒤에서 백의를 입은 남자가 걸어 나오더니 접선을 흔들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추 낭자, 비록 능소각이 이등 종문이긴 하나, 숨은 인재들이 아주 많아. 내가 겪어 봐서 아는데 얕보다가 큰 코 다칠 수 있어.”

백의를 입은 남자는 바로 지난번 양준에게 패한 백운풍이었다.

지난번에 양준에게 패한 다음부터 백운풍은 줄곧 원한을 갚으려고 벼르고 있었다. 하지만 능태허와 몽무애가 버티고 있는 데다, 여태껏 딱히 복수할 기회가 없어 아쉬워하던 차에 중도의 추씨 가문에서 능소각에 사람을 보낸다는 말을 듣고 설욕하기 위해 자청해 따라온 것이었다.

그는 앞에 서 있는 여인과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감히 여인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세 걸음 떨어진 곳에 서서 거리를 두고 있었다. 명문 세가 공자의 방자함은 찾아볼 수 없었고, 시선도 똑바로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한 채 그녀의 가녀린 어깨에 두고 있었다.

백운풍도 주제 파악을 하는지라 일등 세가의 공자 신분이 남 보기에는 번지르르하지만, 이 여인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눈앞의 여인은 중도 추씨 가문의 추억몽(秋憶夢)이었다. 중도 추씨 가문을 백씨 가문이 어찌 감히 넘보겠는가.

추씨 가문 배경을 말하지 않더라도, 추억몽 본인만 해도 이제 스물한 살의 나이로 실력은 진원 경지 9단계였다. 이 정도 자질이면 천하에서도 손에 꼽히는 축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자질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추씨 가문에 이런 여인이 나오자 양씨 가문을 제외한 중도 7대 가문의 젊은 공자들은 모두 그녀에게 장가를 들려 했다.

하지만 추씨 가문의 가주 추수성(秋守城)이 엄포를 놓았다.

‘추억몽에게 장가들고 싶거든 데릴사위로 추씨 가문에 들어와야 할 것이다.’

‘앞으로 아이를 낳아도 반드시 추씨 성을 따라야 한다.’

이러한 요구 때문에 많은 이들이 뜨거운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귀공자들이 추억몽의 주위를 맴돌며 구애했다.

추억몽은 자율적인 편이라 귀공자들과 적당한 관계를 유지했다. 이번에 능소각에 온 것도 중도에서 사람들에게 시달리다 보니 특별히 기분 전환도 할 겸, 단련도 할 겸 나온 것이었다.

추억몽은 백운풍의 말에 가볍게 웃으며 고개도 돌리지 않고 머리를 쓸어 올렸다.

“얘기 들었어. 능소각의 제자와 겨루다 비보까지 잃었다지?”

백운풍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속으로는 ‘재수 없는 년’이라고 욕하면서도 얼굴에는 겸손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변변치 못해서 그래. 추 낭자가 너그럽게 봐 줘.”

두 사람이 말하는 사이, 옆에서 또 한 명의 아름다운 여인이 튀어나왔다. 여인은 체구가 아담해 추억몽보다 머리 반 정도는 작았다.

여인은 화난 새끼 호랑이처럼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그자가 양준 맞죠? 범 사형은 지난번에 자미곡에 돌아간 뒤부터 줄곧 폐관 수련에 들어갔어요. 이등 종문의 제자도 이기지 못하면 안 된다고 계속 수련하겠다고 하네요. 마지막으로 범 사형 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네. 다 양준 탓이야. 나한테 잡히기만 해 봐, 가만 안 두겠어.”

그녀가 말하는 범 사형은 바로 지난번에 능소각에 왔던 범홍이었다. 낙소만(駱小曼)과 범홍은 자미곡의 최우수 제자로서 어려서부터 함께 자라 정이 깊었다. 그런데 몇 달씩이나 사랑하는 이를 만나지 못하게 되자 낙소만은 당연히 모든 것을 양준의 탓으로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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