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277화 (277/853)

제 277장. 여길 어떻게 들어왔어?

양준은 비몽사몽 상태로 깨어났다. 온몸이 마치 바늘에 콕콕 찔린 듯 쑤셨다. 주위는 어두웠고, 오직 횃불 하나가 동굴 벽에 비스듬히 꽂혀 있을 뿐이었다. 불빛이 위태롭게 일렁이고 있었다.

난초 향 같기도 하고 사향 같기도 한 그윽한 향이 코끝을 감돌고 있었다. 바로 그 요염한 여인의 냄새였다. 여인 자체의 체취인지 아니면 무슨 향을 썼는지 알 수 없었다. 짙지도, 옅지도 않아 사람이 빠져들게 할 뿐만 아니라 최음 효과도 있었다.

요녀를 떠올리자, 양준은 번쩍 정신을 차리고 경계 어린 눈빛으로 앞쪽을 훑어보았다. 여인은 그에게서 멀지 않은 곳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두 눈을 꼭 감은 채 온몸의 진원이 들끓고 있는 것이 무슨 공법을 펼치는지 알 수 없었다.

양준은 자신의 현재 몸 상태를 살펴보고 저도 몰래 얼굴빛이 흐려졌다.

기력도, 진원도 모두 회복되었지만 온몸이 어떤 신비한 힘에 제압당해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중독되었는지 진원을 돌리기만 하면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양준은 하는 수 없이 마음을 진정시키고 차분히 주변 상황을 살펴보았다.

지금 이곳은 동굴 안이었고, 십여 장 정도 깊이밖에 되지 않았다. 양준이 있는 곳은 동굴의 가장 안쪽으로, 여인은 맞은편에 앉아 그가 도망치지 못하게 나가는 길을 막고 있었다.

양준은 자세히 여인을 훑어보았다. 여인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요염함이 뼛속까지 스며든 듯, 온몸으로 요염함을 내뿜고 있는 듯했다. 특히 눈가 아래쪽의 점은 그녀의 요염한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여인은 양준의 거리낌 없는 시선을 느꼈는지 눈을 살포시 떴다. 아름다운 눈동자는 몽롱했고, 함초롬한 것이 사람의 혼을 빼앗을 정도였다. 양 볼에는 여전히 홍조를 띠고 있었고, 숨소리도 뜨거웠다.

“깼니?”

여인은 예쁜 미소를 띠고 흥미로운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이야? 사람을 납치해 놓고, 왜 나가는 길까지 막고 있지?”

양준은 그녀를 바라보고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여인이 요염하게 웃었다.

“여기서 지키고 있어야 네가 도망 못 갈 거 아니야?”

양준이 넉살 좋게 말했다.

“도망가기는. 이제 날도 어두워졌는데 독수공방하게 놔둘 수는 없지.”

여인은 그를 새침하게 흘겨보았다.

양준은 뜨거운 눈빛을 보내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진심이야. 처음 봤을 때부터 마음에 들었어. 우리 대화 좀 해보자고.”

여인은 참지 못하고 몸을 흔들어 대며 웃었다. 속으로는 나쁜 자식이 허튼소리만 한다고 욕하면서도 하얀 목은 빨갛게 물들어 갔다.

여인이 화내지 않자, 양준은 더 대담해졌다. 어차피 여인의 실력이 높아 도망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여인이 뭘 하려는지 알아내는 게 중요했다. 만약 여인이 그를 죽일 생각이었다면 지금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뻔뻔한 자식!”

여인은 붉은 입술을 가볍게 깨물고는 나지막하게 욕을 퍼부었다. 눈빛은 여전히 몽롱했다.

여인은 양준처럼 뻔뻔한 인간은 난생처음이었다. 그리고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허튼소리를 하는 재주도 일품이었다. 그녀도 나름 호쾌한 여인이었지만, 양준이 대담하게 도발하자 부끄러움을 느꼈다. 하물며 지금 그녀의 몸 상태에 그런 말은 너무나 자극적이었다.

여인이 속으로 욕을 퍼붓고 있는데, 양준이 정색하고 물었다.

“혹시 향에 중독됐어?”

여인의 상태로 봐서는 욕정이 넘쳐 흐르는 듯한데 이상하게도 오랫동안 참고 있는 것이 양준으로서는 의아하기 그지없었다.

여인은 살짝 당황하더니 어색한 표정으로 억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렇다고 할 수도,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

“그럼 도대체 맞다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양준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런 거라고 하자. 수련할 때면 늘 이래. 이번에는 오는 길에 부상까지 입어서 증세가 더 심한 거고. 내가 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네…….”

여인은 미소를 머금고 양준을 바라보며 속이지 않고 사실대로 말했다.

“그래서 날 잡아온 거구나.”

양준은 그제야 영문을 알 수 있었다.

‘아니, 그런데 무슨 공법이기에 돌파할 때마다 여인이 욕정을 일으키는 거지? 사공(邪功)! 틀림없이 사공일 거야! 보아하니 양기를 빼앗아 음기를 보충하는 공법인 게 분명해. 만약 정말 저 요녀에게 양기라도 빼앗기면 어떡하지.’

“그냥 만일을 대비하기 위해서야!”

여인은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양준은 지금 꼼짝할 수 없으므로 그녀 또한 거짓말할 필요가 없었다.

“왜 하필 나야?”

“거기에 너 말고, 노인 세 명과 여자 두 명밖에 없었잖아. 너 아니면 누구를 잡을까?”

여인이 방글방글 웃으며 되물었다.

‘제기랄, 지지리도 운이 없었네! 백운풍 그놈은 왜 그때 안 따라왔지? 따라왔다면 그놈이 잡힐 수도 있었는데.’

“도움이 된다면 나도 영광이지. 힘들게 참지 않아도 되.”

양준이 음흉하게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여인은 입을 가리고 예쁜 미소를 지으며 볼멘소리로 투덜댔다.

“꿈 깨! 내가 수련한 공법은 아주 특별해. 순결을 잃어도 계속 수련할 수 있지만, 대성하기 전에 순결을 잃으면 수련 속도가 대폭 느려질 거야. 마지막 한 단계만 남았는데 공든 탑을 무너뜨릴 수는 없지.”

여인은 그를 뚫어지게 지켜보았다. 몽롱한 눈동자에는 안타까움과 아련함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름이 뭐야?”

“양준이야.”

“양준… 기억해 두지. 난 선경라(扇輕羅)라고 해.”

여인은 눈을 내리뜬 채 가볍게 혼잣말로 되뇌고 나서야 정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이 참 예쁘네…….”

양준은 양미간을 찌푸렸다.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여인의 높은 실력을 보면 세상에 이름을 날린 고수가 틀림없었다. 그러니 당연히 들어봤을 것이다. 양준은 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네 진원의 봉인도 풀렸으니 이성을 잃지 말고 정신을 잘 붙들고 있어. 네가 내 유혹술을 견뎌 낼 수 있을지 모르겠네. 그 외에… 넌 내가 이 고비를 넘기기를 기도해야 할 거야.”

선경라가 애교 띤 미소를 지으며 일깨워 주었다.

“못 넘기면 어떻게 되는데?”

양준은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하하……!”

선경라는 가볍게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함초롬한 눈망울로 양준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다가 말했다.

“생긴 것도 나름 준수하고, 온통 허튼소리뿐이고 뻔뻔스럽기 그지없지만 그게 네 본성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어. 그래서 이 누님이 널 좀 좋아한다고.”

그녀는 말하면서 얼굴이 발그스름해졌다. 그러고는 양준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두 눈을 감았다. 그녀의 온몸에서 진원이 다시금 요동쳤다.

양준은 입을 닫고 가만히 선경라의 변화를 주시하면서 경계했다.

그는 그녀의 몇 마디 말에서 지금이 그녀의 고비이자, 자신의 고비임을 알게 되었다. 양준은 음침한 표정으로 살길을 궁리했다.

동굴 안이 자욱한 빛으로 가득 찼다. 양준이 고개를 들어 보니 선경라의 온몸에서 진원이 요동치며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진원이 그녀의 요혈로부터 갈래갈래 뿜어져 나왔다. 진원은 공기와 접촉하는 순간 새하얀 견사로 변했다. 수천 갈래의 견사가 선경라의 주위에 드리우더니 그녀를 겹겹이 감쌌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견사는 점점 더 많아지고 조밀해졌다.

양준은 이를 지켜보며 눈썹을 찌푸렸다.

견사는 거미줄 같기도 하고, 고치실 같기도 했는데 탄성과 인성(靭性) 그리고 강력한 힘이 내재되어 있었다.

반 시진도 안 되어 선경라는 온몸이 견사에 감싸였다. 절세가인의 미모도, 몸매도 모두 견사 속에 파묻혔다.

양준의 눈에는 새하얀 타원형 번데기만 보일 뿐이었다. 그것은 마치 장막처럼 선경라를 덮고 있었다. 그녀의 굴곡진 몸매가 타원형 번데기 한쪽 면에 거꾸로 비쳐 몽롱하게 보였다.

이때, 은은한 향기가 천천히 동굴 속으로 퍼져 나갔다. 향기가 코 속으로 밀려드는 순간, 양준은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피가 들끓으며 호흡이 가빠졌다.

선경라의 몸에서 발산되는 체취야말로 가장 순수한 최음제였다.

일이 잘못된 것을 느낀 양준은 얼른 진양결을 운행시켜 심신을 진정시키려 했다. 하지만 막아 내려 할수록 점점 더 힘들어졌다.

양준이 힘들게 버텨 내고 있는 가운데, 선경라 쪽에서 억눌린 듯한 신음과 속삭임이 들려왔다. 그 소리가 귀에 들려오는 순간, 양준의 눈동자는 순식간에 빛을 잃고 망연해졌다. 주위의 환경이 한바탕 바뀌더니 어두컴컴한 동굴도, 일렁이는 불빛도, 눈앞의 영롱하고 맑은 번데기도, 그 속의 선경라도 동시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양준이 눈을 번쩍 뜨고 다시 고개를 들어 보니 멀지 않은 곳에 선경라가 여전히 흰 번데기 속에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지만 방대하고 순수한 기운이 흰 번데기 속에서 쏟아져 나와 그의 경맥으로 흘러들었다.

양준은 심호흡을 하면서 천천히 들끓는 기혈을 잠재웠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나자, 양준은 더는 생각하지 않고 전력을 다해 공법을 운행시켰다. 그러자 선경라가 있는 흰색 번데기 속에서 기운이 줄기줄기 빠져나와 양준의 경맥과 단전으로 흘러들었다. 그리고 점차 양준은 자신과 선경라 사이에 미묘한 연계가 생기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런 느낌은 점차 더 강해졌다.

이때, 별안간 비명이 들려왔다.

양준은 얼른 눈을 떴다. 눈앞에서 선경라가 예쁜 눈을 부릅뜨고 불가사의하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

양준은 깜짝 놀랐다.

“여길 어떻게 들어왔어?”

선경라가 작은 입을 살짝 벌린 채 물었다.

“뭐라고?”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의아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느샌가 그는 선경라와 마주 보고 있었고, 주위는 온통 망망대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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