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3장. 어디 도망치려고
추억몽은 미소를 띠고 그녀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소만아, 진정해.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는 사주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서야. 괜한 복수심으로 일 그르치지 마.”
낙소만이 툴툴거렸다.
“아무튼 이번에 양준을 잡아서 자미곡으로 데려가 사형과 겨루게 할 거야. 이건 사형의 마음속 응어리란 말이야.”
그녀는 추억몽의 팔을 흔들며 애교를 부렸다.
“추 언니, 이등 종문의 일개 제자일 뿐이야. 언니가 일 보고 있으면 내가 다른 사람들 눈치 못 채게 그 녀석만 조용히 잡아갈게.”
추억몽은 쓴웃음을 지으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아무튼 일개 젊은 제자일 뿐이니까. 그런 녀석 때문에 능소각이 우리와 척을 지지는 않겠지.”
“히히, 역시 언니밖에 없어.”
낙소만이 활짝 웃었다.
백운풍이 옆에서 가볍게 헛기침을 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낙 사매, 내가 사매의 사기를 꺾으려는 게 아니고 양준은 쉬운 상대가 아니야. 일 년 전에 그는 이합 경지였는데도 나를 이겼어. 나와 범 형은 실력이 엇비슷하거든. 일 년이 지나는 동안, 그가 얼마나 실력이 늘었는지 누가 알겠어. 그러니까 사매가 그 녀석을 자미곡에 잡아가 범 형과 대결시켜도 아마…….”
“범 사형이 어떻게 이런 작은 동네의 제자에게 질 수 있어. 아니면… 내가 그 녀석을 손 좀 봐주면 되지. 어떡해서든 범 사형이 그 녀석을 이기게 하면 돼.”
낙소만이 콧방귀를 뀌고 눈알을 굴리면서 말했다.
그들이 한창 이야기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신유 경지 9단계 고수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가씨, 뭔가 이상합니다. 이곳에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추억몽은 얼굴빛이 살짝 변하더니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사람이 없다니요?”
그 고수는 신식을 펼쳐 살펴본 다음,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보아하니 능소각에서도 큰일을 벌어졌다는 것을 알고 진작 준비한 모양입니다. 안쪽에는 신유 경지 고수 다섯 명이 경계 중입니다. 그리고 바깥 쪽에 많은 이들이 모여 있습니다. 아마 능소각의 젊은 제자들이 대피하려는 것 같습니다.”
“어림없지! 그대들은 가서 신유 경지 고수 다섯 명을 모두 잡아들이세요. 저항하면 모조리 죽여도 좋아요. 나머지는 나를 따라와.”
“예.”
백운풍이 미리 알려준 정보에 따르면 능소각에는 능태허와 몽무애 두 신유 경지 절정의 고수가 있었다. 그래서 추씨 가문에서는 이번에 신유 경지 절정 네 명을 출동시켰다. 이 네 명이 있으면 능태허와 몽무애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들은 두 갈래로 나뉘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신유 경지 절정 고수 네 명이 앞장서고 그 뒤로 신유 경지 7~8명이 따라붙으며 능태허와 장로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나머지는 모두 추억몽을 따라 신속하게 곤룡골 쪽으로 쫓아갔다.
*곤룡골 아래, 양준과 소안은 잠시 동안 두 사람만의 평온함을 즐기고 있었다. 문득 양준의 얼굴빛이 바뀌더니 고개를 들어 위쪽을 바라보았다.
“왜 그래?”
소안이 양준의 움직임을 알아채고 얼른 물었다.
“누군가 오고 있어요.”
양준은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얼른 소리쳤다.
“서둘러 주세요. 발각된 것 같아요.”
위쪽에는 아직 이십여 명의 젊은 제자들이 남아 있었다. 양준의 고함을 들은 몇몇 사숙들은 진원을 돌려 속도를 높였다. 젊은 제자들이 하나둘씩 내려오더니 허공 통로로 들어가 사라졌다.
잠시 뒤, 모든 젊은 제자들이 허공 통로로 들어갔다.
“양준……!”
사숙 몇 명이 한쪽에 날아와 경계 태세를 취했다.
“먼저 가세요. 저희가 뒤를 지키고 있겠습니다.”
양준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알겠어.”
몇 명은 머뭇거리지 않고 곧장 허공 통로로 들어갔다.
“어딜 도망가느냐!”
곧이어 먼 곳에서 분노에 찬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비단 같은 빛이 한쪽에서 빠르게 날아왔다.
쫓아오는 이의 속도가 양준의 생각보다 훨씬 빨랐다.
양준과 소안은 얼굴빛이 변했다. 두 사람은 힘을 합쳐 진원을 돌리는 동시에 빛을 향해 일격을 날렸다.
묵직한 소리와 함께 빛이 흩어지더니 2~30명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양준과 소안은 휘청거리며 옆으로 십여 장을 날아가 하마터면 떨어질 뻔했다.
“양준, 또 보네.”
인파 속에서 백의을 입은 백운풍이 험상궂은 표정으로 소리쳤다. 백운풍은 양준을 보자마자 눈에 불꽃이 튀었다.
“네가 양준이냐? 잘생긴 것도 아니네. 대단하다 들었는데 평범하구만.”
낙소만은 양준을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입을 삐죽거렸다.
추억몽은 미소를 머금은 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눈길이 소안에게 미치는 순간, 그녀의 눈동자는 저도 모르게 수축되었다. 추억몽은 차디찬 젊은 여인의 몸에서 강한 압박감을 느꼈다.
‘고수군. 나에 못지않은 고수야.’
추억몽의 아름다운 눈동자의 이채가 반짝였다. 능소각 같은 자그마한 곳에 이런 인재가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여인은 실력이 강할 뿐만 아니라 용모도 경국지색이었다. 추억몽은 순간 저도 모르게 열등감이 생겼다.
그녀는 콧방귀를 뀌며 마음속에서 생겨난 옅은 질투심을 떨쳐냈다.
“여쭤 볼 게 있어서 찾아왔어요. 두 분께서 알아서 협조해 주시죠.”
추억몽은 심호흡을 하고서 두 사람에게 말하는 한편, 칠흑같이 어두운 허공 통로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식견과 신분으로는 도대체 무엇에 쓰이는 물건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는 호기심이 일어 계속 그쪽을 바라보았다.
양준이 비웃으며 말했다.
“낭자가 말한 뭘 물어보러 왔다는 게, 기세등등하게 능소각을 공격하는 건가?”
한쪽에서 능태허와 장로들이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신유 경지 고수들이 그곳에 이르자마자 인사 한마디 없이 다짜고짜 공격한 것이 분명했다.
추억몽은 아무렇지도 않게 얼굴에는 여전히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위력을 조금 보여야 능소각에서도 쉽게 협조할 테니까요. 그러니 괜한 힘 빼지 마세요.”
양준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맞은편에는 족히 2~30명이 있었다. 게다가 신유 경지 고수가 적지 않았고, 여러 갈래의 신식이 그와 소안을 겨누고 있었다. 만약 그와 소안이 어떤 움직임을 보이기만 하면 즉시 살해될 것이다.
허공 통로는 십여 장 떨어져 있었지만, 여전히 열려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얼마 못 가서 곧 닫힐 것이다.
‘뚫고 나갈 수 있을까?’
양준은 자신이 없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소안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표정은 줄곧 담담했다. 2~30명의 고수들 앞에서도 전혀 흐트러짐이 없었다.
“보아하니 협조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군요. 두 사람의 무위를 봉인하고 데려와.”
추억몽은 결단력 있게 지령을 내렸다. 시종일관 얼굴에는 옅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고, 여유 있는 표정이었다.
“예.”
곧 두 명의 신유 경지 고수가 그녀의 등 뒤에서 나오더니 경멸과 함께 냉소를 흘리며 양준과 소안에게 다가왔다.
양준은 소안의 손을 꼭 쥐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먼저 들어가요.”
소안은 잠깐 놀라다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생사의 순간, 그녀는 여느 분수를 모르는 여인들처럼 함께 남겠다고 하지 않았다. 그녀는 양준의 실제 신분이야말로 가장 좋은 보호막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남는다면 상황이 더 불리해질 수 있었다.
신유 경지 고수 두 명은 이미 오 장 이내에 이르렀다.
바로 그 순간.
곤룡골 아래쪽에서 사악한 기운이 소용돌이쳤다. 십여 갈래의 검은 교룡 같은 사악한 기운이 세차게 치솟아 오르더니 번개처럼 신유 경지 고수 두 명을 적중했다. 사악한 기운 속에는 살기가 숨어 있었다. 살기는 그들의 영혼을 공격하고 정신에 영향을 주었다.
신유 경지 고수 두 명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이내 눈동자가 뻘겋게 되면서 이성을 상실했다. 이성을 상실한 두 고수는 서로에게 공격을 날렸다.
양준은 눈앞이 환해지는 것만 같았다. 곧 지마가 그의 마음속 절박함을 느끼고 수단을 이용해 그를 돕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가자!”
양준은 급히 소안을 이끌고 허공 통로 쪽으로 날아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추씨, 백씨 가문, 자미곡 세 세력은 모두 공포에 휩싸였다. 십여 갈래의 교룡 속에 숨겨진 사악한 기운을 느끼고 모두 얼굴빛이 크게 변했다.
그들이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양준과 소안은 봉쇄를 뚫고 허공 통로에 신속하게 접근했다.
“저들을 막아!”
추억몽은 소리를 지르며 앞장서서 공격을 날리는 한편, 빠르게 그들에게 다가갔다.
“어딜 도망치려고.”
낙소만도 다급히 뒤를 따랐다. 양준을 자미곡으로 잡아가 범홍과 겨루게 할 생각뿐인 그녀가 양준이 도망치는 것을 봐줄 리가 없었다.
두 여인이 움직이자 다른 이들도 신법을 펼쳤다.
양준과 소안은 순식간에 허공 통로에 들어갔다. 소안이 먼저 들어갔고, 양준이 뒤를 지켰다. 혼돈에 싸인 통로에 들어서자, 양준은 재빨리 뒤돌아보면서 진원을 돌려 사방을 공격했다.
통로를 파괴해야만 능소각 사람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추억몽 무리의 속도가 생각보다 너무 빨랐다. 양준이 미처 허공 통로를 파괴하기도 전에 이미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통로로 들어온 것이다.
추억몽과 낙소만이 선두를 달렸다. 주변이 모두 혼돈에 싸인 것을 보고 두 사람의 얼굴에는 놀라움이 감돌았다. 두 여인은 이곳이 어딘지 전혀 몰랐다. 그러나 양준이 제 발로 들어왔으니 결코 위험한 곳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생각을 다잡은 추억몽과 낙소만은 동시에 양준에게 공격을 날렸다.
허공 통로 안, 진원이 어지럽게 흐르고 격렬한 충돌로 생긴 기경(氣勁)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혼돈의 공간은 한바탕 꿈틀거리더니 변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